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202화 (20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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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 Oxogan The Mutual Hatred like Dog and Monkey

"저 피조물 주군의 그곳처럼 크고 아름다워요."

"본적도 없으면서 헛소리 하지마. VOT 온라인의 속옷은 구십번대 방어구보다 방어력이 높았으니까."

"그러면 VOT 온라인을 벗어난 지금은 보여주실건가요?"

"그거야 너하기에 달렸지. 그때랑 달리 지금 내 주변에 깔쌈한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원통하군요. 원거리 연애를 하면서 편지만 주고받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운 기분이에요."

"편지에 시답잖은 소리나 적어보내니까 그렇지."

누시아와 잡담을 나눌 수 있을정도로 전황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사령안 기본형 트루스피커로 누시아를 꿰뚫어 보았다. 여전히 영혼의 속삭임은 들려오지 않았다. 새하얀 백발에 눈처럼 흰피부 그리고 순진무구한 비취색 눈동자까지.

백설공주의 환생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듯한 누시아의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마음은 심계가 뛰어난 전력가나 겜블러처럼 단단히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푸스카의 충성심은 순수했지만 누시아의 충성심은 그녀의 존재만큼이나 어딘가 뒤틀려 있다는 느낌이였다.

지금 당장이야 누시아의 힘이 절실해서 어쩔 수 없다지만 나중에는 좀더 엄밀한 사상검증을 해봐야겠지. 물론 내가 Ex랭크의 영력을 달성하면 그런 성가신 작업따위는 필요없었다. 영혼의 표식이 새겨진 밴쉬 세이지 누시아는 내 명령이라면 그 어떤것도 거역할 수 없을테니까.

사실상 A+++랭크의 영력을 지닌 지금도 누시아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다뿐이지 그녀가 내게 직접적인 적대행위를 할 수 있을만큼 녹록한 상황은 아니였다. 결국 쓸데없는 걱정일랑은 집어치우고 중간보스가 출현한다는 4페이즈나 준비하는 것이 맞았다. 기간틱 레이스가 어느새 마지막 디파일러 룩에게 흐물거리는 두손을 내려치기 직전이였으니까.

"내가 이래서 디파일러 폰이나 나이트를 소모품 취급할 수 밖에 없는거야. 뭐야 이게. 기껏 3페이즈에 걸쳐서 무대를 만들어 놨더니 결국 저 옥사건이라는 녀석의 털끝하나 못건들였잖아. 낑캉 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겠지?"

"물론입니다, 나의 왕이시여. 저 강령술사의 털이란 털은 모조리 뽑은 뒤에 내장까지 손질해 왕의 식탁에 바치겠나이다."

"아, 아니 딱히 저 녀석의 털을 못건드려서 안달난건 아니야. 단지 4페이즈의 중간보스인 너마저 허무하게 당해버린다면 내가 허공에 삽질을 한 꼴이니까 말이야. 그럴바에야 저 녀석과 첫대면했을때 1:1로 끝장을 보는편이 나았겠지."

"왕의 전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그러나 어찌됐든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움직이는 아파트라고 할 수 있는 디파일러 룩에 비해 덩치는 왜소했지만 풍기는 포스는 일개소대의 디파일러 룩을 한한것보다 강렬했던 낑캉이 마침내 전장에 진입했다. 디파일러 로열나이트의 힘을 한번도 경시해본적이 없는 나는 두눈을 부릅뜨고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긴고의 왕좌가 새롭게 자리한 북해용궁의 테라스에서 낑캉이 뛰어내리자 단단한 지반에 크레이터가 연달아 생기며 그의 흔적을 뒤늦게나마 노출시키고 있었다. 집중한다고 집중했지만 낑캉은 100% 순수 무력계열의 디파일러. 움직임을 놓친 나는 안면에 일권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콧대부터 주저앉기 시작한 안면함몰은 걷잡을 수 없이 나를 못생기게 만들고 있었다. 언옥타늄 재질의 두개골은 끄떡도 없었기에 치명적인 상처라고 할 수 는 없었지만 기분이 더럽게 나빴다. 펀치의 여파로 북해용궁의 입구에서 어느새 해변가까지 떠밀려간 나는 수제비 뜨는 돌멩이처럼 통통통 거리다 바닷속에 쳐박혔다.

대자로 뻗어 수면위에 떠오른 나는 이 무식한 싸움꾼을 이기기 위해선 변신하는 수 밖에 없다는걸 직감했다. 아직 미성숙한 기간틱 레이스로는 로열나이트 낑캉의 움직임을 쫓는다는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어떻게든 내가 그의 움직임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큰소리 치더니 결국 네놈의 그릇이란건 이정도였더냐! 네놈은 왕에게 도전할 자격조차 없다."

"어머어머 주군 잘생긴 얼굴이 피범벅이 됐어요. 이걸 어쩐담."

"네 신의 가호때문에 어그로 나한테만 쏠려서 그렇잖아. 아 짜증난다. 나는 분명 VOT 온라인의 3대 술사인데 왜 육탄전으로 싸우는 경우가 더 많은걸까."

"이번에는 재생조차 할 수 없게 뼈와 살을 분리시켜주마!"

얼티밋 언데드 폼 제 2형 괴력난신(怪力亂神) 아크토두스(Arctodus)

어느샌가 내 머리 위에 유령처럼 떠올라 손으로 입을 가리고 새침한 표정을 짓고있는 누시아, 긴팔을 허우적 거리며 달팽이처럼 기어오고 있는 기간틱 레이스 그리고 야자수 하나를 뽑아들고 돌격전차처럼 달려오고 있는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낑캉.

결국 강력한 수하가 둘이나 있었지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내가 직접 상을 차린다음 누시아와 기간틱 레이스에게 숟가락을 들이밀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변이에너지에 의해 몸이 고대포식자를 닮아갈때마다 물속으로 가라앉는걸 느끼며 천천히 해변가로 전진했다.

갈색 영혼석이 이마에 튀어나오는 것을 시발점으로 몸의 제어권을 인계받은 아크토두스는 포효를 내질르며 도구를 쓰는 영장류를 맞이한다. 사실 야자수는 로열나이트 낑캉의 육체와 비교했을대 이쑤시개만도 못한 무기였고 그건 아크토두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손짓 한번에 야자수를 터쳐버린 아크토두스가 언옥타늄으로 재구성된 손톱을 휘둘렀고 낑캉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주먹을 뻗었다. 그렇게 시작된 최강의 짐승들끼리의 싸움은 너무나 팽팽해 주위 공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아크토두스의 육체와 대등하게 싸우는 척이라도 했던건 은랑철권 퍼시벨이 유일했기에 나는 기겁했다.

"강령술사 옥사건은 어디가고 너같은 곰탱이만 있는거이냐?"

"쿠와아아아아앙!"

"설마 부하를 남겨두고 도망간것인가? 치졸하기 그지없구나!"

"쿠와아아아아앙!"

"제법 하는군. 너 정도의 투사가 겁쟁이 강령술사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는게 안타깝구나."

내가 아크토두스로 변신했다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는지 엄한 겁쟁이 취급을 하는 낑캉. 당장이라도 변신을 풀고 내가 그 곰탱이였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주먹 한방에 마치 포크레인이 파헤친것처럼 모래사장이 쓸려나가 어쩔 수 가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괴력난신 모드가 아니면 낑캉의 평범한 일권조차 받아내기 버거웠다. 디파일러 로열나이트의 재생력은 또 어찌나 징글징글한지 방금 전 낸 상처가 다음 공격을 할때면 말끔히 재생되어 있었다. 물론 그건 아크토두스도 마찬가지였던지라 둘의 싸움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애꿎은 야자수만 뿌리뽑히는 사태가 계속되자 나는 누시아의 힘을 빌릴까?하는 유혹을 받았다. 로열나이트의 피통을 생각하면 비틀린 성역은 단기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않았다. 하지만 힐링 스킬이 딜링 스킬이 된것처럼 누시아의 버프 스킬은 너프 스킬로 변모했으니 낑캉의 능력치를 깎아내리면 충분히 싸움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가 마음에 걸려 나는 함부로 누시아를 호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크토두스의 확장된 감각에 저멀리서 야자수에 매달려 있는 아크비숍 스쿠하라의 존재가 감지되었기 때문이였다. 꿈쩍도하지않고 나와 낑캉과의 싸움을 관망하고 있을뿐이였지만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였다. 여기서는 어떻게든 공개된 카드만으로 승부를!

"인정하지. 너라는 곰탱이가 나 로열나이트 낑캉의 진면목을 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아마 조금 아니 많이 아플거다!"

"쿠와아아아아앙!"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육체집중(Hyper Body) 종속마력기관 발동

계속되는 지리한 공반전에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던건 나뿐만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갑작스레 종속마력기관을 발동시킨 낑캉때문에 전장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피부밖으로 튀어나올듯 전신을 뒤덮기 시작한 힘줄과 1.5배는 커진 근육때문에 아크토두스의 신장은 물론 덩치까지 앞도해버렸다.

싸움은 덩치로 하는것이 아니라는걸 디파일러 룩과의 싸움에서 증명한 나였지만 로열나이트가 덩치를 불리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짜피 육탄전은 아크토두스가 하는거라지만 나는 재빨리 이매망량 천인대중 반을 집결시켜 이매망량의 손아귀를 만들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불안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해 낑캉의 종속마력기관 발동 이후 아크토두스는 서서히 힘싸움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두 짐승이 따로 무예를 익히고 있는것도 아니고 그저 본능에 따라 사지를 휘두르는것이 전부였던지라 완력의 차이는 곧 패배를 의미했다.

아크토두스의 몸에 점점 멍이 늘어나는 반면 낑캉의 피부에는 그야말로 기스가 나는것이 전부였다. 단순히 완력만 늘어난게 아니라 맷집도 강화됬다라는건가. 자신의 완력이 우위에 있음을 확인한 낑캉은 본격적으로 잡기 기술을 시도했다. 꼴에 영장류라고 몇몇 잔기술을 쓸줄 아는 모양이다.

"아까 말했던대로 뼈와 살을 분리해주마!"

"쿠와아아아아앙!"

아크토두스의 허리를 잡고 모래사장위로 자빠트린 낑캉이 아크토두스의 어깨관절을 움켜쥐었다. 아무리 무수한 멍도장을 남겨도 재생력때문에 금새 회복해버리자 아예 잡기 기술로 아크토두스의 육체를 찢어버리겠다는 거겠지.

3m급 괴물곰의 관절을 팔채로 뜯어버리겠다니 그 얼마나 무식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인가마는 한껏 근육이 부풀어오른 낑캉이라면 해낼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급히 이매망량의 손아귀로 낑캉의 한쪽팔을 잡아당기자 한쪽팔에 여유가 생긴 아크토두스가 낑캉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낑캉에게 짓눌리고 있는 팔을 해방시킬 생각은 않고 도리어 낑캉의 급소를 공격하려 들다니 과연 최악의 포식자는 생각하는것 자체가 남달랐다. 그리고 최강이자 최악의 강령술사인 나 또한 남다른 관점에서 낑캉의 육체를 관찰하고 있었다.

아크토두스의 손톱에 깊게 패인 상처조차 금새 재생해버린 낑캉이 기스에 불과한 잔상처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데 조금도 아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실금같은 상처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단 한가지. 그의 종속마력기관은 로열나이트의 우월한 재생력을 거두어 육체능력에 몰아주고 있다.

"도와드릴까요, 주군? 조금 위험해보입니다만."

'필요없어! 이미 이 녀석의 약점파악은 끝났으니까. 너는 디파일러 킹과의 싸움이나 준비하도록 해. VOT 온라인에서도 좀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힘겨운 싸움이 될테니까.'

"과연 내 목이 먼저 날라갈지 네 녀석의 팔이 먼저 날라갈지 궁금하군.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쿠와아아아아앙!"

나는 아크토두스에게 눈앞의 킹콩을 있는 힘껏 끌어안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본능에 치우쳐 눈이 뒤집힌 아크토두스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은채 계속해서 낑캉과 치킨레이스를 벌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영혼의 표식을 목줄삼아 사정없이 두어번 당기고 나서야 아크토두스는 내 명령을 이수했다.

아무리 육체능력이 강화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대가가 재생력이였다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달팽이 걸음으로 해변가에 도착한 기간틱 레이스가 아크토두스와 한몸이 되어 나뒹구는 낑캉을 계속해서 공격하도록해 소모전으로 이끌고 간다면 이 싸움 100% 내 승리였다.

이매망량의 손아귀까지 등허리를 누르고 있어 꼼짝달싹도 못하는 낑캉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10m에 이르는 긴팔을 채찍처럼 내리치는 기간틱 레이스. 그 횟수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자꾸만 늘어날 수 록 낑캉은 물론 아크토두스의 몸에도 상처가 늘어만갔다.

그러나 아크토두스의 상처가 조금씩 수복되고 있는 반면에 낑캉의 상처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어느샌가 피부밑의 혈관까지 훤하게 드러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낑캉이 뒤늦게 종속마력기관의 발동을 멈추고 허겁지겁 재생에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어도 너무 늦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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