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10화 (21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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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 Oxogan The Mutual Hatred like Dog and Monkey

"어디를 보고 있는거냐! 사리카야에게 저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의 분신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대도 어딘지 모르게 기뻐보이는 목소리로 긴고가 나를 호통쳤다. 이 녀석 정말로 사리카야를 짝사랑하고 있는건가? 사랑따위는 섹스를 하고 싶어 하는 인간이 쓰는 가면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있어서 긴고의 한결같은 사리카야 홀릭은 딱해보일 정도 였다.

물론 10마리나 되는 괴물곰들과 한우리에 갇힌 내 처지도 딱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저렇게 우악스럽게 사방에서 달려드는 괴물곰들을 상대로 아크토두스폼을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결론 내린 나는 변신을 해제하고 글래셜투스를 꺼내들었다.

급히 영력을 주입해 가장 선두에 선 긴고의 분신을 얼리고, 누시아가 챈트 왕의 저주를 통해 또 한마리의 분신을 달팽이만도 못한 느림보로 만든다. 이매망량의 손아귀로 뒷쪽 대열에 있는 분신의 한쪽발을 잡아당겨 넘어트리고, 기간틱 레이스가 두 손으로 괴물곰의 형상을한 분신을 각각 한마리씩 집어올렸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했지만 아직 5마리의 괴물곰 분신이 남아 있어 내게 짓쳐들고 있었다. 물량공세의 진수라는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거겠지. 진짜 골치아픈건 내가 남은 5마리의 분신을 처치한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발을 묶어둔것 뿐이라는 사실이였다.

"큰소리 치더니 고작 이것뿐이더냐! 사리카야는 지금 90마리의 분신과 싸우고 있다고!"

"그놈의 사리카야, 사리카야 지겹지도 않냐? 애시당초 나는 너처럼 바퀴벌레같은 녀석과 싸울계획이 없었다고."

"벌레처럼 밟혀죽는 순간에도 그런 말이 나오는가 보자."

긴고의 분신 다섯이 내 사지와 목을 하나씩 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과거 대역죄인에게만 행해졌다는 능지처참의 형이 내 몸에 재현되었으니, 아크토두스폼으로 강화 다피일러 킹의 근력을 생각하면 단숨에 조립인형처럼 사지와 목이 분리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점이 늘어나 찢겨나가도 끝내 뼈는 부서지지않아 내 몸의 형태를 유지시켜주고 있었다. 뼈의 재질인 언옥타늄, 그 도달할 수 없는 넘버링의 괴이금속이 긴고의 분신 하나당 몇십톤에 달하는 장력을 버텨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건 아니였지만 평소 내가 워낙 목숨보험을 많이 들어둔 탓에 위기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만 숨겨왔던 비장의 카드를 꺼낼까 말까 여러가지 변수를 저울질하며 고민하느라 두통이 느껴질뿐이였다.

긴고는 일전에 내게 관통상을 입혔다가 녹색피의 슈퍼 젤라틴화때문에 호된 꼴을 당해서인지 어떻게든 출혈을 최소화 시키면서 나를 끝장내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사지가 뽑히지 않자 이내 능지처참형을 포기하고 레슬링 기술의 일종인 져먼스플렉스로 내 머리를 미친듯이 땅에 쳐박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다! 이 징글징글한 새끼야!"

"내가 긴고 네녀석을 기간틱 레이스와 함께 폭사시켰을때도 그런 기분이였지. 이제야 공감이 가나? 마땅한 대인저격기도 없이 내 기술이나 훔쳐쓰는 네녀석이 나를 끝장낼 수 있을리가 없지. 그러니까 사리카야의 말대로 이딴 새장이나 만들 시간에 제대로된 기술을 연마하지 그랬어? 분신이 100마리나 되면 뭐하나 제대로된 기술하나 쓰지..."

"시끄으으러어어엇!!!"

긴고가 자신의 분신들과 함께 내 사지를 다시 잡아들더니 마치 공성추로 성문을 무너트리듯 내 머리를 나무줄기 새장에 충돌시켰다. 아무리 언옥타늄으로 이루어진 두개골이 단단해도 그때 매질을 타고 뇌에 전달되는 어마어마한 충돌력을 완화시킬 수 는 없었기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뒤를 이어 열댓번이나 새장에 머리를 부딪히자 전신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뭐 어차피 긴고의 분신들에게 사지를 속박당해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였지만, 도데카 마력기관과 연결된 정신망까지 일시적으로 블랙아웃된것 같아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이래서야 비장의 카드를 꺼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역시 아끼면 똥된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물론 비장의 카드를 꺼내다 내가 도리어 피똥을 쌀 수 있어서 계속 망설였던거지만. 뭐 지금부터는 긴급복구솔루션 '에녹'의 힘을 믿어볼 수 밖에 없나?

분명 의도한것은 아니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 버금가는 성기사와 성녀의 재회에 일조한 긴고는 내가 의식을 잃자 기쁨에 겨워 포효했다. 이 자식아 이게 끝이 아니야. 에녹이 내 머리속의 조각모음이 끝날때까지만 버텨주면 그땐... 이마에 순백색의 영혼석이 튀어나오는걸 확인한 나는 멀어져가는 정신줄을 구태여 붙잡지 않았다.

*    *    *    *

정신이 들었을때 나는 에녹이 산양머리를 한 악마와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3인칭 시점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에녹이 성검 아발란체에 같은 성기사단 출신의 피를 묻힐 수 없다며 무혈투쟁을 하는 그 암걸리는 장면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군.

겉으로 보기에는 10m짜리 대검을 든 산양머리의 악마가 1m도 채 안되는 장검을 쥔 에녹을 압살할것처럼 보였지만, 미루어 짐작건대 저 악마는 에녹에게 마왕격살자라는 칭호를 안겨준 마왕 바포메트가 틀림없었으니 승자는 이미 정해진 셈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거센 풍압을 일으키며 휘둘러진 바포메트의 대검을 에녹은 어렵지 않게 막아내고 반격까지 시도했다. 에녹이 소위 사량발천근이라 불리우는 수법을 통해 대검의 무게중심을 콕콕찌르자 산만한 덩치의 바포메트가 쩔쩔매며 뒷걸음질 친다.

그 와중에 바포메트의 관절부위르 쏘아진 성검 아발란체가 마참내 바포메트를 무릎꿇게 만들었다. 주위에 한가득한 성기사들의 시체를 생각하면 어이없을정도로 쉽게 승부가 나고 말았다. 성검 아발란체의 존재 자체가 악마에게 치명적인 탓도 있었지만 마왕 바포메트가 인외마경의 존재임을 감안해도 둘사이의 검술 실력차가 넘사벽이였기 때문이였다.

"지옥에 돌아가서 죽은 성기사들을 떠올리며 회개하라, 마왕 바포메트여."

"킄킄킄. 에녹 네녀석은 뇌가 순수한거냐 아니면 어렸을때 머리를 다치기라도 한거냐. 마왕인 이 몸이 회개같은걸 할리가 없잖아. 정말 아쉽군. 마신 루시페르님이 이 땅에 현신했을때 에녹 네녀석의 얼빠진 표정을 보고싶었거늘. 뭐 얼마안가서 세계를 구하겠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겁도없이 루시페르님에게 달려들었을테지만.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완벽한 패배다. 죽기전에 멋진 검술을 보여준 대가로 좋은걸 알려주마. 교황을 조심해라. 네 소중한 성녀님을 구하고 싶다면."

"쓸데없는 소리를!"

에녹의 검격이 번쩍이며 바포메트의 산양머리가 툭하고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며 먼저 죽은 성기사들의 피와 함께 땅을 적셨고 내가 엿볼 수 있었던것도 그 장면까지였다.

시야가 반전되면서 에녹이 성검 아발렌체가 아닌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 모델 용린검 TM2를 들고 분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에녹의 검술이 어느 무림고수 못지않게 지고하다지만 사제의 보조도 없이 아크토두스 10마리 싸우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성검 아발란체는 커녕 변변찮은 검도 없어 보급형 용린검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가까스로 싸움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였다. 그러나 에녹은 그런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솥뚜껑같은 곰발을 스치듯 피해내며 일보후퇴조차 없이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뒤늦게 에녹의 뒤에서 누시아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에녹이 분전하는 이유를 깨닫곤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난 또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 에녹이 불굴의 투지를 선보이는 줄 알았더니 다 좋아하는 성녀님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던건가. 하여튼 에녹녀석도 그렇고 긴고도 그렇고 좋아하는 여성앞에서 바보같을정도로 용맹스러웠다.

"누시아님 어서 몸을 피하십쇼. 이 괴물곰들 한마리 한마리가 마왕 바포메트 못지않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마세요, 에녹경. 세라푸스님의 가호가 아직도 제게 함께하고 있으니. 그것보다 주군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가급적이면 회피기동 위주로 시간을 끌어주세요."

"그,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크읔!"

유체화 상태인 내가 기간틱 레이스와 협심해서 방해공작을 펼쳤지만 긴고의 눈에는 나밖에 들어오지 않는지 거듭해서 에녹을 압박해 들어갔고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분신중 한명의 앞발에 의해 용린검이 튕겨져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지고한 검술도 열손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본래는 검끝으로 무게중심을 절묘하게 찔러 사량발천근의 묘리를 발휘해야했지만 두서없어 뻗어진 앞발이 검면을 때려버린것이다. 내 몸에 빙의한 에녹으로부터 당황스럽다는 감정이 흘러들어 온다.

에녹에게 인벤토리를 여는법을 가르쳐주어 여의창이라도 쥐어주려 하는 그때 누시아가 튕겨져 나간 용린검을 집어들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감상을 표하는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였지만 마치 오페라의 한장면을 보는 것처럼 기승전결이 격정적인 챈트였다. 눈에 불을켠 긴고조차 일순간 멈춰서 귀를 기울였으니 말 다했지.

챈트 호수의 여신(Maiden of the Lake)

제 3장 암령의 손길(Touch of Dark Spirit) 스타카토

"에녹경 기억하고 계십니까? 당신이 제 명을 받고 성검 아발란체로 저를 찔렀던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후회가 막심합니다. 차라리 트랙슐의 말대로 누시아님을 데리고 야반도주라도 할걸 하고 말이지요."

"아뇨. 에녹경은 아주 잘해주었습니다. 설사 그때 저희가 제 1성기사단과 이교도심문관을 섬멸하고 살아남았다한들 마신 루시페르가 현신하는걸 막을 수 는 없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이렇게나마 살아남아서 저희가 마신에게조차 죽음을 선고할 수 있는 대사신을 주군으로 모시게 되었으니 서로가 본분을 다하다보면 마주보고 차라도 마실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요.

일단 이걸 받으세요. 그때 제 피로 물든 성검 아발란체에 깃든 성령이 빠져나와 제게 흡수되었죠. 에녹 당신의 신념이 맞았어요. 성검 아발란체는 같은 성기사단의 피를 본 순간 그 배덕함을 이기지 못하고 평범한 강철검으로 변해버렸을겁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다시 부여하면 성검 아발란체를 부활시키는것은 간단한 일입니다만 제가 독배에 빠진순간 아발란체의 성령도 그 속성이 역전되었던지라...

그래도 여전히 적을 벌하기에는 모자람이 없겠죠. 아니 이쪽이 오히려 더 적합할지도. 성검 아발란체가 아닌 마검 아발란체입니다."

"이, 이건..."

"이녀석들이 싸우다말고 갑자기 신파극을 찍고 지랄이야! 이젠 좀 뒈져버렷!!"

싹둑. 아크토두스의 솥뚜껑처럼 두터운 앞발이 마치 가위에 썰린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그 비현실적인 관경을 이끈건 암운을 뿌리는 사악한 마검 아발란체의 검날이였다. 분명 용린검에 한가지 인챈트가 걸렸을뿐인데 보급형 장검이 전설의 명검으로 재탄생하다니 이거야말로 성녀가 일으킨 기적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

그러나 단순히 검날이 날카로울뿐이였다면 이다지도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검 아발란체에 베어진 분신의 상처는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재생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단면이 썩어들어가 상처가 깊어지고 있었으니 디파일러 킹의 재생력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괴사였다.

긴고는 아랑곳않고 자신의 분신들과 함께 에녹을 덮쳤지만 마검 하나가 전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기세좋게 에녹의 사방위를 포위해 들어갔지만 사지가 썰려나가는 능지처참형을 당하는건 긴고와 그의 분신쪽이였다.

템플 스워드맨쉽 BB(Black Belt). 제 2 절 윈드밀 슬래쉬

숫적 우위의 유리함은 온데간데 없이 일방적으로 늑대에게 약탈당하는 양떼가된 긴고와 그의 분신들을 보고 있자나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한결 여유가 생겨 새장 밖을 살펴보니 90마리의 분신도 얼추 정리되가는것 같고 이걸로 낙승이라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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