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74화 (17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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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좋았냐?"

"뭐? 좋았냐고? 발정난 짐승처럼 달려들어서 멋대로 쑤컹쑤컹 해놓고는 좋았냐고? 이 지구 아니 우주에 다시없을 천하의 개새끼야!"

"안좋아면 안좋았다고 하지 뭘 그렇게 열을 내? 뭐 어쨌든 이걸로 네 여동생의 목숨은 일주일 연장된 셈이군."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샤오밍은 살려주는거 아니였어? 일주일 연장이라니 그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커억!"

나는 계속해서 종알종알 거리는 쿤메이의 목젖을 움켜쥐고 살벌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갖는다. 나는 이 단순하지만 명쾌한 명제를 부정하는 놈들에게는 그 어떤 자비도 베풀 생각이 없었다.

"쿤메이 내가 하하호호 웃어주니까 호구로 보여? 우리 잘 생각해보자고. 너는 조직내에서 작전을 발의할 정도로 똑똑한 년이니까 이해가 빠르겠지. 너와 그 잘난 십이지천의 형제들은 내 목숨을 노리려 했었지. 아니 현재진행중이던가? 뭐 결국 실패하게 될테지만. 아무튼 살인 미수라고해서 죄가 경감되는건 법정위에서 뿐이야! 하지만 여긴 아크리퍼가 있는 땅이라고!

무슨 소린지 알겠어? 아크리퍼가 있는 땅에선 아크리퍼가 법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알량한 목숨으로는 나를 죽이려한 죗값을 절대 치룰 수 없지. 그러니까 그냥 닥치고 내가 하라는대로 한 다음에 얌전히 기도나 하란 말이야. 내가 자비를 베풀기를. 그나마 쿤메이 네년이 반반한 계집애라 이렇게 경고라도 해주는거지 남자새끼였으면 바로 목이 날아갔다는걸 기억해."

"알겠... 습니다."

"알았으면 지금 당장 생명공학과 애들이 제대로 출국했는지 확인하고 날잡으러 온다는 사냥개 새끼들이 어느 방에서 묶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확인해서 보고해."

찢어진 비단옷을 주섬주섬 주어서 갖춰입은 쿤메이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그리고 그제서야 모습을 드러낸 륭 사부는 다소 침울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륭 사부의 기준에선 쿤메이를 겁탈한것이 탐탁지 않았겠지.

"제가 비비앙을 건들였을때는 불같이 화를 내시더니 이번엔 용캐 가만히 계셨네요?"

"그때는 전쟁 후였고 지금은 전쟁 중이니까. 본녀도 일국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마당에 혼자 깨끗한 척 하고 싶지는 않아. 다만 욕망에 몸을 맡겨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마저 저버리기 시작한다면 인간의 탈을 쓴 마물로 추락하는 것은 한 순간이지. 본녀는 그것을 경계하는 것 뿐이야."

"하하 걱정마세요. 저도 그렇게까지 될 생각은 없으니까. 설사 그렇게 된다해도 륭 사부가 필살의 꿀밤때리기로 정신차리게 해주면 되는거 아닙니까?"

"글쌔. 지금이라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연자가 강해지는 속도는 부족 제일의 권사였던 나를 가볍게 추월하고 있어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야."

"왠일로 제 얼굴에 금칠을 다 하시네요."

"금칠 같은것이 아니다. 연자여 일전에 독룡을 상대하느라 권묘결 연축을 사용한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때 용조송에 의해 봉인 된 다리가 지금 어떻게 됐지?"

"어라? 그러고 보니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군요. 한 4개월 밖에 안지난 것 같은데 신기하네."

"사실 1년이라고 하는 재사용 대기 시간은 표준에 불과할뿐 타고는 선천지기가 뛰어난 경우 발산되는 잉여 생명력 또한 많기 때문에 회복되는 시간은 단축되기 마련이지. 본녀의 경우 권묘결 연축을 사용해도 8개월이면 회복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부족 역사상 최고의 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아마 덴클레오의 생명석이란 영약 비스므리한걸 흡수해서 그런걸겁니다. 그런데 새삼스레 그 이야기를 꺼내시는 이유가 뭐죠?"

바로 앞에서 빤히 보고 있는데도 알몸으로 침대에 턱을 괸채로 누워있던 나를 꾸짖듯 륭 사부가 일권을 내질렀다.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나를 향한 공격적인 의사가 없다는걸 깨닫고 잠자코 지켜보니 륭 사부는 거리싸움꾼2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필살기를 차례차례 재현하고 있었다.

단순히 동작만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였지만 륭 사부는 장풍과 같은 기의 발현까지 그대로 펼쳐내 보이고 있었다. 한참을 넋 놓고 보고 있으려니 팬트 하우스는 각종 필살기의 여파로 침대만 제외하고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진정한 마샬아츠 더 비타를 전수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예? 설마 방금 펼치신 기술이 마샬아츠 더 비타라고 말씀하고 싶으신건가요? 하지만 밴쉬라는 존재가 언데드중에서도 무척이나 특수한 영역에 있다고 해도 죽은 자가 생명력을 사용할 수 는..."

"물론 방금 내가 펼친 기술들은 생명력이 아닌 영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지. 4개월이란 시간 동안 본녀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음이야."

"정말 굉장하시군요. 그 잠깐 사이에 한번도 사용해본적도 느껴본적도 없는 힘을 이렇게나 자유롭게 다루시다니. 진짜 괴물은 륭 사부였던것 아닙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 영력이란 힘이 점점 본녀가 살아생전 사용했던 생명력의 성질과 닮아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야. 어쨌든 본녀가 하고 싶은 말은 마샬아츠 더 비타라고 하는 힘의 응용력이 무궁무진 하다는 것이지. 엄밀히 따졌을때 권묘결은 일축과 연축이라는 2가지 기술을 강제로 연자의 몸에 심어버리는 주술에 가까운 것.

시간이 부족해 그런 수단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연자에 의해 본녀가 부활했으니 마샬아츠 더 비타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을것 같군. 다만 그전에 연자가 한가지만 약속해줬으면 좋겠네."

"그 한가지가 뭡니까?"

"연자여 정의의 사도까지는 바라지도 않네. 수라의 길에 빠지지 않은채로 중도의 길을 걸을 수 있겠나?"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게 질문을 건네는 밴쉬 그래플러 륭 사부를 보고 있자니 나는 밴쉬 세이지 누시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에보니 메이든에는 주군의 날개가 되어줄 불세출의 인재가 많습니다. 때로는 패왕이 되어 패도의 길을 걷는 자들을 굴복시키시고 때로는 덕왕이 되어 정도의 길을 걷는 자들을 감화시키십쇼. 양립될 수 없는 두길을 동시에 걷다보면 만물이 주군 앞에 고개를 조아릴것입니다.'

누시아가 건넸던 오글거리는 문장들을 떠올리자 팔뚝에 닭살이 다 돋는 기분이다. 분명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밴쉬라고 하는 연결고리가 수면밑에서 부끄러운 기억을 건져올렸군.

"륭 사부 저는 강해질 수 있다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마샬아츠 더 비타를 배울 수 있는 약아빠진 인간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제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 진심을 토해낼 수 밖에 없겠군요. 제가 갈 길은 정의의 사도가 가는 길도 아니고 수라가 가는 길도 아닙니다. 하물며 중도의 길은 더더욱 아니지요.

허심탄회하게 말하자면 저는 그냥 꼴리는데로 가는것 뿐입니다. 그 길은 우연히 수라의 길과 교차할 수 도 드물지만 정의의 사도가 가는 길과 맞물릴 수 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중도의 길은 아닙니다. 만약 륭 사부가 제게 진짜 마샬아츠 더 비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한들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강해져서 제가 꼴리는 길을 갈뿐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 됐든 박살낼 생각입니다."

"그것이 연자의 대답인가. 왕이었던 본녀로서는 수긍할 수 없는 대답이군. 하지만... 무인이였던 본녀로서는 엄지를 치켜세울 수 밖에 없을만큼 멋진 대답이였다. 가서 연자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치우고 오게. 본녀는 꿀밤때리기 만으로 연자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비전을 준비해 놓고 있겠네."

"후후 어련하실까요."

*    *    *    *

륭 사부와의 담화를 끝낸 뒤 서둘러 의복을 갖춰입은 나는 한국에서 부터 나를 따라온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함에 올랐다. 지금부터 폭주기관차처럼 십이지천회의 형제들을 연쇄격파하기 위해서는 나도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패브릭 아케인 슈트부터 챙겨 입은 나는 전생유적에서 얻은 귀물인 폰 글라디우스를 개조해서 만든 화이트 탈론의 마력 잔량을 체크했다. 검기를 사용하는 자들을 상대로 검기만큼 좋은것이 또 있을까?

비록 인공 검기라고 하나 화이트 탈론의 예리함은 숙련된 무사의 그것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개인무장이 완료된 후에는 기갑교룡 골리앗과 아쳐가 언제든 밖으로 출격할 수 있게 격납고 최전방에 배치했다.

그러나 이 모든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메카로이드 고블린의 제조가능 목록에서 전투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아보기로 했다. 워낙 평화적 성향이 짙었던 아케인족이였기에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힐만한 무기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섬광탄이나 연막탄같은 비살상용 물품은 즉시 제작이 가능했다.

"뭐 사자는 토끼를 잡을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니까."

섬광탄은 말할것도 없고 적외선 시야모드가 가능한 아케인 슈트와 함께라면 연막탄이 큰 도움이 되리라. 지구의 것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아케인 섬광탄의 경우 사람을 실명시킬 수 있는 수준이였지만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였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영빈관으로 돌아왔을때는 이제 막 숙객들이 아침식사를 마칠쯤이였다. 덩달아 배가 고파진 나는 팬트하우스까지 은신 모드로 복귀한 뒤 쿤메이의 복귀를 기다릴겸 냉장고에서 잡다한 주전부리를 꺼내 먹어치웠다.

그리고 마침내 쿤메이가 펜트하우스로 돌아왔을때 나는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지구의 본체로 제대로된 전투를 치룰 생각을 하니 절로 흥분이 된 모양이였다. 처음에는 흑색 슈트를 입은 나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전투태세를 갖추었던 쿤메이가 입안 한가득 주전부리를 씹고있던 내 얼굴을 보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고서를 건넸다.

"당신을 사냥하러온 십이지천의 형제 4명이 묶게될 방의 위치입니다. 그리고 생명공학과 학생들은 무사히 한국으로 귀국했다는군요. 우레라는 친구가 계속해서 당신의 안부를 묻느라 곤란했습니다만."

"고생했어. 그러면 1시간동안 여기서 꽃단장이나 하고 있어. 금방 해치우고와서 네년 보지를 뜨겁게 달궈줄테니까."

"쉽, 쉽지 않을 겁니다. 닭, 개, 뱀, 말의 문신을 하사받은 십이지천의 형제들은 두목과 견소룡을 제외하면 가장 전투에 특화됬다는 평가를 받는 자들이니까."

"크크킄. 지금 걱정해주는거야?"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단지 내 동생 샤오밍의 안부가 걱정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전투에 관해서는 그냥 신경 꺼. 샤오밍의 명줄은 쿤메이 네년이 얼마나 현란한 테크닉으로 내 주니어를 기쁘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팬트하우스의 문을 거칠게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은신 모듈을 재활성화한 뒤 미리 준비해두었던 룸서비스용 이동식 테이블을 끌고 사냥개들이 묶고 있는 개집으로 향했다.

남들이 보면 폴터가이스트 현상인줄 알고 기겁하겠지만 호텔 내에서 미래지향적인 흑색슈트를 입고 있는 모습을 틀키는것 보다야 나았다. 마침내 개집에 도착한 나는 정중하게 개집문을 두두리고 은신 모듈을 해제했다.

은신 모듈을 활성화 한 상태에서 습격을 하는것도 좋겠지만 어차피 협소한 공간에서 연막탄까지 터트리는 마당에 은신 모드에 쓰이는 에너지를 쉴드에 몰아준다는 것이 내 전략이였다. 정중한 두들김에도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나는 헛기침을 두어번 한뒤 쿤메이의 이름을 팔아보기로 했다.

"쿤메이님께서 보내신 룸서비스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참나 내가 말했잖아. 쿤메이가 보냈을거라고. 거참 의심도 많은 양반들이셔. 어디 뭐가왔는지 한번 볼까..."

"섬광탄 만두 플러스 연막탄 만두 세트입니다."

무슨 닭벼슬 마냥 머리 한가운데를 붉은색으로 염색한 자가 꿍시렁 거리며 방문을 열자마자 나는 그안으로 접시안에 담겨있던 섬광탄과 연막탄 열몇개를 한꺼번에 밀어넣었다. 아케인 종족이 만든 문물답게 굳이 안전고리를 빼거나 할 필요도 없이 음성인식으로 작동하는 놈들이였고 키워드는 다름 아닌 만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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