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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다음 날 아침 조난자와 구조자가 한팀을 이뤄 머미메이지 무슈의 무덤을 찾기 위해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릭과 레서 밖에 없어 그 둘이 12시간씩 2교대로 운전대를 잡기로 했다.
무슈는 조수석에 앉아 길안내를 맡았는데 밤에는 별자리를, 낮에는 쌍둥이 태양의 각도에 따른 그림자를 기반으로 척척 가야할 길을 지목해냈다. 사실 백토성이 보통 사람도 길치로 만들정도로 방해전파가 많은 곳이였으니 무슈가 엄살이 심하긴 해도 지성파는 지성파였다.
살아생전에는 별자리를 기반으로 날씨까지 예측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는데 신빙성이 아예 없는 말은 아니다. 백토성처럼 척박한 기후를 지닌 곳에서 비가 올 날짜를 예측할 수 있는 주술사는 황제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으리라.
소위 신정일치라는 것을 이루어낸 셈. 물론 지금이야 레서가 피우는 담뱃불만 봐도 벌벌떠는 겁많은 미라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각설하고 운전과 길안내에서 벗어난 나는 제법 여유시간이 생긴터라 백신마켓을 뒤적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옥사건의 보유자금]
-POS(Point Of Sales) 단말기 푸스카123으로부터 1,700 VP가 도착했습니다.
-블랙77님으로부터 142,300 VP가 도착했습니다.
-살라만다 커뮤니티로부터 마력전도성실을 구입하셨습니다.(-40,000 VP)
-살라만다 커뮤니티로부터 전이술식 서비스를 이용하셨습니다.(-1,000 VP)
-타오님으로부터 500,000 VP가 도착했습니다. x 2
-TOTAL: 1,103,000 VP
타오함장으로 부터 뜯어낸 아니 받은 정당한 전리품들을 과연 어떻게 써야 잘썼다는 소문이 날까? 백신마켓의 검색조건을 수십번씩 바꿔가며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답이 나오질 않는 문제였다. 먹으면 슈퍼맨이 되는 영약따위는 대우주시대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공증진에 효험이 있는 영약들이야 쌔고쌨지만 대게 5~10년 정도의 효과가 있는 보급형 단약이였다. 먹으면 먹을 수 록 효과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아바타인 내가 먹어봤자 얼티밋 언데드 폼의 항마작용 때문에 허공에 날리는 격이다.
그렇다고 본체가 그런 영약을 먹어봤자 마력입자가 없는 지구에서 운기조식을 하는것조차 버거울뿐. 역시 일전에 계획했던대로 트롤왕 리쿤다룬의 골수세포를 본체에게 이식하는것이 가장 베스트로 보였다.
사실 기야스에 있는 의료시설도 상당히 휼륭한 수준이니 10만 VP 정도면 충분히 VOTO(Vaccine Of Things Online) 시절의 내 공방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돈은 여신마켓에 입장했을때를 대비한 총알로 남겨둬야겠지.
"생각해보면 천년정화수는 터무늬없는 영약이였네. 원하는 효과를 그대로 이루어지다니."
"그걸 이제 알았어? 이 바보 계약자야! 그 귀중한 신수를 두고 그때는 무슨 정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에휴..."
"어라 오르시나 이제 기운 차린거야?"
"몰라 말도마. 이 행성 수의 기운을 살인적으로 억누르고 있어서 내가 활동하기에 최악이야. 차라리 지구가 나을정도니까 말 다했지. 오염된 수원이 많긴해도 내 힘을 깎아내리는 수준은 아니였으니까. 미안하지만 앞으로 교전상황이 벌어져도 내가 도움을 줄 수 없을것 같아. 어차피 주변에 물 한방울도 없어서 내가 힘쓰기 좋은 장소도 아니였지만."
"괜찮으니까 너무 마음쓰지마."
"너 정말 변했구나. 옛날같았으면 싸움이 안돼면 몸으로 위로해줘야지라고 능글맞게 말하면서 덮쳐왔을텐데. 그 귀룡탕이라는거 나한테 한번 보여주면 안돼? 성분분석을 해서 다시 만들고 싶을 정도야."
"그딴걸 허락해주겠냐!"
"싫으면 싫은거지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나 피곤하니까 다시 유체화한다."
오르시나가 다시 물거품이 되어 흔적도없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트럭이 멈춰선것을 보아하니 어느새 릭과 레서가 교대할 시간이 온 모양이다. 그 둘에게만 운전을 맡기는것이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괜히 무면허가 나서서 트럭을 운전하다 뒤집어지기라도 하면 그런 생난리도 없을 것이다.
드르르르렁, 드르르르르렁. 2층에서는 라라펠이 천둥을 치는것 마냥 코를 골면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고 나도 백신마켓 서핑에 질려하던 참이라 잠이나 자기로 했다. 지금 체력을 비축해뒀다가 힘쓸일이 생기면 릭과 레서 대신에 나서면 되는것 아니겠는가?
* * * *
릭과 레서가 번갈아가면서 사흘밤낮을 주행한 결과 마침내 무슈가 자신의 무덤에 도달했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나와 라라펠 일행이 목도한 것은 웅장한 크기의 피라미드가 아닌 폐허가 된 잔해였다. 물린 우리를 정말 나자빠지게한 점 그게 아니라...
-전생유적을 발견하셨습니다. 첫 발견자이신 옥사건님께 100,000 VP가 포상금으로 지급되었습니다. 전생유적을 발견한 공을 어떤 커뮤니티에 돌리시겠습니까?
[용린검가]
[실버스케일]
[언데드 주식회사]
"야 무슈 이게 뭐야? 왜 네 무덤이라고 해서 와봤던 장소에 전생유적이 있는거야?"
"주, 주인님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거냐하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상황에서 제일 어처구니없는건 바로 저입니다. 전생유적이라는게 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남의 무덤에 이런 강력한 결계를 펼쳐놓고 입장을 제한하는 경우가 어디있단 말입니까? 어떤 신의 장난질인지 모르겠지만 야누스의 저주를 내리고 말겠습니다!"
"거... 거짓말. 10년동안 이 행성, 저 행성 들쑤시고 다녔을때도 발견못했던 전생유적을 조난중에 발견하다니."
"라라, 인생이란게 바로 그런거 아니겠어?"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도올명과 도철광의 시체로 만든 듀라한을 팔기 위해 만들었었던 언데드 주식회사를 VOT 단말기에서 선택해 전생유적입장권 30장을 받아들였다.
기왕 이렇게 된김에 전생유적에 입장하는 것이 당연지사겠지만 나는 이미 수왕성에 있는 전생유적의 31층을 돌파해서 오르시나까지 얻은 몸.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 입장권을 라라펠 일행에게 넘겨야 한다는 뜻인데 공짜로 줄만큼 내 인심이 후하지 못하다. 입장권 값으로 전생유적의 기연을 받아야 수지가 맞을텐데 기연이라고 하는것이 사실 단일품목이 많아서 8:2로 나누기가 애매하다.
"이렇게 하죠, 누님. 제가 공짜로 전생유적 입장권 3장을 드리겠습니다. 대신에 전생유적에 들어가셔서 얻은 기연들 중에 딱 하나만 제가 선택해서 가져갈 수 있게해주십쇼."
"딱 하나만?"
"예, 그렇습니다. 제가 재량껏 저한테 필요할만한 기연을 골라가겠습니다. 뭐 실버라군의 실력을 생각하면 그럴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전생유적에서 기연을 1개 혹은 0개를 얻으면 기연을 가져가지 않을거고요."
"나쁘지않은 조건이군. 릭, 레서 어떻게 생각해?"
"나쁘고말고를 떠나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지않겠어? 그런데 사건군 본인이 전생유적에 들어가지 않는건 역시 입장경력이 있기 때문인가?"
"맞습니다. 수왕성에 있는 전생유적에서 이미 한바탕한적이 있지요."
"나는 레서와 라라의 판단에 맡기겠어. 뜬금없이 전생유적이라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어떻게보면 일반 유적보다 안전한게 전생유적이니까."
"좋아! 그 제안 수락하지. 그런데 옥토끼 경험자로서 뭐 조언해줄건 없어?"
"조언이요? 흐음. 굳이 조언하자면 마지막 31층에 있는 수호령을 노리시는게 아니라면 그냥 지덕체 테스트중 가장 자신있는걸 감당할 수 있는 레벨까지 반복하세요. 그 편이 기연을 얻을 기회를 더 늘려줄겁니다. 왜냐면 특정 층에서 기연을 얻고말고는 순전히 랜덤이거든요. 물론 고층으로 갈 수 록 수준높은 기연이 나오는 경향은 있지만서도."
"함정이 있는것도 아니고 비밀문이 있는것도 아니니 간단해서 좋군. 단순하게 말하자면 내 경우 계속해서 쌈박질만 하면 된다는거 아니야? 릭, 레서 가자!"
내가 발송한 전생유적 입장권을 받아든 라라펠 일행이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단숨에 전생유적에 입장했다. 모래바닥에 널빤지로 가려진 계단을 통해 라라펠 일행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나는 황량한 사막에 무슈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주인님 제 사자의관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글쌔? 무슈 네 무덤이 전생유적화 되면서 지덕체 테스트의 통과 보상이 됐을 확률이 높아 보이는군. 기연은 총 30개고 라라펠 일행이 3개의 기연을 얻는다고 가정하면 십분의일의 확률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그 경우 사자의관은 네것이 아니라 내것이 될테지만. 설마하니 언감생심 네놈이 가지겠다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하... 한번만 만져봤다가 주인님께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좆까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너는 냄새도 못맡게 할줄알아."
"너... 너무하십니다. 여기까지 힘들게 별자리를 역계산해서 길안내를 한 저의 공은 생각해주지 않으시는겁니까?"
"무슈야 그러면 고스톱 놀이로 어떻게할지 결정할까? 내가 너를 거꾸로 매달아서 가스렌지위에 떨어트리는거야. 그때 너가 고나 스톱을 할 수 있는데 너랑 가스렌지 사이의 거리가 1cm 미만이면 사자의관 한번 네 머리에 쒸워줄게."
"사... 사양하겠습니다. 앗차했을때 저는 화상으로 끝나지 않는다니까요!"
"싫음 말고."
그렇게 전생유적의 입구에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모래바람이 거세진터라 나는 다시 캠핑트럭으로 돌아갈 심산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저기 묻은 모래먼지를 털어내며 캠핑트럭으로 향하는데 어디선가 차량엔진음이 들려온다.
사실 이런 사막에서는 디파일러보다 사람이 무서운법이다. 삭막한 자연환경이 사람의 마음마저 삭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먹고 사는 문제가 박하면 사람이 언제 강도로 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캠핑 트럭 근처에 주차한 지프차는 척봐도 엔티크한 디자인의 고급모델로 강도들이 타고 다닐만한 것은 아니였다. 시동이 꺼지고 흰색 터번을 한 싱그러운 미소의 미청년이 지프차에서 내려 내게 다가 오고 있었다.
귀티가 잘잘흐르는 그 자태에 강도가 아님을 직감했으나 나는 긴장을 풀지않은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내리진 않았지만 지프차에는 딱봐도 힘좀쓸거 같은 어깨형님들이 터번으로 얼굴을 칭칭감고 있었다. 이거 너무 수상한 조합인걸?
"안녕하세요? 저는 카트랏슈라고 합니다. 잠깐 합석해도 괜찮을까요?"
"마치 이곳이 도회지의 까페라도 되는것처럼 이야기하는군. 미안하지만 여기는 사막한가운데에 있는 전생유적의 입구라고. 넉살이 좋은것도 정도껏이어야지."
"죄송합니다. 외지사람을 보는것이 너무 오랜만인지라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다른 수상한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경계하게 만들었다면 제 잘못이겠죠. 이건 화이트 티타늄이라는 것입니다만 괜찮다면 이야기값이라 생각하고 받아주십쇼."
카트랏슈라고 본인을 밝힌 청년이 엔츄라 여왕이 내게 건넸던 화이트 티타늄 1금괴와 동일하게 생긴 물건을 품에서 꺼냈다. 저 눈이 부실정도의 백색휘광은 진품이라는 증거. 카트랏슈 일행이 수상쩍은건 여전했으나 20,000 VP짜리 선물을 마다할 필요는 없었다.
청년이 건넨 화이트 티타늄을 낼름받아서 인벤토리를 열고 엔츄라 여왕에게서 받았던 것의 옆자리에 둔 나는 무슈에게 눈짓해 지프차를 경계할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청년에게는 비교적 누그러진 어조로 입을 열었으니,
"줬다 뺐는게 얼마나 치사한지 그쪽의 귀공자도 알고있으리라 보오. 그러면 어디서 오신 뉘신지부터 밝혀주시겠소? 솔직히 아직도 사막 한가운데에서 뚝 떨어진 공자가 의심스럽기 그지없소."
"저는 사상누각의 귀족출신으로 후계싸움에서 밀려나 수행원들과 정처없이 사막을 떠돌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사상누각으로 돌아간다 한들 화이트 티타늄 광산에 노역으로 끌려갈 뿐인지라 울며겨자먹기로 방랑생활을 계속해오고 있지요. 그러다가 우연히 그쪽분을 만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사상누각 출신이라... 그러면 엔츄라 여왕도 알겠군요?"
"물론입니다. 저를 후계에서 밀어낸 장본인이 그녀였는데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