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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 Oxogan The Killer Whale, Leviathan
륭 사부가 다소 탐탐치않은 표정을 짓다가 정체불명의 내장으로 휘감긴 병동에서 사이한 기운이 전해져 오자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엘리멘탈 로드를 신데렐라나 콩쥐처럼 구박하며 부려먹는다고 해도 최소한 내장으로 페인트칠을 하는 사이비교도 무리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나을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무슨 이유인지 섣불리 진입을 하지 못하고 포위망만 견고히 하고 있는 스왓 특수기동대 사이로 뛰어든 나를 뒤이어 륭사부와 시스트린이 병동의 옥상에 착지했다. 벌건 대낮에 적외선 투시경을 사용하는 기동대원은 없었기에 스텔스 모듈을 사용한 우리 셋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병동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안가서 스왓 특수기동대가 밖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이유는 물론 이 병동을 장악한 사이비교도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애인처럼 소중히 다뤄야할 총기를 내팽겨치고 혓바닥을 1m나 쭈욱 내민채 상모돌리기를 하고 있는 기동대원들.
이런 괴상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는건 누가 뭐라해도 아크데빌의 마계 기생충인 주걱턱아귀(Paddlemouth Angler)밖에 없었다. 이미 실종된 노숙자들만 만명이 넘어선다고 하니 저 빌어먹을 생명체를 소환하기 위한 마력정도야 진즉에 축적했으리라. 문제는 엔도미야가 VOT 온라인과 외부 세계와의 링크를 차단한 상황에서 어떻게 소환에 성공했냐는건데...
'엔도미야는 절대 두번이나 실수를 할만큼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링크가 끊기기 이전에 주걱턱아귀를 미리 소환해뒀다는건가? 하지만 실종 사건이 부각되기 시작한건 비교적 최근인데...'
"연자여 저 기묘한 존재는 어떻게 처리해야하지? 본래는 민간인이였던것 같긴 하다만."
"혀가 1m나 자라났으니 이미 뇌골수까지 침식이 끝났을겁니다. 화타가 부활한다한들 손쓸 수 없는 상태니 안타깝지만 그냥 깔끔하게 목숨을 끊는 것이 저치를 위한 길이 되겠지요. 단 저짓거리를 한 장본인인 주걱턱 아귀가 다음 숙주를 감염시킬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세요. 특히 시스트린 너는 아무리 흡혈귀의 재생력이 있다고 해도 주걱턱아귀가 체내로 들어오면 골치아파지니까 조심해라."
"어머 지금 이런 때깔 좋은 방어구까지 입혀놓고 절 걱정해주시는거에요? 항상 그 아야사란 인간계집만 감싸고 도셔서 저는 관심밖인줄 알았는데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그만큼 주걱턱아귀가 까다로운 적이란 얘기야. 순수 전투력이야 별볼일 없지만 번식속도가 바퀴벌레 뺨치는 수준이니까. 차라리 네가 푸스카나 무슈처럼 피 한방울 없는 언데드라거나 륭 사부처럼 스펙트럴한 존재였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앗차하는 사이 주걱턱아귀의 유체를 삼키기라도 하는 날엔 그 자리에서 바로 외과수술을 해야한다고."
"예예. 주의하겠습니다. 후우, 한때 왕국을 벌벌떨게 만들었던 아라크네족의 이단아가 이런 하등한 피조물들을 상대로 긴장을 해야하다니. 자존심이 상해서 정말!"
시스트린이 채찍처럼 휘둘러져오는 감염된 스왓 기동대원의 혓바닥을 간발의 차로 피해내더니 등뒤의 갑각류 다리 여섯개로 기동대원을 단숨에 꿰뚫어버렸다. 그리고 마무리를 확실히 하라는 내 충고를 잊지않았는지 갑각류 다리로 찌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껴안아 버렸다.
마치 문서 파쇄기에 갈린것처럼 육편 부스래기가 되어 복도를 수놓는 기동대원. 저 육편 조각 가운데는 분명 주걱턱아귀의 그것도 포함되어 있겠지. 이 장면만 놓고보면 내가 괜한 걱정을 한것 같겠지만 오리지널 뱀파이어인 듀리스와 달리 피의 지배력이 체내의 불순물을 걸러낼만큼 강하지 못한 시스트린에게 기생타입의 적은 치명적이였다.
그건 아라크네족의 본모습인 거대거미화 되어도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거대화된 신체때문에 조막만한 기생 생명체를 처리하기가 더욱 어려워 지리라. 물론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때의 이야기였기에 시스트린의 선빵으로 시작된 병동 탐색전은 거칠것없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시스트린은 말할것도 없이 륭 사부가 전력을 다한 일권으로 감염된 스왓 기동대원을 박살내는 가운데 지구의 이매망량 군단장 소소가 뼈채로 감염자들을 압착시키니 적이 남아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 덕분에 전력질주로 복도를 내달리는 것과 맞먹는 속도로 병동을 돌파하다보니 얼마안가 첫 생존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으으으. 도, 도와주세요. 동료 간호사들이랑 의사 선생님들이 모두 이상하게 변해버려서..."
"엘리멘탈 로드가 묶고 있는 병실을 알고있나?"
"예? 엘리멘탈 뭐요? 그런 병명은 처음 들어보는데..."
"아니 질문이 잘못됬군. 스칼라 마드리드란 소아조로증 환자가 입원한 병실을 알고있나?"
"스칼라 마드리드, 스칼라 마드리드... 죄송해요. 그런 환자의 이름은 들어본적이 없어요."
"주인님, 이 간호사 다리도 불편한것 같은데 그냥 버리고가죠."
"아, 안돼요! 저는 이 병동의 구조를 잘 알고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거에요."
"이 건물의 구조정도는 나도 눈감고도 알 수 있을정도거든?"
"시스트린 저 간호사 고치로 만든 다음 네가 등에 엎고 다녀. 그리고 앞으로의 전투는 륭 사부와 소소가 전부 담당한다."
"네에? 우움... 알았어요. 오늘 주인님께서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네. 너 운좋은줄 알아."
내가 히어로 행세나 하고 다니는 인간이 아니라는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시스트린은 내 지시에 다소 의문을 표했지만 이내 군말없이 간호사를 거미줄로 둘둘만다음 6개의 갑각류 다리로 고정시켰다. 그 과정에서 간호사가 공포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새된 비명을 질렀지만 주걱턱아귀가 여기저기 활보하는 지금 저 고치속이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그리고 내가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였으니 숙주를 기반으로 번식을 하는 기생체를 상대할때 생존자를 방치하는 것은 잠재적인 적군을 늘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히어로 코스프레를 하기 위해서 간호사를 구한게 아니라 냉철한 지휘관의 입장에서 내린 선택이였던 것.
새롭게 배운 내 무공들을 써먹을 틈이 없을 정도로 화력은 차고 넘쳤기에 병동의 복도를 돌파하는 속도는 이전과 다름 없었다. 하지만 시스트린의 스파이더 센스(Spider Sense)에 의지해 병실 구석구석을 뒤져보아도 또 다른 생존자를 찾을 순 없었다. 역시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게임에서도 골수 PK유저인 아크데빌의 작업방식답달까.
대신 처음이자 마지막 생존자였던 간호사의 말대로 주걱턱아귀에게 감염된 의사와 간호사만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으니 스왓 기동대가 진입한 에어리어는 그 간호사가 있던 장소까지였던 모양이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가스킬 대령에게 엘리멘탈 로드가 묶고 있는 병실의 위치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출발하는건데 경황중에 그러지 못한점이 후회스럽군.
'아니 잠깐만 이 감각은?'
"엘리멘탈 로드가 어디 있는지 알아낸것 같다. 모두 나를 따라오도록."
"어머 주인님 동대륙의 무예를 익히더니 저보다 감각이 좋아지신건가요? 이렇게 되면 제 포지션이 짐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는데."
"그런 감각을 말하는게 아니야 근처에 영혼의 표식이 이어져 있다."
"예? 하지만 듀리스님은 지금 한국에 있을텐데요. 혹시 저 몰래 지구에서 따로 언데드 수하를 거두신적 있어요?"
"아니. 사실 나도 누군지 확실할 수 가 없어서 직접 두눈으로 확인해야할것 같다."
나는 표홀신법을 사용해 마치 구름위를 거니는 것처럼 계단을 타고올라 윗층으로 향했다. 신법을 전력으로 전개했음에도 누구 한명 뒤쳐짐없이 쫓아오는 상황을 좋아해야하는건지 싫어해야하는건지 헷갈릴때쯤 나는 관계자외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은 중환자 입원실 앞에 도착했다.
영혼의 표식은 그 어떤 네비게이션 보다 정확한 지표였기에 나는 망설임없이 입원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어느정도는 예상한 일이였지만 영혼의 표식이 가리키고 있었던건 다름 아닌 물의 수호령 오르시나였다. 그녀는 산소호흡기를 단채로 가는 숨을 내뱉고 있는 민머리 소녀의 곁에서 성인남성의 팔뚝만한 굵기의 가시채찍을 튕겨내고 있었다.
그 가시채찍의 주인을 찾아 시선을 돌리니 부시맨도 아니고 도심 한복판에서 가죽팬티 하나만을 입은 붉은피부의 거한이 눈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눈가에 동공 대신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것은 물론 머리에 산양의 뿔이 달린 것을 보아하니 하급 악마들을 감독하는 핏 핀드(Pit Fiend)가 분명했다.
주걱턱아귀뿐만 아니라 저 녀석까지 소환에 성공했다고!? 이매망량군으로 따지면 백부장에 해당하는 악마가 코앞에서 살아움직이는걸 목도하다니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가 만명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는 통계가 기정사실화되는 순간이였다. 오르시나에게 가로막혀 성난 핏 핀드가 엄한 콘크리트 바닥을 박살낼때 정신을 차린 나는 륭 사부에게 소리쳤다.
"륭 사부 저 녀석 주변에 있는 시체 좀 치워주세요!"
"알았다, 연자여."
내가 지옥의 감독관 핏 핀드 본인도 아니고 죽은 의사, 간호사, 환자들이 한데 뒤엉킨 시체더미를 지목한 이유는 단 하나. 핏 핀드에게 시체를 기반으로 헬 게이트(Hell Gate)를 열 수 있는 지옥의 권능이 있기 때문이였다.
물론 그 헬 게이트의 크기는 아크데빌 본인이 앙그라마이뉴 법진을 사용해서 여는 것 보다 크지는 않겠지만 추가 증원군을 차단하는 것은 지휘관의 기본중에 기본. 이제는 본체도 경시못할 힘을 갖추었지만 기본적으로 언데드를 부리는 지휘관직에 익숙한 나는 본능적으로 해야할 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륭 사부의 비호같은 발차기를 휘감는 가시채찍질. 자연스럽게 널부러진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모여있는 시체를 보건대 핏 핀드도 시체더미의 전략적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듯 했다. 륭 사부는 발차기를 하는 자세 그대로 한 발로 멈춰선 다음 다리의 축을 회전시키며 채찍에 저항했다.
졸지에 륭 사부와 줄다리기를 하게된 핏 핀드는 생각치도 못한 각력에 깜짝놀라 채찍을 놓아버린 다음 시체더미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그리고 핏 핀드의 손엔에 새겨진 오망성이 번쩍이며 내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간호사복, 의사가운, 환자복을 남겨둔채 부글부글거리며 증발해버린 시체더미 사이로 개구멍만한 문이 나타난 것이다.
"소소, 이매망량군을 이끌고 가서 저 문을 틀어막아!"
"변태 계약자 네가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야?"
"그건 내가 할말이다, 오르시나. 설마 전에 말한 새로생긴 친구가 엘리멘탈 로드를 말하는거였냐?"
"엘리멘탈 로드라니 지구인답지 않게 터무니없는 자연친화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어마어마한 이명을 갖고 있었구나."
"오... 오르시나 나때문에 의사 선생님들이랑 간호사 언니들이 죽은거야?"
"스칼라 아니, 아니야. 이게 어떻게 너때문이겠니? 이런 짓을 저지른 악마술사가 나쁜 놈이지.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게 끝나있을테니까 기다리... 흐읏!"
"으르르르르렁!"
조막만한 헬 게이트에서 헬 하운드(Hell Hound)가 쉴새없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매망량으로 헬 게이트를 틀어막아 보았지만 문너머에 존재하는 헬 하운드의 개체수가 한둘이 아니였는지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온 지옥의 불꽃이 집약되어 이매망량의 방벽을 녹여버렸다.
소소가 복날에 개잡듯이 헬 하운드를 때려잡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헬 하운드가 줄줄이 소세지처럼 개구멍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이 내뿜는 지옥의 불꽃은 오르시나의 수속성 방어막과 상극이였기에 이제는 엘리멘탈 로드의 안위까지 걱정해야할 판이였다.
그나마 다행인건 륭 사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실패하게 만든 장본인인 핏 핀드를 묵사발로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였다. 가시채찍을 놓쳐 육탄전을 시도하는 핏 핀드였지만 륭 사부를 상대로 인파이트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옥의 감독관이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노예처럼 얻어맞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내가 조금만 힘을 보태면 손쉽게 승기를 가져올 수 있을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는동안 내가 직접적인 싸움을 제한한것도 바로 이런 상황에서 사용할 내공을 아끼기 위함이였단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