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56화 (15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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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소울리퍼 구루의 말대로 근처의 낡은 매트릭스 위에 턱하고 앉으니 무슨 최루탄이라도 터진것처럼 먼지가 피어올랐다. 콜록콜록. 뭐 어차피 내 몸덩어리도 아니고 천식에 걸려도 임시 아바타가 걸릴터, 나는 게의치않고 먼지를 한가득 들이마셨다.

"구루 청소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평소에 환기좀 하시죠."

"거절한다. 여신마켓에 주기적으로 주거지를 환기해야한다는 규칙은 없으니까. 모햄 자네는 이번 기회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법 좀 배워. 그러면 영령환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 해볼까. 일단 이건 기본적으로 인세의 물건이 아닌 저승의 물건이다."

"여신마켓에 없는 물건은 우주를 뒤져도 나오지 않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본적은 있지만 저승의 물건까지 취급할줄은 몰랐는데요."

"그거야 내가 저승 공무원 출신이니까. 아, 잠깐잠깐 딱봐도 사후세계에 관해서 엄청나게 질문공세를 펼치고싶은 표정인데 대답해주고 싶지도 않고 대답할 수 도 없으니까 정말로 궁금하면 접시물에 코박고 자살한 다음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도록. 사실 영령환에 관련된 정보도 공개하는데 제약이 있지만... 뭐 그냥 단순히 육체에 딱 붙어야할 영혼들 중에 접착력이 부족한 불량품들을 위한 접착제라고 생각하면되네.

그리고 영령환이란 접착제가 발린 영혼의 주인은 보통 몸은 약하지만 영매적 자질은 높은 무당이 되는 경우가 많지."

"저도 일반인들중에선 꽤 독보적인 영적 자질을 지니고 있었지만 잔병치례 한번 안했던것 같은데 운이 좋았던 모양이군요. 그런데 본래 저승의 물건이 인세에 있다라는건... 혹시 구루씨 횡령같은걸 하신겁니까?"

"글쌔. 그건 상상에 맡기지. 그것보다 일반인들중에서 독보적이였다는 자네의 영력수준부터 확인할 필요성이 있을것 같군. 왜냐면 저랭크의 영력 소유자가 함부로 영령환을 먹었다간 특유의 독성때문에 영멸할 가능성이 있거든."

쇼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절대 떨어지지 않을것 같았던 구루가 벌떡 일어서더니 내게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리곤 품에서 미니어쳐버전의 양팔저울을 꺼내더니 손바닥에 둔 다음 한쪽 저울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려놓는다.

말하지 않아도 반대쪽 저울에 내 손가락을 올려둬야할것 같은 분위기라 그렇게 했더니 미니어쳐 양팔저울이 미친듯이 시소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저울이 손가락을 하도 스쳐서 살갖이 까질정도가 되서야 멈춰선 미니어쳐 양팔저울은 애쓴 보람도 없이 처음과 같은 평행 상태였다.

"이건 꽤나 놀라운 결과로군. 한때 부장급 사신이였던 나와 동급인 영력이라니. 이 정도면 일반인들 중에서 독보적인 수준이 아니라 역사속에 남을 음양사급인데."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영령환이란걸 얼만큼 먹으면 반신급의 영력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반신급의 영력? 설마 사장급 사신 수준의 영력을 소유하고 싶다는건가? 미안하지만 영령환의 개수도 모자랄뿐더러 설사 원없이 영령환을 섭취한다한들 그 정도의 영력향상이 이루어질거라는 보장이 없다네."

"그러지마시고 가격을 좀 더 쳐드릴테니 꿍쳐든 영령환 좀 반출해주십쇼."

"꿍쳐둔 영령환? 그런건 없다네. 좌판대에 물건을 올리는것조차 귀찮아 하는 내가 뭐하러 그런 짓을 한단말인가. 그리고 여신마켓의 모든 품목은 정찰제라네. 그것도 내가 결정하는게 아니라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야가 정해주지. 백신마켓을 이용해 본적이 있다면 자네도 잘 알텐데. 가격이야 판매자가 결정하는거지만 물건의 상대적 가치의 지표가 되는 넘버링은 바꿀 수 없지않던가?

그거 다 엔도미야가 결정하는걸세. 참고로 영령환의 영약 넘버링은 칠십번대에 가격은 1,250,000 VP라네. 총 수량이 4개니까 다산다고 치면 500만 VP인가."

백신마켓의 넘버링 시스템을 엔도미야라는 여신이 만들었다면 VOT(Vaccine Of Things)의 네임드 장비, 스킬의 넘버링도 그녀가 정했다는건가? 왜 그렇게 뭐든지 1등부터 100등까지 세우지않고는 못배기는지 모르겠지만 VOTO에서든, 현실에서든 질나쁜 물건을 비싼물건으로 속여팔 수 없다는 점은 칭찬해주고 싶을정도다.

하등 쓸모가 없는 물건인줄 알았던 구십번대 유물아이템 항아리도 '마샬아츠 더 비타'라는 불세출의 체술을 계승하는 밥값하는 아티팩트지 않았던가. 일단 넘버링이 높으면 믿고 사볼만 했다. 하지만 마신의 세번째 눈 요슈아는 어떤 물건인지 확인한 뒤에 구매해도 늦지않을 것이다.

"그럭저럭 괜찮군요. 그러면 다음으로 마신의 세번째 눈 요슈아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디만."

"휴우~ 그녀석의 차례가 오지않았으면 했는데. 자세한 설명을 하기전에 한가지 확실하게 하고 가야할게 있네. 요슈아는 분명 영령환에 비하면 비약적인 영력상승을 이룰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선 자네가 원했듯이 사장급 사신의 영력을 손에 넣을 수 도 있겠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네."

"리스크라함은 어떤걸 말하는거죠?"

"요수아는 소위 에고웨폰에 속하는 녀석일세. 물론 이 녀석이 무기는 아니지만 자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선 일맥상통하지. 그리고 이 녀석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에고웨폰이여서가 아니라 사용자가 요슈아를 통제하지 못하면 정신기생체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일세. 솔직히 비싼 물건을 팔면 나야 좋지만 빈말로도 추천은 못하겠군."

"마검이 끝내 주인을 집어삼켜버린 일화는 옥사건씨도 한번쯤 들어보셨겠죠. 성능이 좋은만큼 부작용이 있다라는 점.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인것 같습니다. 길잡이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선택이 아닌 선택을 돕는것이니까요. 잠시 고민할 시간을 드릴까요?"

"아뇨, 아뇨. 저는 이미 요슈아를 사기로 마음을 굳혔는데요. 영령환도 사고 싶은데 VM이 1개 밖에 없어서 고민하고 있던 중입니다."

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신의 세번째 눈, 요슈아를 사겠다고 하자 구루와 모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이런 조금은 고민하는척할걸 그랬나? 자뭇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던 그들에게 1+1 이벤트중인 달걀 한판을 사는듯한 말투로 요수아를 사겠다고 말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내 인생관 자체가 일단 싸지르고 보자였으니 상대가 야쿠자 오야봉의 따님이든, 삼합회 두목의 따님이든, 마피아 보스의 따님이든 일단 자빠트리고 보는것이다. 그리고 보지에 좆을 쑤셔넣은 그 순간의 쾌락을 즐기며 뒷일따윈 머리속에서 지워버리는거지. 난 원래 이런 놈이다.

"그거라면 방법이 있지. 영령환 4개랑 마신의 세번쨰 눈 요슈아를 세트로 묶어서 팔면 그만이야."

"앵? 그런걸 엔도미야가 간단히 허락해주는겁니까?"

"물론. 애시당초 단일품목이라는 개념자체가 모호하니 말일세. 만약 내가 자네에게 마력공학총을 판다고 생각해보게. 따지고 보면 마력공학총은 수천, 수만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세트상품이지. 뭔가 억지라고 생각되겠지만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야는 일관성이란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건 되는데 왜 저건 안돼요?라는 컴플레인을 병적으로 싫어하거든."

"저한텐 잘된 일이군요. 영령환 4개랑 요수아 둘다 지금 당장 구입하겠습니다. 좋은 구매를 할 수 있게 도와준 모햄과 구루 두분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친구 화끈해서 좋구만. 모햄 이거 어쩌나? 게으른 내가 부지런한 자네보다 먼저 매상 1억 VP를 채워서 이 지긋지긋한 여신마켓을 벗어날지도 모르겠군."

"1억 VP요?"

"목숨이라는 코인을 다시 살 수 있는 가격이죠. 자세한 이야기는 마을을 벗어나면서 하시죠. 지금쯤이면 손님이 왔다는 소문이 온마을에 퍼져서 아쿠아프린스 마레와 같은 친구들이 또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거 최악이네요."

선으로 15,000,000 VP를 결제한 뒤 물건을 잘 포장해서 보내주겠다는 소울리퍼 구루의 확답을 받은 나는 모햄과 함께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과연 모햄의 말대로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한무리의 셀러들이 나라는 먹잇감을 노리고 구루의 폐가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모햄이 갈기가 불꽃으로 이루어진 말을 소환한덕분에 거의 날다시피해서 내가 처음 눈을 뜬 장소로 무사히 복귀할 수 있었다. 로그인할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제보니 기하학적 문양의 술식원진이 땅에 그려져 있었다. 아마도 로그아웃을 돕는 장치이리라.

"그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이해하십쇼. 이런 인형집같은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선 매상을 올려야하는데 좀처럼 손님이 오질않으니 집착이 심해진겁니다. 저같은 경우 길잡이로 발탁되면서 손님을 인도할때마다 조금씩 수수료라도 받지만 그들은 그게 아니니까요."

"아까 구루가 1억 VP의 매상을 올리면 여신마켓을 벗어날 수 있다라고 한게 그거였군요. 그것도 엔도미야가 정한 규칙이겠죠?"

"그렇습니다. 뭐 처음부터 목숨을 구원받은 대가로 성립된 계약이니까 저는 딱히 불만이 없습니다. 목숨값으로 1억 VP가 싸냐, 비싸냐를 떠나서 살 수 있는 기회조차없이 스러져간 동료들이 한둘이 아니니까요."

"그건 역시 디파일러들 때문인가요?"

"물론 디파일러때문에 죽은 동료들도 적지않습니다만 대게는 반신타락자에게 당했죠."

"반신타락자요? 그건 또 뭡니까?"

"말그대로 반신 수준의 능력을 갖추었지만 인성이 타락한 자들입니다. 그들의 내력에 관해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꽤 길어질듯 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마 VOT 시스템의 창시자인 엔도미야의 정체를 궁금해 하고 계셨다면 그 해답도 될 수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듣지않을 수 없겠는데요? 모햄이야말로 귀찮지 않으려나 모르겠네요."

"저야 손님들을 상대하는게 낙인 길잡이인걸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려나..."

로그아웃을 돕는 술식원진을 앞에두고 시작된 블래이즈스론 모햄의 이야기는 우주의 나이로 따지면 비교적 최근인 만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일만년전 얼티밋 판게아(Ultimate Pangaea)라고 하는 궁극의 문명을 이룩한 행성이 있었다고 한다.

행성 전체가 나노머신으로 이루어져 있어 기후는 물론 지진과 해일같은 자연재해까지 인의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과학력이 있었고 아이들이 글자보다 술식을 먼저 때는 1인 1마력기관의 국가였으며,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저승과 영적도킹을 시도하는 영매검사들이 존재하는 소설속에서도 나오지 않을법한 먼치킨 문명.

그런 얼티밋 판게아의 주민들에게도 한가지 고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본성 그 자체였다. 아무리 살인사건의 피의자를 영매검사가 심문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영매검사 본인이 나쁜마음을 먹으면 선량한 사람도 용의자가 될 수 있다. 빈사상태의 사람도 살릴 수 있는 나노치료머신이 있지만 의사가 나쁜마음을 먹으면 살사람도 죽을 수 있다.

그래서 얼티밋 판게아의 주민들은 실수를 범하지 않는 즉 욕망에 눈이멀어 질서를 더럽히지않을 존재를 만들려 했으니 그것이 바로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아의 시초였다. 얼티밋 판게아라는 행성 단일 국가의 정치, 행정, 법률은 물론 행성을 구성하는 나노머신까지 총괄하는 인공지능의 등장.프로젝트는 분명 성공적이였고 사람들은 만족했다. 음지에서 암약하는 단체 반신타락자를 제외하곤...반신타락자는 극도로 발달한 얼티밋 판게아의 문명인들 중에서도 반신을 자칭할만큼 독보적인 힘을 쌓은 자들이였고, 그들은 그 힘으로 자신들의 뒤틀린 욕망을 충족시켜왔다. 하지만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야의 등장은 그들의 손발을 묶어버렸으니 분출되지 못한 그들의 욕망이 고이고 고여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기획하게 된다.

그들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존재라해도 얼티밋 판게아의 1억 정규군에 비하면 한 수 접어줄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음지에서 암약했던것인데, 엔도미야 일인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양지로 올라왔던 것이다.

그러나 반신타락자 조직은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했음에도 얼티밋 판게아의 내핵에 자리잡고 있다는 엔도미야의 메인 시스템에 도달하는것 조차 실패했다. 인류의 운명을 맡긴 인공지능의 본체를 허투로 보관했을리가 있겠는가?

뉴스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인류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기뻐했지만 반신타락자의 발악이 어떤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진못했다. 엔도미아의 방화벽 시스템이 본체의 외벽에 집중된 사이 그 빈틈을 뚫고 반신타락자의 해커가 바이러스 하나를 밀어넣었으니, 그것은 질서가 아닌 혼돈을 수호하는 초월 인터페이스 야미도엔의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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