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139화 (139/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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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엔츄라 여왕이 속으론 날 어떻게 생각했을까?"

볼것도없이 '뭐 이딴 싸이코패스녀석이 있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속마음이 어찌됐던간에 그녀는 너무나 휼륭하게 군주의 외교적 역할을 수행해냈다. 방금전만 해도 사상누각을 멸망시키려 했던 사람을 차기 상호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정도의 우호적 관계로 만들었으니.

이솔다 공주 또한 휼륭한 리더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엔츄라 여왕만큼의 수완을 발휘할 순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모래바람을 뒤로하고 나이트메어의 질주에 박차를 가하는데 얼굴위로 거슬리는 이물질이 떨어졌다.

"뭐야 이거? 새... 깃털?"

뜬금없이 왠 새깃털이지. 정신없이 앞만보고 달려되는 나이트메어를 진정시켜 멈춰세운 나는 깃털의 출처를 찾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말꼬리에 달아둔 양고기를 쫓아 대머리 독수리 서너마리가 쫓아오고 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 수가 어느새 수백여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그리고 나이트메어가 달리는 중에는 쫓아오기 바빴던 놈들이 내가 멈춰서자 저공비행을 시작한다. 쌔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스쳐지나가 이매망량으로 반구형태의 바리케이트를 치자 비둘기가 창문을 박고 해까닥하는 것처럼 대머리독수리들이 모래위로 나뒹굴기 시작했다.

덕분에 대머리독수리의 육체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던 나는 그제서야 이 놈들이 디파일러 폰이라는걸 눈치챌 수 있었다. 피부밖으로 들어난 흉측한 근육과 혼탁한 눈동자가 그 증거였다. 디파일러 폰 무리 정도야 수십만이라도 상대해줄 수 있지만 공중의 적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시급히 라라펠 일행과 조우하는것이 최우선사항인 지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나는 밀집된 공중대형을 갖춘 적에게 즉효인 기술을 지닌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을 소환하기로 했다. 푸스카처럼 충성스럽거나 시스트린처럼 야욕 제로인 백조는 아니였지만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어차피 소환할 놈은 단 한명도 없었다.

흑단관구(黑檀棺柩)에 잠들었던

머미메이지(Mummymage) 무슈

묘지기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현현(顯現)하라

인벤토리에서 에보니 메이든을 꺼내 소환술식을 거행하자 암운을 뿌리며 앙상한 체구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온몸을 붕대로 감싼 미라가 나무 지팡이를 지지대 삼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저주술사로서의 역량은 뛰어나지만 신체능력은 일반인 보다 못한 녀석인지라 서 있는것만으로 고역이랄까.

"튀어나왔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왜 멍때리고 있냐? 척추 나가고 싶어!"

"머미메이지 무슈가 주... 주인님을 뵙습니다. 하... 하도 오랜만이라 경황이 없어서 인사가 늦어졌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내 영력이 예전같지 않으니까 간본거 아니냐?"

"저, 저, 저... 절대 아닙니다. 저의 충심을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충심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나한테 사령안이 있다는걸 잊은건 아니겠지? 비록 영력이 한 랭크 다운되긴 했지만 작동할건 다 작동하고 있어. 허튼짓 했다간 바로 영멸시키겠다. 예전처럼 하극상을 봐주는 일따윈 없을거야. 너말고도 쓸 수 있는 체스말은 얼마든지 있다는걸 명심하라고."

"며...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명령을 내려주시죠. 주인님에게 겁도없이 까부는 저 우매한 짐승놈들을 처단하면 되는겁니까?"

"정답. 그새 제법 눈치가 늘었구만. 생전에 왕이랍시고 껄떡될때가 엊그제 같은데."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왕이 아니라 황제였는데.'라고 읊조린 무슈가 지팡이를 모래바닥에 꼽고 사악한 음에너지를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힘이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념은 언데드를 움직이게하는 인체공학적 동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였다.

타겟으로 잡힌것은 디파일러 폰 무리 한가운데 있는 대머리독수리. 다른 녀석과 다를바 없이 근육이 피부밖으로 드러난 흉물스런 짐승을 향해 저주의 물결이 쏘아졌다. 피격된지 얼마안가 산채로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녀셕이 이내 1 VP로 산화한다.

하지만 이 저주술식, 체인 커스(Chain Curse)의 진면목은 지금부터 시작이였다. 피격자의 죽음을 시발점으로 전염병마냥 퍼져나가는 이 술식이라면 아무리 많은 적을 상대로도 두려울 것이 없으리라. 단 한기에서 시작된 부패의 저주가 이내 수십, 수백마리에게 퍼져나가 모래위로 곤두박질친다.

머미메이지 무슈는 일전에 살아있을적의 권세를 믿고 나에게 대든적이 있어 소환을 껴려했었는데 막상 꺼내놓고 보니 그 유용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파괴술식의 부재를 어느정도 매꿔줄 수 있었으니 앞으로도 적당히 목줄을 밀고 당기면서 부려먹어야겠지.

"수고했다."

"벼... 별말씀을. 그런데 이 별은 제 모행성과 비슷한 환경을 지니고 있는것 같은데 혹시 이 별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백토성이라고 하더군."

"ㅂ배... 백토성이요? 혹시 이곳의 모래를 정제하면 귀한 금속을 만들 수 있다거나 그렇지 않습니까?"

"화이트 티타늄을 말하는건가?"

나는 엔츄라 여왕에게서 받은 화이트 티타늄 1돈을 인벤토리에서 꺼내 무슈에게 보여주었다. 백색휘강을 내뿜는 금속을 두눈으로 확인한 무슈가 지팡이까지 떨구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으나 몸이 안좋아서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으니 무슨 감정을 표출중인지 알길이 있나.

"왠 호들갑이야. 이거 너줄거 아니거든, 내가 쓸거거든. 김칫국 마시지 말아줄래?"

"아... 아니 주인님 그런게 아니라 아무래도 이 별은 제 모행성인듯 싶습니다."

"여기가 네 모행성이라고? 그 말인즉슨 VOT 시스템과 계약하기전에 네가 살고있던 행성을 말하는건가?"

"그... 그렇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금속은 아무행성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밤이 됐을때 별자리의 위치를 확인해보면 더 확실하게 모행성임을 검증할 수 있겠습니다만 마력입자농도라던가 크고 작은 두개의 태양이 제 모행성임을 거의 90% 확신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미안하지만 오랜만에 고향의 풍취를 느낄 시간을 주고 싶어도 내가 다른 의뢰가 있어서 바쁘거든. 일단 지금은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아가. 필요하면 부를테니까."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의 네임드 NPC나 몬스터들이 본래는 다른 행성의 주민들이라는 사실은 용린혁 가주와 조우한 시점에서 밝혀져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죽음으로 부터의 생환을 대가로 게임 컨텐츠의 일부가 된 그들이 모행성을 그리워하는것도 무리가 아니지만 그런 사정을 일일히 신경써줄만큼 내가 좋은 주인이 아니다.

"주... 주인님 잠깐 제 말 좀 들어주십쇼. 이 곳이 백토성이 확실하다면 제 무덤이 이 사막 어딘가에 있을겁니다. 별자리의 위치를 역계산하면 대략적인 무덤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을거고요. 그 무덤에는 살아생전 제가 모아둔 어마어마한 보물이 잠들어 있으니 부디 주인님께서 그것을 취하셨으면 합니다."

"너 날 위해서 막 진상품같은걸 바치는 타입 아니잖아.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지? 예를 들면 무덤에 내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아티팩트가 있다던가."

"저, 저, 저... 절대 아닙니다. 단지 주인님의 흥복이 저의 흥복이기도 하기때문에."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지금은 의뢰가 먼저니까 네 무덤에 관련된 얘기는 나중에 해."

"제 무덤에는 단순히 금붙이만 있는게 아니라 음에너지를 2배로 증폭시켜주는 고대 아티팩트 사자의 관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면 좀 끌리긴 하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의뢰가 먼저야."

"무... 물론 주인님의 볼일이 최우선이지요. 저는 그러면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아가서 주인님의 부름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무슈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검은 먹구름과 함께 사라져간다. 다시 나이트메어에 오른 나는 백토성을 비추는 두 태양의 열기에 웰던급으로 익어버린 양고기를 생고기로 교체한 뒤 다시 탐색에 박차를 가했다. 라라펠은 피가 뚝뚝떨어지는 레어를 더 좋아한다는 휘르 행수의 조언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    *    *    *

라라펠과 연결되어 있다는 열쇠형태의 탐사 아티팩트에 의존해 백색사막을 누빈지도 언 3일째, 나는 백토성의 극악한 일교차를 피부로 체감하며 사막의 낮보다 밤이 무섭다는걸 깨달았다.

사실 낮에는 아무리 더워도 나이트메어의 등뒤에서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보면 어느정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밤에는 그 시원함이 역풍이 되어 뼈를 에는듯한 추위와 맞서 싸워야 했던 것이다.

덕분에 겉살점이 동상으로 얼어붙어 재생과정을 걸칠 정도였으니 그간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실 휘르 행수로부터 지원받은 캠핑 트럭이 아이언 메이든에 주차중이라 마음먹으면 안락한 밤을 보내느것도 가능했으나,

사막의 거친 환대를 받을 수 록 라라펠 일행의 안위가 걱정되 말고삐를 놓을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풍경이 3일째 계속돼다보니 나도 서서히 지쳐갔고 오랜만에 넓은 평지를 내달리다 보니 신이 난 나이트메어만 열쇠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할 뿐이였다.

"저건 또 왠 모래먼지지?"

멀리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확인한 나는 느슨해진 긴장을 다잡았다. 백토성에서 디파일러보다 더 무서운것이 자기모래폭풍임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탓에 감히 경시할 수 가 없었다. 라라펠 일행이 실종된것도 결국 디파일러가 아닌 자기모래폭풍 탓이 아니였던가?

여차하면 나이트메어를 돌려 역으로 질주할 심산이였던 나는 모래먼지속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언뜻 보여 나이트메어를 멈춰세웠다. 디파일러 나이트는 아닌듯 싶고 설마하니 정말로 라라펠이 십리밖에서 양고기 냄새를 맡고 달려오는 중이라면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탐사의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양고기 내놔!!!!!!!!!!!"

"이봐 진정해, 진정하라고. 당신 줄려고 가져온거니까 그렇게 흥분할거없어. 게다가 이거 말꼬리에 달아놔서 모래가 많이 묻었으니까 새걸로 줄게."

"필요없어!!!!!! 그냥 내놔!!!!!!!!"

휘르 행수의 젋었을때를 보는것 같은 은빛늑대 귀와 꼬리의 수인이 다짜고짜 달려들어 나이트메어의 꼬리에 매달아둔 양고기를 물어뜯는다. 하필이면 그 무식한 물어뜯기가 말꼬리까지 뜯어버린 까닭에 나이트메어가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나이트메어 또한 언데드이니 고통때문에 그렇다기 보다는 말의 자존심인 말꼬리가 잘려나간 탓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영압족쇄까지 동원해 나이트메어를 진정시킨 나는 소금에 찍은것 마냥 모래가 덕지덕지 묻은 양고기를 좋다고 씹어먹는 라라펠을 벙찐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사막 한가운데서 조난당한 탓에 배가 많이 고팟으리라. 하지만 이걸로 그녀가 휘르 행수가 지닌 귀부인의 기품을 물려받진 않았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녀가 양고기 기름이 묻은 모래알갱이까지 씹어먹어치웠을쯤 그녀가 왔던 길에서 키가 160cm, 190cm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사내가 도착했다.

"이야 라라가 양고기 냄새가 난다고 했을때는 반쯤 정신이 나간줄 알았는데 정말이였네? 라라의 후각은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런데 혼자 다 먹어버린거야!? 우리 콩한쪽도 나눠먹는 형제 아니였어?"

"최악의 경우 라라만은 살아야 하니까 상관은 없지만 남의 것을 뺐는건 잘못됐다고 생각해."

"미안, 미안. 정신이 반쯤 나가서 너희들 몫을 남겨둔다는걸 깜빡했네. 그쪽의 말탄 양반도 미안하게 됐수다. 나중에 10배로 보상해드리지. 물론 사상누각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때의 이야기지만. 빌어먹을 백토성의 자기파때문에 VOT 단말기가 자꾸 엉뚱한 좌표를 찍으니 길을 찾을 수 가 있나!"

"혹시 너희들이 라라펠과 그 동료인 릭과 레서인가?"

"와우! 길가는 나그네가 알아볼정도라니 우리 블루라군이 어느새 이렇게 유명해졌지? 그런데 라라펠이 앞에 있는건 당연한거지만 왜 릭과 레서인거야? 앞으로는 레서와 릭으로 해주겠어."

"레서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이 넓은 사막에서 우리를 아는 사람을 만난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당신 누구야!"

오랜 조난속에 지쳐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정도로 기만한 움직임으로 라라펠 일행이 삼각진형을 갖추었다. 방금전만 해도 양고기에 대한 은혜를 갚을것처럼 굴더니 이렇게 태새를 돌변해 나를 적대시 하디니 순진한 친구들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용병으로 구를만큼 굴렀으니 디파일러 보다 때로는 낯선사람이 무섭다는 것을 일찍이 경험했을 것이다. 나는 싸울듯이 없음을 밝히기 위해 나이트메어에서 내려 그들에게 양 손을 들어보여 항복의사를 전달함과 동시에 내 정체를 밝혔다.

"휘르 행수의 의뢰로 너희들을 구하러온 옥사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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