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52화 (152/599)

0152 / 0316 ----------------------------------------------

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수인족들의 열기가 백토성의 쌍둥이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이곳은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에서도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투기장이였다. 지금이야 우주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상단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지만 본래 수인족들에게 있어 피튀기는 싸움이란 인어족들의 수영만큼이나 삶에 밀접하게 자리잡은 문화였다.

그 문화가 지금은 오락거리로 자리잡아 최소 일주일에 한번은 격투시합 열린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비스트코인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대행수와 오행수의 후계자들이 한 암컷을 두고 다투게 되었으니 이런 빅매치가 또 어디있겠는가?

하여 관중석을 가득매운 수인족들은 하나같이 눈을 희번득하게 뜬채로 괴성을 지르고 있었으니, 전생유적 입장권을 건 토너먼트 경기를 얌전히 응원하던 인어족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이였다.

그렇게 투기장 분위기를 살피며 사자소년 준트록을 포함한 다른 후계자들과 같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니 무대 중앙에서 단상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단상에 자리하고 있던것은 너구리 귀와 꼬리를 한 사내였으니 등장과 동시에 좌중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예압!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본 투기장을 찾아주신 짐승같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전하면서 오늘도 저 펑키가 피튀기는 싸움현장을 더 생생하게 전달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악!"

"옛부터 수인족 수컷들의 싸움은 치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풍부한 먹잇감이 있는 사냥터 나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동굴 은신처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수인족 수컷들이 정말로 목숨을 거는 싸움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 자 그런 의미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최고의 암컷이라는 칭호보다는 최강의 암컷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은빛늑대일족의 라라펠양입니다!"

실내 투기장의 초대형 스크린이 펑키라는 사내가 있던 단상이 아닌 VVIP석을 비추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꽃단장을 한 라라펠이 벌레 씹은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좋아하던 용병생활을 청산한 탓일까 조금은 뚱한 표정입니다. 하지만 내노라하는 수컷들의 러브콜을 받은 라라펠양의 심정이 묻지 않을 수 없는데요. 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개좆같다."

"예?"

"개좆같다고 한번에 알아쳐먹어라 이 너구리 새끼야."

"그... 그렇군요. 저 혹시 미래의 남편에게 할 말이 있으시다면?"

"어떤 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첫날밤을 치루기전에 배터지도록 먹어두는게 좋을거야."

"이야~! 뜨겁고 격렬한 교미를 위해선 에너지 보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죠?"

"아니. 내가 빔샤벨로 뱃때지를 쑤실때 지방층이 두터우면 살 확률이 높아질테니까."

"...미모는 물론이거니와 촌철살인같은 유머솜씨를 지닌 라라펠양이였습니다. 그러면 이어서 라라펠 쟁탈전에 참여한 수컷들을 만나보시겠습니다."

라라펠의 살벌한 토크에 타오를듯 했던 관중석의 열기까지 얼어붙었다. 사정은 남편후보 대기실도 마찬가지여서 하트모양 도시락을 싸주는 여자친구가 있는데 왜 미친늑대랑 결혼해야하냐며, 부모님이 떠밀지만 안았어도 나오지않았다는둥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 의욕을 가지고 몸을 풀고 있던 사자소년 준트록도 복부를 어루만지며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는게 아닌가? 휘르 행수가 염려했던 사태, 즉 엄한 놈이 라라펠과 결혼하는 시나리오는 부모와 자식 세대간의 소통단절로인해 시작부터 핀트가 어긋나고 있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죽을상을 하던 대기자들이였지만 막상 투기장의 스크린에 비치자 애써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명색이 행수 후계자인 그들이 빅매치를 관람하러온 수인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는 노릇이였겠지.

"붉은곰, 푸른표범, 청동물소, 검은하이애나, 황금사자 그야말로 쟁쟁한 핏줄들의 소유자들이 차례차례 등장하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인간이... 인간!? 귀와 꾀를 숨기고 있는걸까요? 잠깐 확인할때까지 기다려주십쇼. 아하 인간이 맞습니다. 휘르 행수가 지닌 시드권을 받아 출전한 강령술사 옥사건군이라는군요! 본 투기장에 인간이 관중으로 온적은 있어도 시합 참가자로 발을 딛는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매력적인 암컷을 탐내는건 인간 수컷도 마찬가지니까요. 매.력.적.인 암컷 말입니다. 그래서 사실 참가목적이 이해가 잘안가네요. 괜히 인간이 수인족들의 싸움에껴서 등이나 터지는거 아닌지."

"이 빌어먹을 너구리 새끼야, 비꼬는거냐! 내가 왜 미친늑대라고 불리우는 몸소 확인시켜줄까? 높이 있으면 내가 못올라갈줄 알아?"

"농담이였습니다, 라라펠양. 아까부터 까칠하시긴. 그래선 남자한테 인기없습... 자, 자, 잘못했습니다. 힘없는 너구리 수인족을 괴롭히지 마세요."

"이거놔! 엄마 이거 놓으라고!"

"윗어른들이 많은 자리에서 너무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드레스를 입은채로 VVIP석에서 MC너구리 펑키가 있는 단상까지 도약하려던 라라펠을 휘르 행수가 꼬리를 낚아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휘르 행수가 말한 윗어른들은 모두 하나같이 주먹깨나 쓸법한 포스를 뿜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압권인것은 황금사자일족의 대행수 그라트록과 휘르 행수 옆에 착석한 은빛늑대 일족의 사내였다.

아마 저 사내가 휘르 행수의 남편되는 사람인 모양인데 일단 키부터가 220cm의 장신에, 얼굴의 할켜진 상처가 딱봐도 '나 위험한 사람이요'라고 말하는듯 했다. 휘르 행수의 보지를 따먹기 위해선 저 자를 쓰려트려야 한다는건가? 그에 비하면 준트록을 포함한 신랑 후보자들은 식후 디저트도 되지않을성 싶었다.

"라라펠양에게 정식으로 사과의 말씀드리면서, 비스트코인 커뮤니티가 창설하기 이전부터 암컷 쟁탈전의 룰은 암컷이 결정해온바 그녀의 선택이 수컷 후보자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룰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냥 마지막에 살아남은 놈이 이기는거지."

"마지막에 살아남은 놈이 이긴다라... 올포원에 데스매치룰까지! 이거이거 역시 라라펠양입니다. 화끈한 규칙선정으로 관중들이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드는군요. 그런데 행수 후계자분들은 물론 대행수 그라트록님의 아들 준트록님까지 껴있는데 데스매치룰 이거 괜찮을려나요?"

"물론 상관없다!"

마이크를 사용한것도 아닌데 투기장 전체를 진동시키는 근엄한 목소리의 주인공. 그것은 다름 아닌 대행수 그라트록이였다. 준트록의 황금빛갈기에 비하면 살짝 빛이바랜 털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기세만큼은 감히 경시할 수 없는 사내였다.

"작금의 수인족들은 더 이상 먹이나 서식지를 두고 경쟁하지 않아도 될만큼 풍족한 자원을 지니고 있다. 소위 시장경제라 불리우는 녀석덕분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수인족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것들을 외면한다면 결국 우주라고 하는 생태계에서 도태되고 말것이다. 왜냐! 시시탐탐 비스트코인의 상선을 노리는 무법자들과 부지불식간에 세를 확장하고 있는 디파일러들에게는 타협과 교섭이 통하지않기 때문이다.

죽는게 두렵다면 후계자를 그만둬라. 머리가 싸움을 피해 몸통의 눈과 귀가 되주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머리란 말이냐!"

"우와아아아아아아!"

"옳소!!!!"

"그라트록님 만세!"

기세만 범상치않은줄 알았더니 말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역시 커뮤니티를 이끌어나가는 자들에게는 대중을 휘어잡는 뭔가가 있는법. 이솔다 공주에게는 진심으로 인어족들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씨가 있고 엔츄라 여왕에게는 특유의 외교력이 있었지.

결국 싸움을 피할 수 없게된 신랑 후보자들의 표정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물론 준트록은 예외. 사자소년은 아버지의 일장연설에 감동했는지 나이가 너무 어려 상대적으로 약체에 속하는 자신의 입장을 잊고 각오를 굳게 다지는 모습이였다.

"그러면 질질끄는것도 기다려준 관중들에게 실례인듯하니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인간녀석부터 보내버려!"

"그래, 인간따위가 수인족들의 싸움에 끼는게 말이돼냐!"

드디어 라라펠 쟁탈전이 시작됐지만 신랑 후보자들은 서로 눈치만 볼뿐이였다. 사실 올포원이라는게 먼저 튀어나가면 손해인 게임이라 당연한 처사였다. 물론 저들의 경우 이 쟁탈전에 과연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는것처럼 보였지만.

목숨을 걸고 나발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암컷을 차지할때 걸어야 하지않겠는가? 그들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 처음부터 전력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은 나는 의욕만 넘쳐 앞으로 튀어나간 준트록을 신호탄 삼아 이매망량 천인대를 전력으로 전개했다.

5명의 신랑후보자들이 모두 이매망량에 의해 목덜미를 제압당해 공중에서 버둥거린다. 데스매치라고 해도 굳이 상대를 죽일 필요는 없었으니 호흡곤란으로 졸도시킨 다음 매치업으로 직행할 생각이였다. 이런 조무래기들을 상대로 힘뺄필요가 없지.

"커커커커컼"

"이... 이럴수가! 예상밖의 반전입니다. 강령술사 옥사건군이 경기시작 10초만에 다른 후보자들을 제압해냅니다."

"뭐가 반전이냐? 이딴걸 볼려고 10시간씩 기다린줄 알아! 투기장 입장권 환불해내!!"

"우우우우우우우우"

"진정하십쇼, 관중여러분. 사실 본경기보다 재미있는 번외경기가 하나 남아있답니다. 여러분을 깜짝놀래켜주기 위해 숨기고 있었죠. 자 라라펠 쟁탈전의 승리는 옥사건군으로 결정된것으로 하고 의료진들은 어서빨리 패배자들을 경기장에서 치워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어서 번외경기가 본경기보다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최강의 사나이, 은랑철권 퍼시벨 그가 오랜 출장을 끝내고 마침내 귀환했던것이였다! 모두 박수로 맞아주시길 바랍니다."

"거짓말. 출장에서 돌아온건 알고있었지만 은랑철권이 시합에 참가한다고? 상대가 될만한 수인족이 없을텐데. 설마 그라트록님이 그 상대는 아니겠지."

MC너구리 펑키가 관중들에게 박수로 호응해줄것을 요청했으나 돌아온것은 의구심섞인 웅성거림일뿐이였다. 그때 은랑철권 퍼시벨이 VVIP 석에서 투기장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펑키가 있는 단상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높이가 있는 곳이라 관중들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그런 우려를 종식시키기라도 하듯이 투기장 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며 안정적인 자세로 안착한 퍼시벨이 성큼성큼 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무형의 투지가 넘실넘실 뿜어져나와 투기장을 휘감고 있었으니 진행을 해야할 펑키도 말을 잇지 못한다.

"네 놈이냐. 휘르를 넘본 간큰 녀석이."

"처음보는 사이에 놈놈거리지 마시죠."

"웃기는 녀석이군. 이제부터 휘르가 정할 쟁탈전의 규칙에 데스매치가 붙으면 너는 죽는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너는 불구가 된다. 그런데도 농담할 기분이 나나?"

"어머 따지고보면 이제 사위될 사람에게 너무 살벌하게 구시는거 아닌지?"

"수인족들은 자손을 성인까지 키우고나면 남처럼 대하지. 너희 인간들처럼 그렇게 한평생 동안 유대가 지속되지않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라라펠을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내 암컷을 건들인 녀석을 용서할 순 없다."

"그 마음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 그러니까 이 경기에서 패배한 다음 전남편이였다는 이유로 휘르에게 질척거리지 말아주실래요?"

"큭!"

마지막 침음성을 끝으로 은랑철권 퍼시벨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팔다리에 달린 정체불명의 주머니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으니 나는 그가 투기장 바닥에 내려섰을때 크레이터가 생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떨어질때마다 땅바닥을 움푹 패이게 만드는 그 주머니들을 합치면 족히 1톤은 넘어서리라. 이번 시합이 제법 재밌어질것 같다는 직감을 받은 나는 펑키를 쳐다보며 왜 시합을 빨리 진행하지 않냐는 의미가 담긴 눈짓을 보냈다.

"그라트록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전절후한 수인 권법가, 은랑철권 퍼시벨의 상대는... 강령술사 옥사건군입니다! 아니 이거 잘못됐거 아니야? 맞다고? 오케이, 오케이. 그러면 휘르 행수님 쟁탈전 규칙을 정해주시겠습니까?"

"데스매치룰은 제외합니다. 상대를 죽이면 실격이란 뜻이죠. 그리고 일체의 공격형 술식 사용을 금하도록 하겠습니다. 핏줄의 우수성은 육체의 강건함에서 드러나는 법이니까."

"딸인 라라펠과 다르게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내민 휘르 행수. 공격형 술식 사용 금지 규칙으로 인해 강령술사 옥사건군의 열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에야 말로 관중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 본경기보다 기대되는 번외경기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