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85화 (18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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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아크리퍼 옥사건님 되십니까?"

속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온건 프랑스 메이드차림의 한 소녀였다. 그 인간미 느껴지지않는 첫인상에 나는 번뜩 퀼레뮤츠가 떠올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뭐 굳이 슈퍼로이드가 아니더라도 엔도미야의 하수인으로 있는 년이 보통인간일리는 없으니 신경쓸 필요는 없으려나?

"맞아. 내가 아크리퍼 옥사건이다. 그런데 말이야 오랜만에 게임에 접속했더니 이런 감옥이 스타팅 포인트로 지정되어 있어서 말이야. 어떤 버그가 발생한것 같은데 네가 NPC라면 GM좀 불러줄래?"

"이미 퀼레뮤츠 언니의 새틀라이트 오메가가 마지막 전투 데이터와 소울백업 데이터를 엔도미야님에게 전송했으니 같잖은 오리발은 그만 내미시죠. 서로 어떤 정황인지 다 아는 상황에서 시간낭비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요."

"어마마. 네가 퀼레뮤츠 그 깡통로봇년의 동생이였니? 이거 미안해서 어쩌냐. 그 녀석을 내가 엿바꿔먹기도 힘들정도의 고철로 만들어서."

"제 말을 똥구멍으로 들으셨나요? 저는 분명 소울백업 데이터를 새틀라이트 오메가를 통해 전송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인 즉슨 퀼레뮤츠 언니는 죽지 않았다는 말이죠. 물론 이번 작전실패의 책임을 물어 한동안은 부활할 수 없겠지만. 애시당초 당신의 본체가 있는 행성이 언니의 작전구역에서 너무 멀어서 전함 델타크론을 끌고오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이 이겼다는건 알고계신가요?"

"아니 이 빌어먹을 깡통로봇 2호년이 누구는 비빌언덕이 없는 줄 아냐? 나도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들을 총집합시키면 그깟 전함따위 장난감만도 못하다고!"

"옥사건군 진정하게. 엔도미야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이리 소란을 피워서야 죽도밥도 안될걸세."

퀼레뮤츠의 동생이 신전감옥으 들어온 이후 복도의 전등이 켜졌기에,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타이르는 용린혁 가주의 용태를 그제서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안그래도 목소리에 힘이 별로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얼굴 한가득 병색이 완연했다.

설마하니 엔도미야측에서 고문을 가한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옷도 너무 정갈하고 그 어떤 다른 외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내가 천하의 몹쓸 망나니라지만 그런 용린혁 가주에게 대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입에 물은 걸레를 뱉기로했다.

"깡통로봇 2호 나를 엔도미야 앞에 데려다줘."

"제게는 엄연히 슈퍼로이드 세비앙이라고 하는 우아한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 상스러운 칭호로 부르시는건 삼가해주시죠. 그리고 당신이 시비만 걸지 않았어도 진즉에 저희는 엔도미야님에게 도달했을겁니다."

"누가 시비를! 아니, 아니다. 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빨리 가지. 아직 본체가 해야할 일이 산더미같으니까."

"어머나 어쩜 저렇게 속편히 자신이 로그아웃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는걸까?"

슈퍼로이드 세비앙이 쇠창살앞에 정체불명의 홀로그램을 띄워 타이핑을 하면서 내 신경을 살살 긁고 있었다. 확실히 엔도미야정도의 존재에게 로그아웃 버튼을 치우는 일이야 하품하는것 보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야스에게 내 몸의 바이오리듬에 이상이 생기면 전력을 차단해달라고 말했던거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내 영혼과 VOT 온라인의 더미 아바타간의 링크를 끊을 플랜B를 준비해났기에 나는 세비앙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세비앙이 홀로그램의 조작을 끝내자 쇠창살은 하얀입자가 되어 흩날려 사라졌다. 신전감옥에서 나온 나는 용린혁 가주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세비앙의 뒤를 따라붙었다. 신전감옥의 복도를 벗어나는 와중에도 세비앙이 시덥잖은 일로 이죽거렸지만 입에서 걸레를 뱉고 지퍼까지 채운 나는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를뿐이였다.

마침내 출구에 있는 나무문 도착했을때 나는 신전감옥의 규모로 어림잡아 한참을 더 걸어야 할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였다. 세비앙이 나무문 앞에서 또 정체불명의 홀로그램을 조작한 뒤, 나무문을 열어재끼자 누가봐도 비범해 보이는 초장발의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엔도미야님 예의 이레귤러 유저를 데려왔습니다."

"고생했습니다, 세비앙. 이제 가봐도 좋습니다. 그하고는 독대를 하고 싶군요."

"그럼 이만."

메이드복 앞치마를 나풀거리며 엔도미야에게 우아한 인사를 건넨 세비앙은 다이야몬드가 세공된 화려한 대문을 열고 사라졌다. 들어올땐 분명 평범한 나무문이였던것 같은데 재미있군. 공간접합계열의 전이술식을 문에 인챈트한건가?

세비앙도 나갔겠다 엔도미야를 차분하게 살펴볼 기회가 생긴 나는 의자에 앉는척하면서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했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건 키를 넘어서 바닥을 수놓고있는 라푼젤을 뺨칠정도로 긴 백금발.

그리고 이곳에 오기전 굳건히 무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릴만큼 인자한 미소에는 무슨 술식이 걸려있는것이 아닌가 싶을정도였다. 엔도미야는 분명 초월적인 존재에 걸맞는 여신급  외모 아니 여신 그 자체였지만 바로 그 인자한 미소가 풍기는 성스러운 아우라때문에 색욕조차 생기지 않았다.

천하의 옥사건이 이쁜 여자를 보고도 서지 않는다니 이거 문제 있어. 물론 초월 인터페이스에게 사람과 같은 육체가 있을리 만무하니 저건 아마도 진짜 몸은 아니겠지만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 시절 나는 분명 미녀 NPC를 보고 숱하게 야한상상을 한 전적이 있지않았던가?

"창조는 파괴보다 곱절로 어려운 행위이지요."

"내가 퀼레뮤츠를 파괴한 건을 말하는건가? 미안하지만 그건 정당방위였어. 나 죽이겠다고 쫓아오는 미친 살인로봇을 살려보내줄만큼 내가 인자하지 못하거든."

"아뇨. 제가 말하는건 당신이 처음 캐릭터를 생성할때 주어지는 아바타를 버리고 새로운 아바타를 만든건을 이야기합니다. 일련의 모든 사태는 바로 그 창조작업에서 부터 시작한거니까요. 솔직히 말해 너무 계산밖이라 정말 놀랐습니다. 술식과 관련된 문명레벨이 1에 불과한 행성에서 아바타를 창조하는 유저가 나올줄이야.

뭐 사실 거기에서 그쳤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겠지만 당신은 영혼과 아바타의 링크를 치환하는 경이로움을 보여줬지요."

"아이쿠야 자세히도 알고계시는구만."

"제가 당신을 주시한건 당신이 용린혁 NPC의 도움을 받아 VOT 온라인을 벗어난 순간이 아니라 당신이 새로운 아바타로 갈아탄 시점이니까요."

나는 뒤통수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였다. 이 초월적 존재가 내게 관심가지기 시작한게 아바타가 수왕성에 도착한때가 아니라 내가 얼티밋 언데드 폼을 완성한 시점이라고? 수전증이라도 걸린것처럼 흔들리는 두 손을 애써 맞잡은채 나는 태연을 가장해 말했다.

"보기완 달리 조금 스토커 기질이 있는 모양이군. 아바타를 만들었다는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우주에 나와보니 블랙해커라는 집단에서 찰흙같은걸 대충 주물르니까 뚝딱하고 만들어버리더만."

"아바타 클레이를 말씀하시는거군요. 그런 인스턴트 아바타가 당신의 진짜 아바타와 똑같을리가 있나요. 아크리퍼 옥사건씨야말로 보기완 달리 스스로가 행한 창조의 산물에 대해 자신감이 없으시군요. 제가 마음먹으면 손짓 한번으로 전우주에 있는 아바타 클래이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을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경우 질서 엔트로피의 손실이 예상되 하지않을 뿐이지요."

"내가 알기론 이 더미 아바타 또한 연결된 VOT 시스템의 제어망을 끊으면 폭발하는걸로 알고있다. 설마 그 아바타 클래이라는걸 유출한게 엔도미야 네녀석이냐?"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그것보다 우리 사이에는 더 중요한 화제가 있을것 같습니다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여신칼날대에 입단하세요. 그 경우 더 이상 옥사건님의 본체를 저격하기 위한 히트맨이 파견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여신칼날대는 1000만 VP의 연봉, 여신마켓의 무제한 입장 그리고 면책권 구입가능이라는 혜택을 받게된다라는 점 참고해주셨으면 하는군요."

이런 젠장 시작부터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잖아! 목숨을 걸고 일생일대의 협상을 벌이려던 내게 엔도미야가 초장부터 강수를 뒀다. 면책권은 모르니까 넘어간다 쳐도 매년 1000만 VP를 주고 여신메달을 소모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여신마켓까지 무제한 입장시켜준다니, 문외한인 내가 봐도 신인단원의 초봉치고는 과해보였다.

"잠깐 보수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여신칼날대가 어떤 의무를 지니고 있는지 말해주는게 우선 아닌가? 나는 보상만 보고 혹해서 무는 호구가 아니라고."

"VOT 시스템이 지니는 의미가 인류라고 하는 세포를 디파일러라는 감기 바이러스로 부터 지키기 위한 면역력 증가 시스템이라는걸 옥사건씨라면 알고계시겠죠. 그렇게 상정했을때 여신칼날대는 항생제라고 보시면 되겠군요. 단순히 세포들의 면역력을 증가시킨는것 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옥사건씨의 본체가 있는 행성으로 치자면 흑사병 바이러스 같은걸 저격하는 단체지요."

"흑사병 바이러스라... 예를 들면 야미도엔을 떠받드는 반신타락자같은 놈들을 말하는건가?"

"호오 그건 여신마켓에 입장한 전적이 있는 자들에게만 접근권한이 있는 정보인데 과연 옥사건씨는 이레귤러답게 매번 저를 놀라게 만드시는군요."

"뭐 이정도 가지고 앞으로 계속 더 놀라게될거야. 일단 그 여신마켓 입단 제안을 거절하는걸로 시작해볼까?"

"왜죠? 설마 퀼레뮤츠를 쓰러트린 일로 여신칼날대의 전력을 무시하고 계신건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퀼레뮤츠는 그때 100%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였으며 퀼레뮤츠 보다 고서열자를 히트맨으로 보내면 아무리 옥사건씨라도 무사하지 못할겁니다. 특히나 옥사건씨의 전투데이터가 수집된 지금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엔도미야가 너무나 달콤한 제안을 했음에도 내가 거절한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퀼레뮤츠가 유출한 질서의 엔트로피에 관련된 정보때문이였다. 질서의 엔트로피가 상실되는 행위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엔도미야의 제약을 이용해 한개 받을 마시멜로우를 두개, 네개로 늘려받겠다는게 내 전략이였다.

"내가 버그를 사용해서 VOT 온라인의 세계를 벗어난 까닭에 네놈들한테 이레귤러로 낙인 찍힌건 이해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니들 사정이고. 내 입장에서는 평화롭게 잘살고 있는데 난데없이 왠놈이 나를 죽이려 들었다라는거지. 그러니까 나는 그 일에 관한 사과와 함께 보상을 받아야겠어. 그전에는 여신칼날대 입단이고 나발이고 안중에도 없을줄 알아."

"재미있군요. 제가 그 제안을 무시하고 여신칼날대의 단원 중에서도 옥사건씨와 상성이 나쁜자를 히트맨으로 보내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예를 들어 여신칼날대 서열 20위 아수라몽크 트렉슐의 경우 퀼레뮤츠 보다 서열은 한단계 낮지만 옥사건씨가 상대하기 정말 까다로울겁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겠다. 개미새끼 한마리 남기지않고 아니 그냥 미생물 하나 남지않게 죽음의 별로 만들어버리는 편이 깔끔해서 좋겠군."

"후후후."

평소 표정 자체도 인자하기 그지없었던 엔도미야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자 마치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그런데 보살의 현신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인자한 미소 저편에 묘한 섬짓함이 느껴지는건 나만의 착각일까?

"퀼레뮤츠의 부활 쿨타임을 지금보다 훨씬 더 길게 늘려야겠군요. 정말이지 쉽게 갈일을 성가시게 만들기나 하고 차라리 세비앙을 보낼걸 그랬나."

"역시 그랬군. 엔도미야 당신은 나를 죽이고 싶어도 지구의 인류가 멸망했을때의 질서 엔트로피 손실때문에 그럴 수 없는거지?"

"애시당초 당신이라는 이레귤러를 제거하고 싶어했던 것도 아바타의 강대한 힘으로 인류멸망이라는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저지를까바 그런거니까요. 그런데 막상 옥사건 당신의 본체가 있는 행성에 가보니 아바타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았죠. 그러나 이미 본체의 무위만으로 여신칼날대 서열 19위 퀼레뮤츠를 격파할정도였으니 새로운 히트맨을 보내기전에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당신의 말도 허언은 아니지요.

참으로 얄궂은 일입니다. 그런 가능성을 산정하자마자 저는 꼼짝없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줘야하는 입장이 됬으니 말입니다. 초월 인터페이스니 여신이니 하는 것들도 참으로 부질없군요.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게 뭐죠? 경고차 말씀드립니다만 과한 욕심을 부릴 경우 지구라는 행성의 멸망을 감수하고 당신이라는 이레귤러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해도 질서의 엔트로피가 깎일 수 밖에 없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손실을 입는 선택을 할테니까요."

"내가 원하는건 아까 말했듯이 정중한 사과와 물질적 보상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물질적 보상은 강령술 마도서들중에 3대 괴서로 불리우는 귀혼강신법이였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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