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23화 (223/599)

0223 / 0316 ----------------------------------------------

vol.7 Oxogan The Rebirth Of Aged Blue Dragon

남에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는듯한 마린운 함장의 조곤조곤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용린선은 청룡선의 인증을 받고 팔륜성의 대기권으로 접어들었다. 같은 팔륜함대 소속이다 보니까 청룡선측에서도 용린선의 식별코드를 알고 함장인 마린운의 얼굴 또한 알고 있었기에 그 인증절차는 다소 형식적인 느낌이였다.

마린운 함장의 이야기로는 다른 소속 함선의 경우 이렇게 까지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상선의 경우 사람을 보내 어떤 화물을 실었는지 직접 확인까지 한다고. 그 밖에 다음 분기 우주경계조인 전함 백호선은 팔륜성에 착륙해 점검 및 경계훈련을 받아야한다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전해듣는 사이 마침내 용린선은 개활지에 안착했다.

미리 예정되었던대로 바닷가 근처에 컨테이너 하우스를 중점으로 만들어진 공동주택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외관상 그렇게 예뻐보이지는 않았지만 거동이 불편한 인어족들을 이매망량의 물결에 태워 컨테이너 안으로 직접 들어가보니 지구에 있는 내 자취방마냥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생필품은 물론 냉온방 시스템까지! 단기간에 이정도의 숙박시설을 준비하다니 용린검가에 무척이나 유능한 행정관이 있지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였다. 만약 충분한 자금이 있어 도시형 전함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해도 수만명에 이르는 인어족들을 수용할만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이건 정말 굉장한데요. 은리 사저가 용린검가에서 인어족들을 수용하겠다고 결심한 시점을 생각하면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에 천여개의 컨테이너 하우스들을 준비했다는건데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건가 싶어요."

"어린세랑의 작품이야. 용린검가의 현 행정관은 대대로 어린세가의 가주가 맡게 되있는데 그녀가 너무나 영특해서 팔륜학관을 졸업하자마자 전 행정관이 행정관직을 떠넘기고 은퇴해버렸지. 지금은 팔륜성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는데 참 팔자좋은 양반이야."

"그 좋은 팔자도 며칠전부터 된통 꼬여버린것 같습니다, 은리 아가씨."

"응? 석이 아저씨 아니에요? 이런데서 뭐하시는거에요? 여긴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그렇게 좋은 낚시 포인트도 아닌걸로 알고 있는데."

"세랑이가 발벗고 나서서 돕지않으면 족보에서 빼버리는것은 물론 용돈까지 끊겠다고 해서 말입니다. 연어의 회귀철을 맞아서 강어귀쯤에 텐트까지 쳐놓고 본격적으로 손맛을 볼려는 찰나에 허겁지겁 짐을 싸서 이곳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는거죠. 세랑이가 한다면 하는 아이인거 은리 아가씨도 잘 아시잖아요?"

"그러면 이 컨테이너 하우스 석이 아저씨가 준비한거였어요?"

"아뇨, 아뇨. 늘그렇듯이 큰그림은 세랑이가 다 그리고 저는 컨테이너 하우스를 들고온 건설업자들한테 사인이나 해준 정도랄까. 원래 이 정도 일은 어린세가에서 똘똘한 애들 몇명 추려서 해도 되는건데 아무래도 건수가 건수다 보니까 어느정도 얼굴이 팔린 제가 나서서 건설업자들한테 신뢰를 줄 필요가 있었던거죠.

뜸금없이 바닷가에 컨테이너 하우스를 1000개씩이나 주문하니까 처음에는 경쟁 건설업체에서 가라로 주문을 넣은줄 알고 거절한곳도 있었거든요."

"아무튼 석이 아저씨 그간 고생많으셨어요. 괜히 저때문에 좋아죽는 낚시도 못하시고."

용린은리 사저로서는 드물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가면서까지 사과를 하는걸 보니 인어족을 용린검가의 품안에 두는것을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같은 가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운셈이라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어린세가의 전 가주이자 전 행정관 어린석은 그런 은리 사저의 진심을 담은 사과에 손사례를 치다가 갑자기 무엇인가를 보고 헐레벌떡 모래사장을 뛰어가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 어린석 전 행정관이 향하는 곳을 쳐다보니 컨테이너 하우스를 실은 기중기 달린 트럭이 해변가의 도로에 시동을 건채로 정차해 있었다.

아무래도 컨테이너 하우스 주문량이 전부 도착한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여러 건설업체와 문어발 계약을 해야만 했을정도로 많은 양이였으니 뒤늦게 도착한 물량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건 없었다. 초면인듯한 건설업자 관계자와 살갑게 인사를 나누며 음료수를 건네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어린석 전 행정관이 단순한 낚시광으로 치부할 순 없을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컨테이너 하우스가 동해용궁의 새 보금자리에 추가되었고 나와 은리 사저는 이솔다 공주를 두고 리무진에 오르게 되었다. 아무래도 스와레 공주의 북해용궁이 동해용궁에 편입되는 바람에 해야할 일이 더 많아진 이솔다 공주를 지금당장 용린검가의 본가 사람들에게 소개시키긴 어려울것 같았다.

"와 이거 완전 최첨단 리무진이네요. 그리고 해안가를 조금만 벗어나니까 완전 마천루 천지고."

"하아? 너 도대체 팔륜성의 풍경에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길래 그런걸로 놀라는거야?"

"흐음 뭐랄까 무림이라고 하니까 윤기가 좌르륵 흐르는 명마가 이끄는 마차에 올라서 곡선이 부드러운 기와집 장원 사이를 투그닥 투그닥하고 지나갈줄 알았죠."

"정말 웃기지도 않아서. 사신성에 있었을때야 그게 당연한 풍경이였지만 VOT 시스템을 각성하고도 몇십년이나 지났어. 공간집약적인 측면에서 봤을때 빌딩을 선호하는게 당연하잖아. 물론 가끔 옛날식 건물을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 그런건 부자들의 악취미라고 놀림받을 뿐이라고. 그리고 마차보다는 전기자동차가, 전기자동차보다는 자기부상열차가 좋다는건 굳이 말할필요도 없는 일이잖아. 여기 올때 전함까지 본 주제에."

"헤에, 자기부상열차까지 있어요? 그건 제 모행성에도 없는건데. 대박!"

"별개다 대박이다. 전이술사가 운전하는 공간이동택시같은걸 보면 완전히 까무러치겠구만."

"아 그건 별로. 전이술식으로 이동하는건 너무 흔하게 봐서."

전이술사를 보는게 흔하다 뿐인가? 전이술식 분야의 마에스트로이자 상아탑의 교수인 체어맨과의 결전에서 그가 이끄는 전함까지 박살낸 이력이 있는데 공간이동택시로 흥분할리가 없었다. 은리 사저는 그런 내 태도에 살짝 부아가 치밀었는지 주먹을 치켜들었다가 심호흡을 하며 품안에 갈무리 했다.

고향행성에 돌아와서 보는눈이 많아진 탓일까 은리 사저의 성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진 느낌이였다. 이렇게 은리 사저가 남들 눈치를 볼때 수위높은 섹드립이나 쳐볼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들었지만 저 한폭의 미인도에 나올법한 수려한 얼굴이 지옥도의 악귀처럼 변할 수 있다는걸 알기에 입에 지퍼를 채울 수 밖에 없었다.

팔륜성의 도심가 주변은 또 어찌 그렇게 도로정리가 잘 돼있는지 걸리는 것이 쭉쭉 앞으로 치고나가는 리무진의 스피드는 무서울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기사가 운전을 하길래 이렇게 기계처럼 정교하면서도 대담하게 운전을 하는가 싶어 운전석쪽으로 고개를 슬며시 내밀어보니 아무도 자리하고 있지않았다.

설마 유, 유령이 운전을 하고 있다건가!?하면 강령술사인 내가 눈치채지 못할리가 없으니 이 리무진이 무인운전차량이라는 소리였다. 아마 주변에서 발맞춰 달리고 있는 전기자동차들도 전부 무인운전차량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자로 잰듯 앞뒤차량이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지구도 10년 후쯤에는 이렇게 되려나?

"은리사저 혹시 신법을 사용해서 도로를 달린다든가 하는건 불법인가요?"

"어, 불법이야. 뭐 신법의 고수들중에는 전기자동차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자들이 있긴 하지만 전기자동차처럼 주행정보를 네크워크상에서 공유할 수 는 없으니까.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람이 임의 운전하는것조차 금지하는 판국인데 달리기 좀 쬐까 잘한다고 도로에서 활보하도록 놔두겠냐?"

"그렇구나. 어쩐지 신법으로 등교하거나 출근하는 사람이 한명쯤은 있을줄 알았는데 전부 점잖게 인도로 걸어다니더라. 말이나와서 그런데 신법으로 유명한 문파는 어디 있어요?"

"그거야 주작문이랑 봉황창가가 알아주지. 거기는 어느정도 상승의 무공을 익히면 허공답보정도는 기본이라고 하니까. 근데 갑자기 그런건 왜 물어?"

"이 아바타는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지만 본체는 익힐 수 있다고 제가 전에 말했죠? 요즘 그 무공익히는 재미에 빠져서 말이죠. 같은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하급무공이라고 한들 조금이라도 괜찮은 놈으로 익혀볼려고요."

"뭐!? 그게 뭔 개떡 같은소리야. 용린검가의 사람이라면 용린검가의 무공을 익혀야지. 아까 말했듯이 허공답보같은게 가능한건 어디까지나 상승의 무공이라고. 외부인들에게 공개된 하급무공이라고 해봤자 다 도찐개찐이란 말이야. 그리고 용린검가의 최상급신법중에서도 부지런히 익히면 검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비천검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것들이 있는데 뭐하러 다른 동네 하급무공을 기웃거려?"

"그러니까 그 최상급신법이란걸 제가 익힐처지가 안되잖아요. 신이 공평한 탓인지 저는 우주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강령술사의 재능을 갖고 있지만 무재는 일반인보다 형편없다고요. 아 맞다! 혹시 용린검가에 지법도 괜찮은게 있나요? 물론 초심자용으로다가."

"아니 지법에 관련된 무공은 단 한자조차 없어. 심법, 보법, 신법같은 무인의 기본소양을 제외하면 전부 검법뿐이야. 다른 사령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걸?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내릴준비나 해. 용린검가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용린루가 코앞이니까."

무인 리무진이 다소 기계적인 음성으로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을만큼 용린루의 외관은 특이했다. 모든 유리창들이 용의 비늘처럼 디자인된 고층빌딩은 그게 그거인듯한 마천루들 속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그 용린루의 입구를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은 사실 무인이라기 보다는 대기업 사원같은 느낌이였다. 다수의 제자들이 똑같은 디자인의 도복을 착용하고 똑같은 초식을 수련하는 그림을 그렸던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리무진에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은리 사저를 따라 용린루에 입장한 나는 출입증같은걸 인증하는 게이트에서 멈춰설 수 밖에 없었지만 경비 아저씨가 사저와 반갑게 안부 인사를 몇마디를 나누더니 빨간불인데도 그냥 통과시켜주었다. 이것이 바로 인맥의 힘인가!라고 하기엔 뭐한게 나도 엄연히 용린혁 가주의 제자였기 때문에 출입증만 없다뿐이지 용린루에 입장할 자격은 충분했다.

은리 사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니 인사를 해오는 제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괜시리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 사원증같은게 나오면 용린혁 가주의 두번째 제자라고 떡하니 써있었으면 좋겠네. 제자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다 보니 어느새 용린루의 최고층에 도달한 나와 은리사저는 비서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입성했다.

"오오 이게 누구야. 이립의 나이에 팔륜오객에 그 이름을 올린 자랑스런 내 조카. 혈린검 용린은리가 아닌가?"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순이 숙부님."

"하하 그래 어서와서 앉아라 은리야. 나야 뭐 유능한 부하들이 있어서 늘 놀고먹고 있지. 그런데 가끔씩 사령가의 가주들과 사신문의 장문인들이 모임을 가질때는 기 센 양반들 사이에서 쭈구리가 되는 통에 숨을 못쉬겠더구나. 빨리 우리 은리가 가주직을 이어받아서 그 콧대높은 양반들을 찍어눌러주면 좋을텐데."

"그거라면 아직 제가 지닌 경험과 지혜가 부족해서 곤란하다고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이고 또 겸손떨기는. 나같은 한량도 가주직을 맡고 있는데 너라고 안될게 있겠느냐? 오히려 더 잘했으면 잘했지 못하진 않을거라고 본다 나는."

"두분께서 담소를 나누는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본격적인 예산안 협의를 하기에 앞서 인어족 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컨테이너 하우스 1000개를 준비하는데 50만 VP라는 예기치 못한 지출이 소요됬다는것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세, 세랑아, 그거라면 내 사비로 어떻게든..."

"지금 사비라고 하셨습니까? 정말이지 그새 또 얼마나 많은 디파일러들을 때려잡으셨으면 50만 VP를 모으셨는지. 그런데 말입니다. 앞으로 인어족들에게 제공할 식량과 컨테이너 하우스의 유지보수비 그리고 용린검가의 사유지인 그 해안가 지역을 인어족들에게 제공하는 바람에 발생한 기회비용까지 전부 사비로 충당하시겠다라는건 아니겠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