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65화 (26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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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 Oxogan The Killer Whale, Leviathan

레비아탄이 고무보트의 움직임을 놓친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놓아준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북두십성 유저를 주축으로 한 이스트, 웨스트, 노스, 사우스분대는 무사히 하와이 본섬에 도착했다. 올라운더 에이지가 있는 이스트 분대를 지원하러 가겠다며 떠난 노스 분대와 묵언의 작별인사를 나눈 나는 그제서야 하와이의 풍경을 차분히 살필 수 있었다.

새하얀 진주알같던 모래사장은 이미 검게 변색된지 오래였으며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했던 열대식물들은 썩어 비틀어지다 못해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저래서야 퇴비로도 쓰지 못하리라.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하와이 내륙쪽으로 들어갈 수 록 내가 이승땅을 걷고 있는건지 지옥에 떨어진건지 점점 분간하기 힘들어졌다.

그러다가 본래는 깨끗한 호수였을거라고 짐작되는 늪지대를 발견한 나는 품안에서 월석을 꺼내 휙!하고 던저버렸다. 아크엔젤 하희빈이 신약성서의 구절이 새겨진 월석을 건네면서 적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꽁꽁 숨겨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누구 보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닌데 그년이 뭘 어쩌겠는가.

루나틱 생츄어리가 발동이 되건 안되건간에 나는 아크데빌을 사뿐히 즈려밟은 다음 색향천월관에서 회포를 풀 생각이였다. 물론 그 전에 새롭게 배운 도가계열의 술식, 진토술 ~허수아비의 형상편~을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듀리스, 륭사부와 함께라면 두려울게 없었지만 일종의 구색맞추기를 위해 아군의 수를 불릴 생각이였다.

'진흙은 이 늪지대 주변의 것을 쓰면 될것이고, 틀이 될 갑옷은 그레이트쟈칼로 해볼까?'

진시황릉의 99층을 격파하고 강령술 3대괴서중 하나인 귀혼강신법을 손에넣은 나였지만 실제로 짬을 내서 익힌건 진토술 ~허수아비의 형상편~이였다. 그건 사실 당연한 수순으로 귀혼강신법은 구십번대의 술식인데다 강시제작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연구공방 없이는 진도를 뺄 수 가 없었다.

즉 책상머리에 앉아서 백날 고민해봐야 까만건 글씨고 흰건 종이일 뿐이라는 소리였다. 아, 물론 귀혼강신법은 도깨비의 피와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어 글씨는 빨갛고 종이는 누리끼리했지만. 뭐 어찌됐든 그에 반해 진토술 ~허수아비의 형상편~의 경우 디파일러 퀸 사리카야의 동료 스고우가 건네준 그것과 유사한점이 많아 훨씬 익히기 편했다.

사실 진토술 ~뱀의 형상편~의 연구일지를 정독한 기억이 없었다면 칠십번대의 술식을 짜투리 시간만을 이용해 익히는건 불가능 했으리라. 그리고 나는 그 두가지 진토술을 비교하면서 그 둘의 뿌리가 같다는 것과 본래 도가계열의 술식인 뱀의 형상편을 스고우가 마력기관 써클(Circle)에도 작동할 수 있게 수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래는 마력기관 단전(丹田)에서 작동하는 술식을 써클 마력기관에도 작동할 수 있게 술식의 기본골자 뒤바꾸다니, 스고우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건 진즉에 알고있었지만 그 기대치가 한단계 아니 두단계는 더 상승한 순간이였다.

'어쩌면 구십번대의 무기에 뱀의 형상이 통하지 않는건 술식의 한계가 아닌 내 인공마력기관때문일지도.'

사실 마룡 쉐도우스틸의 드래곤하트를 쪼개 만든 아바타의 인공마력기관 코어(Core)는 써클과 100% 상호 호환되는 마력기관은 아니였다. 다중마력공급만 놓고보면 비할데없이 도데카 코어가 좋았지만 단일마력출력만큼은 써클쪽이 우월했던 것이다.

뭐 지금 단계에서 고민해봤자 탁상공론에 불과했기에 나는 환수갑옷 그레이트 쟈칼을 소환한 다음 그 안에 진흙을 가득 채워넣기 시작했다. 그 다음 10년치 내공을 밀어넣자 개의 머리가 가슴과 양어깨에 튀어나온 형태의 갑옷을 입은 병마용들을 벽돌처럼 찍어낼 수 있었다.

6마리의 병마용들을 만들고 나자 일갑자의 내공이 모두 바닥나 버렸지만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한 일이였다. 마력입자가 존재하지 않는 지구에서는 운기조식을 통해 내공을 재충전할 수 없다는걸 뻔히 알고 있었기에 미리 아케인 피라미드라는 오버테크놀로지 기물을 미리 준비해둔 것이다.

아케인 피라미드란 사각뿔의 다섯 꼭지점에 마력석을 비치하면 그 마력석의 등급에 따라 피라미드 내부의 마력입자농도를 조정해주는 백신마켓의 인기품목중 하나였다. 무려 개당 100만 VP 짜리 최상급 재충전 마력석을 사용했기에 내 일갑자 내공은 1등급 풍수지에서만큼이나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병마용들을 30기정도만 추가해볼까? 만약 루나틱 생츄어리가 발동해도 무생물 사역마인 병마용들은 영향을 받지않을테니 투자할만해.'

일개소대의 병마용들이라면 하급악마들 정도는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으리라. 무생물인 병마용의 몸에 주걱턱아귀가 기생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언데드와 마찬가지로 이 진흙 병사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고통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렇게 병마용들의 생산과 아케인 피라미드내에서의 운기조식을 반복하며 아크데빌의 주둔지내에서 세력을 불리고 있는데 섬의 안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의 세력거점 내로 쥐새끼가 수십마리나 침입했는데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게 이상한 일이였다.

어차피 정찰을 나온 잡졸 악마들이라면 병마용들과 싸움을 붙일 요량으로 계속해서 아케인 피라미드내에서 용린소심공을 운공하는데 늪지대 건너편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고 살펴보니 산양 뿔투구를 쓴 인간이 핏 핀드와 헬 하운드 무리를 이끌고 내게 무력시위를 하고있었다.

"아크데빌님께서 한번 보자고 하십니다."

"그깟놈이 뭔데 나보고 오라가라야. 날 그렇게 보고싶으면 아크데빌한테 이쪽으로 오라고 해.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는거 아니겠어?"

"듣던대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시는 분이군요. 하지만 이걸로 당신이 아크리퍼라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섬의 서쪽과 남쪽을 통해 들어온 북두십성 유저들은 여자였고, 동쪽의 북두십성 유저는 우습게도 평범한 인간들과 힘을 합쳤더군요."

"따까리 주제에 내가 아크리퍼인지, 아크니퍼인지 멋대로 예측하는게 아니야. 응? 한주먹거리도 안되는게 그렇게 잘난듯이 지껄이면 내 배알이 뒤틀린단 말이다!!"

나는 십만 이매망량을 모두 총동원해 거대한 손바닥을 형성한 다음 산양 뿔투구를 착용한 아크데빌의 부하를 그대로 짓이겨 버렸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듯한 굉음이 하와이의 북쪽 숲에 울려퍼진다. 여기 적이 있소하고 대놓고 광고를 한 꼴이였지만 나는 게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어차피 지금부터 내 발로 아크데빌을 찾아갈 생각이였으니까. 말로는 싫다고 했지만 김여령 여사의 신변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의 진짜 본거지로 잠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인간 빈대떡이 되버린 남자의 초대를 거절한건 단지 적의 의도대로 행동하고 싶지않아 꼬장을 피운것 뿐이였다.

나는 늪지대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든 손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헬 하운드 한마리를 건져올렸다. 지옥의 투견이라는 이명이 무색하게 비맞은 똥개처럼 바들바들거리는 녀석을 앞세워 아크데빌이 있는 장소를 찾아갈 심산이였다.

그렇게 병마용들을 이끌고 한참을 걷다보니 불지옥이 된 하와이에서도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해양 레스토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레스토랑의 지붕에 식인악마들이 마치 참새떼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저곳에 아크데빌이 거주중인 것이 분명했다.

"아크데빌 이 굼벵이같은 새끼야 어서 손님 받아라."

"오 마이 브로, 그렇지 않아도 네가 찾아올것 같아서 아주 극진한 산해진미들을 미리 준비해 두었지. 식기전에 어서 빨리와서 한입 들라고."

"브로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어서 사도니 뭐니 하는 네 부하들이나 집합시켜. 네놈이 쪽수조차 앞서지 못한다면 이 싸움 너무 싱거워질게 뻔하니까."

"크르르르르르르르!!!" x 6

"워워 진정해 마이 팅커벨들. 손님이 진흙 덩어리로 만든 공예품들을 좀 들고 왔기로소니 그런 추태를 보이면 내 체면이 뭐가 되겠어? 안그래?"

내가 병마용들을 해양 레스토랑의 코앞까지 들이밀자 지붕에서 이를 관찰중이던 식인악마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위협신호를 보내온다. 아크데빌이 2층 테라스에서 그들을 진정시키는 가운데 산해진미를 준비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였는지 레스토랑 안쪽에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물론 지구의 본체가 아직 만독불침을 이룬 상황이 아니였기에 나는 아크데빌이 대접하는거라면 물한모금도 마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레스토랑 안쪽에 김여령 여사가 있을까 싶어 못이기는척 안으로 입성했다.

집사복을 입은 핏 핀드가 서빙을 하는 모습이 다소 기괴하게 느껴졌지만 어찌어찌 테이블을 안내받아 아크데빌과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일개소대의 병마용들이 홀을 가득 메울때까지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걸 보니 아크데빌 이녀석도 완전히 맛이 갔군. 아니 진짜 맛이 간건 적진의 한복판에 아무렇지 않게 걸어들어간 내쪽인가?

"결국엔 나랑 겸상할거면서 자꾸 투덜투덜거리긴. 그래서 우리 대사신님께서는 그간 어떻게 지냈길래 하찮은 인간들과 협력하는 지경에 이른거야. 우리 브로는 원래 그런 사람 아니였잖아."

"누구보고 대사신이라는거지? 내 천외천 이명은 올라운더다. 멋대로 착각해서 다른 이명으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군. 특히나 아크리퍼의 경우 내가 좀 악감정을 가지고 있거든. 뭐 VOT 온라인 유저중 그 녀석한테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하하하. 얼토당토않는 뻥카를 들이미는건 여전하군. 뭐 좋아. 올라운더라고 쳐줄게.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우리 브로에게 좋은 제안을 하나 할까하는데. 마음의 준비는 됬어?"

"다단계와 보증은 인생패망의 지름길이지. 너도 이제 그런건 손때고 좀 착실하게 살아보지 그래?"

"어이어이 브로. 좋은 제안이라는 단어에서 다단계와 보증을 연상하다니 너무 상상력이 풍부한거 아니야? 뭐 사실 다단계 비슷한게 맞긴해. 하지만 그 주최자가 여신이라면 다단계 사업이라도 뛰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지않아?"

"여신? 너는 마신을 신봉하는 악마술사가 아니였나?"

"VOT 온라인의 그 핫바지같은 마신을 말하는거라면 집어치워. 그건 마신이 아니라 유저를 악마술사로 전직시켜주는 공무원에 불과하다고. 그에 반해 여신 야미도엔님은... 진짜로 이 땅에 기적을 행하시어 몽상가들을 굽어살피는 박애주의자란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분을 대신해서 이 땅의 위선자들을 벌하는 여신의 대리자로서 선택 받았지. 사실 나 혼자 그 역할을 수행할 수 도 있었지만 나의 영원한 악우인 브로가 눈에 밟혀서, 흑흑흑. 많은거 안바랄게.

우리 브로가 빼앗아간 엘리멘탈 로드랑 아크엔젤만 산채로 내 앞에 데려와줘. 그러면 브로도 나와같이 여신님에게 그 공로를 인정받아 반신의 위를 받을 수 있을거야."

나보고 그 싸이코년에게 꼬리를 치라고? 나는 아크데빌의 터무니없는 제안에 콧등을 부여잡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몽환경이라고 하는 아티팩트를 이용해서 나를 엿먹인 야미도엔의 행태를 떠올리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차라리 엔도미야의 똥구멍을 햝으라고 하면 햝겠지만 야미도엔과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내 반응이 시원찮자 아크데빌이 휘바람을 불며 웨이터를 호출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코스요리가 도착하는 모양인데 누누히 말했지만 저 녀석이 주는건 콩한쪽도 입에 되지 않을 생각이였다. 그런데 그 어떤 산해진미가 나와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려고 했던 마음가짐도 잠시 나는 쟁반을 든 웨이터중 한명을 보고 까무러칠 수 밖에 없었다.

안경을 벗고 머리를 풀어서 순간 못알아볼뻔 했지만 그 웨이터가 내 친모인 김여령 여사였기 때문이였다. 집사복을 입은 핏 핀드 사이에 섞여서 음식을 나르고 있는 그 모습이 유독 이질적이였기에 알아보기 싫어도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크데빌이 바로 코앞에 있었기에 당장 어떤 액션을 취하기는 어려웠다.

김여령 여사의 문신에 가해진 금제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아직 아는게 없었기 때문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듯 무심히 쟁반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다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엄마가 뒤로물러서는 순간 나는 쟁반 밑에 정체불명의 종이쪼가리가 깔려있다는걸 눈치챘으니 음식을 먹는척 하면서 손톱으로 메모를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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