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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 Oxogan The Killer Whale, Leviathan
-전부 인육. 먹지마.
무릎 언저리에 쪽지를 올려놓고 슬쩍 내용을 살펴본 나는 무심코 집어든 고기조각을 내려놓고 코를 긁는척하면서 예의 쪽지를 씹어삼켰다. 빌어먹을 아크데빌 새끼 감히 나한테 인육을 먹이려 들어? 아무튼 이걸로 김여령 여사가 완전히 심령을 제압당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크데빌이 김여령 여사가 내 친엄마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도. 물론 그걸 알면서도 나를 뒤통수치기 위해 모르는척 하고 있는 것일 수 도 있었지만 구태여 그런 귀찮은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김여령 여사를 꽁꽁 숨겨둔 다음 엘리멘탈 로드와 인질교환을 신청하는 쪽이 더 수지맞는 장사이리라.
나는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아크데빌이 야미도엔 여신 찬양론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가 듀리스를 김여령 여사의 그림자 속으로 잠입시켰다. 이제 반신의 지위에 혹해 아크엔젤을 잡으러 나가는 척 하면서 김여령 여사를 섬밖으로 빼돌리면 한시름 놓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아크데빌이 지구에 새로운 창세기를 열겠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도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달에 하렘 제국을 건설한 내가 할 소리는 아닌가? 크크킄. 어라 그런데 저게 뭐지? 나는 무심코 테라스 밖을 바라봤다가 돔 야구장의 지붕처럼 하와이를 덮기 시작한 백색휘광을 보고 손에서 포크를 놓치고 말았다.
"헤이 브로, 지금 내 얘기 제대로 듣고 있는거 맞... 왓 더 헬! 이 퍽킹 옐로우 몽키놈이 나랑 대화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었구나!! 지금 이 자리가 네 무덤이 될 줄 알아라!!!"
"크크킄. 브로, 브로 거리면서 친한척 할때는 언제고 갑자기 열폭을 하시나? 그리고 무덤을 팔때는 일단 상대를 시체로 만든 다음에 파야지 안그러면 역으로 네놈이 관짝에 들어갈 수 도 있다고. 이렇게 말이지!"
나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이매망량의 손아귀로 아크데빌을 후려쳤다. 루나틱 생츄어리가 온전하게 발동된 후에는 이매망량을 사용하기가 껄끄러워지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뽕을 뽑을 생각이였다. 그런데 아크데빌도 아무런 방비없이 나와 겸상을 한것이 아닌지 그의 그림자속에서 검은 손길이 우르르 튀어나와 이매망량의 손아귀의 방향을 틀어버렸다.
아무래도 아크데빌의 곁에도 그림자의 힘을 다루는 사역마가 있는 모양이였다. 붉은 외눈을 번뜩이며 아크데빌의 배후를 감싼 녀석의 실루엣을 보아하니 핏 핀드는 물론 식안 악마보다 한단계 위의 최상급 악마 쉐도우 핀드(Shadow Fiend)임이 분명했다.
갈곳 잃은 이매망량의 손아귀가 해양 레스토랑의 지붕을 통채로 뜯어버렸다. 괜히 엄한 식인 악마들만 난리가 나서 날개를 푸드득거리니 뀡대신 닭이라고 나는 그 놈들을 한꺼번에 움켜쥐고 사정없이 짓이겨 버렸다.
전투기조차 단일격추시킬 정도로 놀라운 완력과 공중 기동력을 지닌 녀석들이였지만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뼈도 못추릴정도로 심한 꼴을 당하고 말았다. 웨이터 복을 입은 핏 핀드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나 양 어깨에 개머리가 달린 병마용들이 마크하자 내 근처도 오지 못했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전투 스타팅이였다.
"아크리퍼 네 이놈, 성역이 해제되면 두고보자!"
"두고보자라니 제발 부탁인데 스스로를 3류 악당으로 격하시키는 대사는 좀 자제해줄래? 한반도에서 하와이까지 원정온 내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야. 라스트보스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중간보스의 품격정도는 갖춰줘야 내가 아크데빌 네놈을 박살낼 맛이 있지 않겠어? 아 맞다. 그리고 나는 널 그냥 보내준다고 한적이 없어요."
어느새 해양 레스토랑까지 영역을 넓힌 루나틱 생츄어리때문에 군단장 소소를 제외한 십만 이매망량들이 맥을 못추고 병든 닭마냥 비실비실 거린다. 하지만 그건 아크데빌의 악마 하수인들도 마찬가지. 쉐도우 핀드를 제외한 모든 하급 악마들이 주춤거릴때 병마용들이 우악스럽게 그들의 목을 비튼다.
나 또한 이매망량 군단장 소소를 앞세워서 아크데빌의 목을 직접 이 두손으로 비틀고자 표홀신법을 전력으로 전개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아크데빌이 쉐도우 핀드의 그림자에 휩싸여 땅으로 꺼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쉐도우 핀드도 월영공 듀리스처럼 그람자 도약의 이능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였다.
굳이 아크데빌을 죽자살자 쫓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그대로 해양 레스토랑의 모든 악마들을 제거한 후 김여령 여사를 아크데빌이 식사를 하던 곳에 강제로 앉혔다. 혼자 남았음에도 계속해서 문신의 힘을 사용해서 병마용들에게 저항하는 통에 제법 애를 먹었지만 소소가 살포시 어깨에 손을 올리자 쥐죽은 듯이 조용해진 상태였다.
"이길 수 없을걸 알면서도 왜 계속 악마의 촉수를 휘두른겁니까? 아크데빌이 뭔가 금제같은걸 걸어둔건가요? 적과 교전시 죽기전까지 계속해서 저항해라같은 뉘앙스로?"
"거의 비슷해. 다만 금제를 건 주체가 아크데빌이 아니라 레비아탄님이라는 사실이 다를뿐."
"하하하. 그 뚱땡이 고래놈한테 존칭까지 붙이다니 이거 완전 중증이로군. 그 밖에 다른 금제는 걸려있지 않은겁니까? 예를 들면 주걱턱아귀가 체내에 도사리고 있다던가."
"호오. 우리 아들 이제 점집 차려도 되겠는데? 레비아탄님은 문신의 금제로 충분하다고 했지만 아크데빌 그 속좁은 놈이 부득불 사도들의 몸에 주걱턱아귀를 심어야한다고 억지를 부려서 말이야. 아, 그러고보니 어렸을때 이웃집에 사는 애기보살이 임신한 나를 보고 아이에게 신기가 있다고 귀뜸해줬던게 기억나네. 그때는 무속인을 사기꾼이랑 동급 취급하고 있던때라서 흘려들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였던 모양이야."
"좋아요.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아들었어요. 근처에 의료시설이 갖춰진 비행선이 있으니까 나랑 같이가서 기생충도 제거하고 문신도 지워버려요. 엄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문신같은거 하고 다니면 주변에서 꽃뱀인줄 안다고요. 그리고 GFT에서는 이제 엄마를 일등공신이 아니라 일급간첩 취급하기 시작했으니까 앞으로는 크로스데일 한국지부로 출근하세요."
"쿡쿡. 크로스데일 한국 지부라... 지금 나보고 생명공학자 코스프레를 하는 그 새파란 애송이년 밑으로 들어가라는거니?"
"아니 뭐 꼭 그런뜻이 아니라 거기서 개인적인 연구를 진행하시던지 VOT 온라인을 조사하시던지 알아서 하시라구요."
"VOT 온라인의 동대륙과 서대륙 사이에 있는 산맥 꼭대기에 있다는 세계수의 세포 샘플을 가져다준다고 약속해줘. 그렇지 않으면 나는 여길 떠나질 않을거야."
"뭐요?"
꽤 오랜시간동안 서먹했던 모자관계였기에 내가 구하러 왔다고 해서 엄마와 눈물의 가족상봉 장면을 연출하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자신의 신변을 인질삼아 협박을 해올줄은 몰랐는데 잠깐 사이에 이 아줌마가 왜 이렇게 간뎅이가 부은거지?
갑작스런 엄마의 강짜에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고민하길 수분여. 나는 가스킬 대령이 나눠준 통신 무전기에서 아까부터 잡음이 흘러나오는걸 뒤늦게 깨닫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내가 아크데빌과 투닥거리고 있을때 다른 북두십성 유저 세명도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여기는 올라운더님을 보좌하고 있는 이스트 분대입니다. 아이언 핀드라고 하는 악마가 루나틱 생츄어리의 영향을 받지 않아 고전하고 있습니다. 지원요청 바랍니다. 다시한번 알립니다. 아이언 핀드에게 총화기가 통하지 않아 고전하... 끄아아아악!!!
-여기는 아크엔젤. 파이어 핀드를 상대중이라 발을 뺄 수 없다. 조금 전에 웨스트 분대를 그쪽으로 보냈으니 최대한 교전을 피하면서 월석 보호를 최우선하도록. 이상.
-여기는 매드독스. 아이스 핀드를 상대중임으로 이하동문.
아이스 핀드, 파이어 핀드 그리고 아이언 핀드라. 모두 하나같이 쉐도우 핀드와 마찬가지로 최상급티어의 악마들로 만약 VOT 온라인안에서였다면 북두십성 유저중 최약체인 올라운더조차 낙승을 점할 수 있는 녀석들이였다.
하지만 게임내의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아크엔젤이나 매드독스도 사활을 걸어야 할만큼 무서운 적이였다. 그말인즉슨 SSS 요원들과 네이비 씰의 합동병력이 동쪽에 집중된다고 하더라도 올라운더가 제 몫을 해내지 못하면 절대 아이언 핀드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소리였다.
사실 월석을 지켜내고 말고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최상급 티어의 악마들이 흩어져 있을때 한놈씩 짜를 수 있다면 아크데빌에게도 큰 타격이였기에 나는 부지런을 떨기로 결심했다. 무전기로 아크리퍼가 곧 지원을 가겠다고 응답한 뒤 지금까지 숨어서 대기만 하던 듀리스와 륭 사부를 전부 수면위로 끌어올린다.
"아, 아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
"동료에요, 동료. 설마하니 제가 적의 본거지로 침입하는데 달랑 불알 두쪽만 들고 올거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죠? 그럼 륭 사부 모든 일이 일단락 될때까지 제 못난 엄마 좀 지켜주세요. 듀리스 너는 병마용들과 함께 나를 동쪽으로 그림자 도약시킬 준비를 하고."
"자, 잠깐 아까도 말했다시피 세계수의 새포 샘플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나는 여길 떠나지 않을거야"
"좋을대로 하세요. 제가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구하러 온줄 아세요? 저는 단지 콩한쪽이라도 제 소유의 것이라면 다른 인간들에게 뺐기고 싶지않아서 이 자리에 온것뿐입니다. 그 건방진 아크데빌 녀석에게 똑같은 별이라도 그 크기는 천차만별이라는 교훈을 전할겸 해서 말이죠."
"그럼 나는 콩한쪽만도 못한 엄마였다는 소리구나. 그럼 이 이상 살아갈 이유도 없겠네."
"지금 뭐하는 짓..."
김여령 여사가 문신의 힘을 발동시켜 악마의 촉수를 뽑아내더니 자신의 목으로 쇄도하게 만들었다. 명백한 자살행위였지만 너무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제지할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엄마의 배후에 있던 륭 사부가 두 손으로 악마의 촉수를 옭아맨 덕분에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아들, 죽을 자리정도는 내 마음대로 결정하게 해주지?"
"...후우. 한강철 소령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엄마가 가장 힘들때 곁에서 힘이 되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도대체 엄마는 왜 내가 가장 힘들때는 곁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은 주제에 이제와서 자기가 힘들다고 이런 말도안되는 투정을 부리는건가요."
"글쎄. 아마 투정부릴 상대가 아들밖에 없어서 그런게 아닐까? 아들이 말했던대로 이 나이에 다른 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리면 꽃뱀보다 심한 취급을 당할걸. 그건그렇고 한강철 소령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이참에 그냥 재혼이나 해버릴까. 하하하."
"재혼할땐 재혼하더라도 나는 호적에서 파내고 하세요. 그런 꼰대 아버지는 갖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누누히 말했다시피 못난 엄마에게 이것 저것 해다 바칠정도로 내가 호구는 아니에요. 하지만 생명공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우는 김여령 여사가 내 부하가 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죠. 모든 연구성과를 내가 갖는걸 조건으로 세계수의 세포 샘플 가져다 줄 수 도 있어요."
"모든 연구성과를 아들이 갖겠다고? 그거 부하가 아니라 완전 노예 아니야?"
"뭐 생각하기 나름이죠. 싫으면 싫다고 말해요. 이승땅이 싫다는 사람을 호위하겠답시고 륭 사부같은 고급 인재를 낭비하기는 싫으니까."
"...콜."
"크킄. 그러면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요. 남의 엄마를 유혹한 그 음탕한 고래놈을 지금 당장 포경해버리고 올테니까. 뭐 아크데빌 놈이야 살려둘 가치도 없는 놈이고."
"조심해. 아들."
그제서야 악마의 촉수를 거둔 엄마를 뒤로하고 나는 병마용들을 한자리에 집결시켰다. 먼거리라면 모를까 이 하와이 본섬 내를 그림자 도약하는 거라면 이정도 병력도 충분히 수용가능하리라. 듀리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주자 그림자가 나와 병마용들을 감싸며 주위의 시계가 극변하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