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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 Oxogan The Twin Head and Twin Soul
'이런 제기랄! 이런 사태를 피하고 싶어서 저승에 발을 딛는걸 망설였던건데.'
나는 회장이라기엔 너무나 젊고 감각적인 슈트차림에 해골모양의 귀걸이를 한 미남자가 걸어오는걸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저 겉으로 볼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염라대왕의 이미지라기 보단 혼성 락밴드의 얼굴마담쯤 되보였지만 방심은 금물이였다.
Ex랭크의 영력을 지닌 나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는게 불가능했을뿐더러 사령안으로 영혼의 속삭임을 들여다보려 해도 마치 무저갱을 눈앞에 둔듯 깜깜하기만 했다. 나는 이제와서 숨기기도 뭣한 글래셜투스를 어깨위에 얹으며 애써 담담한 태도로 대꾸했다.
"이렇게 구태여 길잃은 저희집 강아지를 찾아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글래셜투스가 당신 작품이였군요. 아주 성능이 기가막혀서 잘 쓰고 있습니다."
"꽤나 뻔뻔한 작자로군. 이승의 술법사들은 다 이런식인가? 나는 글래셜투스의 사용후기 따위를 물은게 아니라 네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은거야."
"옥사건 더 디파일러 그게 내 이름입니다만, 정체를 밝히라고 해도 통성명말고 달리 할게 있겠습니까? 당신의 말마따라 저는 이승의 술법사고 당신은 저승의 공무원인데 접합점 따위가 있을리 없잖습니까?"
"더 디파일러라 단순한 수식어구는 아닌것 같은데... 어디 보자."
나는 염라가 자신의 정장 주머니에서 백과사전만큼이나 두꺼운 책을 꺼내 펼친 순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공격을 감행할뻔했다. 혹시나 저 책이 신화속에 나오는 명부라면 내 이름을 듣는것만으로 수명을 조작한다거나 하는 기행이 가능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였다.
너무 경솔하게 이름을 밝혔다는 생각 플러스 과연 내가 회장급 사신을 기습해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고민때문에 내 눈동자는 진도 8.2의 대지진을 일으켰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염라는 주머니에서 붓까지 꺼내들어 신중하게 낡은 서책을 뒤적이는게 아닌가. 차림새만 보면 고가의 만년필을 쓸것같은 느낌인데 필기도구는 또 복고풍이로군.
"고대 제왕 출신같지는 않은데 명부에 이름이 없다라. 그렇다면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진 필멸자인가. 뭐 역사상 이런 경우가 아예 없었던건 아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꺼림직한건 어쩔 수 가 없군. 세트의 졸개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잠깐만! 아무래도 그 책은 필멸자들의 수명대장을 관리하는 용도인것 같은데, 내가 가명을 불었을 경우의 수 는 생각하지 않는겁니까?"
"흥! 누가 감히 저승관리국의 회장 염라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런 짓을 했다간 나의 염왕삭이 그 자리에서 바로 혓바닥을 썰어버릴텐데."
염라가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푸줏간에서나 쓸법한 커다란 식칼을 꺼내며 혓바닥을 써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 경우 무심코 진명을 말했던 것이 호재로 작용한 것인가? 그건 그렇고 저 주머니는 어떻게 된 구조이길래 책, 붓, 칼이 차례대로 나오는거야.
"그래 차라리 잘됐군. 명부에 리스트가 있었다면 수명이 다한 후에나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된거 저승관리국에서 1000년정도 같이 일해줘야 겠어, 이승의 술사나리. 그러니까 이름이 옥사건 더 디파일러라고 했나? 너무 기니까 앞으로의 호칭은 짧게 옥부장으로 하지."
"옥부장? 아니 지금 누구 마음대로 입사할 생각도 없는 사람한테 직책까지 정해주는겁니까?"
"흐응. 요즘같이 취업난이 심한때에 부장급 직위를 1000년동안 보장해주겠다는걸 마다하겠다는건가? 이거 배가 불러도 한참 불렀는걸."
"개소리는 집어치우시죠, 염회장님. 그런 노예계약보다 못한 조건으로 일을 시키시고 싶으시다면 다른 호구놈이나 알아보세요.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이런 황량한 사막밖에 없는 곳에서는 일 안합니다."
"아하 근로환경이 마음에 안들었던거구나. 근데 그건 여기만 그런거지 홍사해를 벗어나서 저잣거리쪽으로 가면 이승 못지않게 아니 이승 이상으로 화끈한 유흥거리들이 많다고. 기루나 도박장은 기본이고 혼욕이 가능한 온청탕도 24시간 운영중이지. 내가 억겁의 세월동안 저승을 관리해오면서 꽤 많은 변화가 있었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야. 저승에서 만년도 넘게 일해온 원로사원중 한명은 그간의 공로를 생각해서 내가 환생의 업을 내렸음에도 계속 이곳에 붙어 있는걸.
뭐 누가뭐라 해도 저승에서는 노화나 생리현상같은 육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버거로움이란게 없으니까."
"아니 다 필요없고 애시당초 내가 왜 당신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합니까?"
"그건 옥부장이 더 잘 알고 있을텐데. 장물취급, 공무집행방해, 살인강도. 하나 하나만 해도 범상치 않은 죄가 세개. 이른바 쓰리 아웃이란 말이지. 보통 같으면 그 죄를 내가 친히 물어 영멸시켜야겠지만 알다시피 요즘 저승에는 인력난이 심해서 말이야."
염라가 능글맞게 웃으며 아까 주머니에서 꺼낸 염왕삭을 한손으로 빙빙 돌렸다. 나는 무언의 압박을 받으며 저승의 주인과 생사결을 펼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운명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일전에 대면했던 초월인터페이스 엔도미야같은 경우 스스로가 정한 질서의 엔트로피라는 굴레에 사로잡혀 나를 어찌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눈앞의 염라는 그야말로 저승의 꼭대기로서 뭐든지 지 마음대로란 느낌이였다. 사장급 사신인 송제시왕을 살해하고(본의가 아니였고 사실상 그를 죽인 장본인은 자살공격을 감행한 긴고였지만) 한빙천수갑까지 강탈한 인간을 인력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부장급 인사로 채용한다?
이건 다른 직원들의 반발따위는 가볍게 묵사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고서야 나올 수 없는 행동이였다. 수틀리면 나를 영멸시키겠다는 말도 빈말이 아니리라. 저승을 찾아온 이승의 인간에게는 염라의 보호막이란 광역술법이 적용되지만 그 술법을 건 장본인인 염라가 그 보호막을 파쇄하지 못할리가 없었다.
내가 이제는 개구멍만큼이나 작아진 저승문을 힐끔거리며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진 순간 뜻밖의 존재가 손을 내밀어왔다.
'필멸자여 태초의 사자를 윤허한 자 나 오시리스와 계약을 맺는다면 저 염라라는 자와의 소요를 해결해주마.'
"미안하지만 제가 계약서를 읽기전에는 함부로 계약을 하지 않는 주의라서 말이죠. 당신이 지닌 비밀스런 지식이 보통이 아니란건 이제 알았지만 그 대가로 제 영혼같은걸 요구한다면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고대 제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데 나 오시리스는 그대에게 불합리한 계약을 종용할 생각이 없다네. 나는 그저 죽음의 섭리를 부정하려하는 동생을 막고 싶을뿐. 이제와서 내 조각난 육신을 모아 부활하고 싶지도 않아. 그저 내가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개념을 고안한 이유를 쫓아 영원한 안식을 취할 생각이네. 물론 내 동생의 업보를 모두 짋어지고 난 후의 일이겠지만.'
"이봐 지금 누구랑 대화를 하고 있는거야? 상사가 말을 할땐 딴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기본적인것도 이승에서 못배워온건가, 옥부장?"
"상사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씨발! 이봐요 오시리스 당신하고 계약할테니 어서 저 염라란 자의 주둥아리 부터 미라처럼 붕대로 칭칭 감아줘요. 진짜 아까부터 쫑알쫑알 시끄러워 죽겠네!!"
'필멸자여 마음을 굳혔다면 우선 이 수인을 따라해주게.'
나는 정령견신 아누비스를 소환할때와 마찬가지로 머리속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정보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계약조건이 나빠도 저승에서 1000년동안 일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던 나는 잽싸게 손가락 관절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인을 따라 맺었다.
그러자 목 언저리에서 맴돌던 사이한 기운이 피부밖으로 표출되더니 내 목젖에 이집트 벽화같은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다. 지구에 있는 본체는 이미 십이지신중 한명인 산중지왕 호랑이신과 계약하느라 대따 큰 호랑이 문신을 새긴 상태였으므로 나는 크게 꺼리낌없이 블랙탈론에 비친 목의 문신을 받아들였다.
'잠시 계약자의 몸을 빌리겠네. 내가 주는 기운을 거부하지 말게.'
"무슨짓을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이 염라앞에서 허튼 수작을 부렸다간..."
"염라여 오랜만이로군."
"갑자기 오랜만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네가 이전에 환생의 업을 받은 원로사원이라도 된단 말인가? 환생의 업을 받을 경우 철저히 저승에 대한 기억을 지우게 되는... 아니 잠깐! 당신 설마 오시리스 제사장인가?"
"그렇다네. 생전에 삶의 염증을 느낀 그대에게 죽음을 내린 고대 제왕중의 한명, 오시리스라네. 그대 덕분에 나는 태초의 사자를 윤허한 자라는 이명까지 얻게되었지. 그전에는 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고대 제왕들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자체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