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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처음에는 인간의 주요급소를 보호하는 뼈대인 두개골과 갈비뼈를 블루아주의 유작인 스케일 글래스로 코팅하는 수준에서 만족했다. 하지만 연구를 거듭할 수 록 스케일 글래스는 놀라운 내구성을 보여줘 독룡 팔타로스와의 싸움에서 획득한 가장 값진 전리품이라고 해도좋을 정도였다.
하여 나는 치아를 포함한 전신의 뼈를 모두 스케일 글래스로 코팅하기로 작정했다. 인체의 골격을 구성하는 350개의 뼈마디를 일일이 교체하려 했다면 1년이라는 시간도 부족했을것이고 독룡 팔타로스를 보호하던 거대시험관에서 스케일 글래스 조각들을 챙겨두지 않았다면 USB의 제조법을 연구하느라 1년이 또 결렸겠지만,
일련의 작업은 순풍을 만난 쾌속선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어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정말로 길가의 돌도 씹어먹을 이빨을 손에 넣게된 나는 블루아주의 변이술식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강령술사의 진짜 특기는 강령술이지 변이술이 아니였다. 변이술을 주력을 사용하는 술사계열의 직업으로는 연금술사가 버젓이 있었으니, 그 중 정점에 오른자가 바로 매드알케미스트 블루아주 크로스데일이였던 것이다.
"뭐 결국 나한테 모든걸 토해놓고 개죽음 당하긴 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블루아주에게 가볍게 경의를 표하고 의무실을 나섰다. 그래봤자 능력은 없는 욕심만 많은 늙은이에서 능력은 조금 있는데 욕심만 많은 늙은이로 격상된 정도였지만. 나는 이매망량을 계단삼아 기야스에서 자취방으로 내려온 뒤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아니나 다를까 우레한테서 온 문자메시지와 부재중 통화가 합해서 열 몇건에 달하고 있었다. 당황하지않고 미리 준비했던 변명을 조리있게 말하기 위해 입을 푸려던 순간 어딘지 모르게 짜증스러운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레 이 자식 양반은 못되겠구만.
"어 우레야. 웬 일이야?"
-웬 일이라뇨? 사건 선배 지난 1주일동안 제대로 수업 안들어갔죠.
"아 진짜 이래서 바른생활청년은 안된다니까. 어차피 첫주는 수강신청변경 기간이라 교수님들이 제대로 출석 안하는거 몰라? 어차피 다음주면 바뀌니까. 그러니까 이번주 부터 성실하게 출석하면 그만이다 이거지."
-흐으음. 그래서 이번 주 부터 가을MT라는건 알고 계세요?
"무... 물론 알고 있었지."
-지금 인천공항까지 가려고 대절한 버스가 출발하기 10분전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나요? 저는 바른생활청년이라 약속시간에서 1초라도 지나면 바로 떠날 생각인데.
"지금 간다앗!"
나는 급히 지갑과 여권을 챙귄 뒤 지붕위를 뛰어넘어 날라가듯 화랑대 학생회관으로 질주했다. 하희빈처럼 우아한 움직임은 아니였으나 이매망량들이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에 비틀비틀하면서도 착실히 학생회관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 멀리서 어슴프레 대형관광버스의 실루엣이 보이자 나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태연하게 바닥에 내려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기사슴 밤비노를 닮은 중국 교환학생의 미모에 혹해서 가기로한 MT였지만 4년간의 대학생활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일 MT라고 생각하니 조금 설레는면도 없지 않았다.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 청춘을 불싸른 까닭에 MT는 커녕 그 흔한 개강파티조차 참가해본적 없는 내가 과연 과후배들과 어울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뭐 우레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려나?
"우레야 아직 약속시간 안지났지?"
"그거야 아직 5분 남긴 했는데 설마 그 차림으로 MT가시려는건 아니죠? 국내도 아니고 해외로 가는건데?"
"응? 내 차림이 어디가 어때서?"
화랑대 생명공학과 학생들의 학구열은 유달리 뜨거워서 평소에도 수수한 옷차림을 선호하는편이지만 오늘만큼은 모두 연예인마냥 세련된 코디를 보여주고 있었다. 원체 키가 크고 훈남이였던 우레는 그 중에서도 유달리 돋보여 여학우들의 시선을 독점하고 있었고,
나는 다른 의미로 시선집중을 받고 있었으니 헤진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라는 민망한 조합에 남학우들이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잘입었지.'라는 뉘앙스의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야 VOT 온라인 폐인시절의 기본복장이라 너무나 편했지만.
"혹시 여행용 캐리어에 갈아입을 옷 가지고 오신거에요?"
"아니 그런건 없다."
"그러면 제 옷을 빌려드릴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노땡스! 우레 네 옷을 빌려 입었다간 기장차이때문에 밑단을 세번은 접어 올려야 될껄? 나는 이게 편하니까 빨리 출발이나 하자. 필요한게 있으면 중국가서 사면 그만이지."
내가 지갑에서 비자카드를 들어보이며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리자 우레가 두손두발 다들었다는듯 마지막 인원체크를 한 뒤 학우들을 관광버스안으로 인도했다. 많은 여학우들이 우레의 옆자리를 손에 넣기 위해 보이지않는 암투를 벌였으나 그 영예는 가만히 있던 나에게 돌아왔다.
우레가 상담할게 있다며 나를 자연스럽게 옆자리로 이끌었던 것. 중국 교환학생 쿤메이가 여행계획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우레의 바로 건너편에 있었기에 나는 만족했다. 여학우들의 시선이 조금 따갑긴 했지만 일단 학번상으론 내가 대선배였기에 직접적인 테클은 들어 오지 않았다.
"사건 선배 졸업하면 뭐하실거에요?"
"졸업하면? 글쌔... VOT 온라인이나 다시 시작할까싶은데."
"예?! 사건 선배 그 게임 접으신거 아니였어요?"
"접다니 무슨 섭섭한 소리를 VOT 유저에게 휴식은 있어도 탈퇴는 없다고."
"진로고민때문에 사건선배를 부른건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느낌이에요. 사건 선배정도면 외국계 연구소도 노려볼 수 있지 않아요? 갑자기 왜 어렵게 끊은 게임을 다시 시작하실려는거죠? 저도 VOT만 전문으로 하는 프로게이머같은 직업이 있다고 들어본적은 있지만... 그간 사건 선배가 쌓은 커리어가 아깝잖아요."
"그러는 너야말로 학점 빠방하고 교수님들이랑 인맥도 좋으면서 무슨 진로고민이야 진로고민은. 그냥 아무 교수님한테 추천서 하나만 써달라한 다음에 대체복무 되는 연구소로 들어가면 되는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VOT에서 쌓은 업적에 비하면 꼴랑 논문 하나 케루빔에 올린건 커리어도 아니야 임마."
"누구는 그 커리어가 없어서 가고 싶은 곳으로 못가고 있다고요."
우레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탄하듯 내게 읊조렸다. 항상 명랑한 바른생활청년 모드였던 우레가 이러는 모습은 처음이였기에 나는 우레가 감정을 추스릴때까지 보채지 않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쿤메이가 귀를 쫑끗거리며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사자를 만난 아기사슴처럼 화들짝 놀란 쿤메이가 너무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MT오길 잘했어. 암 잘했고말고.
"사실 저 여름방학때 아야사 선배가 있는 크로스데일 한국 지부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크로스데일이면 블루아주 회장인지 뭐시기가 불법생체병기 실험건으로 잡혀들어가서 뒤숭숭한 곳이잖아. 일전에 예비군 소집령 떨어져서 좆뱅이친것도 다 그 회장탓이라던데 굳이 그런곳으로 갈 필요가 있어?"
"사건 선배는 천생 바깥일에는 귀닫고 사는것처럼 보였는데 알건 다알고 계시네요."
"그거야 포탈사이트 마다 메인에 큼지막하게 그 사건만 보도하는데 모를 수 가 있나.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나도 알건 다 알아 임마."
"그것도 그렇네요. 아무튼 크로스데일 한국지점에서는 실질적인 연구성과가 있는 경력자만 뽑는것 같더라구요.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이력서를 쓰려니까 과 학생회장이란 직책도 높은 학점도 다 소용없는것 같아서 자괴감이 들었다랄까."
"원래 인생이 그런거야 우레야. 내가 VOT 온라인 할때도 보스몬스터 레이드를 할라치면 공대장들이 하나같이 경력자들만 뽑아요. 장비가 아무리 좋고 레벨이 높아도 소용이 없어. 그런데 공대장들이 하나같이 경력자들만 찾으니까 경험을 쌓을 곳이 없다 이 말이야. 그렇다고 무경험자들 끌어모아서 가면 답이있나? 5분만에 전멸 안하면 다행이지."
"사건 선배는 그 VOT라는 게임 내에서도 꽤 잘나가는 편이라고 하셨자나요. 그러면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셧죠?"
"나 스스로 군단이 될 수 밖에 없었지. 왠만한 공대는 찜쪄먹을 수 있는 그런 군단말이야."
우레와 상담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과거의 감상에 젖어 흰소리를 하고 말았다. 일반인에게 일인군단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해봐야 중2병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허나 그 당시 다른 유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찼던 나에게는 꿈에서도 그릴정도의 지상과제였다.
"예? 그 말은 창업을 해야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어... 그러니까 뭐 비슷하지."
"하지만 컴퓨터 공학과 학생도 아니고 생명공학과 학생이 창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그러면 그냥 포기하고 아까 내가 말했던것처럼 교수님 추천서 받아서 대체복무 가능한 연구소로 가던가. 편한길 나두고 왜 자꾸 가시밭길로 가려고 하냐?"
"아니요. 잠깐만요. 사건 선배가 해줬던 말중에서 정답이 있었던것 같아요."
"뭐?"
"분명 크로스데일 한국지점 채용공고란에 증강현실게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 VOT 온라인 유저를 플레이중인 피실험자를 구한다는 글귀를 언뜻 본것 같아요.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는데 제가 찬밥 더운밥을 가릴처지가 아니니까 그거라도 도전해봐야겠어요. 사건 선배 고마워요. 역시 선배랑 상담해보길 잘한것 같아요."
"그... 그래."
아야사가 VOT 유저들을 모으고 있었다니 이건 나도 처음 안 사실이다. 나와 접촉하기 이전부터 한국의 천외천 유저들과 접선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했지만 하희빈때문에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꿩 대신 닭이라고 천외천 유저 대신 일반 유저들을 모은 다음 그중에서 흙속의 진주를 찾아내겠다는 심산이겠지. B플랫 엔터테이먼트의 레이디 노아처럼 천외천은 커녕 레벨 1000도 아니면서 VOT의 이적을 각성한 경우도 있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닐터였다.
다만 그 가능성이 너무 희박하다는 것이 맹정이였지만 내가 일전에 SSS(Special Security Service)로 부터 받아낸 교육 프로그램을 접목한다면 제법 성과를 낼 수 도 있었다. 물론 그것이 과연 내게 이득인 사업인가 검증하는건 별개의 문제였지만. 일단 공항에 도착하면 아야사와 좀 더 상의를 해봐야겠지.
"저 사건 선배 자꾸 귀찮게 해서 죄송한데 지금 다시 채용공고를 살펴보니까 레벨이 1000인 유저만 모집한다네요. 1000 레벨이 VOT 온라인에선 소위 만렙에 해당하는거 같은데 이거 찍기 쉬워요?"
"어느정도 요령이 있는사람은 1년이면 찍겠지만 단순 사냥 노가다로 찍을려면 10년이 걸려도 못찍어."
"10년이요!?"
"어. VOT 온라인을 다른 게임처럼 생각하면 곤란해.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부쳤을때 하는 것이 레벨업이다라는게 VOT 온라인의 모토니까. 그래서 출시당일 부터 지금까지 플레이 했는데도 999레벨에서 1000레벨을 못넘기는 유저도 있지."
"그, 그러면 혹시 6개월만에 1000레벨을 찍는 방법은 없어요? 사건 선배는 고수였다고 했으니까 꼼수같은것도 알고 있을거 아니에요?"
"우레 네 입에서 꼼수라는 말이 나올줄은 몰랐는데? 뭐 꼼수라면 꼼순데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실행이 어려워서 잘 안하는 방법이 있긴해."
"가르쳐주세요!"
"뭐 VOT 커뮤니티만 가도 알 수 있는 팁이니까 그냥 알려줄게. VOT에는 네임드 몬스터랑 커몬 몬스터 이렇게 두 종류가 있는데 쉽게 말해서 커몬 몬스터는 멍청한 인공지능이 달린 몹이고 네임드 몬스터는 사람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달린 몹이야. 그리고 이 팁의 요지는 자신과 비슷한 레벨대의 네임드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폭업을 할 수 있다라는거지. 아주 심플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룰이야. 이해했지?"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이번 MT가 끝나면 한번 시도해 봐야겠어요. VOT 캡슐도 미리 주문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