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77화 (27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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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 Oxogan The Twin Head and Twin Soul

은랑철권 퍼시벨과의 소리없이 살벌한 신경전을 제외한다면 황룡선의 뫼비우스 우주정거장행은 이 이상 평화로울 수 없을정도로 무탈했다. 일전에 도르칸 대위와 함께 비스트코인 우주정거장으로 향할때처럼 예상치못한 함포의 기습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도없이 그저 무한의 우주를 유영하길 수십시간.

마침내 우리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뫼비우스 우주정거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스트코인 우주정거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였다. 하지만 저곳을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흉악하기 그지없는 무법자들... 인줄 알았으나 나는 얼마안가 그것이 나의 착각이였음을 알게됬다.

황룡선이 뫼비우스의 관제탑과 간단한 인증절차를 거친 후 그들의 안내에 따라 스테이션과 도킹했을때 우리를 마중나온 사람들은 망월해적단의 데드마스크 선장이나 사흉신교의 도철광같은 악당이라기 보다는 그냥 말그대로 흔한 소상공인들이였다.

그것이 너무 의아해서 짐을 나르고 있는 아무 수인에게 사정을 여쭈니 무법자들중에는 정말로 흉악한 살인마들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방어의 일환으로 살인을 저질러 VOT 단말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문에 VP라는 화폐를 사용할 수 없으니 삼삼오오 모인 소상공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물물교환용 장신구들이 가득했다. 아무리 보석이 좋고 금이 좋아도 물과 식량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었기에 소상공인들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군말없이 거래를 진행했고,

그것이 바로 비스트코인 상단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뫼비우스 우주정거장과 거래를 튼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항상 예외가 있는법. 민머리에 험악한 문신을 한 사내가 장신구 감정을 담당하는 너구리 수인족의 멱살을 틀어쥔채로 교환비율에 의의를 제의해왔다.

"이 교활한 너구리 새끼가 장난하냐? 이 팬던트가 얼마나 비싼 물건인데 고작 10일치 보급품으로 때우려 드는거냐고! 어서 책임자 나오라그래!!."

"아니 이 보석은 싸구려 큐빅인데다가 주변의 금속도 금이 아닌 도금. 10일치 보급품도 많이 쳐준..."

"뭐!? 뭐가 어째고 저째? 무법자가 VP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이렇게 삥을 치려든다면 왜 무법자가 무법자인지 가르쳐줄 수 밖에."

"제가 책임자인 퍼시벨입니다. 그러니 이만 그 친구에게는 손을 거둬주시죠."

"오냐 잘 만났..."

민머리에 서로 교차하는 쌍도끼 문신을 한 사내의 키도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것이였지만 퍼시벨이 그의 앞에서자 하이힐로도 커버가 안될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물론 차이가 나는건 단순히 체격뿐만이 아니였다.

무쇠도 씹어먹을듯이 날카로운 송곳니와 푸른 귀화를 발하는 맹수의 눈빛이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으니, 민머리 문신 사내 또한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너구리 수인족을 내려놓았다.

"저희 비스트코인 상단은 항상 신뢰로 고객을 상대합니다. 그러니 손님께서도 믿고 거래에 응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 알겠소. 그, 그러고 보니 집에 가스불을 잠근것 같지 않아 이만 실례하오."

"펑키 계속해서 거래를 진행하게. 방금처럼 행패를 부리는 손님이 있으면 바로 나를 부르고."

"하하. 알겠습니다. 역시 퍼시벨님께서 옆에 계시니 무법자들의 한복판에 있어도 든든하군요."아하! 장신구들을 감정하는 너구리 수인족의 얼굴이 낯이 익다 싶었는데 이전에 내가 퍼시벨과 암컷 쟁탈전을 벌였을때 사회를 보았던 그 깝죽이였다. 투기장 사회자가 본업인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귀금속 감정사로서도 상당한 경력을 쌓은것 같았다.

그저 장신구들을 외눈 렌즈로 쓰윽 훝어보는것 만으로 바로 견적을 쭉쭉 뽑아내는 것이 무슨 게임속에서 감정스크롤을 사용하는것 같았다. 심지어 일반적인 장신구가 아닌 마력이 담긴 아티팩트나 기중기로 옮겨져온 동상이나 큰 종까지 막힘없이 감정해 나가는데 다른 볼일이 있는 나조차 발길을 뗄 수 없을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재주꾼 너구리 펑키에게도 크나큰 시련이 찾아왔으니 등에 조그마한 참새 날개가 달린 어린 소년이 자신의 깃털로 짠 목도리를 가져왔기 때문이였다. 딱보아하니 그닥 값어치가 없는 물건인데 법없이도 살 수 있어서 무법자인듯한 그 소년의 순진무구한 면전에다 대고 차마 그 사실을 밝힐 수 없는 모양이였다.

혹시나 목도리 어딘가에 숨겨진 장식물이 숨겨져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뒤집기를 반복하지만 펑키가 발견한건 련(蓮)이라고 수놓아진 한자뿐이였다. 그걸 대수롭지 않게 스쳐지나보냈던 나는 문득 강렬한 기시감을 느껴 펑키의 손에서 그 목도리를 낚아챘다. 이 문자는 분명... 궁기련의 무복에 새겨져 있던것과 똑같은 것.

내가 도올명과 도올광을 쓰러트리고 혼자남은 궁기련을 덥쳤을때 주의깊게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똑똑한 내 머리가 그 장면을 아직까지 뇌세포에 담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기갑교룡을 만들고 남은 화이트 티타늄 한덩이를 꺼낸 다음 갑작스런 강탈에 벙찐 표정을 짓고있는 펑키에게 던져주었다.

"저 옥사건 준위 이게 무슨...?

"이 목도리랑 교환이다."

"아하 그 목도리가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군요가 아니라 이건 백토성에서만 채굴되는 화이트 티타늄이 아닙니까! 보급품 1년치 아니 그 이상이랑도 교환할 수 있는 물건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 이봐 날개 달린 소년. 나를 이 목도리에 글자를 수놓은 여자에게 데려다줘. 그렇게만 해준다면 이 화이트 티타늄은 깔금하게 네것이 되는거다."

"저, 정말요? 하, 하지만 저한테 필요한건 물과 식량인데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생들이 있어서...."

"그거라면 펑키가 나중에 알아서 배달까지 책임져줄거야. 그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애시당초 옥사건 준위님이 아니였다면 이렇게 많은 보급품들을 실고 오지도 못했는걸요. 그럼 여기에 주소를 적어주시겠습니까?"

나는 날개 달린 소년이 이번에는 자신의 깃털로 만든 깃털펜으로 아기자기한 글씨를 써내리는것까지 확인하고 그를 앞세워 뫼비우스 우주정거장의 외곽으로 향했다. 겉보기에는 분명 비스트코인 스테이션과 다를바가 없었는데 내부에는 낡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불법건축물이 우후죽순 모여있어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과연 이런 치안이 나쁜곳에서 어린 소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우측모퉁이에서 떼로 등장한 진흙더미 로봇에게 있었다. VOT 단말기를 잠깐 두드려서 조사해본 결과 속칭 골렘로이드라고 불리우는 이 자율경비로봇들은 비교적 저렴한 재료인 돌맹이와 모래로 만들어져 내구성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형식의 인공지능이 달려있어 이곳 뫼비우스 스테이션의 치안을 빈틈없이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이 뫼비우스 우주정거장을 건축했지만 아직 밝혀지지않은 비밀세력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언뜻 살펴본 결과 기계공학적인 매커니즘뿐만 아니라 진짜 골렘을 만들때 쓰이는 변이술식도 작용하고 있는것으로 보였다.

하긴 변이술식이 아니라면 정제되지 않은 흙과 돌멩이가 기계장치와 상호작용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누구 작품인지는 몰라도 솜씨가 제법이군. 이 우주에 두 가지 다른 학문을 결합한 하수인을 만들 생각을 하는 자가 또 있었다는 점에 나는 새삼 놀라며 날개 달린 소년의 뒤를 쫓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골렘로이드를 하나정도 샘플로 납치해서 연구하면 기갑교룡 마크2를 제작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건 궁기련을 만나는 것이였다. 마치 학창시절 첫사랑을 만나러가는듯한 설레임을 안고 걷기를 수십여분. 마침내 도착한 허름한 술집의 간판에는 정확히 '주사위의 속삭임'이라고 적혀있었다. 역시 여기였나. 빙고!

"련이 누나. 누나를 보고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데려왔어."

"큐비. 누나가 일할때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잖아. 그런데 나를 찾아온 손님이라고?"

"응응. 그리고 있잖아. 이 손님이 누나가 짜준 목도리를 비싼 금속이랑 바꿔줘서 당분간은 고아원에서 먹을거 걱정은 안해도 될것같아. 에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더라 화이트 티타늄이였던가? 아저씨, 맞죠?"

"그 목도리를 화이트 티타늄이랑 바꿔준 사람이 있다고!?"

궁기련 또한 화이트 티타늄의 가치를 모르지 않는지 날개 달린 소년의 뒤에 있던 나를 무척이나 수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뭐 굳이 그 사실이 아니더라도 주사위의 속삭임에 입성하기 전에 미리 준비한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한 나는 딱봐도 '나 수상한 사람이요'라고 광고를 하고 있는 꼴이였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지?" 만약 이 아이들에게 해코지를 하기 위해서 선심을 배푼거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뫼비우스의 시의회에 고발해버리겠어."

"내가 어젯밤 조롱박에 보름달을 담아가지고 왔는데 제법 오래 숙성된 술에 옮겨 담으면 천하에 다시없을 명주가 나올것 같더군. 이곳에 그런 술이 있는가?"

"예, 이곳에 그런 술이 딱 한병있죠. 하지만 너무 독해서 냄새만으로 취할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할겁니다. 큐비, 이제 볼일 끝났으면 어서 고아원으로 돌아가."

"으응."

큐비라는 이름의 날개달린 소년은 뭔가 묻고 싶은게 더 많은듯 했지만 궁기련이 단호한 표정으로 등을 떠밀자 이내 술집밖으로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그건그렇고 우리 련이가 얼굴이 많이 변했구나. 만약 큐비의 안내로 주사위의 속삭임을 찾아온게 아니였다면 못알아볼뻔 했을정도로 궁기련은 두터운 화장을 하고 있었다.

노메이크업때는 시골 봄쳐녀같던 그녀의 용모에 새빨간 립스틱에 진한 눈화장이 더해지자 차가운 도시녀처럼 보이는 마술이. 그런데 여전히 가슴은 작구나. 궁기련이 술집의 셔터를 내리고 지하 술창고의 자물쇠를 딸때까지 남다른 감회를 느끼고 있던 나는 그녀의 손짓에 따라 어두컴컴한 계단으로 발을 내딛었다.

"아무리 이 술집이 외진곳에 있다고 해서 이곳 주민의 손을 빌린건 경솔한 짓이였어요. 그러다가 교의 비밀지부의 존재를 시의회에 들키기라도 하면 어쩔려고 그런거에요? 설마 사흉신교가 같은 무법자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하진 않겠죠?"

"미안하군. 내가 좀 심각한 길치라서 말이야."

"뭐 자비까지 써가면서 큐비를 도와준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만. 자 그럼 이 술을 마셔요."

"응? 이게 뭔 술이지? 난 알콜 음료같은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야. 그쪽의 입술이라면 모를까."

"하아? 당신 설마 비밀지부에 방문하는게 처음이에요? 이 술에는 흉마심법으로만 해독할 수 있는 독이 담겨져 있어요. 당신이 아무리 음어를 알고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곧 사흉신교의 일원임을 증명하는건 아니니까요. 참고로 이 술을 제 눈앞에서 마시지지 않으면 저는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을거에요."

"아하 그런 속사정이. 또 미안하게 됬군. 내가 길치에다가 눈치까지 없어서 말이야. 이 까짓것 깔끔하게 원샷해주지."

나는 궁기련이 손수 따라준 술잔을 건네받아 한입에 식도로 털어넣었다. 교내서열 7위 독혈여제 궁기수란의 독까지 견뎌낸 내가 이까짓 술독을 마다하겠는가. 아 근데 시발 이거 더럽게 맛없잖아. 나는 소태 씹은 얼굴로 빈 술잔을 다시 궁기련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녀는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당신 사흉신교의 교도가 아니로군! 어쩐지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게 뭔소리야? 그쪽이 원하는대로 독이든 술잔까지 원샷해줬잖아. 내가 살아있다는게 곧 내가 사흉신교의 일원이라는걸 증명하는게 아니였나?"

"헛소리! 그 술에 독이 든것은 맞지만 이 넓은 우주에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수단이 꼭 흉마심법만 있는것은 아니지. 때문에 사흉신교의 일원이라면 무조건 3번까지 이 술을 사양하도록 되어 있어. 다시 한번 묻지.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음어까지 알고 있으면서 그 어설픈 변장으로 내게서 얼굴을 숨기려고 한 이유는 또 뭐... 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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