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64화 (26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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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 Oxogan The Killer Whale, Leviathan

"이렇게 북두십성 유저 네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되어 영광이네. 나는 이번 인페르노 소탕작전의 총책임을 떠.맡.게.된 가스킬 대령이라고 한다네. 흠흠. 문자 그대로 SSS의 국장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걸 떠맡게 되었지. 펜타곤의 장군님들도 유엔 이사회도 눈앞에서 항공모함과 스텔스기들이 증발해 버리자 모두 두손, 두발을 들었더군. 평소에는 그렇게 감놔라 배놔라 간섭이 심하셨던 분들이... 이제 내 마음대로 제사상을 차릴 수 있게 된건 좋은데 이게 아크데빌의 제사상이 될지 내 제사상이 될지 알 수 없어서 참으로 곤란한 일이야. 허허허."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진중함을 잃지않았던 가스킬 대령이 머리에 나사가 하나 풀린것처럼 작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VOT 온라인의 이적과 관련하여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숱하게 있어왔지만, 이번 하와이 무단점거 사태만큼 국제사회의 이목이 현재진행형으로 집중되고 있는 사건은 없었기에 가스킬 대령이 받는 프레셔가 보통이 아니리라.

물론 지금 이 자리에는 독고다이를 미덕으로 아는 북두십성 유저가 무려 4명이나 동석하고 있었기에 가스킬 대령의 눈빛이 희망을 잃은 자의 그것 마냥 죽어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런 자리가 마련됬는가? 그것에 대해 설명하려면 아크데빌이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세력을 만천하에 공개한 그날로 돌아가야 했다.

김여령 여사가 아크데빌의 무장세력 인페르노와 미 해공군과의 총력전에서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될까봐 당장이라도 기야스를 타고 하와이로 향하려던 나였지만,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너무나도 쉽게 미 해공군이 패배하는 바람에 사태를 차분히 관망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아크데빌이 아무리 싸이코같은 놈이라고 해도 VOT 온라인 3대 술사의 일인인만큼 현대무기의 무서움을 모를리가 없었다. 겉으로는 앞뒤 생각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충분한 전투 시뮬레이션을 마친 뒤 무장 세력 인페르노를 발호한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때 가스킬 대령으로부터의 연락이 도착했던 것.

"흠흠. 그야말로 지옥의 섬이 되버린 하와이에 실제로 투입될 사람들이 이리도 침착한데 내가 너무 엄살을 부린것 같군. 그럼 본격적인 작전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다시 한번 SSS의 지원 요청에 응해준 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전하겠네. 이렇게 보니 중국 한분, 일본 한분 그리고 한국 두분까지 해서 아시아계 사람들만 집합했군. 미국인이 세계를 구한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클리셰가 이렇게 민망하게 느껴질때가 없어. 정작 독일계 미국인인 아크데빌, 발렌틴 슈나이더는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고 있으니 말이야. 아무래도 유아시절의 양부모의 학대가 그의 정신세계에 악영향을..."

"가스킬 국장님. 저는 그 싸이코놈의 불우한 어린시절 이야기나 듣자고 SSS의 도움 요청에 응한게 아닙니다. 제가 부탁한 달의 운서조각이 준비됬는지나 말씀해주시죠."

"그거라면 글씨를 새길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녀석으로 정확히 4개를 준비했네만 하희빈양은 이걸로 뭘 할 생각인가?"

"신약성서의 구절을 새긴다음 하와이의 사방위에 비치해 루나틱 생츄어리라는 광역술식을 펼칠 생각입니다. 만약 하와이에 아직 생존자가 남아 있다고해도 이거라면 그 누구 하나 다치지않고 악마들에게만 타격을 줄 수 있겠지요. 그럼 저는 먼저 실례해도 될까요? 월석에 새겨야할 문자가 A4용지 10장의 앞뒤를 다 채우고도 남을정도라서 말입니다."

"잠깐만 기다려주겠나, 하희빈 양. 지금 여기에는 이미 안면식이 있는 사람들도 있는것 같네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간단히 자기소개라도 하고 가는게 어떻겠나? 그래도 인페르노를 소탕할때까지는 서로 등을 맞대고 싸워야할 동료니까 말이지."

"흥! 동료? 글쎄요. 제 등을 내주기에는 그 사상이 너무 불순하거나 일반인보다 전력이 약해보이는 놈들뿐이라서 말이죠. 그렇다고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미친개에게 제 후위를 내줄 수 는 없는 노릇아니겠습니까?"

한국의 천외천 단체인 백월교의 수장이자 아크엔젤이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는 하희빈이 주위를 쭉 훑어 보면서 광역 어그로를 시전했다. 역시 북두십성 유저를 4명이나 한 자리에 집결시킨것 까지는 좋았지만 서로 사이좋게 호형호제하는 것까지 기대해서는 아니되는 것이였다.

나 또한 하희빈을 믿지 않고 있었으니 머리속에는 어떻게 하면 아크엔젤과 아크데빌과의 싸움에서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뿐이였다. 뭐 그건 그렇다치고 일본 출신의 북두십성 유저라는 에이지라는 남자. 아크엔질의 말마따나 팔다리가 스켈레톤처럼 비쩍 말라가지고는 보급품이나 제대로 들 수 있을지가 의문이였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고 해도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북두십성 유저를 영입하다니 가스킬 대령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군.'

"어머나 혹시 일반인보다 약해보인다는 소리, VOT 온라인의 그 누구보다 많은 스킬을 마스터한 저 올라운더 에이지를 지칭하는겁니까? 이건 실망이로군요. 그 명망높은 아크엔젤님께서 겉모습만 보고서 사람을 판단하다니. 야레야레."

"그래서 그 수많은 스킬들중 현실에서 사용가능한건 몇 가지나 되지? 제대로 밥값 할 수 있는 스킬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내가 했던 말을 철회하고 정중히 사과하지."

"흠흠. 갑자기 정곡을 찔러오시는군요. 과연 VOT 온라인 제일의 명사수 아크엔젤님 답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현실에서도 양궁 금메달리스트셨던가요. 그러면 저도 에이지란 남자의 현실 스펙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드리죠. 저는 야쿠르트배 햄버거 많이먹기 대회 챔피언을 2번이나 차지한 푸드파이터이자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어린이들의 수호자이며 스킨스쿠버 강사경력 2개월에 빛나는 바다의 친구..."

"가스킬 대령님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작전 결행이 늦어질 수 록 보이지 않는 희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테니까요."

하희빈이 브리핑 룸을 빠져나가기 전 노골적으로 나를 응시하며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건 대충 '아크리퍼 네놈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중 한명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믿을 놈이 너 하나밖에 없구나.'라는 뉘앙스의 표정이였다.

하희빈이 펼칠 예정인 광역술식 루나틱 생츄어리(Lunatic Sanctuary)는 그녀가 이야기했던 대로 월석 즉 달의 운석조각이 중추석 역할을 하게되는데, 동서남북 사방위에 위치한 총 4개의 월석중 하나라도 손상될 경우 그 즉시 술식이 허물어질 수 있었다.

만약 VOT 온라인 내였다면 아크엔젤 하희빈을 추종하는 가디언엔젤들에게 월석의 수호를 맡길 수 있었겠지만, 여기서는 북두십성 유저들이 각자 월석을 하나씩 맡아서 철통수비를 해내야했다. 그런데 매드독스 왕루옌이야 그렇다치고 올라운더 에이지라는 남자는 딱봐도 VOT 온라인의 이적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

결국 누군가가 2인분을 해야만 이번 작전이 성공 가능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였으니 아크엔젤이 울며겨자먹기로 내게 기대를 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륭 사부는 유체화 상태로 듀리스는 그림자속에 숨어 있어 2인분을 넘어서 3인분까지 가능하기도 했고. 물론 나는 곧이곧대로 아크엔젤의 계획에 협조할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루나틱 생츄어리가 펼쳐지면 내 십만 이매망량도 발이 묶인다. 그럴바에는 적당히 협력하는 척하다가 월석을 포기하고 아크엔젤을 궁지로 내모는거다. 그 썅년이 내 자지를 동앗줄마냥 부여잡고 살려달라고 빌때까지 말이야. 크크킄.'

"아크리퍼. 이 네글자면 자기 소개는 충분하겠지? 뭐 다른 미사여구가 더 필요한가?"

"무투계 유저인 매드독스입니다."

"으흠. 그러면 자기소개도 끝난듯 하니 이번 작전의 보상안에 대해서 논의해 보세.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메리칸이 아니듯 히어로가 무보수로 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니까. 본래는 하희빈양도 같이 있을때 논의해야되는 사안이지만 시간이 촌각을 다투고 있다보니 자네들이 원하는 바를 먼저 듣고싶네. 사건군 자네부터 말해보겠나?"

"저는 현물자산을 갖고싶습니다. 한 1조달러치 정도? 이왕이면 순금으로 받았으면 좋겠군요. 국방부 예산만 1조 달러에 달하는 미군이 해내지 못한 일의 성공보수라면 이정도는 받아야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지... 다음으로 왕루옌양은?"

"난징성 대재난으로 인해 중국내에서는 물론 인터폴쪽에서도 저와 십이지천의 형제들의 이름이 수배되어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누명을 벗고 싶습니다. 난징성 대재난은 제가 벌인 일도 아닐뿐더러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지금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에 거주중인지라 제 명의로는 십원 한푼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니 저는 돈보다는 명예를 되찾아야겠습니다."

"중국 정부와의 협의는 쉽지 않겠지만 인터폴 수배라면 내 선에서 처리해줄 수 있네. 아무쪼록 왕루옌양이 사상 최악의 테러범이라는 오명을 벗고 지구의 수호자로 다시 태어나길 기원하겠네."

나는 가스킬 대령의 진지한 덕담에 웃음이 터져나올뻔한걸 간신히 참아냈다. 지구의 수호자? 좆까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매드독스 왕루옌이 지닌 능력이 이미 범인을 아득히 초월한 수준이라는건 사실이였지만 지금은 그저 내 전용 정액받이 암캐일뿐이였다. 일이 귀찮아 질것 같아 왕루옌을 그냥 동료로 소개했더니 이런 일이 생기는군.

"그럼 마지막으로 올라운더 에이지군은 뭔가 원하는바가 있는가?"

"저는 옛날 소년 시절부터 메이저 리거가 되고 싶었드랬죠. 뭐 결국 코시엔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하고 사회야구 심판역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만... 이번에 제가 살아 돌아온다면 메이저 리그의 포수, 타자, 투수, 수비수, 심판으로 각각 1회말씩 플레이 해볼 수 있을까요?"

"...그건 꽤나 소박한 꿈으로구만. 앞의 두 사람의 부탁에 비한다면 말일세. 뭐 부탁의 경중이 어찌됬든간에 목숨을 걸고 세상의 악의에 대항하려는 자네들의 의지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내가 책임지고 보상안을 준비해놓겠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래도 그것밖에 없는 모양인듯 하니."

*    *    *    *

하희빈이 하룻밤을 꼬박세워 월석에 신약성서의 구절을 모두 세겨넣는데 성공한 다음 날. 나를 포함한 북두십성 4용사는 드디어 하와이에서 100km정도 떨어진 근해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올때는 항공모함을 이용했지만 하와이 본섬으로 들어갈때는 고무보트를 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뭐 무적함대라고 생각했던 미해군 함정들과 카메라에 비치지는 않았지만 핵잠수함까지 제대로된 저항 한번 못해보고 수장당했으니 이런 우회책을 선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SSS의 특수요원과 미국 네이비씰 대원과 함께 고무보트에 오른 나는 아크엔젤로부터 건네받은 월석을 끌어앉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과연 고무보트를 이용한다고 해서 레비아탄의 초음파에 감지되지 않을 수 있을까?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가스킬 대령의 바램과는 달리 내 본질은 세상의 악의와 맞서싸우는 용사보다는 악의 축 그 자체에 가까웠기에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총기를 점검하고 있는 군인들의 목숨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이 합동 병력의 임시 지휘권을 가진 자는 하희빈이 탄 보트에 올라탄 모양인지 그녀의 보트를 선두로 나머지 세 보트가 어미 오리를 쫓는 새끼 오리마냥 쫄쫄쫄 따라가기 시작했다. 천혜의 관광명소였던 하와이 근해에 오늘따라 안개가 자욱하니 겉으로만 보면 관광명소가 아니라 오컬트 명소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일반인들의 기준이라면 모를까 내 기준에는 전력외야. 즉 옆에 있어도 방해가 될뿐이니 하와이 본섬에 도착하면 나는 독립행동을 하도록 하겠어."

"알겠습니다. 북두십성 유저분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라는 위의 명령이 있었으니 그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희들이 본함으로 후퇴할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하와이에 남아있는 자국민들을 구하러 온겁니다. 모두 들어라! 우리는 하와이 본섬의 북쪽에 아크리퍼를 내려주고 나면 올라운더가 있는 이스트 분대를 지원한다."

"Yes, sir." x 10

'크크킄. 이 녀석들이 보기에도 그 에이지라는 녀석은 불안해 보였던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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