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05화 (20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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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 Oxogan The Mutual Hatred like Dog and Monkey

음에너지의 파동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나 자신보다는 누시아를 걱정했다. 물론 그녀도 독배로 재탄생한 밴쉬라는 존재인만큼 음에너지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겠지만 문제는 기간틱 레이스가 붕괴하면서 물리적 데미지가 섞은 후폭풍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였다.

그것은 이매망량들이 진토로 환원되기전의 마자막 발악같은것으로 아크토두스폼 상태인 내게는 산들바람과 같겠지만 누시아에게는 다소 거칠지도 몰랐다. 륭 사부와 달리 누시아의 신체능력은 일반인과 다름 없었으니까. 물론 그녀에게는 신의가호라는 전천후 무적기가 있었으니 괜한걱정을 하는걸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기간틱 레이스의 자폭으로 인한 여진이 가시길 기다리고 있는데 좀처럼 그 어떤 충격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미심쩍은 기분에 눈을 뜨고 수면위로 헤엄쳐 올라가 살펴보니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긴고의 시체가 한둘이 아니였다.

내 사지를 붙들고 있던 긴고의 분신은 단 세명뿐이였는데 어림잡아 세어봐도 수십은 훌쩍넘는 시체들이 둥둥 떠다닌다. 등줄기를 타고흐르는 한기에 정신이 번쩍든 나는 재빨리 긴고가 입힌 명치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갈고리 손톱이 달린 아크토두스의 두터운 손이 슈퍼 젤라틴화된 피찌꺼기와 일체화되어 남아 있었다.

"분신으로 고기방패를 세운다음 자신의 팔을 짤라서 도망간건가?"

"누, 누가 도망갔다는거냐. 나는 일만 디파일러군 위에 군림하는 지고한 왕, 마애혈불 긴고님이다. 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이다!"

다소 힘겨워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온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분신들의 시체를 뗏목삼아 긴고가 수면위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였다. 입으로는 패기있게 지껄였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긴고의 상태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으로 가득찼던 붉은 눈동자는 죽은 동태처럼 풀이죽었고 진짜 황금처럼 번쩍였던 금발은 윤기가 바래 푸석푸석해 보였다. 즉 기간틱 레이스의 자폭으로 인해 이매망량 천인대중 반을 잃고 지닌 마력중 반도 소진해버린 나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만큼 약해보였다는 소리였다.

다만 아크토두스폼으로 수중전을 펼치는건 그닥 바람직한 일이 아니였기에 나는 괴력난신 모드를 해제했다. 사방천지가 바다였으니 글래셜투스를 사용하기에 딱좋은 환경이였다. 긴고에게 시간을 줄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재빨리 소울웨폰에 꾸역꾸역 영력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또 한번 내 몸을 축으로 반달로 회전하자 시퍼런 냉기가 긴고에게 퍼부어졌다. 그러나 바다위에서 얼음조각이 된건 긴고의 본체가 아니라 분신들이였다. 그 대폭발에서 살아남은 녀석들이 있었던 모양이였다. 그렇게 분신들로 시간을 번 긴고는 기분나쁜 포효를 토해내며 내 신경을 박박 긁기 시작했다.

디파일러 킹 더 스텔라 비타 흡성대법(Absorb Mode)

나야 신경이 거슬리는 정도였지만 디파일러 킹 긴고 주변의 모든 산천초목들에게는 재앙과 다름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다가 죽어가고, 야자수가 죽어가고, 땅이 죽어가고 있었다. 단순히 환경오염의 수준이 아니라 마치 생명체가 살지 않는 행성의 땅처럼 변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덴클레오의 비늘에 방부제처리를 하기 위해 들렸던 죽음의 호수나 거무튀튀했던 북해용궁의 근해 모두 저런 방식으로 탄생했다는것을 깨닫자 나는 소름이 돋았다. 무엇보다 긴고가 다시 처음의 풋풋했던 금발 홍안의 미남자로 회귀하는 과정을 직접 목도하니 디파일러 킹이 얼마나 위험한 생명체인지를 새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이럴때가 아니지. 나는 허겁지겁 근처에 떠다니는 긴고의 분신을 집어들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상처를 수복해두지 않으면 만전의 상태로 복구된 긴고와의 2차전을 장담할 수 가 없었다. 명치에 박힌 여의창의 작살을 곰발에 결합된채로 인벤토리에 쑤셔넣자마자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그래도 소진된 마력과 이매망량이 돌아온건 아니였기에 힘겨운 전투를 예상하고 있는 내 앞으로 갑자기 동산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동산이 아니라 수십개의 개머리를 지닌 디파일러 그랜드 룩 헥타베로스였다. 상위계열의 디파일러와 조우한것은 그때가 처음이였기에 어둠속에서도 그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봐 인간 강령술사 살고싶다면 어서 타라!"

"네 이놈 쿠자르! 감히 로열나이트따위가 왕의 먹잇감을 채갈려는것이냐?"

"당신이 나의 왕은 아니잖소, 긴고. 당신이 지고한 존재인것은 맞지만 내 하늘에 뜬 태양은 단 하나 다비금강 사리카야님뿐이요. 그리고 지금 그 사리카야님이 저 인간 강령술사의 신병을 원하고 있소. 그러니까 나는 내 할일 하고 있는것 뿐이요."

"으으으윽... 이놈이고 저놈이고 나를 무시하지 못해서 안달났구나. 오냐 진정한 왕의 힘을 선보여서 내 귄위를 되찾으리라!"

군용십팔기 제 3초식 초토전술(焦土戰術) 종속마력기관 일당백 발(拔)

지금까지 긴고의 분신이 어떤 정해진 틀에따라 진형을 갖추었었다면 이번에 나타난 분신들은 그야말로 동네양아치 패싸움처럼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강행했다. 다른점이 있다면 그 분신 하나하나의 전력이 동네양아치가 아닌 디파일러 킹과 동등하다는 것이였다.

마력과 이매망량이 반토막난 상태에서 그 패거리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헥타베로스의 주둥아리로 뛰어들었다. 아직 다비금강 사리카야라는 자를 아군으로 인정한건 아니였지만 모로가나 도로가나 괴물같은 디파일러 우두머리가 기다리고 있다면 차라리 디파일러 퀸과 싸우다 죽겠다는게 내가 내린 결론이였다.

아직 비장의 한수가 남아 있는 나였으니까 곱게 죽어주진 않겠지만. 물론 디파일러 퀸 사리카야가 내게 우호적인 상대라면 구태여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는 없었다. 스와레 공주와 그녀의 양친 모두 호위를 바리바리 싸메 아이스 바운드까지 보낸 상황에서 내게 디파일러 퀸을 토벌할 의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작전상 후퇴라는건가요, 주군?"

"누, 누시아 너는 또 어디있다가 이제 나타난거야?"

"주군의 그곳처럼 크고 아름다운 피조물이 갑자기 부풀어오르면서 뭔가를 분출하려고 하기에 잠깐 대피해있었습니다."

"누가들으면 오해할만한 말은 자제해줄래?"

"도망치게 둘성 싶으냐! 감히 짐을 우롱한 대가를 치루게 될것이다!!!"

헥타베로스의 주둥아리 속으로 골인하면 모든것이 끝일줄 알았지만 그건 오산이였다. 굳게 다문 헥타베로스의 입을 긴고의 분신 서너마리가 달라붙어 활짝 열어재꼈던것이다. 저 바퀴벌레같은 자식을 또 상대해야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피곤해진 나는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 도 없었기에 글래셜투스를 꺼내들어 언제든지 냉기를 쏘아낼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내 앞을 막아선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쿠자르덕분에 나는 데자뷰에 가까운 전투를 펼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디파일러 킹과 맞서야하더니 이거참 수지 안 맞는 장사로군."

"그걸 알고있다면 비켜라, 쿠자르!"

"거참 긴고 당신은 댁의 부하가 다른 디파일러 킹이 윽박지른다고 주어진 명령을 포기하면 그걸 용납할 수 있겠소? 아까부터 말이 안통하니 이빨로 승부를 봅시다."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목줄 물어뜯기(Fatal Bite) 종속마력기관 발동

일전에 한번 견식해본적이 있는 쿠자르의 종속마력기관이 발동되었다. 디파일러 그랜드룩 헥타베로스의 입천장을 지탱하고 있던 분신들의 손모가지가 마치 예리한 칼날에 베인것처럼 잘려나간다.

그틈을 노려 긴고의 분신들을 토해낸 헥타베로스가 잽싸게 해저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덩치가 산만한 다두견도 디파일러 킹 긴고와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알고있는 모양이였다.

지저를 엘리베이터처럼 고속이동해 나가는 헥타베로스 덕분에 그제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게된 나는 혓바닥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보통 상대방의 질긴 생명력때문에 지쳐쓰러지는건 내가 아니라 나의 적들이였기 때문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피곤하면 한숨 자두지 그래. 이제와서 기습따위는 하지않으니까."

"그러면 사양않고 잠을 청하도록 하지. 누시아 무릎 베게 좀 해줄래."

"흐응 무릎 베게라고 하니까 옛날 생각이 나네요. 자라는 잠은 안주무시고 자꾸 제 허벅지를 더듬으셔서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런 이야기를 꼭 지금 여기서 해야겠냐? 진짜 졸려서 그러니까 도착하면 깨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펴다니 속편한 녀석이로군. 내 앞에서는 무슨 지랄을 해도 상관없지만 사리카야님을 뵙게 되면 최소한 긴장하는 척이라도 해라. 긴고따위와는 격이 다르신 분이니까."

"예이예이. 어련하실가요."

누시아의 허벅지는 눈처럼 새하얘서 나는 마치 소복이 쌓인 눈위에 누운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지금 이 장소는 그랜드 룩 헥타베로스의 입안이고 옆에는 로열나이트 쿠자르까지 있었지만 나는 눈을 감는데 조금도 주저하지않았다. 디파일러 킹과의 혈투를 벌인 뒤라 그런지 그 밑에 계급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달까.

*    *    *    *

"그러니까 이 녀석이 긴고가 별의 생명력을 흡수해야할만큼 위험한 상황까지 몰아붙였다는 말이지?"

"네, 틀림없습니다. 디파일러 킹 더 스텔라 비타 흡성대법이 발동되는걸 제가 직접 목격했으니까요."

"브라보! 쿠자르 네가 제대로 대어를 낚아올렸구나. 이걸로 내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어."

"뿐만아니라 북해용궁에 주둔중이였던 연대급 디파일러 병력도 괴멸했고 로열나이트 낑캉과 아크비숍 스쿠하라도 죽음을 맞이한듯 합니다."

"뭐라고!? 푸하하하하하하하!!! 하여튼 그 병신새끼는 병력소모를 줄일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인 분신술을 갖고 있으면서 그걸 제대로 활용하질 못하는군. 돼지목에 진주목걸이가 따로없어. 뭐 어찌됐든 그것도 저쪽의 인간 강령술사가 해낸 일이란 말이지? 인간 강령술사 이름은?"

"옥사건이다. 네가 옛날부터 나를 스토킹해온 다비금강 사리카야냐?"

"스토킹? 크크크크크킄킄. 재미있는 표현이로군. 뭐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지. 너를 한두번 납치하려고 했던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랜드룩 헥타베로스에 탑승해 북해용궁과는 사뭇다른 건축양식의 성에 도착한 나는 뒤늦게 그 성이 이솔다 공주의 본향인 동해용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긴고의 손에 두쪽난 북해용궁이 다소 남성적이고 굵직굵직한 선을 가지고 있었다면 동해용궁은 여성적이고 섬세한 곡선위주로 설계가 되어 있었다.

아이스 바운드의 마을회관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규모와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복도를 걷다보니 이렇게 디파일러 퀸 사리카야와 대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사리카야의 첫인상으로 말할것 같자면 어딘지 모르게 광기가 느껴지는 일진녀정도가 그럴듯 할 것이다.

혹은 타락한 선녀같은 이미지도 제법 어울릴지도. 흑발자안의 동양적인 미모는 그만큼 다양한 단상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사리카야의 옆에는 뿔테안경을 쓴 유들유들한 외모의 사내가 대기중이였는데, 디파일러 퀸을 제하고 인간의 형상을 한 자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거슬리게 만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건 내 취향이 아니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줬으면 좋겠군. 사리카야 당신이 나를 그토록 보고자했던 이유가뭐지?"

"유후! 인간 술사치고는 이야기가 시원시원해서 좋군. 마음에 들었다 이 자식아! 내가 원하는건 이미 짐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디파일러 킹 긴고의 죽음이다."

"그렇군. 그래서 내의 힘을 빌려서 협공을 하겠다는건가?"

"협공? 푸하하하하! 옥사건 네녀석은 농담도 잘하는군. 내가 긴고따위를 처리하는데 왜 다른 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거지? 그런 녀석 내가 왼손만으로도 제압할 수 있다. 문제는 디파일러 퀸과 킹들에게 걸려있는 제약때문이지. 같은 디파일러 왕족들을 죽일 수 없다라고 하는 개같은 규칙이 있거든.

그러니까 내가 긴고를 빈사상태로 만들면 옥사건 네녀석은 최후의 숨통만 끊어주면 된다 이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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