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33화 (233/599)

0233 / 0316 ----------------------------------------------

vol.7 Oxogan The Rebirth Of Aged Blue Dragon

"옥사건군 자네에게 선생님이란 무엇인가?"

'그냥 애새끼들 뒤치닥거리하는 철밥통이지 뭐긴 뭐야.'

"선생님이란 명칭을 풀어서 살펴보면 먼저 태어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이가 많은 사람만이 선생님을 할 수 있는건 아니고 어떤 분야에서 먼저 성취를 이뤄 후발주자들을 위해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저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그런데 말일세. 그 길안내 때문에 학생들이 직접 무의 길을 헤쳐나가는 독립성이 떨어질 수 있지는 않겠나?"

'어차피 될놈될인데 뭔 상관이야. 가르침을 받던 못받던 올라갈 놈은 올라가고 떨어질 놈은 떨어진다고.'

"만약 선생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학생에게 가르치려 한다면 그런 부작용이 생길 수 도 있겠지요. 하여 저는 제자의 수준별로 가르침의 방식이 달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팔륜학관의 8년 과정중 1학년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일테니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고 차차 학년이 올라갈 수 록 하나씩 덜 가르쳐주는 미덕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덕이라..."

"예, 그 빠진 부분을 학생 스스로 찾아 메우는 과정에서 면접관님이 말씀하셨던 독립성을 길러 종국에는 선생님의 도움없이 학생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선생님이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겠지요."

"오호라."

어디서 도좀 쌓았을것 같은 선풍도골의 천급 교사들이 하나같이 에녹의 새치혀에 놀아나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면접관들이 에녹의 답변에 감동한건 무엇보다 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에녹을 면접 대타로 내세운건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라는 거겠지.

이대로 순조롭게 인급교사가 되어 팔륜대장경에 접근하리라 믿어 의심치않고 있던 내게 고막을 긁는 쇳소리가 찬물을 끼얹었다. 다른 천급 교사들에 비해 유난히 젊고 또 유난히 얼굴에 상처가 많은 사내가 공석인줄 알았던 면접관 중앙 자리에 턱하고 앉으면서 헛기침 소리를 냈던 것이다.

"늦어서 미안하이다. 새벽에 잠깐 몸만 푼다는게 지금까지 검을 휘두르고 말았군."

"검치성 관주가 그러는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제는 우리들도 포기했네."

"그러게 싫다는데 자꾸 감투같은걸 씌워가지고."

"팔륜학관이 여덟 무가와 독립적인 기관임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팔륜오객의 일인인 자네가 관주직을 맡는게 모양새가 좋다고 몇번이나 이야기하지 않았나. 늦게온거 티내지 말고 이 앞의 인급 교사 후보자인 강령술사 옥사건군과 인사 나누게."

"강령술사? 그거 사흉신교의 강시같은걸 부리는 자들을 말하는거요? 나는 천급 교수분들이 그런 사이한 기술을 쓰는 자들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싫어한다고 해서 그들의 위험성을 외면해서는 안되지. 나는 오히려 그 강시들과 학생들 사이에 싸움을 붙여 친숙하게 만들 작정이네. 그리고 정확히 따지자면 옥사건군이 부리는건 강시가 아니라 언데드라고 하는 별개의 하수인이라네."

"흐으음. 이보쇼 술사양반. 나 검치성 일곱살때부터 천자문 대신에 목검을 휘두른 탓에 머리가 돌처럼 굳어있소. 그 강시와 언데드의 차이점에 대해서 좀 알기쉽게 설명해주면 안되겠소? 아 그리고 내가 팔륜학관의 관주라고 해서 쫄것없으니 그냥 편하게 말하쇼. 어차피 바지사장이나 다름없는 직책이니까."

'어떻게 할까요, 주인님. 사실 저도 언데드와 교전해본 경험은 있지만 강시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입니다.'

과거 신전 보육원의 고아에서부터 성기사단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산전수전을 다겪은 에녹은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언데드의 생리에 대해서 꿰차고 있었다. 하지만 강시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이름 조차 들어본적이 없었기에 나는 에녹에게 대충 둘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었다.

비단 검치성이라는 팔륜학관의 관주가 자기입으로 돌대가리라고 해서 그런게 아니라, 스스로 협객을 자처하는 무인들은 강시술같은 사술을 익히는걸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에 내가 적당히 둘러대도 설명이 빈약하다고 태클을 걸어올 인간은 여기 없었기 때문이였다. 뭐 나도 강시에 대해서는 동대륙 서버에서 맛보기로 익힌게 전부기도 했고.

"강시나 언데드나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점에선 일맥상통합니다만 주목적 자체가 다르달까요? 강시는 단전과 같은 마력기관을 재현해 시체가 생전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걸 지상과제로 여겼다면 언데드는 마력기관 없이도 그 자체로 강력한 괴물들을 되살리는 쪽을 선택한거죠. 뭐 어차피 만류귀종인지라 언데드는 결국 마력기관을 재현한 리치라는 존재로 발전하고 강시는 약물을 통해 검기가 통하지않는 육체로 재탄생한 금강시로 발전하게 됩니다만."

"그렇군. 적어도 죽은 동료를 사술로 되살리는 부류는 아니라는건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입닫고 있어야겠군.'

"그런데 말이야, 술사 양반. 자네 한테서 마치 잘 버려진 검과 같은 기세가 느껴지는것도 만류귀종의 일종인가? 만약 그렇다면 한평생 책대신 검을 휘둘러온 나같은 사람은 좀 억울해지는데 말이지."

"글쎄요. 제가 다른 강령술사에 비한다면 제법 몸을 쓰는 편이긴 하지만 그런 미사여구가 붙을 정도는 아닐겁니다. 혹시 검치성 관주님의 착각이 아닐련지요?"

"착각, 착각이라. 나 봉두검귀 검치성이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무식쟁이지만 칼잡이 보는 눈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네. 하지만 자네의 말대로 내가 착각했을 수 도 있으니 잠깐 시험해볼까?"

팔륜학관의 관주이자 팔륜오객의 일인인 봉두검귀 검치성이 내게 검을 겨눴다. 언제 검을 꺼내들었는지도 몰랐을만큼 귀신같은 발검속도였다. 당장이라도 이매망량을 부려 검치성을 쳐내려 했던 나는 에녹의 만류에 잠자코 있었다.

당장이라도 내 목을 칠것 같았던 검치성의 날선 검은 알고보니 검이 아니라 면접관들이 사용하는 깃털펜이였다. 게다가 면접관과 나 사이의 길이는 아무리 검신이 긴 검이라고 해도 닿기 힘들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검치성의 깃털펜이 내 목을 칠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던 걸까?

'살기를 유형화 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자입니다. 하지만 주인님을 해칠 의도는 없었던것 같으니 일단 넘어가지요. 주인님께서 이런 수고로움을 자처하신것은 모두 팔륜대장경에 접근하기 위함이 아니였습니까?'

'뭐 그렇지. 그리고 저 더벅머리 양반은 뭐 하나 트집잡아서 협박해도 뜯어먹을 것도 없을것 같다. 오히려 싸우자고 하면 좋다고 덤벼들 느낌이야.'

"검치성 관주 이게 또 뭐하는 짓인가? 전에는 독공을 쌓은 여협객에게 느낌이 이상하다고 검을 휘두르더니 이번에는 어렵게 모신 술사분한테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고 검을 휘두르다니 자네 너무 검을 휘두르다가 미쳐버린것이 아닌가?"

"그러게말입니다. 제 생각에도 제가 요즘 반쯤 미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일랑 말랑 하니. 아무튼 술사양반 이거 미안하게 됬수다. 이 검치성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소."

"괜찮습니다. 그냥 인급 교사 면접의 일환으로 담력시험을 한셈 치죠.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합격 여부는 언제 알 수 있을까요?"

"아하 그거라면 일주일정도 기다리면 알 수 있을게야. 자네를 추천한 지급 교사인 어린세랑양같은 진법가도 그렇지만 강령술사는 더더욱 드믄 존재이니 아마 좋은 소식 기대해도 좋을걸세. 학생들이 우주라고하는 무법지대로 발을 딛기 전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시켜주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 아니겠는가? 허허허."

뒤이어 개인적인 신상에 대한 시시콜콜한 문답이 오가고 나는 마침내 면접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전에 들렸던 해우소로 향해 에녹에게 몸을 넘겨받은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무인택시에 올라 직녀루를 목적지로 지정했다. 검치성이라고 하는 의외의 변수가 있었긴 했지만 이걸로 별탈없이 인급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

직녀루에서 청실, 홍실을 포함한 천급 기녀 여덟명, 통칭 팔선녀들에게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용린루에도 돌아가지않고 방탕한 생활을 보내길 일주일째. 마침내 팔륜학관으로 부터 합격 메시지가 도착했고 나는 인급 교사계급으로 팔륜학관 커뮤니티에 가입할 수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팔륜대장경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 지법, 경공술, 점혈법등을 닥치는대로 주어담은 나는 본체가 익힐만한 무공들을 물색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했다. 오입질도 좋긴 했지만 이 빌어먹을 선생질을 한학기 이상 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최대한 빨리 뽕을 뽑을 생각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추려낸 것이 파랑쇄지와 점혈의 정석 그리고 표홀신보였다. 모두 엄청난 상승의 무공은 아니였지만 대성할 경우 그럭저럭 제 몫을 하는 것들이였다. 일단 지법인 파랑쇄지는 일반적으로 보조수단으로 사용되는 지법과 달리 주력 공격수단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였다.

위력을 포기하고 정확도와 속도에 주력해 상대의 빈틈을 유도하는 용도가 아닌 그야말로 위력에만 집중한 지법보다는 기공계열의 무공에 가까운 녀석이였다. 그리고 점혈의 정석은 이름 그대로 점혈범의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마혈, 아혈, 훈혈, 사혈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이 파랑쇄지와 점혈의 정석을 대성해서 색향천월관에 납치할 지구의 외간여자들을 원거리에서 기절시키는거지. 크크크킄.'

물론 이 점혈법중 사혈을 이용해 적의 빈틈을 노리는 활용방법도 있겠지만 보통 사혈 자체가 굉장히 노리기 힘든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머리와 심장같은 적의 급소를 노리는게 훨씬 죽이기 쉬웠다. 구태여 사혈을 노려 적을 죽이겠다는건 마치 격투게임에서 조건도 까다로운 초필살기로 피니쉬를 하는 변태 마인드의 소유자나 할법한 짓거리였다.

다음으로 표홀신보는 내공을 사용해 몸의 무게를 극한으로 줄여 은밀한 움직임을 가능캐하는 보법이였다. 물론 슈퍼로이드 퀼레뮤츠 전에서 박살난 스텔스 모듈와 아케인 슈트를 재구입해서 투명화 상태로 여성을 납치할 생각이긴 했지만 범죄를 저지를때는 은밀하면 은밀할 수 록 좋은것이기에 필히 대성해야할 녀석이였다.

그렇게 색향천월관을 엄선한 수집품으로 가득채울 생각에 부풀어 있을때 또 하나의 메시지가 팔륜학관에서 도착했다. 내 강령술 수업을 시범적으로 계절학기때 개설할 예정이니 빠른 시일내에 첫주분만이라도 수업계획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였다. 한참 좋았던 기분은 마치 김빠진 맥주처럼 가라앉아 축저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당장 팔륜학관의 선생질을 하다보면 색향천월관의 준비는 커녕 직녀루에서 팔선녀들을 상대로한 공씹도 허공에 날리는 꼴이지 않은가? 지금 당장 전용기를 구입해서 팔륜학관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직녀루로 날라야되나? 나는 머리를 쥐어감싸면서도 근처의 이면지를 집어들어 수업계획서의 초안을 짜기 시작했다.

'어차피 강령술을 가르친다고 해도 어릴적부터 무예를 단련해온 학생들이 육체를 약화시키는 음에너지를 사용할리도 없고 사용해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수박 겉햝기식으로 가르쳐도 무방하다는 소리니까. 일단 언데드에게 독이 안통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명목으로 미노타우르스 좀비에게 독암기를 날리는 실습을 하는거야. 그렇게 첫주만 그럴듯하게 수업을 하고 다음부터는 푸스카를 내세워서 자율격투학습을 하는거지.

그리고 나는 인사만 한다음에 살짝 빠져나와서 직녀루로...'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완벽한 수업계획서였기 때문에 나는 언제 얼굴을 찌푸렸냐는듯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국의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수업대신에 한시간내내 교육방송을 트는곳도 있다는데 이정도면 양반 아니겠는가? 푸스카가 학생들 등쌀에 조금 시달릴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슈녀석을 내보내기에는 못미더운감이 없잖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