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77화 (17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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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수백명이 골육상잔으로 죽었지만 십이지천 교도의 수가 원체 많았기에 아직 그 세가 꺾이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근접무기를 든 교도들은 뒤로 물리고 우지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교도들이 앞으로 나서 내게 집중사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본래라면 살육에 미쳐 날뛰어야할 악령천인대들을 영력으로 찍어눌러 원형방진을 펼쳐 밀어붙이자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총격은 내 근처에 닿지도 못한채 수많은 탄피가 로비의 대리석 바닥을 두들기는 경쾌한 소리만이 울려퍼질 뿐이였다.

그리고 마침내 악령천인대가 우지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십이지천회 교도들과 맞닥뜨리자 아주 재밌는 관경이 연출됐다. 사수들이 아군사격을 피하기 위해 갖추었던 계단형 진형에서 벗어나는 자들이 속출했던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고스트 슈트를 입은 조장선에서 충분히 커트가능한 돌발행동이였지만,

이내 그들이 아군의 한복판에서 우지기관단총을 난사하기 시작하자 수습불가능한 대참극이 벌어졌다. 사실 빙의를 행한다 한들 빙의 대상의 아티팩트를 바로 사용할 수 있는건 아니였지만 총이라는 무기 자체가 별다른 집중력 없이 손가락만 까딱해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이런 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으아아악! 차라리 사수들 모두 총을 버리게 해!"

"일단 후퇴를 아니 이상행동을 보인자를 먼저 죽여라!"

"왕루옌 두목님께 현 상황을 보고... 으어어억!"

"좁은 장소에서  넓은 장소로 옮긴건 나쁘지않은 전략적 선택이였지만 빙의 술식을 대비한 카드는 하나도 준비 안했군. 겉만 번지르르 했지 결국 뒷골목 잡배들이란건가."물론 빙의 술식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다고해서 무공 몇자락 전수받은 불량배들 따위가 어떻게 대비할 건덕지가 있는건 아니였다. 그저 지들끼리 머리를 모아서 지혜를 짜낸 결과가 이따위라면 뻔하지.

사실 빙의 술식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월한 정신력을 지닌 소수정예의 병력으로 파티를 짜야했다. 즉 왕루옌을 위시한 남은 십이지천의 형제들이 나서는 것이 정답이겠으나 그걸 알면서도 조직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을 보아하니 그들이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간파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철저하게 소모품에 불과한 멧돼지 좀비로 맞상대 해주지. 나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멧돼지 좀비들에게 [돌격] 명령을 하달했다. 한치 앞도 분간 못하는 얼뜨기들을 전투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돌격] 명령만한 것이 없지. 뭐 내릴 수 있는 명령이 [돌진] 말고는 없기도 하고.

그나마 소총 한정으로 어느정도 방탄력을 지닌 고스트 슈트를 착용한 조장들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일제히 달려든 순간. 즉 소대장급의 지휘관이 부재한 그 때 영빈관의 콘크리트 벽을 뚫고 4톤 트럭만한 멧돼지 때들이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격이라는 속담이 어울리는 순간이 아닌가?

"저건 또 뭐야! 집에 가고 싶어어어억."

"저런 괴물들이 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 커억!"

"이렇게 된 이상 후퇴도 없다. 그냥 아크리퍼한테 달려들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한다. 아군은 언제 적으로 돌변해 자신에게 총구를 돌릴지 모르고 사방에서는 코끼리 보다 거대한 멧돼지들이 돌격해오니 십이지천의 교도들은 다짜고짜 내게 돌진하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후퇴 후 재정비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들은 삶의 의지 자체를 포기한듯 무기를 꼬나쥐고 무질서하게 몰려들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왕루옌의 명이 떨어지기 전에는 이녀석들은 후퇴하고싶어도 후퇴를 할 수 없는 모양이였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빙의 된 아군의 사격에 죽어나가거나 멧돼지 좀비들에게 밟혀 압사당하는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다만 십이지천 교도들의 숫자 자체가 워낙 많았기에 적지않은 십이지천 교도들이 고스트 슈트를 착용한 조장들과 함께 내 코앞에 도달했다.

물론 내게는 사나운 쥐떼들이 모여들었다기 보다는 해로운 모기떼가 잡기 좋게 모여있다는 느낌이였기에 고양이가 물리는 일따윈 없었다. 일반 이매망량을 집약해 거대한 부처님 손바닥을 형상화한 뒤 근처로 다가온 십이지천 교도들을 가열차게 때려잡기를 반복할뿐.

"왕루옌 두목님이 오신다고 한다. 모두 힘을 내자!"

"오오 이 악마를 때려잡기 위해 두목님께서... 커억!"

"십이지천회여 영원하리... 우우욱!"

"이 머저리들아 부하들이 다 뒤지고 나서 입장하는 두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냐? 니들은 마지막까지 미끼로 쓰려고 하는거라고!"

도대체 어떻게 애새끼들을 세뇌시켰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충성심을 잃지 않는걸까? 영빈관 로비는 만약 내가 아케인 슈트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공기를 흡입하는지 피안개를 흡입하는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사위가 피바다였다.

오천명에 달했던 십이지천 교도들 중 제발로 서 있는건 악령천인대에 빙의 당했거나 왕루옌이 영빈관에 입장하자 뒤로 후퇴한 열몇 조장들 뿐이였다. 이 아수라장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고스트 슈트의 힘을 빌어 몸을 사렸던 조장들 말고는 없었다는 소리였으니 1:5000의 싸움치곤 헛웃음이 나오는 결과였다.

"나는 후퇴명령을 내린적이 없다. 너희 조장들은 어찌하여 내 곁에 머무는 것이냐?"

"왕두목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아크리퍼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패잔병의 변명이 구차하게 들리시겠지만 저희가 나서봤자 개죽음을 당할뿐입니다."

"개죽음? 너는 수천에 달하는 십이지천 교도들의 죽음이 개죽음이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그,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왕루옌 두목님께서 아크리퍼를 패퇴시키고 난 후를 생각한바 많은 교도들의 결손을 채우기 위해선 저희들이 필요하다고 사려되어... 크읔!"

"즉 피를 흘리지 않고 싸움이 끝난 후의 전리품을 챙기겠다는 심보로군. 너같은 녀석이 조장을 맡고 있었다니 십이지천회의 수치다. 견소룡 피하나 묻지않은 이 깔끔쟁이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존명!"

죽음의 무도 제 3막을 연것은 다름 아닌 살아남은 조장들의 죽음이였다. 왕루옌의 명을 받든 견소룡이라는 자가 잔상이 보일정도로 재빠른 손놀림으로 주위를 훑었을 뿐인데 고스트 슈트를 착용한 자들의 목이 뎅강하고 잘려나갔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견소룡은 지금까지 만난 십이지천회 형제들 보다 몇 수 위의 실력을 지닌 자임이 분명했다. 손날을 그 어떤 무기보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사용하는 무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악령천인대에 빙의 당한 십이지천회 잔당들이 겁도 없이 왕루옌 일행에게 총구를 겨누고 심지어 발포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견소룡의 손날이 다시금 휘져어졌을때 제법 거리가 있었음에도 십이지천회 잔당들의 몸덩어리가 우지기관단총과 함께 이등분 되었다. 멧돼지 좀비들에게 급히 [정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와 똑같은 꼴이 났으리라.

나 또한 매드독스처럼 소모품에 애정을 쏟는 타입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의미하게 소모품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소모품이라고 해도 적재적소에 사용하면 적의 등뒤를 노리는 비수가 될 수 있는 법. 나라면 견소룡에 의해 죽음을 당한 조장들 조차 뼛속까지 우려먹었겠지.

"매드독스 손을 잡을 상대를 좀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안들어? 북두십성의 급이 있지 고작 천외천의 직위에 오른 공돌이랑 손을 잡아서 이게 무슨 꼴이야. 애꿎은 부하들만 죽어나갔잖아."

"율리시안과 동맹을 맺은건 단순히 계기에 불과했을뿐. 나는 언젠가 아크리퍼 네 녀석을 쳐죽일 생각이였다."

"VOT 온라인 내에서의 원한때문에 그런건가? 물론 원한이라고 해봤자 네가 혼자서 멋대로 덤벼들고 이기지 못해서 부들부들하는 것뿐이였지만. 아무튼 결국 VOT 온라인 내에서의 원한이였잖아. 그걸 굳이 현실에 끌고올 필요가 있나? 한번 생각해보라고 너와 내가 힘을 합하면 아시아를 정복하는건 일도 아니잖아. 굳이 서로 힘뺄 필요가 있냔 말이지."

"후후후. 십이지천회 교도중 반절의 목숨을 빼앗아놓고 한다는 소리가 그건가? 제법 매력적인 제안이긴 하지만 아크리퍼 네녀석의 성정을 내가 모를줄 아느냐! 너는 VOT 온라인에서 그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않았지. 길드는 커녕 그 흔한 파티조차. 그런 녀석이 자신을 공격한 상대와 동맹을 맺는다니 어불성설이지.

아마 시간을 끌어야할 일이 있어서 동맹같은 같잖은 소리를 늘어놓는것 아닌가?"

"정답. 밑도끝도 없이 부하들을 사지로 꼴아박길래 뇌까지 근육을 만들어진줄 알았더니 아주 똥멍청이는 아니였나봐? 그런데 말이야. 시간끌기란걸 눈치챘으면 그 잘난 십이지천 형제들이랑 같이 선제공격을 했어야지 어디서 똥폼을 잡고 지랄이야!"

나는 고함을 침과 동시에 VOT 단말기를 이용해 기갑교룡 아처에게 포격명령을 하달했다. 진즉에 왕루옌 일행을 조준하고 있던 기갑교룡 아처가 고밀도로 농축된 레이저 빔을 긁는것과 동시에 재래식 미사일을 발사했다.

영빈관의 외벽은 레이저 빔 앞에서 한여름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고 십이지천 형제들도 멧돼지 좀비와는 비교도 안되는 위용을 자랑하는 메카 언데드의 존재를 확인했다. 초월적인 반사신경으로 사방팔방 흩어진 십이지천 형제들이였지만 미사일 충돌의 여파에 휘말리지 않을 수 는 없었다.

정지상태였던 멧돼지 좀비들에게 다시금 [돌진] 명령을 하달한 나는 영빈관 로비 2층 테라스로 부유해 올라갔다. 다수의 쭉정이가 아닌 소수정예와의 싸움에서는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연기가 걷히자 걸레조각이 된 팬텀 슈트를 집어던지고 있는 십이지천의 형제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숫자는 5명이였으니 아마도 한국에 파견했던 십이지천 형제들까지 불러들인 모양이였다. 기갑교룡 아처의 기습포격에는 무사했다고 쳐도 당장 눈앞에 거대 멧돼지 좀비들이 돌격해오는데도 의연한 모습으로 무기를 꺼내든 그들은 각자의 진신절기를 펼치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슈트따위에 의존하는 게 마음에 안들었는데 잘 됐군."

"나는 처음부터 몸에 맞지도 않았어."

"후딱 해치우고 아크리퍼 녀석 목이나 따러가자고."

사실 멧돼지 좀비는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은 언데드였다. 모체가 되는 본 보어 마스크 성체가 유전적 결함이 있다는건 말할것도 없고 표피를 단단하게 하는 것은 물론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처리를 하지않아 십이지천회 형제들의 검기에 두부처럼 썰려나갔다.

만약 악령천인대가 빙의해서 대혼란을 유도하지 않았다면 십이지천회 교도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을 언데드 부대. 그것이 바로 덩치만 큰 멧돼지 좀비들의 실체였다. 하여 멧돼지 좀비가 모두 전멸당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고 싶었던 나는 기갑교룡 골리앗을 급히 출격시켰다.

사륜보행 모드로 급히 전환한 기갑교룡 골리앗이 또 다른 영빈관 외벽을 박살내고 전장에 진입했다. 멧돼지 좀비를 상대하고 있던 십이지천 형제 한명의 배후를 잡은 기갑교룡 골리앗은 그 커다란 입을 벌려 멧돼지 좀비 채로 그를 씹어 삼켰다.

남은 십이지천 형제들은 왕루옌을 포함해 넷. 멧돼지 좀비들은 어느새 모두 두동강이 나 있었기에 더 이상의 기습은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이대로 기갑교룡 골리앗과 아쳐에게 싸움을 맡길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왕루옌과 견소룡의 신형이 사라졌다.

"제가 우측을 맡겠습니다. 왕루옌 두목!"

"아크리퍼 형제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갚겠다!"

"네가 그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피차 싸가지 없는거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착한척은 하지말자고. 역겨우니까!"

모든 악령천인대를 회수해 방어로 돌린 나는 2층 테라스로 튀어 올라온 견소룡에게 화이트 탈론을 휘둘렀다. 싸움에서 약한 놈부터 노리는 것은 진리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약함은 상대적인 약함이였던지라 견소룡은 능숙하게 한족 손날로 내 화이트탈론을 막아내더니 다른쪽 손으론 쌍절곤을 꺼내들어 내 머리 위로 휘둘러왔다.

그와 동시에 내 반대편을 점한 왕루옌이 어마무시한 일격을 준비하고 있다는건 보지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였다. 위기라면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오히려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십이지천 교도들을 쓰러트리는건 허수아비를 박살내는것 같아 재미가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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