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24화 (22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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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Oxogan The Rebirth Of Aged Blue Dragon

용린은리 사저가 가면을 쓴 여자의 직언에 할말을 잃어 꿀먹은 병아리가 되고 말았다. 설마하니 용린혁 가주에게조차 막말을 일삼는 은리 사저를 꼼짝못하게 만드는 상대가 있을줄이야. 가면으로 이목구비의 대부분을 가렸음에도 긴생머리를 둘둘말아 비녀를 꽂은 모양새에서 미인의 기운이 느껴지는 저 여자가 천주랑의 첫사랑인 어린세랑인가.

"지금 당장 그 모든 금액을 내 사비로 변제하긴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용병일을 하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내보일게."

"또 밖으로 나도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은리 아가씨 제가 정말 돈때문에 아가씨를 핍박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겁니까? 50만 VP가 됐던 100만 VP가 됐던 용린검가의 재력이라면 그리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제가 은리 아가씨에게 몰아붙이는건 당신이... 여의주를 물고 태어났으면서 용의 머리도 꼬리도 되려하지 않으니까!!!"

"잠깐 세랑양 진정하시게. 은리 아가씨가 오랜 시간동안 본가를 비워 섭섭한 마음은 알겠네만 아가씨에게도 나름의 사정이란게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제 막 우주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니 어느정도 휴식시간을 갖게 한 다음 천천히 이야기 해보는게 어떻겠나?"

"춘이 네이놈은 아직도 은리 아가씨를 감싸고 도는거냐? 더 이상 은리 아가씨가 예닐곱 무렵의 코흘리개가 아니라는것쯤은 곁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아가씨를 보필한 네놈이 더 잘 알터인데 정말로 모르고 있는거냐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척을 하고 있는게냐?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랑 행정관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다는건 아니다만."

"용린악 장로님 제 이야기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부디 기탄없이 꾸짖어 주시길바랍니다. 일단 본가의 어르신들이 한둘이 아닌데 주제넘게 언성을 높힌점은 사죄드리겠습니다."

용린은리 사저를 마치 어른이 아이를 혼내듯 하는 어린세랑의 포스 때문에 뒤늦게 눈치챘지만, 용린루의 최고층에 있는 회의실에는 용린춘 장로와 종종 공수중대장 도르칸 대위의 대리를 맡았던 용린환이 나와 은리 사저보다 한발앞서 자리하고 있었다.

용린춘 장로야 본가에서도 제법 큰어르신에 속하는지라 담담한 태도로 은리 사저의 변호까지 자처했지만 용린환은 이런 자리가 영 편치않은지 잔뜩 움추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문제의 용린악 장로는 용린춘 장로와 비슷한 연배와 배분을 갖고 있는것은 물론 우락부락한 몸까지 닮아 있었는데, 흠이라면 얼굴마저 산적처럼 우락부락하다라는 점일까.

"요즘이 옛날처럼 분가사람하고는 겸상조차 안한다는 구닥다리 시대도 아니고 누구든간에 할말이 있으면 하고 살아야지. 그러니까 뒷방 늙은이인 나도 짚고 넘어갈건 짚고 넘어가야겠어. 여의주를 물고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승천이 약속되어 있는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일세.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건 승천에 성공한 천룡뿐인지라 놓치기 쉬운 사실이지만 여의주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토룡이 되는 자들도 숱하다네.

예를 들자면 은리 아가씨의 정혼자인 뇌신검 천주랑도 청룡문의 전폭적인 지지와 본인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팔륜오객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 그에 반해 은리 아가씨는 지난 십년간 용린무형검의 성취를 3성까지 끌어올리며 춘이놈은 물론 나보다도 강해지셨다. 나는 그 배경에 마치 죽을 자리를 찾아다니듯 디파일러와의 격전지를 찾아다닌 은리 아가씨의 방랑벽이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누가뭐라해도 검의 본질은 다른 누군가를 상처입히기 위해서 만들어진 도구. 허수아비를 상대로 휘두른 천번의 검격보다는 살아있는 적의 숨통을 꿰뚫는 일검이야말로 검술향상에 큰 도움이 되니까 말일세. 뭐 지금은 여기에 없는 용린혁 어르신의 경우 다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검이야 말로 진정한 검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고 거듭말씀하셨네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 록 내 검끝에는 살의가 깃들뿐이더군."

"그런 측면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용린악 장로님의 연륜이 묻어나는 가르침에 소녀의 견식이 아직 미천하다는걸 뼈저리게 느끼는군요."

"무인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자네가 그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기는 어려웠겠지. 그리고 은리 아가씨가 슬슬 구체적인 거취를 결정해야한다는 자네의 의견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까. 칼자루를 쥐는 자가 될지 아니면 용린검가를 위한 검이 될 것인지. 개인적으로는 순이 녀석이 영 못 미더워서 가급적으면 은리 아가씨가 칼자루를 쥐었으면 하지만 본인의 의지를 무시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니 이곳에서 정식으로 묻겠습니다.

은리 아가씨 당신이 하고 싶은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자에게 있어 가장 꽃다운 나이인 20대를 모조리 전장에서 불사른 당신의 저의는 용린혁 어르신 못지않은 가주가 되기위함이 아니였단 말입니까?"

장내의 분위기가 숨쉬는것조차 불편할정도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행정관이라고 해도 배분상 용린은리 사저보다 한참밑인 어린세랑의 질문과 사신성에서 팔륜성으로 이어지는 용린검가의 기구한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용린악 장로의 질문은 그 무게감이 틀렸던 것이다. 천하의 은리 사저라고 해도 이번에는 어물쩡 넘어가지 못하리라.

"나는, 나는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팔륜일황이 되고 싶습니다. 저 인어족들의 모행성인 수왕성에서 사신성을 멸망시킨 장본인인 디파일러 퀸 사리카야와 만났습니다. 용린검이 닿는 거리에 있었음에도 저항 한번 해보지 못했죠. 본능적으로 제가 그 괴물보다 하수임을 깨달았던겁니다. 비스트코인 상단의 발두인 함장에게는 평소엔 하지도않던 작전참모 역할을 자처하며 전력상 밀린다는 결론을 내놨지만,

나는 그저 겁을 먹고 인어족들이 고향별을 뺐기는걸 좌시할 수 밖에 없었던겁니다. 그 사실이 너무 수치스럽고 또 수치스러워서..."

"그래서 사신성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지만 다비금강 사리카야를 한번 패퇴시킨적 있는 팔륜일황 황룡거사의 자리에 도전하겠다는겁니까? 팔륜일황, 검을 차고 강호에 출사한 무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보는 선망의 자리이지만 얼마안가 그 왕관의 무게를 깨닫고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절망의 권좌. 흐음... 좋습니다. 용린검가에서 은리 아가씨의 팔륜일황행을 전폭적으로 지지해드리죠."

"하, 하지만 용린악 장로님!"

"물론 또 기약없는 우주비무행을 허락하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은리 아가씨의 특훈은 바로 이 팔륜성 내에서 진행될겁니다."

"하지만 용린검가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팔륜성에서는 실전경험을 쌓을 수 가..."

"진검을 맞대고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실전의 중요성은 더 이상 입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만, 은리 아가씨 정도의 경지라면 명상과 사색을 통해 깨달음을 쫓는것도 중요하다는걸 아셔야죠. 게다가 팔륜오객의 자리에 있다고 해서 팔륜일황까지 한 계단만 남은게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팔륜이존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침 팔륜이존의 일인인 천빙검후 여사태님께서 500만 VP짜리 1년치 제자코스를 운영중이니 딱 좋은 타이밍에 돌아오신겁니다."

500만 VP라면 실버스케일과 동급인 순양함을 한척 구입할 수 있는 거금이였다. 그런 돈을 평생 제자도 아니고 1년 동안 제자로 받는 대가로 지불하다니 내 입장에서는 영 수지안맞는 장사였지만, 이 팔륜성에서 은리 사저보다 강한 자라고 해봐야 그 팔륜이존과 팔륜일황 세 사람뿐인듯 했으니 달리 선택지가 없다는 거겠지.

공자님은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 보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잘한 언행이나 심성을 배우고자 할때의 이야기고, 한단계 더 높은 경지로 치고올라가기 위해선 역시 먼저 그 경지에 오른 선도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제일이였다.

그건 그렇고 팔륜일황 황룡거사라는 자가 사리카야를 한번 패퇴시킨적이 있다는게 흥미롭군. 물론 사신성에 있었던 사리카야는 이제 막 디파일러 퀸의 힘을 각성한 상태라 제 힘을 발휘했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여덟 가주들이 합격진을 펼쳤음에도 이기지 못했던 상대를 단신으로 무찔렀다는건 그 황룡거사가 경시할 수 없는 힘을 지녔... 크아아아악!!!

나는 갑자기 깨질듯이 아파오는 골때문에 회의실이 떠나가랴 비명을 지를뻔 했다. 혼돈의 주인 야미도엔이 내 머리에 강제로 주입한 인과율계산 정보의 찌꺼기 중에서 사리카야와 황룡거사가로 추정되는 인물이 맞붙었던 데이터가 있었던 것이다. 천지를 쪼개는 초인들의 격투가 3D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니  다른 이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다."자, 잠깐만요. 그 색골 할망구밑에 들어가라고요? 그것도 1년씩이나? 차라리 그 500만 VP로 불우이웃 돕기를 하는게 나을겁니다. 그 색골 할망구한테 그런 거금을 줘봤자 유흥비로 써버릴게 뻔하니까."

"그 분의 성정이 어떠하든 수업료를 어떤 곳에 사용하든 은리 아가씨 보다 경지가 높은 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자를 받는 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 계단 위의 고수라고 해서 만만히 보셨다가는 큰코다치실겁니다. 직접 마주해보면 그 한 계단이 태산의 절벽만큼이나 두텁다는걸 깨달으실테니까요.

참고로 앞으로 1년간 은리 아가씨가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주지 못하신다면 강제로 가주 후계자 수업을 듣게 만들겠습니다. 은리 아가씨가 원치 않으신다면 천빙검후 여사태님의 수업을 듣지않아도 좋습니다만 1년이라는 시간동안 팔륜성내에서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시는게 좋을겁니다."

"그, 그런거 억지 아닙니까, 악 장로?"

"용린혁 어르신의 직전제자이자 손녀인 당신이 본가의 사정은 아랑곳않고 10년도 넘게 우주전역을 활보한걸 생각하면 그게 억지축에나 끼겠습니까?"

"큭! 아, 알겠습니다. 그 늙은 여우밑에서 1년 동안만 참아보지요. 나중에 500만 VP가 아깝네 어쩌니 하는 소리만 하지마십쇼."

"은리 아가씨의 경지를 끌어올릴 수 만 있다면 1000만 VP짜리 영약도 구입할 용의가 있습니다. 500만 VP정도면 싸게 먹히는거지요."

"그러면 은리 아가씨의 거취에 관해서는 어느정도 마무리가 된것 같군요. 다음 안건으로 용린혁 어르신의 두번째 제자인 강령술사 옥사건님의 거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그전에 옥사건님께 물어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옥사건님. 옥사건님? 어딘가 불편하신 곳이라도?"

내 시야를 장악한 3D 파노라마는 재생과 되감기를 지멋대로 반복했다. 황룡거사 보다 앞서 다비금강 사리카야에게 맞선 여덟 가주들은 합격진을 펼쳐 그녀의 몸을 여덟조각 내는데 성공했지만 상상을 초월한 디파일러 퀸의 재생력은 토막난 신체마저 재생해냈다.

결국 내력이 바닥나 열세에 처한 여덟 가주중에서는 익숙한 얼굴인 용린혁 어르신도 있었다. 가장 용맹하게 검을 휘둘렀기에 가장 먼저 죽음을 당한 용린혁 어르신.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아마 저 순간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야가 나서서 용린혁 어르신에게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의 NPC라는 두번째 삶을 제시했던 거겠지.

합격진의 붕괴로 인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는 가주들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는 피로 범벅이 된 청룡포를 입은 자였다. 그리고 팔륜일황 황룡거사가 등장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등이 구부정한 초로의 노인은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천외천의 고사성어를 직접 몸소 실천해내보이며 사리카야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사리카야는 스텔라 비타 흡성대법까지 사용해가며 분전했지만, 이때는 아직 스텔라 비타 제 1성기 육체초월(Phoenix Mode)를 각성하기 전인 탓인지 일방적으로 밀리는 형국이 이어졌다. 마침내 사리카야의 거센 저항이 사그러들고 황룡거사의 몸을 휘감은 황룡의 형상이 그녀를 끝장내려는 순간 어디선가 9개의 뱀이 나타나 황룡에게 독아를 들이밀었다.

"야 옥사건 진짜 어디 몸이 안좋은거야? 약방에 데려다줄까? 침이랑 뜸을 기가막히게 놓는 사린섭 할아버지라고 있는데."

"시, 시차적응중입니다. 한 5분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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