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08화 (208/599)

0208 / 0316 ----------------------------------------------

vol.6 Oxogan The Mutual Hatred like Dog and Monkey

누시아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든 나는 낯선 꿈을 꾸게 되었다. 낯선 꿈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내가 과거에 스쳐지나가면서라도 망막에 인식한적 없는 기억의 편린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으로, 천사와 악마의 대결이라는 구도 자체는 흔한것이였지만 그 생김새가 듣도 보도 못한것이였다.

여섯개의 뿔과 여섯개의 꼬리 그리고 여섯개의 날개를 갖고 있는 악마는 그 흉폭함이 대지를 벌벌 떨게 만들었고 귀에 2개, 발에 2개, 등에 4개의 날개가 달린 천사의 숭고함은 하늘을 찌를듯 했다. 인외마경의 존재끼리의 싸움인 만큼 그 격렬함은 바다를 가르고 태산을 무너트릴 정도였는데 권선징악의 프레임을 혐오하는 나는 내심 악마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응원이 통했는지 악마가 자신의 꼬리를 이용해 천사의 피부를 교회의 강철십자가에 꿰매는데 성공했다. 호오 저 다음부터는 꼼작도 못하는 천사를 악마가 마음껏 희롱하다가 보지를 쑤컹쑤컹하는거겠지? 내 꿈이라면 응당 그런 전개로 이어져야 했겠지만 악마는 천사를 건드는 대신 3인칭 시점으로 싸움을 관찰하고 있던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세라푸스 다음은 네놈이다.'

악마는 공포라는 원초적인 감정의 화신이라도 되는것 마냥 눈빛, 숨결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에 위압감을 담아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주저않아 벌벌 떨었겠지만 내 머리 속의 삐딱선 뇌세포가 공포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앞뒤말 다짜르고 뭐가 다음은 내 차례라는거야? 너 어디 아프니? 혹시 사춘기니?'

'어째서 타천사의 염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것이지? 어째서 지고한 빛을 나락의 어둠으로 승화시킨 배덕의 악마 루시페르를 목전에 두고 한치의 공포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빛의 의지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라는 교황조차 내 속삭임 한번에 성녀를 제물로 바쳤음이야.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왜냐고? 그게 그렇게 궁금해? 응응? 가르쳐줄까요~ 말까요~ 척척박사님 가르쳐주세요. 딩동댕동댕!'

'네녀석이 이 몸의 염상이 아닌 본체를 보고도 그런 말을 지껄일 수 있을지가 궁금하군.'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형상이 네녀석의 본체와 다르지 않다면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내가 시커먼 남자새끼의 속삭임따위를 들어쳐먹을리가 없잖아! 34-24-35 사이즈의 서큐버스 누님이 속삭여도 모자랄판에 너처럼 더럽게 못생긴 중2병 환자의 헛소리를 들어줄것 같냐?'

'......다음에 만나면 산채로 씹어삼켜주마.'

'나는 날건 별로 안좋아해서 일단 네놈의 여섯 뿔을 뽑아 녹용을 달아마시듯 한약을 해먹고 네놈의 여섯 날개는 닭날개처럼 튀겨서 씹어삼킨뒤, 마지막으로 여섯 꼬리로는 꼬리곰탕을 우려내서 입가심을 할려고.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만큼은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문을 올려야겠군.

퍽킹 지져스 크라이스트 당신이 이 땅에 버젓이 악마들이 걸어다니게 방치한 덕분에 오늘도 내가 먹잇감을 찾아나설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악에 바친 내 마지막 외침과 함께 루시페르란 악마가 하얀입자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천사와 악마의 싸움터였던 황폐한 교회도 마찬가지로 증발해버렸고 나의 꿈도 거기까지였다. 천근만근인 눈꺼플을 힙겹게 들어올리고 있자니 얼굴에 툭툭 빗방울이 떨어진다.

헥타베로스의 입안으로 비가 샐리는 없고 설마하니 이 녀석이 침을 흘리는건가 싶어 허겁지겁 일어나 보니 그 빗방울의 정체는 누시아의 눈물이였다. 천생 낙관주의인줄 알았던 누시아가 너무나 서글픈 표정으로 닭똥같은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고 있었다.

"누시아 네녀석이였냐? 그 괴상한 꿈을 꾸게 만든 장본인이?"

"소, 송구스럽습니다. VOT 온라인에서는 미동도 하지않던 타천사의 염상이 눈깜빡할사이에 주군에게 전염되었던지라 도저히 손쓸 방도가 없었습니다."

"어찌된 사정인지 빨리 토해내봐. 귓싸대기를 쳐 날려버리기전에."

"이, 이건 제가 VOT 온라인의 NPC로 고용되기 이전에 살고있었던 모행성 천익성에서 부터 시작된 악연의 실타래입니다만..."

누시아가 천익성의 창세시절부터 이어지는 대서사시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창세역사가 으레 그렇듯 너무 장황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뿐인지라 나는 중요부분만 귀담아 듣고 나머지는 자체스킵해 버렸다.

"그러니까 네가 모시던 신인 세라푸스라는 녀석은 여신칼날단 소속이였고 루시페르 또한 여신칼난단 소속이였으나 야미도엔이 꼬셔서 반신타락자로 돌아섰단 말이지? 그렇게 둘이 쌈박질이 났는데 세라푸스쪽이 쳐발려서 천익성은 퍼엉하고 멸망해버렸다는 이야기 아니야.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를 뭘 그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냐."

"멸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지 멸망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세라푸스님이 마지막 힘을 짜내서 루시페르를 철십자 교회에 봉인했기 때문에 그가 직접적으로 천익성을 위협할 수 는 없었을테니까요. 물론 교황을 포함해서 적지않은 사람들이 타천사의 염상에 전염되었지만 그것만으로 천익성이 멸망했다고 단정 지을 수 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네가 전남친 편을 들겠다는거냐?"

"아, 아뇨. 당치않습니다. 주군이 저를 밴쉬라는 존재로 탈바꿈시켜 주지않았다면 저는 진즉에 타천사의 염상에 집어삼켜져서 그 존재의의를 잃어버렸을겁니다. 미혹을 털쳐내게 해주신 그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글쎄. 내가 그 루시페르라는 녀석한테 쳐발리면 또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날거잖아."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주군이 루시페르같은 변절자따위에게 질리가 없지 않습니까?"

"크크크크킄킄. 정답이다. 대사신이 악마따위를 두려워할리가 없지. 솔직히 말해서 이전까지 나는 누시아 너의 신앙심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어느정도 의혹이 풀리는군. 그걸 기념해서 세례의식을 하고 싶다만?"

"뜻대로 하십쇼, 나의 주군이자 신이시여."

"그러면 당장 내 좆을 빨아. 전에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했었지. 잘됐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누시아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으나 이내 의연한 몸짓으로 바지섶을 내리고 내 자지를 빨기 시작했다. 달팽이처럼 두터운 혀가 유연한 몸짓과 쫀득한 감촉으로 내 분신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누시아와 관련된 의혹을 어느정도 푼것이지 완벽하게 푼것이 아니였다.

나는 여신칼날단에서 반신타락자로 전향한 루시페르를 변절자로 매도했던 누시아가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세라푸스를 버릴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고 그 답은 사령안 기본형 트루스피커가 들려주었다. 자세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누시아의 마음을 꿰뚫어 볼때마다 타천사의 염상이 일종의 벽 역할을 해온거겠지.

누시아는 내 자지를 맛깔나게 빨면서 '세라푸스님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정도의 굴욕은 감수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 루시페르가 죽지않고 봉인당한것처럼 세라푸스 또한 완전하게 죽음을 맞이한것은 아니리라.

이런 상황에서 내가 취할 태도는 하나뿐이였다. 나라면 세라푸스란 천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저당잡아 지금까지 그랬던것처럼 누시아를 부려먹는 것이다. 악의에는 더 큰 악의로 대응하는 것이 나의 철칙. 세라푸슨지 장티푸스균인지가 같은 여신칼날단 선배라고 한들 내 알바가 아니였다.

"크윽 싸, 싼다! 입말고 얼굴로 받아."

"예."

"어이 인간 강령술사 쿰바 숲이 코앞이다. 퍼뜩 일어나서 싸울 준비해.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라 긴고도 이미 눈치챘을거다."

생각보다 누시아의 혀 테크닉이 절묘해서 나는 금새 사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무슨 성녀가 이렇게 펠라치오를 잘해? 표폿, 퓨퓨퓻! 누시아의 새하얀 얼굴에 찐득찐득한 유백색의 액체가 흩뿌려진 순간 때마침 밖에서 쿠자르가 목표위치에 도달했음을 전해왔다. 좋았어, 이제 개운한 상태로 아쿠툼바를 공략할 수 있겠군.

*    *    *    *

"어떠냐, 인간 강령술사. 해볼만 할것 같나?"

"흐음 헥타베로스도 제법 덩치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저 녀석한테는 안되겠구만."

"디파일러 킹의 의지가 반영된거지. 긴고 녀석 왕치고는 겁쟁이거든. 그러니까 저렇게 수비에 최적화된 형태의 그랜드 룩이 탄생한거지."

"그렇다면 사리카야한테 아크비숍이 탄생하지 않은건 혹시..."

"어이 그 말 사리카야님 앞에서는 절대 하지마라. 긴고를 처단하기도 전에 네녀석이 초상을 치뤄야할 수 도 있으니까."

"쿠자르 내 이름은 왜 불러?"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리카야님."

"내가 몸풀고 있을동안 저 나무원숭이를 치워두는게 좋을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나설테니까. 스고우는 전쟁을 얕보지 말라니 어쩌니 했지만 장난감 병정들끼리 싸우는걸 전쟁이라고 하진 않잖아?"

"최, 최대한 사리카야님의 행사에 지장이 가는 일이 없도록 스케쥴을 맞추겠습니다. 어이 인간 강령술사 빨리 시작하라고."

디파일러 그랜드 룩 헥타베로스가 15층 아파트라면 아투쿰바는 30층 빌딩 수준이였다. 당연히 쿰바 숲을 지키고 있는 목조요새라던가 디파일러 병력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거야 찾을 수고를 덜어서 좋긴한데 적진 한가운데에 떡하니 있는 저녀석을 무슨 수로 요격한다?

뭐 고민할것도 없이 나 또한 적진 한가운데로 진입하면 그만이다. 무척이나 단순 무식하고 위험한 발상이였지만 사리카야의 말대로 나머지 잡졸들은 장난감 병정에 불과할뿐. 그런 장난감 병정이 무서워서 그 사이에 있는 진짜 대포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더 큰 피해가 속출할 것이다.

나는 누시아와 함께 이매망량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하늘로 치솟았다. 그리고 마치 공수부대처럼 쿰바숲 한가운데에 있는 아크툼바에게 낙하했으니 외곽을 지키고 있던 디파일러 병력들이 호들갑을 떨며 목조성벽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 목조성벽은 아투쿰바의 비호를 받지 못하면 종이성벽이나 다름없었으니 아크툼바를 지키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일단 누시아로 하여금 비틀린 성역을 펼치라고 지시한뒤 한단계 발전된 형태의 기간틱 레이스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챈트 호수의 여신(Maiden of the Lake) 제 1장 비틀린 성역(Twisted Sanctuary)

이매망량(魑魅魍魎) 제 3형 괴화정령(怪火精靈) 기간틱 레이스(Gigantic Wraith)

새로운 기간틱 레이스는 기존에 부족했던 기동성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제거한 존재였다. 마치 거치형 총기처럼 휴대성을 포기하고 위력을 강화시켰던 것이다. 사실 적진 한복판에 소환된 마당에 기동성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저 개떼처럼 모여드는 눈앞의 적을 박살내면 그만인 것을. 그러한 발상에서 특화된 기간틱 레이스의 주먹은 유감없이 그 위력을 드러냈다. 뼈에 해당하는 이매망량은 더욱 촘촘하고 정교해졌으며 살에 해당하는 음에너지는 쇠뭉치마냥 밀도를 높여 아투쿰바를 손상시키는데 성공했던것이다.

아쉬운점이 있다면 아투쿰바가 무생물에 가까워서 생명력을 쇠하게 만드는 음에너지의 특성이 빛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였지만 기존의 느릿느릿한 손바닥 내려치기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였다. 멋모르고 달려드는 디파일러 폰이나 나이트는 누시아의 뒤틀린 성역앞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나는 예의 덩치큰 킹콩들만 요리하면 되는 상황이였다.

시험삼아 진토술 뱀의 형상을 사용해 여의창을 뱀으로 변이시키니 마치 살아있는 밧줄처럼 디파일러 룩을 속박해 제발로 넘어지게 만들었다. 투자한 시간에 비하면 기간틱 레이스보다 못한 전투력이였지만 기간틱 레이스 한 마리에 내 이매망량 반과 마력 반이 소진됐다는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VP가 쭉쭉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옛날에 누시아 너랑 몹몰이를 하면서 앵벌하던게 생각나네."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군. 사냥터 전체의 몬스터가 씨가말라서 다른 유저들과 다툼이 생기지 않았던가요?"

"여기서는 그런 귀찮은 일은 없어서 좋구만. 같은 디파일러들끼리 죽여도 콩한쪽 안나오니까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