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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내가 정체를 밝히자 라라펠 일행의 표정에서 희비가 교차됐다. 라라펠은 뭔가 지뢰를 밟은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릭과 레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 망망대해와 같은 사막에서 구조선을 만났으니 당연히 그 자리에서 절이라도 할줄 알았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반응이다.
"그 여편네가 이제는 하다하다 시집 보낼려고 사막 한가운데까지 사람을 보내는구나. 나는 시집갈 생각없으니까 저리 꺼져!"
"어이 잠깐만, 댁이 시집을 가든말든 내 알바아니고 나는 단지 휘르 행수로부터 당신을 무사히 비스트코인 스테이션까지 데려와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돌아가면 바로 얼렁뚱땅 식을 올릴 속셈이잖아!"
"이것참 첫만남부터 애로사항이 꽂필줄은 몰랐는데 나한테는 아직 1톤 분량의 양고기와 식수가 남아 있어. 애시당초 너희들 몫까지 생각해서 가져온거니까 사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를 따라오지 않겠다면 고기 한점도 내줄 수 없다는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1톤... 이라고? 꿀꺽. 흠흠. 생각해보니 우리를 구하러 여기까지 달려온 양반의 성의를 무시하는것도 예의가 아닌것 같군."
"잘 생각했어, 라라. 어차피 비스트코인 스테이션으로 돌아가도 결혼식 도중에 도망치면 그만이니까 상관없잖아."
"솔직히 말하면 나도 식량은 둘째치고 물없이는 슬슬 한계였어. 지금 저 사람에게 의탁하는 수 밖에."
"그렇게 결정된거라면 나도 아낌없이 식량과 물을 풀겠어. 일단 하루정도는 충분한 영양섭취와 숙면으로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바로 이곳에서 말이야."
나는 아이언 메이든에서 휘르 행수에게 지원받은 캠핑트럭을 소환했다. 전기로 구동되는 방식이 아니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플라스틱 재질의 사륜구동차량이였기 때문에 자기모래폭풍이 몰아닥쳐도 안전한 모델이였다.
휘르 행수가 백토성에서도 주행가능한 차량을 드워프 커뮤니티에 특별주문한 것으로 아무리 험한 오프로드에서도 시속 100km이상을 보장하는것은 물론 트럭 뒷칸은 호텔 뺨치는 아늑한 숙박시설로 구성되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단순히 트럭 뒷문에 해당하는 부분을 열어 라라펠 일행을 안으로 안내한 나는 캠핑 트럭의 부엌에 해당하는 곳으로 향해 식수통 10병과 양고기 30kg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말이 30kg이지 족히 150인분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였다.
"왠만한 조리도구랑 향신료는 다 있으니까 각자 취향껏 요리해서 먹으라고. 생으로 뜯어먹든지 샤브샤브를 해먹든지. 나같은 경우 바싹구워서 야채랑 겻들어 먹는걸 좋아하니까 싱크대 좀 먼저 쓰겠어. 그동안 뭘 해먹을지 상의라도 하고 있으라고."
"거... 거짓말. 최고급 스테이크용 양고기가 저렇게 잔뜩 있다니!"
"거기에 사막 한가운데에서 라는 점이 어메이징하달까. 릭, 라라야 생으로 뜯어먹는걸 좋아하는 야만인이지만 우리 둘은 문명인이잖아. 어떻게 조리해 먹을래?"
"일단 다른 재료가 뭐가 있는지 봐야겠지만 후라이펜에 버터를 둘러서 미디움으로 구어먹는게 일반적이겠지. 고기의 등급이 최상품이기 때문에 크게 다른 조미는 필요없을거야. 일단 나는 목이 타는것 같아서 수분섭취부터 해야겠어."
캠핑 트럭의 부엌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라라펠이 생고기 매니아라는 사실은 풍문으로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입에서 피를 질질흘리며 정신없이 익지도 않은 양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에 반해 릭과 레서는 수인의 상징인 귀와 꼬리도 숨긴채 제법 능숙하게 요리사 흉내를 내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릭이 주방장이고 레서가 조리사정도의 역할을 맡아 능숙하게 스테이크를 구어나간다.
아마 손님상에 올려야 한다치면 아마 그 둘의 것을 선택하리라. 손님 상에 생고기를 올릴 순 없는 노릇이고 나의 경우 타기 직전까지 바싹구워 고기의 겉표면이 과자처럼 바삭한 것을 좋아하는 특이취향이였던 탓이다.
그렇게 각자 조리한 양고기를 먹어치우기 시작하자 산더미 같던 양고기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30kg에 달하는 양고기가 어디로 사라졌나 싶어 범인을 찾다보니 숙녀답지 못하게 허리띠를 풀고 배를 드러낸채 연신 트림을 토해내고 있는 라라펠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아 잘먹었다! 꺼어어억~"
"혼자서 25kg을 해치우다니 당신 은리 사저의 말대로 엄청난 대식가로군."
"은리 사저? 설마 이번에 은리가 새로 받았다는 골칫덩이 사제가 너야?"
"맞아. 골칫덩이를 복덩이로만 바꾼다면 말이지. 당신과 은리 사저는 꽤 막역한 사이였다지?"
"근데 너 내가 은리랑 친구라는거 알면서 왜 반말이냐? 누님이라고 불러 이 자식아!"
"하아? 아니 이 상황에서 그렇게 족보를 따지고싶나? 아무리 화장실 갈때 나올때 다르다지만 실컷 배불리 먹여놓으니 이제는 윗사람으로 모시라니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윗사람으로 모시라던가 그런게 아니라 삼자대면했을때 족보가 꼬이잖아! 네가 은리한테는 존대말하고 나한테는 반말하면 그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냐고?"
라라펠이 내 멱살까지 잡아올리며 내게 누님이라 부르라고 성화를 부린다. 아무리 수인족이라고 하지만 무슨 여자가 힘이 이렇게 좋지? 마치 솜인형처럼 가볍게 들려올려진 내 머리가 낮은 캠핑 트럭의 천장에 닿을듯 했다.
그러나 그런 고압적인 태도가 문제가 아니였다. 정말로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건 라라펠로 부터 뿜어져 나오는 땀과 흙먼지가 뒤섞인 꾸릿꾸릿한 냄새였다. 오랫동안 씻지않아 어쩔 수 없다는걸 알지만 이제 곧 신부가될 여자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것 같은 상황에서 양질의 고기를 제공해준건 고맙지만 공과 사는 구별해, 꺼어어어어어어억~ 아... 미안, 미안."
"우욱!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누님이라고 부를테니까 일단 좀 씻어요!"
"싫어! 사막 한가운데서 무슨 샤워야?"
"물이라면 풀장을 채울정도로 많이 있으니까 신경끄고 저 문으로 들어가서 말끔하게 씻어요. 아니 후각이 그렇게 좋은 사람이 자기 몸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몰라요?"
"Yo, 사건군이라고 했나? 라라는 딱히 사막이라서가 아니라 원래 씻는걸 별로 안좋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씻기려해봤지만 역부족이였지. 차라리 코가 냄새를 맡을 수 없을정도로 마비될때까지 기다리는편이 낳을걸?"
"내 후각상피세포는 그렇게 간단히 피로해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라라펠 누님 강제로라도 씻길생각이니까 어디한번 버틸려면 버텨보세요. 그런 냄새를 풍기면서 트럭 안에서 저랑 동거동락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싫어, 싫어, 싫어. 씻기 싫다고!"
내 얼티밋 언데드 폼의 재생력은 후각상피세포가 피로해지는것 마저 재생해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발효된 땀냄새에 익숙해질려 해도 버틸 수 가 없었다. 내가 일전에 아야사에게 '너의 땀냄새 마저 좋다고' 한적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소에 청결함을 유지하는 여대생이 갓 흘린 땀이였고,
지금 라라펠의 몸에서 나는 냄새의 근원은 모래먼지와 뒤섞여 한달이상 발효된 땀으로 부터 나는 것이였다. 일단 순수 완력을 이용해 라라펠을 끌어당기려 했지만 역시나 힘이 딸린다. 멱살을 잡아올릴때 부터 알아봤지만 이 여자 타고난 신력이 상상초월이다.
결국 이매망량까지 동원해 그녀를 1cm씩 잡아당겨 캠핑트럭의 화장실까지 밀어넣는데 성공한 나는 강제로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귀룡탕때문에 성욕을 잃은 나였기에 아무런 사심도 없는 행위였다.
밖에서 이 촌극을 지켜보고 있는 릭과 레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뿐 제지하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일찍이 라라펠의 냄새에 고통받은 전적이 있는 그들이였기에 내가 라라펠을 어떻게 해보려는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체취를 참을 수 없어 한다는것을 알고 있는것이리라.
"사건군 그러면 욕좀 봐. 나는 릭이랑 2교대로 경계를 스면서 모자란 잠 좀 보충해야할것 같아. 최근에 밤낮없이 사막을 헤메다 보니까 몸 상태가 말도 아니네. 릭, 누가 먼저 불침번을 할지 동전 던지기로 결정할까?"
"좋아. 나는 앞으로 하지."
"잠깐 이것들아 대장이 외간남자의 손길에 벗겨지고 있는데 어딜가는거야? 당장와서 이 자식좀 때어내란 말이야! 아차차차차차, 차가운물이잖아. 으으으으, 정말 싫어."
"아 미안합니다, 누님. 보일러가 물을 데울려면 약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네요. 기왕 이렇게 된김에 찬물로 슥 훑고 온수가 나올때까지 비누칠이랑 샴푸좀 하시죠. 무슨 머리카락이 까치집마냥 엉켜가지고는 풀어지질 않습니까?"
"아, 싫어. 목욕하기 싫다고 아 짜증나!"
무슨 애를 돌보는것도 아니고 다 큰 처자의 몸을 내가 씻겨야 하다니. 만약 귀룡탕을 주사받기 전이였다면 꽤나 흐뭇한 마음으로 몸매를 감상하며 구석구석 씻겨줬겠지만 성욕이 사라진 내게는 너무나 번거로운 일일 따름이였다.
제 엄마를 닮아 몸매 하나는 끝내줬지만 나는 마치 마네킹을 닦는거처럼 묵묵히 비누칠을 해나갈 뿐이였다. 그러다 라라펠의 보지를 씻을 차례가 오자 나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라라펠의 팬티를 벗어재꼈다.
헌데 팬티 속에는 회색 방초림이 아닌 회색 정조대가 성문처럼 보지를 가로막고 있는게 아닌가? 정조대에 코를 들이밀고 킁카킁카 냄새를 맡아보니 딱히 냄새가 나는것 같지는 않았다. 청결을 유지하는 기능이 따로 달려있는거라면 굳이 벗겨서 씻길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그저 탱탱한 양 볼기짝만 거품을 묻혀 비누칠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늑대귀와 꼬리를 씻길때 라라펠이 '흐아앙.'하는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비꼬았던것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문제없이 목욕을 끝마칠 수 있었다. 따듯하게 데워진 물로 거품을 행궈내고 나자 그제서야 휘르 행수의 딸답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누님 이렇게 씻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훨씬 예뻐지시지 않았습니까?"
"두피가 좀 가려웠었는데 시원하긴하네."
"혹시 누님 벼룩같은거 있는거 아니죠?"
"아마 있었을걸. 너랑 만나기 전에 너무 배고파서 하나 잡아먹은적이 있었걸랑."
"...일단 오늘은 새옷을 드릴테니까 일층이나 이층 침대중에 하나 골라서 푹주무세요. 그래야 원기를 회복해서 한시라도 빨리 사상누각으로 돌아갈 수 있죠."
"싫어! 릭하고 레서랑 삼교대로 불침번 슬꺼야. 백토성은 밤낮을 안가리고 디파일러들이 출몰해서 아무생각없이 잠들었다간 다음날에 시체로 발견된다고. 아니 그전에 얼어죽을 가능성이 더 높지만."
"뭐 누님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3일간 밤낮없이 말을 타서 그런지 한숨 자야겠네요. 불침번이 한바퀴 돌면 출발할테니까 그 때 좀 저도 같이 깨워주세요."
용병활동을 오래 해서 그런가 라라펠 일행에게는 불침번 개념이 뼈속까지 자리잡은 모양이다. 나도 한타임 거들까 싶었지만 불침번이라면 군제대 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자다가도 관등성명이 나올정도로 치가 떨리는지라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휘르 행수가 라라펠이 선을 볼때 입을 복장이라며 나에게 맡겨둔 호리호리한 실크재질의 드레스를 샤워실 입구에 던져두고 완전히 걸레가 된 가죽경장은 사막 밖으로 던져버렸다. 괜히 벼룩이라도 옮았다간 숙면을 취할 수 없을 지도 몰랐다.
캠핑 트럭에는 방이 총 2개가 있었는데 각 방에는 이층 침대가 배치되어 있어 4인을 수용할 수 있었다. 나는 이층에 올라가는 것도 귀찮아 샤워실에 가까이 있는 방의 일층 침대에 몸을 누이고 꿈나라에 빠지기로 했다. 킁킁. 이제야 숨 좀 쉴 수 있겠네.
* * * *
"야 일어나! 디파일러가 트럭을 포위했어. 못해도 대대급 병력에 디파일러 나이트도 포함되어 있는것 같아."
"후우.... 좀 쉬려고 했더니만 이놈들이! 완전 개작살을 내줘야겠구만. 릭과 레서는 어디 있습니까?"
"이미 전투채비를 끝내고 트럭밖으로 향했어. 젠장할 이런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싸워야 하다니. 너도 준비해서 빨리 나와. 이 트럭을 지키지 못하면 우린 다시 노숙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 말은 라라펠 누님이 다시 더러워진단 뜻이군요. 그런 일이 절대 있어선 안돼겠지요."
"이 자식이! 아우, 은리가 했던 말이 맞았어. 완전 구제불능에 천방지축인 사제가 들어왔다기에 어떤 놈인가 싶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가네."
정신없이 골아떨어져 있던 나를 흔들어 깨운건 다름아닌 라라펠이였다. 에너지 웨폰의 한 종류인 빔샤벨로 무장한 그녀가 털끝을 날카롭게 세운채로 잔장의 위급함을 알려오고 있었다.
꽤애애애액! 말장난을 주고받는것도 잠시 바깥에서 교전을 알리는 디파일러 폰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던지라 나는 옷매무새를 추스릴 시간도 없이 라라펠과 함께 트럭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