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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그 말을 기점으로 체어맨의 몸에서 모래폭풍이 일정도의 마력파동이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 마력파동이라면 사령안 제 2형 샤프마인드로 살펴보지 않아도 뻔했다. 마력 과부하가 극에 치달았을때 일어나는 오버드라이브였다.
목숨을 도외시하면서까지 오버스케일의 술식을 준비할때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으로,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의 유저들이야 약간의 패널티를 감수하면 다시 부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거리낌없이 쓸 수 있었다지만... 체어맨은 그게 아닐텐데?
상공 10m까지 떠오른 체어맨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화상으로 녹아내리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마력파동이 잠잠해졌다. 체어맨의 몸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땅으로 곤두박질쳤으며 백토성의 하늘에는 거대한 공간의 틈이 생겨 우주를 비추고 있었다.
"주인님 저자의 왼팔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떨어져 나왔습니다만 어떻게할까요?"
'왼팔이라고...? 살아있다면 데려와봐. 뭔지 확인해야겠어.'
찢어진 하늘 사이로 보이는 은하수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라라펠 일행이 전생유적에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도망칠 수 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예전부터 신경쓰였던 문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사령안으로 체어맨의 신체를 관찰했을때 기이하게도 환상술식의 정신망다발색인 회색으로 가득차 있었던 왼팔의 기생생명체를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에녹이 보호색을 띄고 있는 카멜레온처럼 숨어있는 뭔가를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낚아챘다.
나처럼 무신경한 사람이 보면 자칫 지나칠 수 있을정도로 교묘한 위장으로 숨고 있었던건 난쟁이처럼 작은 키를 지닌 곱추였다. 뱀이 탈피를 하듯 보호색을 벗어버린 곱추사내가 겁먹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떨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함비를 해치지 마세요. 함비 나쁜 사람 아니에요."
'이거 잘됐군. 말이 통하는 지적생명체라니. 에녹 심문해서 아는 정보는 다 토해내게 만들어.'
"주인님 나쁜자같지는 않습니다만 꼭 거친 수단을 쓸 필요까지는..."
'또, 또 버릇나온다. 약자를 배려하는 신사적인 버릇! 아니 나쁜놈이 자기 얼굴에 나쁜놈이라고 써놓고 다니니? 물론 실제로 이 함비라는 자가 사실은 착한 사람일 수 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일일히 불쌍한 사람 사정봐줘가며 살다가는 내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이거야!'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보게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하지 않으면 내 안의 악마가 자네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도 모른다네. 그러니 내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함비 다 대답할거에요. 함비 아프고싶지 않아요."
뭐 내안의 악마가 어쩌고 저째? 나는 울컥 화를 내려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곱추사내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에녹의 방식으로 어르고 달래서 정보만 얻을 수 면 그만이다.
'체어맨과 무슨 관계인지부터 물어봐.'
"당신은 도대체 누구길래 체어맨이 죽은순간 팔목에서 떨어져 나온겁니까?"
"체어맨은 무법자라서 VOT 단말기 쓸 수 없다. 하지만 VOT 단말기 쓰고 싶어서 함비를 납치했다. 함비한테 강제로 투명 술식 배우게 해서 자기 팔에 붙어있게 만들었다. 말안들으면 함비 심장속에 있는 폭탄 터뜨린다고 했다. 함비의 VOT 단말기로 교수월급도 받고 백신마켓에서 사고싶은 물건도 샀다."
'VOT 단말기에 얼마가 남아있는지 물어봐.'
"주인님 설마 이자의 돈을 빼앗으려는건 아니겠지요? 이자가 거짓말을 한게 아니라면 그는 체어맨이란 자에게 뼛속까지 착취를 당하다 이제야 간신히 풀려난 자입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을 셈이신겁니까?"
'닥치고 VP가 어느정도 있는지 물어보라고! 이 새끼가 아까부터 잘한다, 잘한다하니까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 드네. 네 말대로 체어맨에게 착취를 당하다가 우리덕분에 풀려났으니 보답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아니 그걸 떠나서 네 주인은 성군이 아니란 말이다! 악당이야, 악당! 체어맨이란 놈보다 더 악질인 인간말종이자,
원하는건 그 어떤 추잡한 수단이라도 강구해서 얻어내고야 마는 슈퍼악당이란 말이다!!!'
"크윽!"
내가 유체이탈 상태라해서 내 몸을 점유중인 에녹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게 아니였다. 영적 능력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기에 영압족쇄로 이마의 영혼색에 봉인된 에녹의 영혼을 사정없이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뭐 에녹도 누시아 못지않게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신음성을 삼키는 것으로 그쳤지만 체벌로서는 충분했으리라. 그때 문득 누시아가 푸스카를 통해 보내왔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에보니 메이든에는 주군의 날개가 되어줄 불세출의 인재가 많습니다. 때로는 패왕이 되어 패도의 길을 걷는 자들을 굴복시키시고 때로는 덕왕이 되어 정도의 길을 걷는 자들을 감화시키십쇼. 양립될 수 없는 두길을 동시에 걷다보면 만물이 주군 앞에 고개를 조아릴것입니다.'
누시아의 논리로 따지자면 에녹은 정도의 길을 걷는 자이니 나는 덕으로 그를 다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덕왕도, 패왕도 관심없었다. 그저 내가 가는길이 곧 패도이자 정도였으니 이 한몸 살고싶은데로 살다가 막다른길에 몰리면 벽에 머리를 박고 죽으리라.
"체어맨 교수일 말고도 나쁜짓 많이해서 돈이 많이 벌었다. 100만 VP 있다. 이거 다 줄테니까 함비 목숨만 살려줘라."
'흐하하하!! 함비 이 친구가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군. 에녹, 용린검-TM2를 다시 왼쪽 손목에 쑤셔넣은 다음에 저 친구한테 내밀어.'
"...명을 따릅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주인님의 몸을 빌려쓰는 입장에서 제가 조금 주제넘었던것 같습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주제넘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 누시아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말이지.'
[옥사건의 보유자금]
-POS(Point Of Sales) 단말기 푸스카123으로부터 1,700 VP가 도착했습니다.
-블랙77님으로부터 142,300 VP가 도착했습니다.
-살라만다 커뮤니티로부터 마력전도성실을 구입하셨습니다.(-40,000 VP)
-살라만다 커뮤니티로부터 전이술식 서비스를 이용하셨습니다.(-1,000 VP)
-타오님으로부터 500,000 VP가 도착했습니다. x 2
-함비님으로부터 1,000,000 VP가 도착했습니다.
-TOTAL: 2,103,000 VP
팔을 교차하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내 VOT 단말기 어드레스에 액세싱한 함비가 허겁지겁 VP를 보내온다. 200만 VP 보기만해도 배가 불러오는 잔고를 보고 있자니 여신마켓에 입성했을때 총알이 부족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함비랑 같이 도망쳐야 한다. VP 줬으니까 마을까지 함비 데려다 줘라."
"왜 도망쳐야한다는겁니까?"
"체어맨 아니 데드마스크 함장이 곧 자기 해적선 끌고와서 복수한다."
'아니 잠깐 자기 해적선을 끌고 온다니 그게 무슨소리야? 체어맨 그 자식 죽은거 아니였어?'
"그자는 저희가 보는 앞에서 목숨을 잃지 않았습니까? 혹시 그의 동료가 복수하러 온다는 말을 하고 싶은겁니까?"
"방금 죽은 체어맨 교수 아바타다. 본체는 망월해적단의 선장 데드마스크다. 해적선 크레센트타고 곧 복수하러 올거다. 함비 빨리 도망쳐야한다. 함비 이 행성 벗어나야한다."
"주인님 그렇다고 합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이 늙은이가 목숨을 바쳐가면서 워프게이트를 만든 이유가 그거였구나. 제기랄! 하지만 아직 라라펠 일행이 전생유적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도망칠 순 없어. 일단 캠핑트럭에 들어가서 대기했다가 응전하던지 해야겠군.'
'함선이랑 싸움이 성립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뒷말을 삼키며 조용히 대함선 전투시뮬레이션을 그려보았다. 타오함장의 순양함과 교전했을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함내에서 분탕질을 치는것과 함선밖에서 대치하는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니까.
그렇다고 함선이 무서워서 도망쳤다가 라라펠 일행이 죽기라도 하면 의뢰는 수포로 돌아간다. 거기에 에녹한테 큰소리 빵빵쳐놓고 적에게 등을 돌리고 싶지도 않았다. 여차하면 Ex 랭크의 영력으로만 통제할 수 있는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을 소환하는 리스크를 질 생각까지 하며 나는 에녹을 캠핑트럭으로 인도했다.
* * * *
"그러니까 체어맨이란 작자가 사실은 교수가 아니라 망월해적단의 선장 데드마스크였고 나를 납치하려 했었다고? 도대체 왜?"
"함비라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휘르 행수에게 라라펠 누님의 몸값을 요구하려 했답니다. 비스트코인 상단 커뮤니티를 상대로 1000만 VP정도를 뜯어내려 했다더군요."
"와우! 라라의 몸값이 그정도였던가? 그런데 우리 몸값은 취급안해줘? 설마 우리를 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레서 농담할때가 아니야. 지금 당장 사상누각으로 돌아가서 그라트록님에게 상단호위함의 출격을 요청해야돼. 망월해적단이라면 전함을 몰고다니면서 정규배송함선까지 털어버리는 악명 높은 놈들이라고."
"잠깐 그런데 백토성은 자기모래폭풍때문에 전자기기는 사용할 수 없는거 아니였나? 함선도 예외는 아닐것 같은데."
"옥토끼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망월해적단의 전함 크레센트는 조금 사정이 다르지. 왜냐면 전함 크레센트의 외벽은... 화이트 티타늄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체어맨의 텔레웨폰 공격으로 손상된 뇌 재생을 끝나고 에녹으로 부터 몸의 제어권을 다시 돌려받은 순간, 공교롭게도 라라펠 일행이 전생유적을 빠져나왔다. 나름 성과가 있었는지 기뻐하는 그들에게 나는 찬물을 끼얹을 수 밖에 없었다.
자세한 정황을 전달받은 그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오히려 나보다 망월해적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망월해적단은 전국구로 노는 무법자 해적들이라 모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란다.
그들의 선장 데드마스크의 악독함은 새삼 말할것도 없었으니 온화한 교수 이미지의 체어맨이 그의 아바타일거라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으리란 말도 덧붙였다. 모두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그때, 라라펠이 전생유적을 나온 순간부터 착용하고 있던 보석관을 향해 모래손이 달려들었다.
모두가 전생유적에서 얻은 기연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있던 터라 눈뜨고 코를 베일 수 밖에 없었다. 보석관을 집어든 모래손이 급히 어디론가 향했으니 그 곳에는 머미메이지 무슈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캬캬캬캬캬캬캬캬! 설마하니 저 수인놈들이 사자의 관을 회수해 올줄이야. 이제 이 빌어먹을 노예생활도 끝이다. 옥사건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야 무슈 뒤에 안보이냐?"
"뒤가 안보이냐고? 캬캬캬캬캬!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군. 내가 뒤를 돌아보면 이매망량으로 사자의 관을 다시 회수할 생각인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이제 모래의 군단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으니 옥사건 네놈은 제명에 죽지 못하리라."
사자의 관을 머리에 착용한 무슈는 일전에 말한대로 어마어마한 마력증폭을 선보이며 모래바닥에 크레이터를 생성했다. 뿐만 아니라 모래바닥에서 모래기마병사들이 하나둘씩 일어서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더니 못해도 1만기는 되보였다.
이정도면 2배가 아니라 거의 4배수준의 마력증폭 아닌가? 그러나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체어맨이 열어두었던 워프게이트로 전함(Battleship)의 끄뜨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였다. 순양함급인 실버스케일보다 거대한 함선을 보는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과연 전함은 격이 다른 스케일로 모래대지 위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무슈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지만 미라술사를 맞이한건 땅을 가를 기세로 쏘아진 전함의 주포였다.
1만기의 모래기마병사들이 허무하게 모래먼지로 산화해 사방이 자욱한 흙먼지로 뒤덮인다. 고밀도로 농축된 에너지파와 정면대결을 하는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두눈으로 확인한 나와 라라펠 일행은 급히 트럭에 올라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주인님 저도 데려가주십쇼! 제가 백번, 천번 잘못했습니다. 사자의 관도 드릴테니 제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