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76화 (17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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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스스로의 다리를 잘라내는 초강수를 둔 쉬찌엔을 놓친 그날로부터 삼일이 지났다. 그날 밤이라도 왕루옌이 일만 이천의 조직원들을 이끌고 쳐들어 올까봐 슈트를 입은채로 잠들었던 나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가 되도 주위가 잠잠하자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대신 하루종일 영빈관의 유흥시설을 이용하다가 아랫도리가 근질거리면 쿤메이를 불러 쿵떡쿵떡 방아질을 하는 질펀한 라이프가 펼쳐졌다. 이대로라면 쿤메이랑 같이 영빈관에 살림을 차려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본래라면 생명공학과 가을MT의 마지막 날이 되었어야할 금요일날 마침내 십이지천회가 영빈관에 당도했다.

인산인해라는 사자성어가 이렇게나 어울리는 장면이 또 있을까? 관광버스가 하나 둘씩 도착해 번듯한 정장차림의 조직원들을 토해내더니 어느새 그 수가 수십, 수백, 수천에 이르렀다. 그 심상치않은 분위기에 위험을 직감한 영빈관 투숙객들이 허겁지겁 호텔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십이지천회 조직원들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점점 유령의 집이 되어가고 있는 영빈관의 펜트하우스에서 쿤메이의 찌찌를 주무르며 느긋하게 그 관경을 지켜보던 나는 또 하나의 장관을 목격했다.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은 십이지천회 조직원들이 고급 세단의 등장과 함께 모세의 기적마냥 갈라서더니 일괄된 움직임으로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이제 그 잘난 얼굴을 볼 수 있겠군. 쿤메이 니네 두목님이 이제야 납신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으흣! 내가 왕루옌님을 뵐 면목이 있을까. 그저 아크리퍼 네녀석이 죽고나면 이 한목숨으로 죗값을 치룰 수 있기를 기도할뿐이다."

"큭큭. 내 머리 속에는 이미 왕루옌년의 머리를 박제한 뒤 쿤메이 너랑 사랑을 나누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말이야. 몇번이나 서로 몸을 섞었는데 생각하는 바가 이다지도 다르다니 안타깝군. 뭐 여기서 똑똑히 지켜보도록 해. 숫자가 싸움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야."

슬슬 왕루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했기에 품안에서 쿤메이를 놓아준 나는 팬트하우스의 창문에 최대한 몸을 맡대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급 세단에서 나온 주인공은 VOT(Vaccine Of Things) 온라인에서 질리도록 보았던 매드독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군청색의 미래지향적 슈트를 입고 있다는 것. 아니 잠깐만 저거 민간군사기업 고스트의 팬텀 슈트 아니야? 색깔만 다를뿐 그 재질이나 형태는 동일해 보였다. 매드독스 왕루옌에 이어서 차례대로 고급 세단에서 내린 이들까지 군청색의 팬텀 슈트를 착용한 모습을 보아하니 대충 견적이 나온다.

율리시안 헉스포드 이 교활한 공돌이 자식이 매드독스 왕루옌과 손을 잡았을 줄이야. 아야사 그리고 화랑대 생명공학과라는 두 가지 단서가 있다면 나를 잡기 위한 그물을 펼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단서 자체를 어떻게 찾았는가가 항상 의문점이였는데 결국 블루아주 영감에게 VOT 온라인 내에서의 내 정체를 밝힌 것이 화근이였던가. 그 당시에는 설마하니 건스미스 율리시안이 인공지능을 대타로 지휘전선에 보낼줄 몰랐기에 방심한 탓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B급 악당처럼 주요 기밀을 나불거린 셈이다.

"아크리퍼 네 이놈 거기 있나! 쉬찌엔의 급보를 받자마자 우리 십이지천회가 난징성 전체에 천라지망을 펼쳤으니 하늘로 솟지 않은 이상에야 네 놈이 있을 곳은 영빈관 밖에 없겠지. 우리 십이지천의 형제들 중 다섯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도망치지않고 버젓이 영빈관에 머문 네 놈의 대담함은 칭찬해주마.

그러나 형제들이 흘린 피는 오직 네놈의 피로만 씻을 수 있으니, 여기있는 수천의 십이지천 교도들 앞에서 천명하건데 내일 동이 트기전에 아크리퍼 네놈의 목을 베어 죽은 십이지천 형제들의 영전 앞에 효수하리라."

아마 사자후의 일종으로 추정되는 왕루옌의 목소리가 영빈관 곳곳의 유리창을 뒤흔들었다. 도대체 몇대일인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원을 끌고 온 주제에 저렇게 당당할 수 있다니 안본 사이에 매드독스도 엔간히 얼굴이 두꺼워진 모양이다.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에 탑승한다면 얼마든지 하늘로 솟을 재주가 있는 나였지만 더 이상 이 지구라는 행성에 후환을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라도 왕루옌과 정면대결을 펼치기로 했다. 물론 정면대결이라고 해서 정정당당한 대결이 되지는 않겠지만.

"고스트 슈트를 착용한 조장을 중심으로 대형을 갖춰서 모두 영빈관으로 진격하라. 아크리퍼의 몸에 생채기 하나라도 내는 자가 있다면 십이신장의 문신은 물론 중급 풍수지를 내려 새로운 십이지천의 간부로 삼겠다!"

십이지천회 교도들은 뒷골목 잡배처럼 우르르 몰려오지 않았다. 팬텀 슈트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지만 저 정장남 떼거리에서 확연하게 눈에 띄는 고스트 슈트를 착용한 이의 지휘아래 마치 군대처럼 절도 있게 영빈관으로 향했다.

나는 창문가에서 그들이 영빈관에 입장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쿤메이의 입술에 가볍게 쪽하고 입을 맞춘 뒤 그들을 맞이하러 팬트하우스를 나섰다. 굉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영빈관이였지만 수천에 이르는 조직원들이 작정하고 포위해 들어온다고 산정했을때 대충 발걸음 닫는대로 가다보면 만나겠지.

아니나 다를까 몇층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십이지천 교도들이 무서운 기세로 호텔방문을 일일이 열어재끼며 CLEAR! 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고스트 슈트를 착용한 이는 그걸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받아적는걸 보아하니 총기 대신에 쇠파이프를 들었을뿐 특수부대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이 병신들아 나 여깄으니까 삽질하지말고 빨리 쳐올라와!"

사자후를 사용한건 아니였지만 윗층계단에서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쩌렁쩌랑 목소리로 내 위치를 공개하자 십이지천의 교도들이 약속이나 한것처럼 고개를 돌린다. 너무 대놓고 모습을 드러낸터라 함정인줄 알고 망설이는 조장도 있었지만 이내 출세욕심에 눈이 뒤집힌 다른 조장을 따라 개떼처럼 몰려왔다.

다른 장소에 있는 조장들에게도 위치가 공유됐는지 마치 영빈관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것처럼 우르르탕탕 흔들린다. 제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미친듯이 몰려오는 십이지천 교도들을 비웃으며 나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어디한번 죽음의 무도회를 시작해 볼까?

이매망량(魑魅魍魎) 제 2형 악령천인대(Expedition of the Evil Thousand)

다수 대 다수의 전투에서 강령술사를 강자로 만드는 것은 비단 죽음을 불사하는 언데드 수하들만 있는것은 아니였다. 육십번대 강령술식 빙의(Possession)는 소위 내부의 적이라 불리우는 변수를 유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닌 술식이였으니, 이 술식 덕분에 강령술사는 다수 대 다수 싸움에서 절대불변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악령천인대가 빙의 대상의 혼백을 제압할 경우 그 순간부터 십이지천 교도는 아군을 무차별로 공격하는 망나니로 재탄생하는 바. 이렇게 협소한 공간에서 적군이 밀집해 있는 전장에서는 이매망량 천기도 필요없이 백기만으로 수천명의 적들을 요리할 수 있으리라.

사악한 약탈자들이여 적들의 몸을 찬탈하라! A 트리플 플러스에 이르는 영력이 악령천인대의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증오를 일순 억누르고 십이지천 교도들에게 빙의케 했다. 그리고 시작된 아비규환의 현장은 아무리 잘 훈련된 특수부대라 한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였다.

갑자기 옆구리를 회칼로 치고들어오는 동료 때문에 내장을 흘러내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야구 방망이로 자신의 정수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동료를 저지하기 위해 먼저 선수를 칠 수 밖에 었었던 이도 있었다. 발을 헛디뎌 혼란에 휩싸인 동료들의 발에 짓밟혀 압사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았으니 영빈관은 지금 지옥이 따로 없었다.

"갑자기 왜 나를 찌른거야 이 시발새끼야!"

"모두 진정하고 대열을 갖춰... 어어어억!"

"여기서 도망쳐야돼! 비켜, 비키란 말이야!"

한때는 십이지천회라는 이름 아래 호형호제했던 이들이 불구지대천의 원수로 변모한 것은 한순간의 일이였다. 그 아수라장에서도 악착같이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이들도 있었으니 대게는 고스트 슈트를 착용한 자들이였다.

꼴에 조장이라고 제법 견고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악령천인대가 아닌 일반 이매망량들을 내 의지아래에 뭉쳐 거대한 부처님 손바닥을 형상화한 뒤, 모기를 때려잡듯이 그들을 벽에 쳐박았다.

고스트 슈트라고 해봤자 소총에 한해서 뛰어난 방탄성을 지닌 섬유덩어리였기에 그들은 내장과 피를 토해내며 벽에서 흘러내릴 뿐, 내게 생채기는 커녕 변변찮은 공격조차 못해보고 죽어나갔다. 이대로라면 한시진도 안가서 모든 십이지천 교도들을 섬멸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상대는 어찌됐든 지성체였고 무전수단까지 지니고 있던터라 방심은 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던 십이지천 교도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팬트하우스의 창문가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교도들이 도열한 모습을 목격했기에 나는 이게 끝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쪽에서 안오면 내가 가면 그만이지."

나는 완전히 피바다가 된 영빈관의 복도를 거닐다가 목이 꺾여져 죽어 있는 조장의 품에서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요새 스마트폰으로 못하는게 없다보니까 이렇게 실제 전투에 무전기 대용으로 투입한 모양인데 영 아니올시다 였다.

이렇게나 적에게 접근성이 높은 통신기기를 사용해서야 자기네들이 뭘 하는 뻔히 노출되지 않는가? GPS 장치를 사용한것으로 보이는 작전수행어플을 통해 각각의 조장이 있는 위치를 확인한 나는 십이지천의 교도들이 영빈관의 로비로 모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 이번 작전을 수립한 매드독스 왕루옌의 목표는 조직원들이라는 소모품으로 계속해서 밀어넣어 조금이라도 나를 지치게 만들 심산이였을터. 하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거의 수백명에 달하는 조직원들이 죽어나가자 어쩔 수 없이 후퇴를 선택한 거겠지.

즉 내가 가지않으면 마땅한 대안이 나오기전까지 저들은 로비에서 대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전투를 마음 먹은 내게 그런 눈치싸움은 바라는 바가 아니였기에 나는 로비로 향했다. 왕루옌 그년은 어떻게든 조직원들로 내 힘을 빼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예의상 나도 숨겨진 카드 한장은 꺼내야겠지.

"기야스 조금 있다 내가 내려가면 멧돼지 좀비들 풀 준비해."

-함장령 수리했습니다. 격납고 문이 열릴때 일시적으로 보호색 모드가 해제될 수 있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어. 지깟놈들이 기야스의 존재를 눈치채봤자 어쩌겠어? 항공모함을 끌고 올거야 어쩔거야. 뭐 실제로 끌고온다해도 주포 피스메이커Ⅰ를 사용하면 격파할 수 있지 않겠어?"

-그건 그렇습니다. 현재 지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그 어떤 에어 크래프트로도 기야스를 당해낼 수 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멧돼지 좀비들이 땅에 내려설때 잘 보조해주기나 해. 아무래도 신체적 결함이 있는 애들로만 언데드로 만들어서 그런지 걷는것조차 불편한 애들도 있으니까."

VOT 단말기를 통한 기야스함과의 통신을 끝낸 나는 유유자적한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빙의된 동료의 공격을 피하려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뒤져버린 교도를 발로 쳐내고 L 문자가 새겨진 문자를 누르니 이상없이 작동한다.

설마하니 적인 내가 태평하게 엘리베이터나 이용할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멀쩡하게 둔 모양이다. 3층, 2층, 1층. 투명 엘리베이터였던 탓에 로비가 가까워 질 수 록 수많은 시선이 내게 꽃히는 것이 느껴진다.

개중에는 우지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교도들도 있었기에 적잖이 흥분이 되었다. 아까 펜트하우스에서 내려왔을때는 근접무기를 든 자밖에 없어 피해가 수백에 그쳤지만 우지기관단총을 소지한 교도에게 악령천인대를 빙의시키면... 크으 생각만해도 짜릿하군!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어딜가나 참을성 없는 인간은 존재했으니 엘리베이터가 로비로 미처 내려오기도 전에 총알세례가 비오듯이 퍼부어졌다. 잠시 딴 생각을 하다 자세가 무너진 나는 밑바닥으로 곤두박질한 엘리베이터 문을 이매망량을 집약시켜 강제로 열어버렸다.

"안녕, 친구들. 환영인사가 조금 거칠잖아. 히히힠. 그럼 죽음의 무도 제 2막을 시작해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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