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1 / 0316 ----------------------------------------------
vol.9 Oxogan The Twin Head and Twin Soul
사흉신교의 심처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 교주인 나와 부교주인 도철능약 그리고 교내서열 3, 4위이자 좌우호법인 도올전욱과 궁기호소만이 입장 가능한 아니 그들에게만 위치가 알려진 비밀공간에 오랜만에 야명주가 드리어졌다. 나는 교주가 입성했음에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좌우호법을 한번씩 일견한 다음 석조 테이블에 착석했다.
"사태가 심각하다 도철이 당했어. 게다가 같이 딸려보낸 독혈여제 궁기수란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 흉마십존에 올려놓은 애송이에게도 소식이 없는걸 보면 팔륜성으로 보낸 부대 전체가 전멸한것으로 보인다."
"하아? 일개 사단에 달하는 역철혈강시를 지원했는데 그게 전부 허공으로 증발했다고? 지휘관이 무능한것도 정도가 있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쯧쯧쯧."
도올전욱 아니 도올이 동료의 죽음에도 눈하나 깜빡이지않고 자신의 개발품인 역천혈강시의 낭비를 지탄하고 있었다. 뭐 하긴 우리 사흉수들에게 동료애따위를 바란다면 그건 그거대로 우스운 일이겠지. 궁기의 반응이 궁금하여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이쪽은 반대로 식은땀까지 흘리며 격한 감정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호, 혼돈자령도 같이 돌아오지 않은거야?"
"그렇다. 만약 혼돈자령이 돌아왔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골머리를 싸멜 필요는 없었겠지. 내게 흡수된 혼돈자령이 이번 사건의 전말을 속속들이 전해왔었을테니까."
"저, 저기 말이야 요즘들어 혼돈자령이 실종되는 일이 너무 잦은거 아니야? 호, 혹시 반고가 우리들을 잡기위해 천계에서 돌아온건 아닐까? 사실 그렇잖아. 보통의 인간이 도철을 쓰러트린다는건 어불성설이고 예의 황룡거사가 은거를 풀었다고 가정해도 도철 일행 전부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지. 청룡문의 태상장문인까지 포섭한 마당에 말이야."
"그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겠지만 아직 일부 민가에서는 반고에 대한 전승이 남아있는 곳이 있어. 심지어 반고의 탄신일인 팔월초파일에 제사를 지내는 곳도 있다는군. 이렇게 신앙 링크가 아직 끊기지 않은 상황에서 고작 우리 넷을 잡자고 반고가 하계로 내려올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창세촉룡의 지위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고."
"여, 역시 그렇겠지?"
궁기가 왼손으로 턱밑까지 내려온 식은땀을 훔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먼 옛날 고대의 제왕들이 이땅을 거닐던 시절 제왕들 조차 종종 조언을 구했던 현자를 잡아먹은 일로 반고로부터 삼박사일동안 능지처참형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탓인지 사흉수 동료중에서도 유달리 반고의 존재를 두려워했다.
뭐 그 시절을 풍미했던(물론 나쁜쪽으로) 신수들중 창세촉룡 반고의 이름 두자를 듣고도 태연할 수 있는 이가 있겠냐만은 진짜로 꼭지가 돌아버린 반고를 본 이와 사무적으로 유배형을 집행하러온 반고를 본 이 사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철을 쓰러트리고 일개사단의 역천혈강시까지 무력화 시킨 미지의 상대가 반고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건 아니지. 그렇기에 나는 좌우호법 아니 오랜 악우들에게 다른 세력과의 동맹을 제안하는 바이네."
"다른 세력과의 동맹? 흥! 요즘같이 개나 소나 VOT 네트워크라는 허울 아래 뭉쳐서 위선자 행세를 하는 시대에 어디의 누구하고 동맹을 맺겠다는건지 모르겠군."
"도올 자네도 그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겠지. 혼돈을 몰고오는 여신 야미도엔의 휘하에 있는 반신타락자라는 세력을."
"잠깐! 야미도엔이라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신인데다가 그 성정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괴이한 존재인 것을 혼돈 자네가 이름이 같다하여 고대 제왕의 후손의 긍지를 더럽힐 셈인가!?"
"지닌 힘이 모자라서 이런 외행성에나 숨어사는 것들이 핏줄 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그리고 우리 야미도엔님께서 변덕이 조금 심하시긴해도 너희같은 놈들에게 미친년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야. 한번만 더 야미도엔님을 욕되게 하는 발언을 했다간 바로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줄 알아라."
나는 부지불식간에 석조 테이블 주위로 나타난 머리가 두개 달린 오크를 확인하고 침음성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좌우호법과는 달리 나는 이미 구면인 사내였지만 오랜 세월 인간들과 섞여 살면서 초절정무인의 수준에 다달은 우리들의 이목을 속이고 이런 지근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였기 때문이였다.
게다가 다소 뒤늦게 눈치챈 사실이긴 하지만 두개의 머리의 오크 옆에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샛노란 안광을 번뜩이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내도 함께하고 있었다. 바로 코 앞에 있는데도 그 존재감이 불투명하게 느껴지다니 이것이 필멸자의 신분을 초월해 반신의 지위에 오른 초인들의 저력인것인가?
"네, 네놈들은 누구냣!? 어떻게 이 비밀회의장으로 들어온거지? 내가 설계한 기관진식은 강제로 뚫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데..."
"어떻게 들어오긴 어떻게 들어와. 이쪽에는 행성간도 아니고 항성간 텔레포트가 가능한 능력자가 있어서 말이야. 그냥 숑하고 날라왔지. 그건그렇고 교주양반. 아직 우리 소개도 안해놓고 뭐한거야."
"교주양반? 이봐 혼돈 설마 네녀석 멋대로 그 반신타락자라는 세력과 동맹을 맺은건 아니겠지? 표면상으로 교주직에 앉아 있다고 해서 네녀석이 사흉수의 우두머리는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도올 너와 궁기의 의견을 지금 이렇게 묻고 있는것이 아니더냐. 그리고 저치들은 내가 이곳으로 불러들인게 아니라 작전지역에 나가 있던 혼돈자령을 추적해서 이곳까지 찾아온것이다. 개개인의 전투력이 반신급에 달하는 이들이 두명이나 찾아왔는데 너라고 별 수 있었을것 같으냐?"
"아, 아니 이 자식이!! 그말인즉슨 괜히 네놈이 혼돈술사 계획따위를 수립해서 온갖 잡것들한테 우리 본거지가 들통났다는 소리로구나!!!"
"도올 너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만을 늘어놓는구나. 그렇다면 혼돈자령 없이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사흉신교의 교도들을 통제할 수 있었을것 같으냐? 그들이 가져다주는 물자가 아니면 도올 네녀석의 잘난 연구도 아무런 진척도 없었을터. 누구는 본신의 힘이 약해지는 리스크까지 감수해 가며 분신을 만들었는데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꼴이 우습구나. 지금까지는 사흉신교의 대의를 위해 참아왔다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거이야."
"누구는 참고 싶어서 참..."
"이보쇼들. 손님을 눈앞에 두고 이게 무슨 추태인지 모르겠구만."
콰아아아아아앙!!! 도올이 금방이라도 자신의 애병인 귀혼극락조(歸魂極樂爪)를 꺼내들어 나를 햘퀼것 같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그때 두개의 머리를 한 오크가 석조 테이블을 자신의 흑칠태도(黑漆太刀)로 간단히 쪼개 버렸다.
그러자 도올이 꿀먹은 병아리가 되어 조심스럽게 귀혼극락조를 거두었다. 왜냐하면 이 석조테이블은 우리 사흉신교가 이 외행성에 정착한지 얼마 안돼 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시절 도올의 본체의 등껍질을 가공해 만든 테이블이였기 때문이였다.
"이거이거 테이블을 부순건 미안하게 됬수다. 이거 원 자기소개를 할 틈조차 주지 않아 실례를 범했소. 필요하면 내가 근처의 절벽하나를 가공해서 비슷한걸로 만들어다 주겠소."
"그, 그건 괜찮으니 자기소개나 마저 해보시요."
"뭐 그쪽에서 괜찮다면야. 나는 반신타락자 서열 22위 베르세르키르 움파카라고 하오. 보시다시피 머리가 두짝이나 달린 변종 오크지. 하지만 머리가 두개 달렸다고 해서 생각을 두번씩하는 신중한 성격은 아니니 내 앞에서는 입조심좀 해줬으면 좋겠소. 그리고 어디보자 이쪽은 나보다 서열이 11단계나 높은 서열 11위의 하이퍼키네시스..."
-프리우스다.
-시리우스다.
나는 정수리를 꿰뚫고 마음 깊은 곳까지 울려퍼져 나가는 기이한 목소리에 순간 움찔거릴 수 밖에 없었다. 두개 머리의 오크 옆의 사내. 범상치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전음도 사자후도 아닌 기이한 대화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척보기에도 강해보이는 두개 머리의 오크보다 서열이 11단계나 높다고 하니 그 능력을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호오 웬일로 직접 자기 이름을 다 밝히는군. 좋아 자기소개는 끝났으니. 우리의 용건을 말하지.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동맹같은건 관심도 없어. 단지 우리의 주인이신 야미도엔님의 목줄을 끊고 도망친 강아지 한마리를 쫓고 있을뿐이야. 그리고 아무래도 그쪽의 동료 한명을 물어죽인게 그 도망친 강아지같단 말이지.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 그쪽에서 미끼가 되어줘야겠어. 옥사건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유인할 미끼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