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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Oxogan The Twelve Sky
2학기 개강시즌을 맞이하여 이번에도 어김없이 우레가 나를 서포팅하기 위해 찾아왔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칠칠맞은 선배를 생명공학과 학생회장이 갓난아기마냥 업어키우는 모양이였지만.
그나마 1학기때 학점을 꽉꽉 채워들었고 졸업논문은 진즉에 통과된 상태라 2학기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남들처럼 취업걱정을 해야하는것도 아니였으니 우레의 잔소리가 여느때처럼 고깝게 들리지않는 통학길이였다.
그러다 화랑대 정문에 들어설 무렵 엊저녁 하희빈이 했던 말이 떠올라 나는 우레를 두고 김유신 동상 앞에 섰다. 대게의 동상이 그러하듯 청동석으로 이루어진 위엄어린 거체는 산성비 탓인지 여기저기 부식흔이 남아 있었다.
그것말곤 별다른 손상을 발견할 수 없어 엊저녁의 촌극에 허탈한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나는 김유신 동상의 미간에서 백원짜리 동전만한 구멍을 발견했다. 반대편 풍경이 보일정도로 뻥 뚫린 화살의 궤적을 본 순간 나는 하희빈이 말했던 부처님 손바닥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사건 선배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응?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2학기때도 1학기때처럼 잘 마무리해주세요."
여차하면 이 화살이 니 미간을 뚫어버릴 수 도 있으니 까불지 말라 이건가? 여신마켓에서 비약적인 영력향상을 꿰한 나는 하희빈이 무의식중에 불특정의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처럼 항시 이매망량의 장벽을 전신에 두를 수 있었다.
기존에 웨어러블 아케인 쉴드를 통해 소총탄 정도를 막아낼 수 있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대구경 저격총이 뒷통수를 노려도 안전빵이라는 소리였다. 하희빈의 이 발칙한 무력시위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나는 다시 우레의 뒤를 쫓았다.
만약 아바타 옥사건이였다면 앞뒤 잴 것 없이 하희빈을 죽여버리면 그만이지만 본체 김사건은 아직 무리였다. 하희빈보다 지금의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뒷처리가 골치아파지기 때문이였다.
하희빈이 수장으로 있는 백월교라고 하는 단체 나아가서 그녀가 연줄을 댄 정부인사까지 깨끗하게 밀어버려야한다는 소린데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일단 지금 당장은 타국의 천외천 유저들에 대한 대항마로 쓰기 위해서라도 하희빈을 살려두는편이 나으리라.
"우레 선배 안녕하세요."
"어 메이양 안녕하세요. 사건 선배 인사하세요. 이번 여름계절학기때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찾아온 쿤 메이양이에요."
"응? 아예, 안녕하... 헛"
하희빈의 생사에 따른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고려하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난입한 제 3자때문에 생각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요새 상위권 대학에서 유행이라면 유행인 중국인 유학생에게 겉치례 인사를 건네려던 찰나 나는 그녀의 미모를 보고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마치 아기사슴 밤비를 연상시키는 아담한 체구와 눈망울은 나 포함 뭇 남성들의 보호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니, 지금 당장 그녀를 안아들어 부비부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였다. 일단 보는 눈이 있어 가볍게 악수만 나눴지만 나중에 우레를 닥달해서 폰번이라도 저장해둬야겠군.
"그 우레선배 생명공학과 가을MT를 저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호텔로 가는건은 어떻게 됐나요?"
"아 메이양 그게 모두 긍정적이긴한데요. 숙박비는 둘째치고 비행기표값까지 메이양의 부모님께서 대납해주시는건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리고 제가 알아봤는데 메이양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영빈관이라는 곳 징쑤성에서 4개밖에 없는 5성급 호텔이라면서요? 괜히 성수기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몰려가면 영업방해가 되는건 아닌지..."
"아이참 우레 선배는 다좋은데 배려가 너무 지나치세요.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저희 부모님 밑에 돈이 숨을 못셔서 걱정인 졸부들이라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오히려 제가 처음 한국에 와서 적응 못하고 힘들어할때 같은 과동기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하니까 빨리 모셔오라고 성화세요."
"뭐 메이양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우레야 나는?"
1학기때 많은 과목을 수강하긴 했지만 정작 과행사에는 코빼기도 보이지않았던 내가 이제와서 '가을MT라는 청춘 빅 이벤트에 왜 나를 부르지않은거야!'라고 목청을 높일 수 도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조심스럽게 우레의 옆구리를 찍으며 속삭였다.
"에? 사건선배도 가을MT 가시려고요?"
"뭐 한번쯤 그런곳에 가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아서."
"생명공학과분이라면 누구든 환영이니까 기탄없이 찾아와주세요. 저는 아침 수업이 있어서 이만 먼저 실례할게요."
"네 그럼 메이양 곧 확정인원 추슬려서 연락드릴게요."
작은사슴 밤비노가 총총걸음으로 강의실 건물로 사라지는 모습을 쭈욱지켜본 나는 몇과목 안된다고 출석빼먹지말라는 잔소리를 마지막으로 우레와 갈라섰다. 수업내내 교수님 말씀은 딴전이고 쿤메이와 쿵떡쿵떡하는 상상만하다보니 어느새 하교길에 올라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제처럼 아야사를 불러서 욕구를 해소할까하다가 지구로 부터 몇억광년이나 떨어져 있을 수왕성의 한 로봇공학교수로 부터 주어진 과제가 있다는것이 떠올라 나는 급히 이매망량을 계단삼아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함에 올랐다.
여름방학이 끝나갈무렵 가까스로 완성단계에 돌입한 기갑교룡 골리앗과 아쳐였지만 우르사티는 아직도 많은 테스트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이 둘을 당장 중동의 분쟁지역으로 보낼 순 없는 노릇이였기에 내가 준비한건 다름아닌 본 마스크 보어 시체로 만들어진 언데드였다.
블루아주 크로스데일 회장을 패퇴시킨 이후에도 생체병기 연구를 꾸준히 이어나간 아야사는 4톤 트럭의 덩치를 자랑하는 본 마스크 보어 성체를 양산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실패작들 또한 양산 됐으니 폐기직전에 몰린 시체들을 내가 기야스함으로 가져와 좀비로 재활용했다는 말씀.
"기야스 내가 일전에 지목했던 모의전투장으로 가자. 그리고 기갑교룡 2기랑 멧돼지 좀비 2마리 미리 입장시켜."
-함정령 수리했습니다.
함장석에 앉아 한참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종합운동장은 될만한 크기에 인공태양이 따사롭게 비추는 흙밭이였으니, 본래는 우주내에서의 긴 항해동안 승무원의 영양상태를 개선하기위해 만들어진 인공 재배실을 내가 임의로 모의전투실로 개조한 상태였다.
아케인족들의 비 전투적 성향은 고대시절에도 마찬가지였는지 기야스 내에는 실드 유지시설이나 워프시설은 있어도 마땅히 모의전투를 벌일 장소가 없었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진짜 햇살만큼이나 따사로운 인공태양의 빛줄기를 받아 유난히 더 번쩍이는 기갑교룡의 백색거체는 그간의 고생을 보상하듯 듬직하기 그지없었다. 그에반해 거무튀튀한 시체같은 거죽에 어딘가 한쪽 다리가 불편해보이는 멧돼지 좀비는 다소 볼품없어 보이는게 사실이였다.
언데드 제작에 사용된 본 보어 마스크 성체가 본래 유전적 결함이 있는 실패작이였고, 크로스데일 한국지부의 지하에서 내가 이들을 발견했을때는 이미 어느정도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던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아야사가 애써만든 멀쩡한 본 보어 마스크 성체를 일부러 죽일 수 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기야스 지금부터 기야스함 내부에서 진행되는 첫 전투모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할거야. 한 장면도 놓치지말고 기록해두도록."
-함정령 수리했습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인공재배실의 주위에 아케인 쉴드를 발동시켜 혹시모를 함선내 손상을 방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기갑교룡 골리앗 그리고 아쳐!"
-Yes, my lord x 2
"지금까지 개고생해서 만든 보람이 있게 맘껏 날뛰어봐. 상대는 비교적 단가가 싼 영혼석으로 만든 싸구려 언데드니까 묵사발을 만들어버려도 상관없어."
그렇게 지구상에서 아니 우주에서도 전무후무할 메카언데드와 언데드간의 모의전투가 시작되었다. 멧돼지 좀비의 경우 워낙 단순한 언데드 회로와 질 낮은 영혼석을 사용한 까닭에 밑도끝도없이 [돌진]하는 명령어말고는 수행할 수 없었지만 그 주체가 4톤 트럭 덩치쯤 되니 여간 박력있는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상대는 천재 로봇공학자 우르사티가 설계한 인공지능모듈을 탑재한 메카 언데드. 기갑교룡 골리앗, 아쳐 둘 모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돌진을 피해낸 뒤 꼬리를 이용해 멧돼지 좀비의 두터운 다리를 휘감아 으스러트렸다.
굳이 에너지 웨폰을 사용할것도 없이 멧돼지 좀비의 기동성을 제거한 기갑교룡 두기는 이내 살벌한 치아력으로 멧돼지 좀비의 머리를 씹어삼켰다. 보통 생명체였다면 그걸로 게임오버였겠지만 아무리 단가가 싸도 언데드는 언데드였던지라 멧돼지 좀비 두 마리는 반격을 꿰할 수 있었다.
머리와 다리 두짝이 없는 멧돼지 두 마리가 아둥바둥거리며 날뛰는 모습이 무척이나 쓸모없어 보였으나 덩치가 깡패라고 주변땅이 흙먼지를 피우며 험하게 파이기 시작했다. 기갑교룡 아쳐는 급히 사족보행에서 사륜주행으로 모드를 변경하고 거리를 벌린 뒤 원거리 요격을 준비했고 골리앗은 아쳐를 엄호했다.
"협동이라 내 언데드 부하들한테서는 기대할 수 없는 행동패턴이로군."
물론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들이야 어엿한 지성체들이였으므로 마음먹으면 협동해서 싸울 수 도 있었지만 말그대로 이론상 가능한 일이였다.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그들이 에보니 메이든 내에서 공멸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영혼의 표식에 새겨진 제약때문일 뿐.
첫 모의전투일뿐인대도 벌써 확연하게 드러나는 메카언데드의 장점에 나는 흐뭇해하면서도 쏟아부운 비용때문에 한편으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동일한 투자비를 일반 언데드에 쏟아부었어도 이 정도는 해내지 않았을까?
그런 의구심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연이어 멧돼지 좀비 8마리를 한꺼번에 들여보냈다. 잠깐 상념에 빠진 사이 앞서들어간 두놈은 완전히 곤죽이 되어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못해도 멧돼지 좀비 32마리는 잡아줘야 투자대비 성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겠지.
* * * *
메카언데드의 첫 프로토타입인 기갑교룡 골리앗과 아쳐의 첫 모의전투 시뮬레이션을 무사하게 마친 나는 그 길로 비비앙의 엉덩이나 주무르러 갈까하다가 의무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일종의 공방처럼 사용하고 있는 의무실의 컴퓨터에는 일전에 트롤왕 리쿤다룬의 골수세포를 이식했던 작업의 데이터가 남아 있었다.
사실 더 이상의 노력을 꿰하지 않아도 지구의 김사건은 충분히 강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기연을 얻거나 혹은 자기계발을 통해 일반인의 범주에선 초인이라고 해도 될만큼 강해졌던 것이다.
[김사건의 상태창]
-던클레오의 생명석을 흡수해 생명력이 10배 증가했습니다.
-마샬아츠 더 비타 권묘결을 계승받아 특수한 기술을 쓸 수 있습니다.
-트롤왕 리쿤다룬의 골수세포를 이식받아 준수한 재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무력: C(0/128)
마력: F(0/32)
영력: A+++(384/512)
스텟포인트: 0
그러나 왼팔의 VOT(Vaccinc Of Things) 단말기가 비추는 본체 김사건의 상태창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아바타 옥사건에 비해 손색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일반인의 범주에서 강하다라는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아냐, 아냐 그렇지 않아.
역시 지구밖을 나가 우주라는 무대로 나가면 본체 김사건은 벌레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는걸 알면서도 계집질만하고 있을 수 는 없었다. 나는 일전에 블루아주를 겁박해 손에 넣은 USB에서 스케일 글래스와 관련된 자료를 복사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티타늄과 달리 스케일 글래스는 EMP와 같은 전파공격에 대한 차폐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얇은 두깨로 코팅만해도 놀라울만큼의 내구성을 지닌다는 장점이 있었다. 육십번대 변이술식 제네틱 맵핑을 이용하면 골수세포 이식보다 한결 쉽게 두개골 및 갈비뼈를 강화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