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9 / 0316 ----------------------------------------------
vol.5 Oxogan The Twelve Sky
우레가 의욕에 불타 눈을 빛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네임드 보스 몬스터를 잡아 폭업을 한다 말이 쉽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일단 네임드 보스 몬스터는 커몬 보스 몬스터처럼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날 수 가 없었다.
네임드 보스 몬스터를 당해낼 수 있는가는 둘째치고 그 흔적을 찾는것 부터가 고난이도 미션이였던 것이다. 물론 월영공 듀리스처럼 자신의 근거지를 마련해두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도 있었지만 그 경우 길드 단위로 레이드를 시도했을때에만 보스의 얼굴이나 볼 수 있을까?
직접 부딪혀보기 전에는 공부보다 게임이 어렵다는걸 실감하기 어려웠기에 나는 구태여 자세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이래저래 우레의 앞길에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정된 셈. 우레는 스마트폰으로 VOT 관련 자료찾기 삼매경에 빠졋기에 나는 더 이상의 조언은 하지않고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기갑교룡을 완성시키기 위해 밤낮을 쉬지않고 달려온지 얼마안돼서 스케일 글래스를 전신의 뼈에 코팅한다고 무리를 했더니 알게모르게 피로가 쌓인 느낌이였다. 모름지기 사람이 쉬지않고 노력하는것만이 만사는 아닌지라 이번 MT가 나름 괜찮은 인생의 휴식기가 되리라.
* * * *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때 난징 공항행 여객기 이륙까지는 2시간이나 여유가 있었다. 사전에 티켓팅을 끝낸 쿤메이양이 나눠준 공항 티켓을 받아든 학우들이 짐을 붙이기 위해 공항 검색대로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빈손이였던 나는 그 틈을 타 아야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야사 크로스데일입니다. 사건님이십니까?
"어 나야. 다른게 아니라 우연히 우레한테서 듣게됐는데 크로스데일 한국지점에서 1000레벨 이상의 VOT 온라인 유저를 모집중이라메?"
-예, 맞습니다. 미리 상의드리지않고 멋대로 일을 진행시켜서 죄송합니다. 대외적으로 골치아픈 일들이 많아져서 저도 정신이 없었던것 같습니다.
"아니 뭐 딱히 나무랄려고 전화한건 아니고 그 밀러 캠밸이였던가? 네 동창이 있는 SSS로 부터 받은 싸이킥 능력 훈련 프로그램을 그 실험에 접목하면 좀 더 성과를 낼 수 있지않을까 싶어서 말이지."
-엔지씨야 원래 천외천은 아니라고 해도 위대한 탐험가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의 유저였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밀러의 경우 레벨 1에 불과한 주제에 초능력 비스무리한 걸 사용해서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SSS에서 받은 훈련 프로그램때문이였던 거군요. 확실히 그런게 있다면 VOT의 이적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하지만 훈련 데이터를 넘기기전에 그 피실험자들한테 제대로된 목줄을 채울 수 있는지 여부부터 확인하고 싶은데. 본 마스크 보어처럼 초음파로 행동패턴을 조절할 순 없을거 아냐."
-월급 천만원에 VOT 내에서 연구가치가 있는 뭔가를 발견하면 추가수당을 줄 계획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고 하는 목줄만한것이 없지요. 노예들이 자기 스스로 목줄을 벗는것을 거부하니까요.
아야사의 말에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었다. VOT 유저라고 해서 모두 돈을 잘버는게 아닌지라 1000만원이란 월급은 1000레벨 유저들에게도 달콤한 제안이였으니까. 나만 하더라도 VOT 온라인에서 벌어들인 수입을 다시 캐릭터에 재투자 하느라 궁핍한 살림살이를 이어가지 않았던가?
다만 머리 검은 짐승은 의심하고 보자는게 모토인 내게 돈이라고 하는 목줄은 신뢰할 수 없는 수단이였다. 만약 싸이킥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한 피실험자중 한명이 더 많은 돈을 제시한 다른 단체에 매수당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밀러 캠밸이나 앤지 민슨의 전투력을 고려했을때 그닥 위협적이진 않겠지만 내가 고생해서 얻은 전리품을 다른이에게 뺐긴다는 상상을 하는것만으로 짜증이 솟구친다. VOT 온라인 시절부터 그런 형태의 스틸을 병적으로 싫어했던 나는 아야사에게 차선책을 제시했다."잠깐 생각이 바꼈어. 그 1000레벨 VOT 유저들한테는 원래 아야사 네가 하려고 했던 실험을 하도록 해. 대신에 내가 준 싸이킥 훈련 프로그램은 오직 너만 시험해 보는걸로 하지."
-저 혼자만 말입니까? 하지만 표본값이 극단적으로 적으면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걸 사건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반론은 용납치 않는다. 내 말대로 해."
-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주제넘은 발언을.
"아 맞다 그리고 나 이번에 중국으로 4박 5일동안 MT간다. 해외로밍 신청같은거 안해놨으니까 할말 있으면 스마트 톡으로 해."
-예? 설마 이번에 생명공학과 주체로 계획된 MT에 따라가시는겁니까?
"가끔은 나한테도 건전한 기분전환이 필요할거 같아서 말이야. 아야사 너랑 하는 불건전한 놀이 말고."
-사건님 중국은... 조금 위험할 수 도 있습니다.
아야사가 자뭇 심각한 목소리로 내게 경고해왔다. 중국이 워낙 땅떵이도 넓고 사람도 많다보니 한국처럼 치안이 좋지못하다는건 기정사실. 장기밀매니 새우잡이노예니 하는 흉흉한 인터넷 루머의 본고장이기도 하니까 아야사가 걱정하는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런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에서나 그런거고 천인의 이매망량과 삼인의 이매망량 백부장을 부리는 죽음의 군주에게 위험이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에서 내 힘을 목격한 아야사가 나를 걱정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나는 잠자코 아야사가 말을 잇는것을 기다렸다.
-인구수대비 천외천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한국이지만 그냥 천외천 유저 자체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곳이 바로 중국입니다.
"그거야 인구수가 많으니 당연한 일이지."
-중국의 천외천 유저들이 인해전술을 펼친다한들 사건님을 당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천외천 유저와 관련된 사건에 취하고 있는 태도입니다. 일전에 예비군 소집령이 떨어졌을때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천외천 유저 한명이 같은 예비군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죠?
"알다마다 내가 그 사건현장에 직접 있었으니까. GFT인지 머시기가 출동해서 그놈을 사살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계속해서 줄초상 치렸을걸?"
-만약 그 사건이 중국에서 벌어졌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겁니다. 중국정부는 자국의 천외천 유저들을 포섭하기 위해 극단적인 정책을 피고 있어요. 민간인 희생자가 나와도 공안들이 눈감아주는것은 물론이거니와 오히려 천외천 유저에게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를 제시하는거죠. 범법행위를 저지른 천외천 유저를 밀어내는게 아니라 특권층으로 끌어당겨서 국력향상을 꿰하고 있는겁니다.
"그 말인 즉슨 여차해서 중국 천외천 유저들과 충돌이 생기면 중국정부와 적대시 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도 있는 말인가?"
-예... 아무리 사건님이 강하다고 해도 그건 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흐음 그 말을 듣고보니 내가 조금 안일했던것 같군. 지금 당장 시스트린 보고 부띠크 문닫고 륭사부 대신 아야사 너를 호위 하라고해. 그리고 륭사부한테는 지금 당장 내가 있는곳으로 달려오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내 지랄맞은 성격때문에 아야사 네가 걱정이 많은 모양인데 뭐 나도 놀러가는거지 싸우러가는건 아니니까 가급적 충돌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 넓은 대륙에서 중국쪽 천외천 유저를 만난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럼 이만 끊는다."
아야사와 통화를 마친 나는 왼팔의 VOT 단말기를 이용해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함이 나를 호밍하도록 설정했다. 사실 기야스의 스피드면 한국에 정차시켜놔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10분도 안돼서 달려올 수 있겠지만 미리 대기시켜서 나쁠건 없지 않겠는가?
* * * *
밴쉬 그래플러 륭 사부는 영혼과 육신의 경계에 서있는 오묘한 존재라 여러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째 일단 한창 출근때의 도로를 유체화 상태로 질주해 서울과 인천 사이를 30분만에 주파할 수 있었고, 둘째 일반인에게 보이지 않았기에 따로 공항티켓을 끊을 것 없이 내 옆에 붙어있으면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다라는 것.
시스트린 대신 륭 사부를 부른것은 바로 이러한 이점때문이였으니 자신이 짬밥이 한참 높은데 왜 륭 사부를 중국여행에 데려갔냐는 시스트린의 투정정도는 감수해야 하리라. 이미 기야스함에 뻔질나게 드다든터라 별다른 켤쳐쇼크를 받지않고 침착한 륭사부를 옆에두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뜨니 어느새 착륙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세상이 참 좋아져서 화랑대에서 여객기에 탑승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는데 이륙 후 난징 공항에 도착하는데 3시간이 채 걸리지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여독이 쌓일 겨를도 없어 하이텐션으로 공항을 나선 생명공학과 학우들은 쿤메이가 미리 준비한 관광버스에 올라타 한참을 달려 영빈관 호텔에 도착할때까지 지친기색 하나 보이지않았다.
"조금 늦었지만 모두 중국에 오신걸 환영해요. 여기가 저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호텔인 영빈관이에요. 그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받은 은혜를 되갚기 위해 모신거니까 아무쪼록 부담없이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와 대박! 이게 5성급 호텔의 위엄인가?"
"이건 거의 종합 휴양지 느낌인데 4박 5일동안 여기서만 놀아도 되겠다."
"중국답게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네."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영빈관을 단순 숙박시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생명공학과 학우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쏟아낼 수 밖에 없었다. 말마따나 영빈관은 수영장은 필두로 각종 오락시설을 겸비한 복합 리조트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애들아 일단 짐부터 풀고 마저 구경하자. 여기서 계속 입벌리고 서서 감탄만 할거야? 방배정만 끝나면 개인시간 충분히 있을거니까 어서 움직여. 그리고 10시 30분에는 레크레이션 활동 있으니까 꼭 참가하고."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미리 정해진 조별로 출입카드로 나눠드릴게요. 그리고 짐은 벨보이들한테 맡기시면 방까지 가져다줄겁니다."
모두가 넋을 잃고 영빈관의 외관을 바라만 보고 있을때 우레가 나서서 주위를 환기시켜 일행을 이끌기 시작했다. 과연 학생회장이란 직분은 폼으로 가지고 있는게 아닌 모양이다. 쿤메이양을 따라 로비안으로 들어서니 내관 또한 외관 못지않게 화려한게 마치 황제가 사는 궁에 입궐한 기분이였다.
정갈한 복장을 입은 벨보이들이 일렬로 서서 대기중인지라 그런 착각은 오히려 가중되었다. 내 담당의 벨보이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내게 짐이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내게 출입카드를 건넸다. 그 뒤 어설픈 한국말로 '안내해 드릴까요?'라고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손사례를 치며 거절했다.
로비 중앙에 커다란 약도가 있어 바보가 아니라면 충분히 자기방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다른 학우들과 다르게 나 혼자 스위트 룸에 독실을 쓴다는 점이랄까? 내가 딱히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고 우레말고는 딱히 안면이 있는 학우가 있는것도 아니였기에 적절한 조치라고 보여졌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쿤메이에게 잘해준건 내가 아니라 다른 생명공학과 학우였으니 어찌보면 나는 꼽사리로 놀러온 사람이 아닌가. 나는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륭 사부를 이끌고 서둘러 305호로 향했다. 어디한번 내 자취방 평수만한 침대에 누워서 뒹굴어 보자!
"륭 사부 방에 들어가면 모습을 드러내도 됩니다."
"그래? 안그래도 그림자처럼 연자의 곁을 따라다니느라 많이 답답했는데 잘됐군. 그건 그렇고 이 곳은 내 왕국의 성만큼이나 화려한 공간 같던데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건가?"
"돈만 있다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돈이 곧 권력인 세상이라서 말이죠. 이 지구라는 곳은. 돈만 있다면 황제도 부럽지않을 생활을 할 수 있답니다. 륭 사부도 이번 기회에 저랑 같이 신나게 4박 5일동안 즐기다가 돌아갑시다."
"하지만 연자는 굉장히 궁핍해 보이는 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아야사라고 하는 처자야 매우 부유한 상인처럼 보이긴 했지만."
"짜라라란! 여기 이 빛나는 황금 카드 보이세요? 이게 비자카드라고 해서 무한한 부가 잠들어 있는 아티팩트랍니다. 이것만 있으면 돈걱정은 안해도 되니까 륭사부도 호위역이라고 해서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인생을 즐기세요. 평생 일광욕만 하려고 부활한거 아니잖아요?"
"사제관계를 떠나서 연자는 나의 주인이니 그 말을 따르도록하지. 하지만 이 세상의 유흥거리를 내가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