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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릭, 레서 상황은 어때?"
"문제없어. 모자랐던 잠도 보충했고 비싼 양고기도 먹었으니 밥값은 해야하지 않겠어?"
"하지만 방심은 금물. 트럭을 지켜야 하니까."
밖으로 나와 캠핑 트럭위로 올라와 보니 확실히 보통상황이 아니였다. 킴핑 트럭을 중심으로 하늘 위를 새까맣게 매운 대머리 독수리들이 모두 디파일러 폰들이라고 생각하니 잠이 싹 가신다. 가볍게 점프해서 올라간 라라펠이 내밀어준 손을 잡으니 그녀가 마치 밭에서 무를 뽑듯 나를 뽑아들어 트럭 지붕위로 던져버린다.
아이고 늑대누님 허리 아작나겄소. 섬세함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손길에 불평을 토해내려 했지만, 에너지 웨폰계열인 크로스보우와 건틀릿으로 무장한 레서와 릭 사이로 들어가 삼각대형을 갖춘 라라펠은 이미 전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들을것 같지 않았다.
"야 옥토끼 너 술사라고 했지? 엄호해 줄테니까 큰거 한방 준비해봐!"
"예? 옥토끼요? 잠시만요, 누님. 제가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현재 성기능이 저하된 상태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옥토끼라뇨. 제가 풀파워 모드는 휘르 행수도 감탄할 정도였단 말입니다. 그 말 취소하시죠."
"아니 사건군, 라라는 아마 그런 의미로 말한게 아니라 남자치고 근육이 없고 귀엽게 생겨서 토끼를 연상했던것 뿐일거야. 그런데 그 문제 이전에 전투에 집중해야할것 같다만 웃고 떠들면서 싸우기엔 우리 에너지 셀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거든. 릭 너는 몇개 남았어?"
"6개 정도이려나. 아껴쓰려면 얼마든지 아껴쓸 수 있지만 쉴드를 발동시키려면 얄짤없이 에너지 셀 하나를 소모할 수 밖에 없어."
"나는 8개. 1개당 60발 정도 쏠 수 있으니까 백발백중이라고 가정해야 480마리를 저승으로 데려갈 수 있는건가. 꽤 빠듯하네."
"레서, 나 에너지 셀 2개만 빌려줘."
"에? 라라, 전에도 2개 빌려갔잖아. 여차하면 손톱으로 싸울 수 있다고 너무 낭비하는거 아니야? 자 여기. 이번에는 아껴 쓰라고."
"빌어먹을 디파일러 놈들이 자꾸 재생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거기에 빔샤벨은 특성상 절약하기가 쉽지않다고."
식량과 물의 보급말고도 라라펠 일행을 곤란하게 만드는 보급물자가 또 있었던 모양이다. 휘르 행수가 에너지 웨폰의 탄환인 에너지 셀까지 챙겨준건 아니였기 때문에 나는 이번 싸움에 제법 힘을 실기로 했다.
사막을 횡당하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여차했을때 그들이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편이 안전했으니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에보니 메이든을 꺼내들어 머미메이지 무슈를 소환하는 한편 쉐도우 브레스로 놈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기 위해 마력기관을 예열 했다.
허나 그걸 지켜만보고 있을 디파일러 놈들이 아니였다. 각기 일개중대의 디파일러 폰을 이끄는 4명의 디파일러 나이트들이 새때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디파일러 폰과 달리 인간형태의 몸을 베이스로 새머리와 날개가 달린 그들이 주변에서 부산스럽게 날아다니는 디파일러 폰의 날갯죽지를 낚아채더니 트럭을 향해 내리 꽂는다.
디파일러 나이트 파이어버드(Firebird) 종속마력기관 발동 x 4
"머미메이지 무슈가 주인님을 뵙ㅅ... 으아아아악! 주인님 불덩이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저 좀 살려주십쇼! 제 붕대는 너무 타기쉬운 재질인지라 한방에 훅갈 수 있습니다."
"자랑이다 이 자식아! 내 뒤로 숨어있다가 여차하면 저 하늘 위의 녀석들한테 체인 커스나 날릴 준비해."
"오호호 가.. 감사합니다. 주인님의 등뒤라면 백만대군이 몰려와도 안전하겠지요."
"릭 쉴드 발동 준비해!"
"롸져 댓!"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것도 아닌데 나오 라라펠 일행은 캠핑 트럭의 네바퀴를 노려오는 디파일러 나이트 공격을 반반씩 나눠 수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마음 먹으면 이매망량 천인대를 총동원해 트럭을 방패로 촘촘히 둘러쌀 수 도 있었지만 라라펠 일행의 실력을 견식할겸 전면부의 바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산채로 타오르는 디파일러 폰을 매개체로 한 공격이 중력가속도를 받아 무시무시한 속도로 짓쳐들기 시작한다. 이매망량 천인대의 방패대형을 견고히해 어렵지 않게 타이어가 녹아내리는 것을 막아낸 나는 불똥이라도 튈까 오두방정을 떠는 머미메이지 무슈를 뒤로하고 라라펠 일행을 살폈다.
두 파이어 버드중 하나는 릭이 건틀릿으로 두루마리를 펼치듯 실드를 펼쳐 막아냈고 나머지 하나는 라라펠이 빔샤벨로 두동강을 내버렸다. 그렇다면 레서는 놀고만 있었냐? 그건 아니였다.
어느새 달빛을 등불삼아 석궁을 겨누고 있던 레서가 소총을 연사하듯 에너지 볼트를 쏘아올려 디파일러 나이트 중 한 마리를 고슴도치로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비행능력을 잃고 낙하하는 그 녀석을 라라펠이 달려들어 빔샤벨로 오체분시 시킨 뒤 모래까지 뿌려 재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두번 맞춰본 솜씨가 아니군. 굉장한걸?"
"사건군 혹시나 힘쓸일이 있으면 용병 커뮤니티 실버라군을 기억해 달라고. 그 어떤 오지라도 디파일러와 싸울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용감한 용병삼형제들이니까. 수십명씩 우르르 몰려다니는 용병 커뮤니티보다 비용까지 저렴하다고."
"식비를 제외하면 말이지."
"아직 전투끝난거 아니야, 둘이 언제까지 시시덕거리고 있을래! 옥토끼 뭐 준비된 술식같은거 없어?"
"무슈 누님말 들었지?"
"네에엡! 체인 커스 이제 막 주... 준비 완료됐습니다. 이 새대가리 놈들 불장난은 아무대서나 하는게 아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저주를 탐했던 황제의 사악한 의지가 담긴 음에너지가 고목나무 지팡이를 타고 디파일러 폰들에게 쏘아졌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파멸이리라. 디파일러 폰 한 마리의 의문사가 죽음의 물결을 퍼트리며 순식간에 백여마리에 달하는 대머리 독수리들이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디파일러 나이트들이 멀쩡한 디파일러 폰과 저주에 걸린 디파일러 폰들을 분리해 부패의 저주가 전염되는 것을 막았다. 확실히 지휘관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확연하다.
일전에 디파일러 폰으로만 구성된 무리와 교전했을때는 속절없이 당했던 녀석들이 머리가 장식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기에 재차 종속마력기관 파이어버드를 발동해 반격까지 꿰하니 제법 싸울 맛이 난다.
"솔직히 전에는 허수아비랑 싸우는것 같아서 하품이 나왔는데 말이야."
"주... 주인님 하늘에서 불덩이가 수십개씩 쏟아내리고 있습니다! 저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아가면 안될까요?"
"엄살 좀 피우지마. 막으면 돼잖아, 막으면."
"레서, 릭을 중심으로 뭉쳐서 트럭을 포기하고 쉴드로 이번 한턴을 버틴다. 어차피 보급품은 옥토끼가 이공간에 보관중이고 까짓것 사상누각까지 걸어가면 그만이야."
"노숙은 실버라군의 숙명일지어니."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레서, 라라 더 바짝붙어."
나는 이매망량 천인대를 총동원해 트럭을 반구형태로 겹겹이 감쌀 수 있도록 했다. 방패로 실체화한 이매망량이 파이어버드와 연이어 격돌해 힘을 잃고 유체화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불덩이 폭격이 끝날때까지 트럭에 도달한 디파일러 폰은 단 한마리도 없었다.
그저 재가 되버린 그들의 시체가 모래바람과 뒤섞여 드문드문 흩날릴 뿐이였다. 이제 내 턴인가? 공격이 뜸해지자 이매망량 천인대를 거두어들인 나는 미리 예열해둔 도데카 마력기관에서 음에너지를 목구멍에 집약시키기 시작했다.
목구멍이 뜨거워 미쳐버리기 직전까지 참았다가 그 어떠한 의념도 담기지 않은 순수한 음에너지를 한꺼번에 분출시킨다. 쉐도우 브레스, 본래는 세상을 암운으로 뒤덮을 운명을 타고난 마룡 쉐도우스틸의 것이였던 필살기가 디파일러들을 덮쳐갔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것 마냥 300마리 가량의 디파일러들이 사라져 단 30마리만 남아 하늘을 덧없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한 위력에 라라펠 일행이 놀라 입을 닫지 못하고 있을때 나는 이매망량 악령천인대를 집결시켜 남은 디파일러 잔존병력까지 쓸어 버렸다.
"오호 사건군은 확실히 옥토끼는 아닌것 같아. 인간이 브레스를 뿜다니 옥룡쪽이 어울리려나?"
"차라리 그냥 옥토끼가 나은것 같습니다. 제가 자기자신을 옥룡이라고 칭할정도의 철면피는 또 아니거든요."
"이걸로 노숙하지 않아도 되겠어. 실버라군의 숙명이 빗겨갔군."
"옥토끼 꽤 하잖아! 그런 비장의 술식을 숨겨두고 있었다니. 혹시 실버라군에 들어올 생각있어? 마침 술사 포지션이 비어서 말이야."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누님. 저는 노숙채질이 아니라서 말이죠."
"주... 주인님 이제 불씨가 튈 일은 없는거겠죠?"
"디파일러 나이트 세마리 몫으로 600 VP가 들어왔으니까 아마도."
"그... 전에 제가 한번 말씀드린 이야기의 연장선입니다만 별자리를 살펴본 결과 제 무덤이 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것 같습니다."
"옥토끼, 무덤이라니 무슨 소리야?"
디파일러와의 전투가 종료되고 싸늘한 사막의 밤에 적막이 찾아온 가운데 무슈가 다시 자기 무덤을 찾아달라고 입질을 하기 시작했다. 헌데 그 미끼를 쌩뚱맞게 문것은 다름아닌 라라펠 이였다. 빔샤벨을 갈무리하고 무슈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 위해 접근한 그녀의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별거아닙니다, 누님. 제 부하 녀석이 자꾸 자기 무덤을 찾아달라고 성화여서 말이죠. 저한테는 의뢰가 먼저이기 때문에 사상누각까지 가는 길이 지체되는 일은 없을겁니다."
"주인님 누차 말씀드리지만 제 무덤에는 어마어마한 보물이 잠들어 있습니다. 다른이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선 일분일초라도 빨리 가는편이..."
"보물이라고! 아하 이제보니 옥토끼 너 우리를 사상누각에 데려다준 다음 그 무덤의 보물을 독차지 할려고 그러는구나?"
"아뇨 그게 아니라 휘르 행수에게 받은 의뢰가 우선순위가 더 높기때문에..."
"8:2 어때? 우리도 양심이 있으니까 2만 가져갈게. 우리도 유적 탐사라면 이골이 난 용병들이란 말이야. 분명 도움이 많이 될걸?"
"아니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을 더 이상 감수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괜히 이 사막에서 시간을 지체해봤자 디파일러밖에 더 만나겠습니까?"
"아 진짜 옥토끼 그렇게 안봤는데 째째하네. 은리의 사제면 나랑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이런식으로 나올거야?"
"미안 사건군. 라라가 유적 탐사라면 사족을 못쓰는 탐사 덕후거든. 한번 건수를 물면 절대 놓지 않아서 한때는 미친 늑대라는 별명으로 불린적도 있었지."
그게 아니라 술김에 시비가 붙은 상대를 물고 놓지않아서 미친늑대 아니였던가? 은리 사저와의 대화를 더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던 나는 어떻게 생긴 별명이던간에 라라펠이 이번 건수를 쉽사리 놓지않으리란걸 그녀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낸 무슈를 야차처럼 노려보자 그 녀석이 오체투지 자세로 납작 업드린다. 여기서 계속 거절해봤자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었으므로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라라펠의 손을 들어주었다.
뛸듯이 좋아하며 무덤 탐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던 불안감이 눈녹듯이 사라져간다. 이번 교전을 통해 라라펠 일행의 실력이 제법 매섭다는것을 알았으니 너무 애돌보듯이 하지 않아도 좋을듯 싶었다.
"단 8:2의 이익분배는 꼭 지켜주셔야합니다?"
"용병 커뮤니티는 신뢰하나로 먹고사는 집단이야. 만약 대장인 내가 말을 바꾸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날로 실버라군은 장사 접어야돼."
"그러면 야밤에 몸을 혹사시켰으니 야식이라도 먹을까요?"
"양고기! 양고기! 양고기! 양고기!"
"누님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어차피 보급품에는 양고기밖에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나도 슬슬 배가고픈 참이였는데 릭 또 부탁해도 되겠지?"
"아아. 이번에는 꼬치구이라도 해볼까 싶어."
"주... 주인님 그러면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저는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제 무덤으로 가는 길을 찾으실때 다시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아 그래. 너도 수고했다. 나머지분들은 다시 트럭으로 들어가시죠. 사막의 밤은 역시 보통 추운게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