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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의 승계싸움에서 밀려났음을 고백하는 카트랏슈의 태도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마음은 모른다고 냉큼 믿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어 나는 사령안을 발동해 카트랏슈의 영혼 속삼임을 들어보려했다.
그러나 아무리 사령안에 마력을 때려부어도 굳게 닫힌 마음 속 문이 열이질 않는다. 나는 카트랏슈를 향해서는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했지만 속으로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용린혁 가주의 영혼 속삭임도 부분적으로나마 꿰뚫어보았던 사령안이 통하지 않는다는건,
지금 눈앞에 있는 청년의 심계가 용린혁 가주보다 뛰어나다는 뜻이였다. 지금까지 사령안이 통하지 않았던 상대는 밴쉬세이지 누시아가 유일했거늘 또 한명이 추가되는 순간이였다. 그렇다면 승계싸움에서 밀려났다는 이 자의 말도 거짓일 가능성이 99%.
엔츄라 여왕이 유능한 리더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사령안 제 1형 트루스피커를 상쇄시킬 정도의 심계를 지닌 자를 밀어낼 정도는 아니였다. 애시당초 이 넓은 사막에서 전생유적이 있는 장소로 찾아온것 자체가 넌센스가 아니였던가?
"그렇다면 이 전생유적에 관한 이야기 부터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강력한 결계가 쳐져있다는 사실은 알고있었습니다만 내부는 어떻게 꾸며져 있나요?"
"편의상 반말로 설명하지. 전생유적이란건 일단 기본적으로 인류에게 디파일러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기 위해 초월적 존재가 만든 수련장이라고 보면돼. 하지만 아무에게나 힘이 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덕체를 고루 테스트하고 있지. 총 31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방에 지덕체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문이 3개 있어 원하는 테스트를 반복해서 받을 수 있지만 테스트에 실패할시 지덕체 테스트가 전반적으로 어려워진다는 리스크가 있어.
성공했을때는 해당 테스트만 난이도가 올라가 가급적이면 지덕체 세트를 고루 통과하는것이 최종층까지 쉽게 갈 수 있는 요령이라면 요령이랄까."
"단순한 던전은 아닌거네요. 듣기만 해도 재미있어 보여요."
"그러면 나한테 전생유적 입장권 1장 살텨? 마침 화이트 티타늄 1금괴가 입장권 시세와 비슷한 정도라서 말이지."
"아뇨, 괜찮습니다. 테스트를 통과할 자신이 없어서 말이죠. 그러면 아저씨가 전생유적에서 겪었던 일들을 말씀해주시겠어요?"
"미안하지만 화이트 티타늄 1금괴 분량의 이야기 보따리가 이미 풀려서 말이야.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이야기값을 추가로 지불해야한다만?"
"그... 그런가요?"
카트랏슈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소매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말잘하는 이야기꾼이라고 해도 이렇게 가격을 후려칠 수 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카트랏슈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걸 아는 상황에서 정직하게 장사할 필요가 있겠는가?
절대 아저씨라는 칭호가 서운해서 그런게 아니라 벌어둘 수 있을때 바짝 벌어 여신마켓에 입장했을때 몇백 VP차이로 못사는 물건이 나오지 않게 하기위한 밑계산이였다. 카트랏슈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내민 화이트 티타늄 1금괴를 강탈하다시피 빼앗아 인벤토리에 넣어두고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전생유적에서 거대악어 두마리와 사투를 벌였던 이야기라던가, 노인과 체스내기를 해 아티팩트를 손에 넣은 일 그리고 고래를 잡아먹는 물고기에게 잡아먹혔던 일화까지. 화이트 티타늄 1금괴값은 하기 위해서 실감나게 손동작까지 겻들이며 썰을 풀어나갔다.
"그러면 일부러 그 던클레오라는 물고기를 사냥하기 위해서 일부러 삼켜졌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그렇지. 그 놈 아가리에 괴상한 기생충들이 드글드글거릴때는 앗차싶었지만 내가 누구야? 천하무적 옥사건 아니겠어. 그 놈 위까지 식도를 타고 내려가서 완전히 내장을 도륙내버렸지."
"굉장해! 그런 괴물 물고기와의 사투라니 정말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군요. 화이트 티타늄 1돈을 지불한 보람이 있달까."
"뭐 또 듣고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만하라고. 아 그렇지, 너 아직 동정이지? 이 형이 야한 이야기 해줄까?"
"야한 이야기요? 아아 그건 좀... 그것보다 디파일러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실 수 있나요? 디파일러와 인류는 왜 싸울 수 밖에 없는거죠? 아 화이트 티타늄이라면 여기."
"됐어. 넣어둬, 넣어둬. 그 정도는 서비스로 이야기해줄테니까. 사실 디파일러의 기원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게 없지만 그들은 스텔라 비타라고 하는 별의 힘을 흡수하기 때문에 인류와 척을 질 수 밖에 없다더군. 인간들끼리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봐야 행성입장에서는 간지러울뿐이지만 디파일러가 싸우다보면 별의 힘이 서서히 쇠약해져서 멸망에 치달을 수 밖에 없지.
한마디로 인류의 삶의 터전인 행성과 공존할 수 없기에 그들을 몰아낼 수 밖에 없는거야."
"그러면 디파일러가 스텔라 비타 즉 별의 힘을 흡수하지만 않으면 인류와 디파일러는 사이좋게 될 수 있는건가요?"
카트랏슈가 가슴이 찡해질정도로 애잔한 표정을 지은채 내게 질문해왔다. 디파일러와 인류의 사이가 좋아질 수 있냐고? 수왕성에 넘어온 그 시점부터 나는 디파일러를 상대로 전투를 치뤄야했고 지금까지 그 어떤 의심도없이 그들을 적으로 인식해왔다.
디파일러는 항상 선제공격을 해왔으니 정당방위 차원에서라도 내가 꺼리낄건 없다. 공격해온 적을 무찌른다, 이건 별의 힘을 흡수하고말고 이전의 문제다. 그런데 선제공격을 해오지 않는 디파일러란게 존재하기는 하는건가?
"도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선제공격을 해오지 않고 별의 힘도 흡수하지않는 쌔끈한 미녀 디파일러 퀸이 있다면 친해질 용의가 없는건 아니야."
"쌔... 쌔끈한 미녀여야만 하는건가요?"
"당연하지! 아무리 착하다고 해도 시커먼 남자새키들이랑 친해져서 뭐해?"
"그렇군요. 아저씨는 조금 특이한 인간인것 같아요.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가요?"
"원래 인간들은 같은 인간끼리도 죽이지 못해 안달난 경우가 많은데 디파일러랑 친해질 수 있을리가 없잖아. 내 모행성의 역사를 살펴봐도 인간사에는 투쟁이 빠지지 않는다고. 도대체 이런 괴상한 질문을 하는 저의가 뭐냐?"
"그건... 아저씨 제 말을 듣고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실 수 있나요?"
"듣기도 않은 이야기를 두고 내가 어떻게 놀라지 않을지 장담해? 그냥 속시원히 말해봐."
"사실 제 정체는 사상누각의 몰락귀족이 아니라 디파일러 킹입니다."
나는 뇌속 연산장치가 고장난 것처럼 일순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디파일러 킹이라고? 팔각의 침식자중 한명이자 백토성의 모든 디파일러들의 정점에선 존재인 그 디파일러 킹? 그제서야 사령안이 통하지 않았던 것과 뜬금없이 사막에서 솟아난 그의 존재가 맛물려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너 나 공격할거냐?"
"아뇨. 저는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거나 하지 않아요."
"나도 네가 공격하지 않는다면 굳이 싸우려들지 않겠어. 하지만 한가지 네가 착각하지 말아야할 점은 내가 다른 인간들처럼 디파일러 킹에게 쫄아서 싸우지 않는게 아니라는거야. 단지 무의미한 싸움을 하고싶지 않아서 그런것 뿐이니까."
"아저씨가 강하다는건 저도 알고있어요. 보통 사람이라면 디파일러 킹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저앉는다는것도."
"알면됐고. 그래서 디파일러 킹씩이나 되는 양반이 뭐하러 신분을 속이면서까지 내게 접근한거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인간들의 삶이. 정확히는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는 그들이 부러웠달까. 하지만 디파일러는 만인의 적이란 느낌이라서 그들 사이에 녹아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멀찍이서 지켜볼뿐이였죠."
"그렇게 부러우면 차라리 힘으로 찍어눌러서 지배해버려. 디파일러 킹씩이나 되면서 무슨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춘기 소년마냥 찡찡거리고 있냐?"
"힘으로 지배하라고요? 저... 아저씨는 인간편이 아닌가요?"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야. 오직 나만을 위해서만 사는 외길인생 옥사건이다. 인류의 편에서서 디파일러와 맞서싸우는 히어로가 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이거야."
지구의 평범한 소시민이자 게임폐인에 불과했던 내가 새로운 힘을 각성한건 전부 VOT(Vaccine Of Things) 시스템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스템 설계자의 의도대로 디파일러라는 바이러스를 몰아내는 항생제 역할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나를 위해서만 이기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아저씨는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네요. 저도 아저씨처럼 저를 옭아매고 있는 규칙들을 집어던지고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시키면서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 대화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기시면 대붕공자 카트랏슈를 불러주세요. 무슨일이든지 딱 1번은 도와드리겠습니다. 말동무가 되어준 보답이랄까요.
그럼 이만 다른 손님이 온것 같으니 저는 가보겠습니다."
"다른 손님이라니 그게 무슨..."
내 바로 옆에 있었던 카트랏슈가 모래폭풍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저 멀리 주차하고 있었던 지프차도 이미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올때 차를 타고 왔으면 갈때도 차를 타고 가지 뭐하러 이런 고전적인 연출까지 동원해서 사라진담.
"주... 주인님 그자는 갔습니까?"
"어 갔어. 넌 왜 또 벌벌떨고 앉아있어. 내가 지프차 감시하란말 못들었어?"
"방금 그자 겉보기와 달리 아주 무서운 자입니다."
"디파일러 킹이니까 당연히 한끗발 하는 놈이겠지."
"아니 단순히 그런 수준이 아니라 마치 제가 야누스님을 알현할때나 드는 위압감이..."
"아주 이놈이 주인님을 앞에두고 다른 놈 얼굴 금칠하기 바쁘구나. 어떻게 하면 이 놈 버릇을 고쳐줄 수 있을까? 다음부터는 돋보기라도 가지고 다녀야겠네."
"자네 참 즐거워보이는군. 라라펠은 어디갔는지 말해주겠나?"
무슈를 닥달하던 나는 뜨거운 태양이 내려쮜는 사막에서 뒷통수가 서늘해지는 기이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정중하고 중후한 목소리가 마치 뱀처럼 내 귓가를 휘감고 있었다. 태옆인형처럼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정장차림의 체어맨이 처음부터 그자리에 있었던것 마냥 자리하고 있었다.
"체어맨 영감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구조팀은 제가 맡는걸로 결정난지 오랠텐데요."
"아 그랬지. 너무 걱정하진 말게. 라라펠양을 구조하는 일은 완벽하게 포기했으니까. 대신에 라라펠양을 납치하는 일을 계획했지. 그 과정에서 건방진 애송이 한놈을 손봐주는건 물론이고."
"여긴 어떻게 찾아오신거죠? 미행이 붙은 흔적은 없었... 아하 그때 내 어깨를 치면서 뭔가 수작을 부려놨던거군."
"오호라 자네 제법 눈썰미가 좋아. 물론 이제와서 눈치챘다한들 아무의미도 없지만서도. 천리추혼이라고 하는 술식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네만 이 술식이 행해진 시점부터 쭈욱 자네는 내 손바닥위였다네. 한마디로 도망쳐도 의미없다라는 소리지. 그런히 순순히 라라펠양이 어디있는지 내게 말해주겠나?"
"후우... 내가 조금 부주의했다는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그런데 이 영감탱이가 나이대접을 해주니 끝도 모르고 기어오르네. 누구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늘그막에 허리가 분질러져서 비올떄마다 고생하고 싶은 모양이지? 기왕 백토성에 온거 모래찜질이나 하다가 곱게 상아탑으로 돌아가!"
"역시 자네는 너무 건방져. 참을 수 없을정도로. 전이술 마에스트로에대한 공경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지. 그래서 말이야 나는 마에스트로란 가면을 벗기로 했네. 자네 버릇을 고치기에는 아무래도 망월해적선의 두목 데드마스크의 가면이 나을것 같아서 말이야."
체어맨이 품안에서 흉측하게 생긴 가면을 꺼내 외눈안경을 대신해 착용했다. 단지 그뿐만인데 분위기가 반전되어 영국 중년신사를 희대의 악당으로 탈바꿈시켰다. 정체가 수상하다는건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해적선의 두목이라... 상아탑의 학생들이 알면 까무러칠 일이군. 그런데 해적은 무법자들이나 하는 짓거리 아니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