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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20,753,000 VP면 총알은 충분하겠지."
나는 지체할것 없이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의 숨겨진 기능인 여신마켓을 클릭했다. 당연히 백신마켓처럼 웹페이지 형태의 쇼핑몰일줄 알았으나 아바타에 로그인할때처럼 암전되는 시야가 그런 내 예상을 산산조각냈다.
-쇼핑용 임시 아바타 커스터머123에 로그인하셨습니다.
-여신마켓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쇼핑되시길 바랍니다.
나는 이미 지구에 있는 본체에서 실버사이드함의 개인선실에 있는 아바타 옥사건으로 로그인한 상황이였다. 그런데 거기서 한번더 로그인을 한다? 이러면 이중로그인이 되버리는건가. 나는 흰색 타이즈를 입은듯한 밑밑한 육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동화율을 테스트 해봤다.
역시 임시 아바타라 그런가 어딘가 움직이는게 어색하고 둔하기까지 하다. 그와중에 내 본체보다는 키가 크다는게 열받는군. PT체조를 하며 새로운 아바타에 적응하고 있노라니 한적한 시골장터같은 주위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신마켓이라는 거창한 이름치고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장소다. 뭐 중요한건 어떤 물건을 파는가지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였으므로 나는 기대감에 부푼채 뒷산에서 시골장터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첫걸음을 땐 순간 중세시대의 기사가 말을 타고 허겁지겁 달려온다.
"오랜만의 손님이군요. 저는 여신마켓의 길잡이 블래이징스론 모햄이라고 합니다. 처음이신듯 하니 제가 이 곳의 주민들로부터 원하시는 물건을 구하실 수 있도록 에스코트 해드리죠."
"안그래도 웹페이지 형식이 아니라 어디서 뭘 사야할지 막막했는데 다행이군요. 저는 옥사건이라고 합니다. 여신마켓의 방문자가 그렇게 많지 않나봐요?"
"VP와 달리 VM은 업적 포인트라는 숨겨진 수치가 1,000,000에 이르지 않으면 얻을 수 없으니까요."
"업적 포인트는 또 뭡니까?"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한 수치라고 볼 수 있죠. 보통은 병원이라던가 학교라던가 그런 공공시설 운영에 동참해서 얻는것이 일반적입니다."
나랑은 인연이 없는 놈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의사가 되어 환자를 돌본다던가 선생님이 되어 학생을 가르치는 일따윈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휘르 행수에게 받은 1 VM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 나는 캘 수 있는 정보를 더 캐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쪽은 정확히 뭐하시는 분이죠? 여신의 심부름꾼같은겁니까?"
"여신마켓의 길잡이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군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런 어딘지 모를 산골에 쳐박혀 귀물을 파는 사람들에게 곡절이 없다면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한명한명 따지고 들면 끝도없지만 결국 인생에서 단 한번 주어지는 코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죠."
"코인이라면 설마 오락기의 인서트 코인을 말하는겁니까?"
"정답입니다. 제 모행성에는 없던 문물입니다만 이런 한적한 장소에서 시간을 죽이기엔 오락기만한것이 없죠. 뜬금없이 제 자랑을 좀 하자면 우주침략자2라는 슈팅게임을 투코인으로 클리어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 코인 즉 목숨은 단 하나뿐이죠."
"크리티컬 히트! 제 말속의 뼈를 제대로 짚으셨습니다. 애시당초 우주침략자2를 투코인으로 클리어 할 수 있을때까지 수백개의 코인이 소모됐습니다. 탄막의 위치를 눈과 손으로 외울때까지 수백판의 경험이 필요 했던겁니다. 하지만 저는 제 인생에 찾아올 죽음의 운명에 대해서 미리 알지도 못했고 설사 알았다해도 극복해나갈 능력도 없었지요. 그래서 여기에 있는겁니다.
신 아니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아와 목숨을 대가로 계약해서..."
그러고보니 라스트템플러 에녹의 죽기전 기억을 의도치않게 읽었을때도 초월 인터페이스 엔도미아에 대한 언급이 있었었지. 물의 수호령 오르시나는 그녀를 자신의 창조신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는데 뭐가 진실일까?
이제 막 중세기사도 소설에서 튀어나온듯한 블래이징스론 모햄은 그 해답을 알고있는 기색이라 나는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려 했다. 하지만 여신마켓 마을의 초입에 다다르자 누군가 득달같이 호객행위를 하러나와 그 계획은 무산될 수 밖에 없었다.
"바다를 가르는 지팡이 팝니다. 최저가로 드립니다."
"바다를 가르는 지팡이? 하아!? 그딴걸 어디다 쓰라고요."
"그딴거라뇨, 손님. 사람들의 경외심을 얻는데 이만한게 없습니다."
"경외감을 얻는건 좋지만 실질적인 전투력 증강이 아닌 단순 묘기로 얻은 경외감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다다는걸 모르는건가요? 여신마켓 물건 수준이 이것밖에 안됩니까?"
"손님 맞을래요? 인간주제에 뭘안다고 나불대는겁니까?"
"뭐 이 시발새끼야! 좋게 좋게 말하니까 내가 호갱으로 보이냐? 아바타가 바껴도 영적 능력은 그대로 쓸 수 있다느걸 알까 모르겠네.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라!"
모햄처럼 기사도에 입각한 친절한 대응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고객을 능멸하지는 말아야지. 나는 주위의 잡령을 급히 끌어모아 이매망량 오합지졸을 꾸렸다. 이매망량 천인대만큼의 힘을 발휘할 순 없겠지만 A 랭크의 영력이 뒷받침된다면 저 파마머리자식의 뱃대지에 칼빵을 놓을 정도는 되리라.
내가 정말로 전투태세에 돌입할지는 몰랐는지 뒷걸음질을 치다 엉덩방아를 찍은 파마머리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과 일체화된 물의 삼지창이 생겨나 나를 겨누기 시작했다. 단순한 핫바지는 아니였다 이건가?
나와 파마머리가 서로에게 무기를 겨눈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블래이징스론 모햄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타오르는 검이 불의 벽을 생성해 물의 삼지창도 이매망량 오합지졸도 닿는 족족 태워버렸다. 온화했던 그의 표정이 불길만큼이나 사납게 타오른다.
"여신마켓에서는 그 어떤 일체의 싸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옥사건씨는 그렇다치고 아쿠아프린스 마레 당신이 그걸 모를리가 없을텐데요."
"하... 하지만 거기서 가만히 있으면 마치 내가 저 녀석한테 쫀것같은 그림이... 아니 다떠나서 저녀석이 먼저 욕설로 시비를 걸었다고!"
"뭐 시비? 지금 시비라고 했나? 모햄 아까 죽음의 운명이 찾아왔을때 극복할 능력이 없었다고 했죠. 사실 죽음의 운명이라는건 시기를 예측할 순 없어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녀석이죠. 그런데 그 녀석이 찾아왔을때 바다를 가르는게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물론 상황이 잘맞아 떨어지면 도망칠때 도움이될 순 있겠죠.
하지만 정말로 죽음의 운명을 극복하고 싶다면 우리에겐 거대한 파도가 필요합니다. 대륙을 삼켜버릴정도로 거대한 파도가 말이죠. 그래야 눈앞의 적을 쓸어버리고 엔딩을 볼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 파마머리 작자가 단 하나밖에 없는 VM을 써서 내게 똥을 사라고 하는군요. 이건 시비를 넘어서 나를 능멸하는 수준 아닙니까?"
"잠깐 그게 무슨 억지..."
"마레 거기까지. 옳고그름을 가르기 이전에 구입의사가 없는 손님에게는 그 무엇도 강매할 수 없는것이 여신마켓의 법칙이야. 여기선 물러나도록해. 옥사건씨는 계속해서 저를 따라오시죠. 마음에 들만한 물건이 분명 있을겁니다."
나는 악바리같은 눈길로 꼴같지 않게 아쿠아프린스란 이명을 지니고 있는 마레를 한번 노려본 후 모햄의 뒤를 따라 걸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만약 내가 로마에 갔다면 로마의 왕을 죽이고 그의 아내와 딸을 취할것이다.
하지만 지금 임시 아바타 커스터머123에 로그인한 내게 운용할 수 있는 전투수단이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괜시리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필요한 물건을 사서 나가는것이 정답이겠지. 물론 마레처럼 구는자가 있다면 충동적으로 오답을 찍을지도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여신마켓의 마을광장까지 걸어나갔으나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대게는 좌판을 펼쳐놓고도 오랜만의 손님을 외면한채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일쑤다. 마레의 경우가 특이 케이스였다는 거겠지.
그러던 와중에 가슴계곡과 배꼽이 훤히 드러난, 디자이너를 칭찬해주고픈 로브를 입은 적발의 여인이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모햄은 혹여나 또 분쟁이 일어날까 긴장하는 기색이였지만 내 눈은 이미 젖꼭지가 보일락 말락하는 로브때문에 하트뿅뿅이였다.
"손님 혹시 나한테 은밀한 화염술식 교습 받을 생각있어?"
"있어요, 있어. 완전 있는데요."
"잠깐만요, 옥사건씨. 운명을 바꿀만한 물건을 사기로 하신거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 옥사건씨는 영매능력자인걸로 알고 있는데요. 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물건을 사야하는게 아닌지."
"영매능력자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강령술사이기도 하지요. 안그래도 파괴술식의 부재가 아쉬웠는데 이 누님과 함께라면 왠지 뜨겁게 불태울 수 있을것 같네요."
"이아양~ 나도 점잖게 구는것 보다는 솔직한 손님이 좋더라. 우리 같이 아주 깊은 부분까지 속속들이 배워보자고."
"순수영매능력자가 아니라 강령술사셨군요. 그렇다면 더더욱 주의를 기울이셔야합니다. 물론 플래임위치 린콜은 둘째라면 서러울 화염술사고 또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분명 단기간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시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붉은 정신망다발이 늘어나진 않습니다. 검은 정신망다발의 일부가 붉은색으로 물들뿐이지요.
옥사건씨도 술사라면 왜 술사들이 다중계통의 술식을 익히지 않는지 알고 있을텐데요."
"확실히 그건 그렇네요."
"잠깐 모햄 듣자듣자하니까 자꾸 내 장사 방해할거야? 길잡이는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위치에서 손님의 쇼핑을 도와야한다. 규칙성애자인 네가 모르지않을텐데."
잠시 내가 유두색이 보일듯 말듯한 로브의 디자인때문에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정신망다발색의 메커니즘을 생각않고 다짜고짜 화염술식을 배우려하다니. 비록 무법자라고 하나 상아탑의 교수직까지 오른 체어맨이 전이술식을 제외한 술식을 배우지 않는것만 봐도 정신망다발색의 한계는 명확하다.
내가 변이술식과 강령술식을 동시에 배울 수 있었던것도 어디까지나 마룡 쉐도우스틸의 심장을 쪼개만든 인공마력기관덕분이였다. 반쪽난 마력회로 대역폭을 마력기관의 출력으로 커버한 느낌이랄까.
"중립적인 위치에서 여신마켓 셀러들의 무분별한 상품정보에 현혹되지 않게 돕는다는 규칙은 왜 쏙 빼먹는지 모르겠군."
"칫! 아주 잘나셨어요. 그러면 그쪽의 손님은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다시 찾아와. 쪼옥~"
"조금만 더 가면 제가 옥사건씨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던 셀러의 집이 나옵니다. 딱히 물건을 팔아야겠다는 의지가 없는 친구라 좌판조차 꺼내놓지않고 방안에 쳐박혀 있죠.
"
모햄의 말대로 몇걸음 안가 폐가처럼 생긴 건물에 입성한 나는 혹여나 집이 무너질까봐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쥐가 파먹은듯 여기저기 솜이 튀어나온 쇼파에 푸른색 안광을 번뜩이며 앉아 있는 사내가 바로 이 집의 주인이자 모햄이 언급했던 셀러이리라.
"소울리퍼 구루라고 불리우는 친구입니다. 귀찮은걸 싫어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당사자를 앞에두고 뭘 설명조로 이야기하고 있는건가? 블래이즈쓰론 모햄."
"자네라면 왠지 자기소개하는것도 귀찮아할것 같아서 말이지."
"흐흐흐흐흐. 부정은 않겠네. 그래서 왠일로 내게 손님을 다끌고온거지?"
"그에 관해선 구매자인 옥사건씨가 말해줄걸세."
"번거로운걸 싫어하신다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아마 모햄이 그쪽에게 데려온걸 보면 영력향상에 관련된 물건을 취급하시는 모양인데 총알은 20,000,000 VP까지 있으니 괜찮은 물건을 모두 보여주십쇼."
"나쁘지않군. 총알도 얼마 없으면서 쓸데없이 간만보는 녀석들 보다는 말이야. 그쪽에서 그렇게 나와준다면 나도 자질구레한 물건들은 빼고 진짜배기만 꺼내겠어. 영령환과 마신의 세번쨰 눈 요슈아 이렇게 2가지가 손님의 영력을 상승시키는데 제법 도움이 될거야. 그러니까 닥치고 사!라고 말하고 싶지만 손님에게 판매물건의 내력에 관해서 설명해주는것이 여신마켓의 규칙이기 때문에 이야기가 좀 길어지겠군.
지저분한 방이지만 적당히 아무대나 앉아. 차대접같은건 기대하지도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