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94화 (29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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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 Oxogan The Twin Head and Twin Soul

나는 느닷없이 위기에 빠진 주인공에게 '강력한 힘을 원하는가?'라는 멘트를 던지며 계약을 종용하는 족속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지금의 상황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만큼 후달리는 상황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사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여서 처음에는 아무 대가도 없이 힘을 빌려줄것처럼 말하다가, 나중에 돋보기로만 확인할 수 있는 0.2pt 사이즈 계약서 조항을 들이밀며 간이며 쓸개며 다뜯어갈지도 모르는것 아닌가? 최소한 이 오시리스라는 고대 제왕과 먼저 계약한 경험이 있는 무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계약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옳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태초의 사자를 윤허한 자같은 괴상한 이명을 지니고 있는 존재하고는 계약하고 싶지 않은데? 자신의 죽을 자리정도는 자신이 정하는게 맞지 않겠어? 누구한테 허락을 맞고, 말고할 문제가 아니잖아."

'흠 그대는 뭔가 큰 오해를 하고 있군. 내가 태초의 사자를 윤허한 자라는 이명을 얻은 것은 필멸자의 생과 사를 좌지우지해서가 아니다. 태초의 우주를 거닐었던 고대 제왕들은 모두 불멸자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하여 영원하 삶에 염증을 느낀 고대 제왕에게 안식을 선사하기 위해 짐이 고안한 개념. 그것이 바로 죽음이였다.'

"당신이 죽음이라는 개념을 고안한 존재라고? 홀리 쉿! 아니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왜 사자의 관같은 아티팩트에 봉인되어 있었던 건데?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고 자신의 생과 사는 결정할 수 없었나보지?"

'정확하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조금 길어지지만 고대 제왕들의 죽음을 관장하는 제사장의 자리를 탐낸 동생 세트가 나의 본신을 여러 조각으로 찢어 흩어지게 만들었지. 그대도 나의 본신중 일부를 가지고 있지않은가?'

"앙? 무슨 소리야. 내가 강령술사긴 하지만 빈병처럼 주워다 팔것도 아니고 시체쪼가리나 줍고다니는 취미는 없다고."

'이상하군. 분명 그대에게서 나의 장기중 하나인 뇌의 존재가 느껴지는데 말이지.'

"잠깐! 뇌라면 설마 저승교란종 아뮤트의 목에 걸려있던 죽음의 장기가 당신 몸이였단 말이야? 하긴 당신이 데모닉 그리모어의 원저자라면 어느정도 아귀가 맞는 이야기... 이런 제길! 나도 모르게 설득당하고 있잖아."

'그래서 나와 계약해서 죽음의 사도가 될 의향이 있는가?'

"으음. 그전에 당신이 지닌 힘이 어느정도인지 맛보기로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고대 제왕 오시리스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는걸 느꼈지만 이내 마음을 굳세게 다잡았다. 내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시리우스와 프리우스의 결합체인 노란색 태양과의 싸움에서 마땅한 활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였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정도의 힘만을 빌린 후 계약 얘기가 나오면 쌩까면 되는것이 아닌가?

마치 화장품을 살것처럼 굴면서 샘플을 잔뜩 받은 다음에 화장품판매원을 내쫓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는듯 말이 없던 오시리스는 내가 비록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끈다고 해서 불리해질 상황도 아니라는걸 깨달았는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좋다. 본래 계약을 통해 사도가 되지 아니한 자에게 힘을 빌려주는 것은 고대 제왕들의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나, 그대에게 나의 장기중 일부인 뇌가 있으니 어찌어찌 편법을 부려볼 수 있을것 같군. 지금부터 내가 지금은 실전된 고대의 존재를 부르는 수인을 나의 뇌를 통하여 전송할테니 그대는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따라하도록.'

나는 마치 일전에 야미도엔이 내 머릿속으로 초대량의 데이터를 쑤셔넣을때처럼 미지의 정보들이 뇌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때처럼 뇌의 용량을 초월하는 정도는 아니였고 머릿속에 들어오자마자 그대로 체화가 가능한 수준이였다. 그렇다고해도 제법 복잡한 형태의 손동작이 72가지나 되었기에 나는 신중히 수인을 따라 맺었다.

마치 위키 사이트에서 단어 우상단에 숫자를 표기하고 부연설명을 하는것처럼 각각의 수인을 따라할때마다 그 수인이 어떤 악마를 상지하는가에 대한 정보가 흘러들어왔지만 지금은 그런것까지 일일이 헤아릴때가 아니였기에 나는 자체 필터링을 했다.

마침내 72가지의 수인을 모두 맺었을때 나는 고대의 존재를 이 땅에 강림시키기 위해서 일종의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절로 깨달았다. 아무런 밑거름 없이 고대의 존재를 소환하기엔 나의 암(暗)속성 친화력이 아직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나는 한참 이매망량 천인장들을 지휘하고 있는 레레를 불러들였다.

이매망량 군단장 레레가 없다면 이매망량 천기분의 힘을 지닌 천인장들도 오합지졸에 불과했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가 없었다. 푸스카만큼이나 충직스러운 태도로 내앞에 부복한 레레의 이마에 내가 마지막을 맺은 수인을 도장처럼 찍어버리자, 내 몸에서 검은 실타래 같은 것들이 끝도없이 뽑아져나오더니 레레를 칭칭 휘감았다.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태하는 과정을 초고속카메라로 지켜보는듯한 광경이 지나가고 레레는 마치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대한 하나의 고치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지휘관을 잃은 이매망량 천인대장이 노란 태양을 상대로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는 순간, 고치에 금이 가면서 그 사이로 어둠의 안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매망량(魑魅魍魎) 군단장 제 2형 정령견신(精靈犬神) 아누비스(Anubis)

레레가 내게 부복했던 자세 그대로 고치안에 대기중이였지만 그 모습은 전과 확연히 달랐다. 개형상의 투구를 착용한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머리가 개처럼 변해버린건지 푸른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는 견상을 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허리춤에 있던 검을 개뼈다구처럼 입에다 물고 있었다.

레레의 인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잠시 명령을 내리는 것을 머뭇거리던 나는 이내 전투 타겟 지정을 하는 수인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흘려들어 오는 것을 느끼고 그대로 따라했다.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갈정도로 기묘한 수인을 맺자 정령견신 아누비스는 마치 대포알처럼 그 자리에서 튀어나가 노란색 태양을 공격했다.

이매망량 천인대장들이 아무리 도깨비 방망이를 묵직하게 휘둘러도 한번도 유효타격을 입지 않았던 시리우스와 프리우스의 결합체가 마침내 허리쯤에(괴상한 구체 형태라 허리가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처를 입더니 마치 용암처럼 진득한 피를 흘렸다. 몇 시간에 달하는 전투동안 노란색 태양이 흘린 첫 피였다.

나는 사실 정령견신 아누비스의 스피드가 너무 빨라 내 동체시력으로 첫 유효타격을 입히는 장면을 놓치고 말았지만, 대충 입에 검을 문채로 빠르게 노란 태양을 스쳐지나가 검상을 입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아무리 정령견신 아누비스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지금까지 이매망량 천인대가 빨래하듯 방망이를 두드렸는데도 타격이 없던 노란 태양에게 상처를 입힌 것을 보고, 이 싸움에는 단순히 힘의 고하를 떠나서 일종의 상성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유추를했다. 계속해서 노란 태양의 주위를 빙빙 돌며 유효타격을 입히는 정령견신 아누비스를 보고 그 유추는 확신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혹시 내가 긴고와 싸울때처럼 이애망량들을 기간틱 레이스로 바꾼다면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매망량(魑魅魍魎) 제 3형 괴화정령(怪火精靈) 엘리트 레이스(Elite Wraith)

마침 별의 생명력을 빌어 진홍빛 장속곡을 영창하느라 손상됬던 인공마력기관 도데카 코어도 어느정도 회복세로 진입했기 때문에 나는 100인의 이매망량 천인대장중 하나를 골라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매망량 천인대장이라는 뼈대에 나의 음에너지를 더하자 본래는 존재해서는 안될(유령에게는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매망량 천인대장의 그림자가 살아움직이는 듯한 존재가 탄생했다. 물론 괴화정령이 된 이매망량 천인대장이라고 해도 정령견신 아누비스만큼의 스피드를 낼 수 는 없었기 때문에 전투자체는 평소와 같이 진행됬다.

하지만 정령견신 아누비스를 노란 번갯불로 견제하느라 이매망량 천인대장들은 거의 방치하고 있던 시리우스와 프리우스의 결합체가 일반 이매망량들에게 섞인 엘리트 레이스가 내지른 암검을 허용하자 쑤욱하고 검이 정신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물론 아누비스처럼 히트앤 런이 불가능한 엘리트 레이스는 이내 노란 번갯불의 집중포화를 받고 진토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이 한번의 공격으로 인해 활로를 찾을 수 없었던 전투의 실마리를 잡은 나는 쾌재를 부르며 도데카 코어중 말끔히 재생된 코어 두개로 음에너지를 집약시키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내턴 이닷, 이 합체놀이 좋아하는 빌어먹을 엘더 아케인족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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