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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 Oxogan The Mutual Hatred like Dog and Monkey
내공심법을 처음 익히는 초심자가 단전을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력의 운용이 자유로운 고수가 진기의 흐름을 이끌어줘 소주천을 대신 해주는 것이였다. 그러나 용린춘 장로가 수십억광년이나 떨어진 지구로 갈 수 도 없는 노릇이고 얼티밋 언데드 폼의 아바타는 단전을 형성할 수 없는 몸이였기에 나는 구결을 받아적는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당연히 용린정권과 용린연환각의 갑을병정 초식에 내력을 담는 묘리도 구결상으로만 전수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다. 사실 매드독스 왕루옌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자존심의 문제도 있었고 아직 그녀를 신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 안은 기각되었다.
그렇게 용린혁 장로의 친절한 해설이 덧붙여진 각종 구결들을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에 모두 입력하고나자 병사들의 천막설치 작업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본체로 돌아가 당장이라도 단전 수련을 할까싶었지만 저녁의 간부회의 참석건도 있고해서 남은 작업을 돕기로 했다.
천막설치 이후 실버스케일 소속 병사들에게 주어진 작업은 본래 수출용으로 포장해두었던 수산물들을 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였다. 물론 아직 외지인을 낯설어 하는 북해용궁의 인어족들을 위해 음식의 조리나 배분은 동해용궁의 자경대가 맡았고 우리쪽 병사는 운반만 하면 됬지만 난민들의 숫자가 워낙많다보니 그것도 쉬운 일만은 아니였다.
"가급적이면 언데드들을 이용해서 짐을 옮기는건 자제해 주게. 난민들의 마음속에 디파일러에 대한 공포심이 뿌리깊게 자리잡은터라 자칫 혼란을 유발할 수 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생선박스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것 정도는 괜찮을려나요?"
"뭐 인어족들도 술식에 대해서 문외한은 아니니까 그정도는 괜찮겠지."
"다행이군요. 그것마저 안됐으면 저는 일개병사나 다름없는 작업효율을 보였을겁니다. 용린혁 장로처럼 10상자씩 들고 움직일 자신은 없거든요."
"이런것이 연륜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에게 지고있을 수 만은 없지."
단순히 생선상자 10개를 들 수 있는 완력에 놀란게 아니라 생선상자 10개를 일렬로 쌓아 움직이는데도 흘러내릴 기미조차 없게 만드는 균형감각이 내게 할말을 잊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감탄만 하고 있을 수 는 없었기에 나 또한 이매망량 천인대를 이용해 100개 정도의 생선상자를 기차열처럼 이동하게 만들었다.
마음 먹으면 더 많은 양을 옮길 수 도 있었지만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다른 병사들과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그렇게 이매망량을 이용해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짐을 옮기듯 생선상자를 옮기다 보니, 다른 병사들 보다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나는 서로 다른 출신의 인어족들이 하는양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은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리얼 휴먼다큐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북해용궁 인어족 난민들은 그 숫자가 제법 많았음에도 그 누구 하나 새치기를 하지않았고 오히려 노약자들에게 순서를 양보했으며, 동해용궁 자경대들은 해물 스튜를 건네면서 이런 누추한곳에서 잠들게해 거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악한걸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였기에 그런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양심이 감자칼에 긁히는 기분이였다. 내가 이들을 성심성의껏 돕는 이유는 단 하나. 이솔다 공주에게 점수를 따서 어떻게든 따먹을 궁리를 하고 있는것 뿐이였으니, 양떼속에 늑대도 아닌 사악한 악마가 양의 탈을 쓰고 있는 꼴이 아닌가?
"자네가 있으니 역시 작업속도가 빨라지는구만.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1등 공신을 놓치지않는 자네에게 더 상승의 무공을 가르쳐주지 못하는게 안타까울 뿐이야."
"제 전문분야도 아직 다 섭렵하지 못한 상태에서 욕심을 부릴 수 야 없죠. 제가 용린은리 사저처럼 뛰어난 무재를 지니고 있는것도 아니고요."
빈말이 아니라 내가 초창기부터 해석에 힘써온 강령술 3대괴서 네크로노미콘조차 이제야 겨우 윤곽을 잡았을뿐이다. 팔십번대 리치폼이나 칠십번대 저승문 개전을 제외한 다른 술식을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극복해야할 문제가 많았다.
예를 들어 구십번대 술식 진홍빛 장송곡(Crimson Requiem)은 데카코어 마력기관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마력과부화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얼티밋 언데드 폼의 인공마력기관은 수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없었기에 잠정적으로 연구를 포기한 상태였다.
새롭게 얻은 데모닉 그리모어야 이매망량과 같은 스펙트럴 띵(Spectral Thing)들을 일시적으로 광폭화시키는 악령군세를 제외하면 해석자체가 막힌 상태였으니 말할것도 없지. 전문부야에서 조차 답보상태인 내 현상황에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머리속에 스치는 한 문구가 있었다.
'무덤은 무(無)의 입구이자 유(有)의 입구이니 죽음의 장기를 계승하리라.' 무덤을 무의 입구라고 지칭한것은 죽음 이후 그 사람이 살아생전 쌓아온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도 있으니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죽음을 무의 입구로 생각할만 하다.
"그렇다면 유의 입구라고 하는것은..."
아마도 저승을 뜻하는 거겠지. 사실 여기서부터는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 데모닉 그리모어의 저자가 상상을 초월한 수준의 강령술사라고 가정한다면 그가 저승의 존재를 모를리는 없다. 아니 사실 그 저자가 인간이라고 확정짓는것은 위험한 선입견이였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였다.
요는 이 미친 저자가 술식 하나를 익히기 위해 죽음을 경험해보라고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 이 저자의 종족은 목숨이 9개쯤 되는 고양이 영물이라 한두번의 죽음정도는 불사한다는 것일까? 어쨌든 내게는 저승문 개전이라는 술식을 통해서 무덤이라는 문을 거치지않고도 저승으로 갈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죽음의 장기라고 하는 문구뿐이군. 통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건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기 위해 썩기 쉬운 간, 허파, 위, 장과 같은 장기들을 특별한 용기에 따로 보관했다는 일화였다. 그래서 그딴 장기따위를 계승해서 뭘 어쩌자는걸까?
물론 강령술사에게 시체란 장기 하나도 버릴것 없는 알짜 술식재료였지만 장기가 아무리 많아봐야 어보미네이션의 재료로 만들거나 구울의 먹이로 주는것 말고는 쓸모가 없었다. 후우, 이렇게 탁상공론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저승에 다시 가봐야겠어. 그 황량한 땅에는 다시 가고싶지않았는데 달리 뾰족한 수가 없군.
"어떻게 깨달음을 통해 뭔갈 얻었는가?"
"예, 예?"
"자네 표정이 마치 가끔씩 벽에 막힌 무인들에게 찾아오는 무아지경에 빠진것 같아서 하는 말일세. 방해하고 싶지않아 일부러 한동안 말을 걸지않았네만."
"으음 무아지경까지는 아니고 마도서의 한 문구를 해석중이였습니다. 얻을 수 있는 단서는 다 얻은것 같은데 좀처럼 답을 구하기가 쉽지않네요."
"자네정도 수준의 술사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라면 그렇게 간단히 답을 내놓지 않겠지. 경지가 올라갈 수 록 깨달음의 순간이란건 항상 예기치못한 계기로 찾아오는 법이니 너무 서두르지말고 방에 돌아가 머리를 식히는건 어떤가? 아무래도 오늘 작업은 이걸로 끝인것 같군."
"조언 감사합니다. 아참 인어족들이 손질하고 남은 생선내장들을 제가 좀 가져다 쓸 수 있을까요?"
"그거라면 어차피 버릴예정이였으니 말하지 않고 가져가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걸세. 오히려 고마워 하겠지. 그건 그렇고 강령술사라는건 특이하군. 생선내장조차 술식의 재료로 사용하다니 말이야. 자네가 먹으려고 가져가는건 아니지 않은가?"
"음 뭐 그런 셈이죠."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생선상자를 옮기던 이애망량으로 이번에는 생선내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에보니 메이든에 담았다간 베히모스 좀비가 전부 먹어치울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언 메이든에 쑤셔넣기로 했다.
아무리 손질 과정에서 버려진 내장이라고 해도 난민들의 숫자가 보통이 아니였기에 내장의 양도 만만치가 않아 그냥 인벤토리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난민들을 어루만져주던 태양이 수평선과 맞닿기 직전이였기에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저녁 간부회의가 있기전에 간신히 얻은 단서를 조합하고 싶었던 나는 이매망량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최대한의 속도로 난민들의 주둔지를 벗어났다. 그렇게 십여분간 부유해 도착한 곳은 일전에 던클레오의 겉비늘을 방부처리하기 위해 사용했었던 버려진 호수였다.
여전히 죽음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그 장소는 저승만큼이나 황량한 장소였으니 누군가 휘말릴 염려는 붙들어 매도 좋을 것이다. 나는 한소절 한소절 내뱉을때마다 느껴지는 익숙한 영력의 공명을 되새기며 칠십번대 술식 저승문 개전을 펼쳐내 보였다.
일흔 여덟 갈림길 걷고 걸어
저승 호안성 도착했으나 아직 갈길이 멀어
육로 삼천리 해로 삼천리 또 걷고 걸어서
마침내 저승 연천문 두드렸노라
조왕할망따라 행기못가 이르렀으니
저승꽃 사뿐이 즈려밟고 가겠나이다.
네크로노미콘 강령술식 78번 저승문 개전(開戰)
일찍이 이 술식 덕분에 목숨을 구한적이 있던터라 황량한 붉은사막이 기다리고 있다는걸 안면서도 저승문의 문지방을 밟는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익숙한 시계의 반전이 끝나고 나는 또 다시 벌레새끼 한마리 없는 죽음의 땅으로 내던져졌다.
이전과 저승문의 위치가 사뭇 달랐기에 붉은 사막의 언덕을 구르게 된 나였지만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닌 아바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였기에 이매망량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굴러떨어진김에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니 태양 대신에 저승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저런 곳에서도 열리는 거였군. 하긴 따지고보면 위상 좌표도 확실치 않은 저승에 워프게이트를 연결시킨셈이니 지반밑에 저승문이 열리지 않은것만 해도 다행이랄까. 주변을 살펴보니 이전처럼 우연히 지나가던 사신같은건 없는듯 했다. 이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
저승문이 열려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주위탐색이 끝나자 나는 재빨리 아이언 메이든에서 생선내장을 한가득 꺼내들었다. 내가 이 생선내장을 챙겨온것은 혹시나 이것들이 죽음의 장기라는 단서에 부합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생선내장도 장기는 장기였으니까.
"솔직히 그닥 쓸모가 있을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맨몸으로 오기엔 거시한것이 나는 이미 퀼레뮤츠의 텅스텐 막대 공습을 피해 저승땅을 밟은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됬던 조건을 달리하지 않으면 이번 저승행은 무의미한 일이 될터였다.
나는 한번의 성공을 위해 수천번의 실패를 감수했던 전기왕 에디슨의 심정으로 붉은사막위에 어지러이 널부러진 생선내장을 응시했다. 혹시나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소의 내장이나 닭의 내장이 있었고 그것마저 안되면 인간의 내장까지 들고올 생각이였다.
그렇게 멍하니 생선내장들을 쳐다보기만을 한참 저승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불명확했기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저승문의 미닫이문이 닫힌 정도로 어렴풋이 짐작만 할뿐. 실패를 직감한건 한참전이였지만 예의상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결국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그나마 저승에서는 생선내장이 썩질않아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썩은내때문에 더 힘겨운 시간을 보냈으리라. 그런데 아직 충분한 입장공간이 남아 있는 저승문에 오르기 위해 이매망량의 물결에 몸을 맡긴 그 순간, 내 머리 위로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 정도 덩치가 지척에 다가오는데도 눈치를 못챘다고?
"아저씨, 아뮤트가 저 내장 먹어도 돼요?"
"먹어도 되냐고? 그거야 어짜피 버릴...이 아니라 내가 힘들게 하나하나 낚시해서 잡아올린 물고기들의 내장을 네가 날로먹겠다고? 무슨 회도 아니고 날로 먹게둘 순 없지."
"에에에에에에엑! 버릴려고 그냥 가는거 아니였어여, 아조씨? 그런줄 알고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다가 지금 말을 건건데."
"아까부터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면 잘 알겠네. 같은 자세로 계속 있다보니 몸이 뻐근해서 잠깐 스트레칭을 할려고 했던것 뿐이야. 가려는게 아니라."
"에에에에에에엑! 아뮤트 내장 먹고 싶어, 먹고 싶어!"
"뚝끄쳐 이 쥐방울만한 새끼야. 가는게 있으면 오는게 있어야한다고 엄마한테 안배웠냐? 어디서 찡찡거리고 지랄이야. 한번만 더 떼쓰면 니 뱃때지를 따버려서 흘러나온 내장을 코로 쳐먹일줄 알아라."
"끄윽. 그러면 아조씨 제가 뭘 주면 그 내장들을 주실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