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16화 (216/599)

0216 / 0316 ----------------------------------------------

vol.6 Oxogan The Mutual Hatred like Dog and Monkey

"충성! 여기 담요있습니다, 옥사건 준위님."

"아, 예. 고맙습니다."

"무엇인가 필요한게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쇼. 바로 갖다드리겠습니다. 충성!"

오랜만에 내무반의 풍경을 구경하게 된 나는 생각보다 시설이 잘되있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각 병사들의 침소와 관물대가 같은 공간내에 존재하지만 어느정도 이격되어 있어 서로간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는 느낌?

조금만 몸을 뒤틀어도 선임과 몸이 맞닿았던 일자형 마루구조가 아니라 천만다행이였다. 물론 지금의 나는 준위계급으로 최고참 병사조차 내 수발을 드는 짬밥이였지만 시커먼 남정네들과는 옷깃조차 스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다른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괴화정령 레이스나 진토술 뱀의 형상편을 연습할 수 는 없다는 것 정도. 차라리 로그아웃을 한 다음 본체로 용린소심공, 용린연환각 정(丁)초식 초승달가르기, 용린삼재보의 수련을 재개하는 것이 나아보였다.

게다가 간부인 내가 쥐죽은듯이 담요안에 누워있는편이 다른 병사들을 배려하는 일이기도 했으니 더 이상 아바타에 로그인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를 통해 로그아웃을 하려는 순간 이솔다 공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잠시 할말이 있으니 은리 사저의 집무실로 와줄 수 있냐는 메시지였다.

'이런 오밤중에 무슨 볼일인걸까? 안그래도 인어족들을 실버스케일의 선실에 우겨넣느라 바쁠텐데. 뭐 대충 짐작은 간다만."

스와레 공주가 나를 노골적으로 함정으로 내몬 사건. 내가 살아돌아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건은 스와레의 양친의 목숨과 내 목숨을 등가교환한 꼴이 됬을것이고 그 파장은 이루말할 수 없을정도로 커졌을 것이다.

설사 내 생환이 확인됬다고 한들 때마침 디파일러 퀸이 실버스케일 커뮤니티에게 최후통첩을 전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어영부영 넘어갈 사건이 절대 아니였으니 이솔다 공주측도 확실히 매듭을 짖고 싶다는 거겠지.

어쨌든 떳떳한건 내 쪽이였고 뭔가 캥기는건 저쪽이였으니까 부담없이 방문해주면 그만이다. 취침점호를 준비중인 병사들에게 방해가 가지않게 슬거머니 내무반을 빠져나온 나는 예상 외의 인물들을 만나 우뚝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스와레 공주와 그 양친을 호위해서 아이스 바운드까지 안전하게 인도한 주인공들인 푸스카, 무슈, 나이트메어였다. 오르시나의 모습이 보이지않았지만 뭐 어딘가의 물탱크의 안에라도 짱박혀 있는거겠지. 그건 그렇고 왜 무슈가 건방지게 나이트메어의 안장에 타고 있는걸까? 스와레의 양친을 태운건 어디까지나 비상상황이였기 때문이란걸 모르는건가.

"모두 고생했다. 디파일러들의 포위망을 뚫고 스와레 공주와 그 양친을 무사히 아이스 바운드까지 모시는게 쉬운 일은 아니였을텐데 말이지."

"아뇨. 반나절정도 포위망을 뿌리치다가 물의 수호령 오르시나님이 열어준 포탈을 탄 덕분에 그렇게 어려운 임무는 아니였습니다."

"주, 주인님 이걸로 지난번의 무례는 용서해주시는걸로?"

"뭐 내 입으로 말했던거니까.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왜 무슈 네녀석이 나이트메어의 안장에 타고 있는거냐. 그것도 함선내 복도에서. 한번 임무를 성공했다고 해서 너무 기고만장해진거 아니야!?"

"그, 그게 디파일러들의 공격을 받고 허리쪽을 다쳐서."

"정말이냐, 푸스카?"

"예. 스와레 공주님의 양친에게 던져진 야자수를 무슈공이 몸으로 받아내느라 척추가 두동강 나고 말았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슈공이 짐이 된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태에서도 악착같이 체인 커스의 술식을 펼치셔서 대규모의 적을 학살하셨으니까요. 단순히 숫자로 따지자면 가장많은 디파일러들을 죽이셨을겁니다."

"엣헴, 엣헴. 전부 푸스카공이 체인 커스가 걸린 디파일러를 정확하게 비수로 죽여주신 덕분이지요. 제가 뭐 한게 있겠습니까? 헤헷헤헷!"

"그런 일이 있었던가. 좋아. 지금 당장 척추를 바로 세워주지. 이전보다 단단하게 말이야."

나는 아이언 메이든에서 일전에 던클레오를 사냥해서 얻은 전리품중에 하나인 고래의 견갑골을 꺼낸 다음 불랙탈론을 이용해 다듬기 시작했다. 물론 변이에너지를 잔뜩 주입해 찰흙처럼 변형되기 쉬운 상태에서 손을 보았기 때문에 일분도 채 걸리지않아 50cm 정도의 철심이 완성되었다.

그걸 기겁한 표정으로 '지금부터 앉은뱅이로 살겠습니다!'라고 소리치는 무슈의 등허리에 꽂아넣었다. 무식하기 짝이없는 외과수술이였지만 육십번대 변이술식 제네팅 맵핑만 있으면 그 어떤 명의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부러진 척추를 보정할 수 있었다.

간이수술이 끝나자 영혼이 빠져나갓듯한 표정을 짓는 무슈를 위시한 나머지 주민들을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려보낸 나는 다시 은리 사저의 집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리 이쪽이 떳떳한 입장이라고해도 너무 늦은 시간에 공주님들의 숙소로 각인된 장소를 드나드는것도 여론상 좋지 않았다.

마침내 은리 사저의 집무실 앞에 도달한 나는 정면에 있는 다른 방을 힐끔 엿보았다. 본래 내 방이였던 선실에 가족이 없는 처녀 인어족들 10명이 머무르게 됬다는 소식을 들어서일까 괜시리 긴장이 된것일까, 약간 새된 목소리로 이솔다 공주를 부르자 차분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들어오세요, 옥사건 준위."

"안녕하세요, 이솔다 공주님. 이런 오밤중에 무슨 볼일입니까?"

"으음. 원래는 좀 더 빨리 부르려고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인어족들의 방배정이 빡빡해서 이제 막 업무가 끝난참이였습니다. 방해가 됬으려나요?"

"뭐 제가 바른생활어린이도 아니고 딱히 상관은 없습니디만 병사들이 자다가 놀랠까봐 걱정이죠. 불침번을 담당하는 병사가 괜시리 준위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면 곤란하니까요.왠만큼 짬밥이 있는 병사는 그런 실수는 안하겠지만."

"그렇군요. 제가 오늘 옥사건 준위를 부룬 이유는 이미 알고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사과 및 감사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만... 이 다음부터는 스와레 공주가 이어서 할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것이겠죠. 그렇지, 스와레?"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의 목숨과 북해용궁 주민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까 머리가 헤롱헤롱해져서 옥사건 준위를 사지로 내몰고 말았습니다. 무릎을 꿇고 또 한번 사죄드립니다."

스와레 공주가 내가 보는 앞에서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처음에는 잠깐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내가 일어서라고 하기전에는 밤새도록 엎드려 있을 기세였던지라 나는 적당히 대답할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해합니다, 스와레 공주의 사정을.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스와레 공주와 같은 상황에 쳐했다면 같은 선택지를 골랐을겁니다. 물론 모든 것이 디파일러 킹 긴고의 함정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선택지도 있었겠습니다만 그 경우 구조대를 편성한다고 해도 인질이 죽을 가능성이 높고 제대로 구조팀을 꾸릴 시간도 부족했겠지요. 아마 긴고가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타임 리미트같은것을 걸어뒀을테니까.

물론 이 모든것이 디파일러 킹이 준비한 함정에 제발로 걸어들어갈 구조대원이 있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어찌됐든 스와레 공주의 양친을 구할 확률이 가장 높은 쪽은 긴고가 지목했던 저를 함정에 밀어넣는것뿐이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으니까요."

"그, 그러면 저를 용서해주시는건가요?"

"용서요? 아뇨. 스와레 공주 저는 당신의 행동을 머리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 마음으로 용서한다고 한적은 없습니다. 저는 디파일러 킹 긴고의 전력을 알고있으면서 그의 주둔지로 저를 유도한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않을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냘픈 인어공주님을 해코지하겠다는건 아니고 저주인형이라도 만들어서 잘때 베고 자는정도랄까요?

흐으. 그런 무서운 얼굴은 하지 말아주세요. 그것 조차 농담이니까. 제가 아무리 강령술사라지만 저주에 관련된 그것도 인형을 제물로하는 술식에 대해선 아무런 조예가 없으니까요."

"그러면 제, 제가 어떻게해야 용서받을 수 있는거죠?"

"스와레 공주, 왜 그렇게 저한테 용서를 받으려는거죠? 제가 보복을 하겠다고 선언한것도 아닌데 말이죠. 인간이란건 본래 이기적인 존재이고 그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상처입힐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 경우 부모님을 살리고 싶다는 스와레 공주의 이기심이 저를 상처입히고 말았죠. 그러니까 그 죄를 계속해서 안고 살아가십쇼.

시간이라는 약이 그 죄를 씻겨줄때까지. 언제까지 순수함 100%의 동화속 공주처럼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는겁니까?"

나는 일방적으로 스와레 공주를 매도하는것 보다는 적당히 필터링된 쓴소리를 내뱉는것이 그녀와같은 타입에 한해서는 더 효과적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디파일러 폰과 싸워도 질것 같은 이 공주님을 상대로 내가 뺨이라도 때릴것인거 어쩔것인가? 그랬다간 나만 개새끼가 되는 사이즈가 나오기 때문에 곤란하다.

"오, 옥사건 준위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대충은 알았습니다. 제가 구제불능의 응석쟁이 공주님이였다는것도요. 그렇게 간단히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마음 한켠에서는 어바마마나 어마마마처럼 마지막에는 용서해주겠지라고 무심코 생각해버렸어요. 후우우. 죄송합니다, 선물같은걸 건넬 분위기는 아니지만 이걸 받아주시겠어요?

최상품의 진주를 엮어만든 목걸이랍니다. 저는 사과뿐만 아니라 제 목숨과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의 목숨을 구해준 옥사건 준위에게 감사인사를 전하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흐음, 그 진주목걸이라면 제가 스와레 공주를 용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예? 이거 그렇게 귀한 물건이였나요? 어떤 술식도 인챈트되어 있지않은 평범한 장식품입니다만..."

"물건이라건 포장을 어떻게 하기 나름이니까요. 스와레 공주가 그 진주목걸이만을 걸친채 저랑 부비부비를 한다면 마치 지우개로 지운것처럼 디파일러 킹 긴고의 함정에 빠졌던 기억이 사라질것 같습니다만?"

"진주목걸이만을 걸친다는게 무슨뜻이죠?"

"그 말대로 알몸인 상태에서 진주목걸이만을 착용한채 제 밤시중을 들어달라는 말입니다. 순진한 인어공주님에게는 살짝 컬쳐쇼크였으려나?"

나는 다음 타이밍에 이솔다 공주가 태클을 걸어올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떻게 소꿉친구인 스와레에게 그런 불순한 권유를 할 수 있냐며 나를 호통치겠지. 그 경우 나는 지지않고 이솔다 공주와 살벌한 말싸움을 벌이고 지금까지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버릴 생각이였다.

지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인어공주님의 앞이라고 해서 정의의 히어로 행새를 하는건. 인어족 꼬맹이 한놈이 인질로 잡혔다고 해서 사흉신교의 정예파티와 단신으로 승부를 본다거나 빙린여관과 빙린장성을 짓기 위해 언데드 일꾼들을 무일푼으로 일하게 하는건 아크리퍼 옥사건의 가치관과는 정반대의 행동들이였다.

물론 그 당시의 나는 Ex랭크의 영력을 달성한 지금의 자신에 비하면 형편없을정도로 약했기에 통상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의 룰에 따른것 뿐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무상봉사기간이 너무 길었다. 더 이상 호구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터닝포인트가 필요하다는 말씀. 그러나 이솔다 공주는 굳게 다문 입술을 좀처럼 열지않았다.

"이솔다 공주님 뭔가 할말없습니가?"

"할말이요? 글쎄요. 이건 옥사건 준위와 스와레 공주 사이의 문제일뿐입니다. 제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지요."

"하지만 저 방금 스와레 공주의 몸을 요구했는데요? 그것도 완전히 불순한 의도로."

"그렇네요. 정말이지 옥사건 준위 당신은 구제불능의 난봉꾼이네요. 하지만 그것조차 옥사건 준위 개인의 취향일분 제가 관여할 바는 아닌것 같습니다. 후우우, 블랙해커 출신의 브로커와 만난지 몇십분만에 그런 짓을 하는걸 보고 진즉에 눈치챘지만 왜 나는 이런 남자를 좋아..."

"하겠어요!! 옥사건 준위의 밤시중을 들겠어요. 진주목걸이만 건채로... 물론 저라고 해서 밤시중이 자장가를 들려준다거 하는게 아니라는건 알아요. 에, 으음, 그러니까 세, 섹스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지만 누워만 있으면 남자쪽에서 알아서 해준다고 들었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