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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오랜만입니다. 옥사건 준위."
"그렇네요. 설마하니 이런식으로 천대주와 재회하게 될줄은 몰랐습니다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엔츄라 여왕님에게 사막출입권을 받으러 오는 대기자 명단에 옥사건이라는 세 글자가 있었을때 얼마나 놀랐는지.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원체 드문 이름이 지 않습니까?"
"그랬군요. 그런데 그 엔츄라 여왕은 뭔데 사막에 드다드는 일가지고 출입권을 받으라 마라 하는겁니까?"
"그건 백토성의 모래가 보통 모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이트 샌드라 불리우는 백토성의 모래는 1kg을 정제하면 1g의 화이트 티타늄을 얻을 수 있는데 이 금속이 함선이면 함선, 무기면 무기 최고급 재료로 취급됩니다. 하여 외부인이 화이트샌드를 함부로 채취할 수 없게 입장자체를 통제하고 있는겁니다."
"이 행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모래가 전부 화이트샌든지 샌드위친지 뭐시기라고요? 엔츄라 여왕이 속한 커뮤니티는 엄청난 부자겠군요."
"뭐 틀린말은 아니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마저 하겠습니다. 엔츄라 여왕이 사람을 기다리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죠. 그리고 혹시나 싶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백토성에서 엔츄라 여왕의 심기를 거슬리는 일은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수왕성의 이솔다 공주님을 생각하시면 정말 곤란한 철혈의 여왕입니다. 그녀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한마디로 자존심 좀 굽히라는거 아닙니까? 저도 이번에는 특명을 띄고 온지라 말썽을 피울생각은 없습니다."
천주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앞장서서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내가 전생유적에서처럼 깽판을 칠까봐 걱정된 모양이지? 지구의 항공기만한 탐색용 초계함에서 하선한 나는 백토성의 숨막힐듯이 뜨거운 공기에 발을 딛기도 전에 압도당해버렸다.
수왕성은 백토성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 없는 곳이였으니 괜히 관광지로서 흥행한게 아니리라. 수왕성은 겨울철에도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는 반면에 백토성은 낮에는 찌는듯이 더워도 밤에는 동태가 될듯 춥다고하니 헐거벗기도 싸매입기도 애매했다.
그뿐이면 모르겠는데 자기모래폭풍때문에 전자기기도 함부로 쓸 수 없어 엔츄라 여왕이 기거하고 있다는 사상누각까지 타조 비스무리하게 생긴 동물을 타고 갈 수 밖에 없단다. 능숙하게 타조위에 오른 천주랑과 달리 나는 무슨 로데오라도 하듯 타조와 씨름을 해야만 했다.
아니 잠깐 나이트메어를 타고가면 될것을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휼륭한 말이군요. 보통 동물들은 백토성의 푹푹빠지는 모래에 적응을 잘못하는데 무게중심을 절묘하게 잡아 평지마냥 걸어보이다니. 데저트 오스트릿은 이리 주십쇼. 제가 사상누각까지 끌고 가겠습니다."
"이녀석이 다루기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네요. 별로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원래 타던 녀석을 타야겠습니다."
"제가 수왕성을 떠난 이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말도마세요. 전생유적 탐사자들을 주타겟으로 여겼던 장사가 스케일이 커져서 아이스바운드가 일종의 관광특구처럼 되버렸어요. 덕분에 숙소를 중축하느라 쉴틈도없이 공사현장에 동원됬죠."
"열흘남짓 머물렀을뿐입니다만 확실히 수왕성은 천혜의 자연절경을 지닌 곳이지요. 언젠가 휴가가 나오면 저도 구룡대를 이끌고 수왕성으로 놀러갈까 생각중입니다."
"그걸 불쌍히 여겼는지 발두인 함장이 한달짜리 휴가를 끊어주긴 했는데 제 본체가 있는 모행성에서 또 사고가 터져서 그거 수습하느라 쉬지도 못했습니다."
"큰힘에는 많은 책임이 따르는법이죠. 옥사건 준위 정도의 실력자가 30일 짜리 휴가를 수습하는데만 쓸 정도로 큰 사건이라면 어림잡아 30만명의 민간인들이 구원받았을겁니다."
"뭐 큰 불로 번지기 전에 작은불씨를 꺼드린건 맞습니다만...."
나는 말끝을 흐리며 저 멀리 보이는 사상누각의 실루엣을 향해 말걸음을 재촉했다. 확실히 블루아주 회장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면 블랙플라워라는 괴독으로 무슨짓을 저질렀어도 저질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독룡 팔타로스가 온전한 육체를 손에 넣어 지구를 활보했을때의 파급력은 고질라 괴수영화 이상이였겠지. 팔타로스는 단순히 육체적 능력을 떠나서 용언이라는 이적의 힘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민간인을 구한답시고 블루아주의 연구소를 친건 아니였다. 어디까지나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서의 은원이 내게 독화살로 되돌아올까봐 사전에 삭초제근을 한것 뿐이다.
천주랑은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내 본질을 이해 못한 모양이다. 큰힘에는 많은 책임이 따르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큰힘으로 더 많은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는 슈퍼 악당이라니까. 나는 진실을 말해줄까 하다가 히어로가 있다고 믿는 어린아이의 동심을 깨고싶지않아 천주랑에게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어떻게 비스트코인 상단의 의뢰를 맡게 됐는지도 궁금하군요. 발두인 함장의 추천만으론 쉽지 않았을거 같습니다만. 비스트코인 상단이 사람을 쓸때 워낙 다른 아인종들에게 폐쇄적인 상단이라."
"아무래도 사막이라는 공간이 육체적인 힘만을 앞세워 해쳐나가기에는 쉽지 않은 장소니까요. 가뜩이나 모래자기폭풍때문에 차량도 사용하기 힘든 곳에서 수인들만으로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거기서 보급품을 담을 이공간 아티팩트에 차량을 대체할 수 있는 소환수 탈것까지 있는 제가 높은 잠수를 받은거죠."
"옥사건 준위라면 왠만한 디파일러 무리는 문제도 아닐거고요."
"비숍 이하 등급의 디파일러라면이라는 조건을 붙여야할것 같습니다. 일전에 천대주에 은리 사저까지 가세했는데도 고전한적이 있는 디파일러 로열나이트 쿠자르라는 녀석이 있지않았습니까? 그 이후 디파일러를 함부로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전투 직전만해도 디파일러 놈들이 VP를 주는 지갑으로 보였었는데 말이죠. 이번에는 피할 수 있는 교전은 피하고 구조활동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쿠자르는 확실히 무서운 상대였지요. 그런데 혹시 옥사건 준위 최근에 심경의 변화라도 있으셨습니까? 뭐랄까 성격이 바뀌신것 같습니다만."
"그건..."
붉은여우비서 폭시와의 폭풍섹스가 휘르 행수의 귀룡탕 주사로 중단된 그 날 나는 인간이 얼마나 호르몬의 노예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휘르 행수를 무력으로 제압해서라도 폭시와 하루종일 섹스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물에 녹은 솜사탕처럼 사라지고,
소위 현자타임이라 불리우는 시간이 백토성에 도착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천주랑이 나보고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는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지금의 나는 무뢰배 옥사건이 아니라 붓다 옥사건이였다.
거세한 숫소가 일반숫소보다 온순해진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내가 그 꼴이 될줄은 몰랐다. 천주랑을 상대로 정중한 태도로 일관하고 하루중 90%는 '섹스하고싶다.'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던 뇌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뇌하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백토성으로 향하는 도중 오르시나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귀룡탕을 복용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을까? 지금의 붓다 옥사건이 계약자로서 훨씬 마음에 든 모양이다. 나 옥사건이 '귀찮게 섹스를 왜 해.'라는 생각을 하는 날이 올줄이야.
"말씀하고 싶지 않으시면 말안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는 옥사건 준위가 실은 좋은분이라고 진즉에 믿고 있었으니까. 저기 사상누각의 성문이 보입네요. 데저트 오스트릿은 여기서 반납하고 걸어가야합니다. 그리고 그 멋진 말도 역소환하는편이 좋아보이는군요."
"그렇게하죠. 나이트메어 좀 있다가 원없이 달리게 해줄테니까 이만 돌아가."
나이트메어가 '이 주인새끼가 왜 이러지?'하는 눈빛으로 사라져간다. 천주랑이 성문의 병사들과 통관절차를 밟고 있는 동안 나는 사상누각의 외곽을 살펴보았다. 전체적인 성벽상태는 동해용궁의 자경대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그 방증으로 거대냉장고만한 벽돌의 일일히 술식원진이 새겨져있었는데 이거라면 디파일러 룩을 상대로도 제법 견고한 방어력을 선보일 수 있을것 같았다. 거기에 곡도와 석궁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살기등등한 기세를 내뿜는게 수왕성의 자경대와는 달리 독기가 있는 놈들이란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동해용궁의 자경단을 낮잡아보는건 아니지만 덩치가 비슷하다고 해서 시베리안 허스키가 도사견을 이길 수 있는건 아니듯이 타고난 투지라는건 단기간의 훈련으로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였다. 그렇게 사상누각의 무장도에 관해 짧막하게 총평을 내린 나를 저 멀리서 천주랑이 손짓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옥사건 준위, 사상누각의 경비대장이 입성하기 전에 잠시 보자고 하는군요."
"예, 무슨일이죠?"
"어이 거기 희멀건 찐따놈 네가 이번에 비스트코인상단에서 온 녀석이냐?"
"그렇습니다만 초면에 너무 무례하신것 아닙니까? 당신의 새치혀 놀림 한번으로 사상누각 커뮤니티에 대한 제 첫인상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이 자식이 이 성문에서는 나 쿠랄이 법이고 왕이야. 여기서 가방끈 긴 티좀 내려다가 평생 사상누각에 발을 못딛는 수 가 있어!"
"저는 어디까지나 비스트코인의 의뢰로 사상누각에 방문한것 뿐입니다. 경비대장의 의사가 그렇다면 돌아가서 비스트코인 커뮤니티의 이름으로 정식항의를 하면 될뿐 저는 아쉬울게 없습니다. 거기에 사상누각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제 마음속에 뿌리박혀 어떤 나비효과를 이르킬지 장담드릴 수 없겠군요."
"이 건방진 자식이 어디서 한 끗발좀 날리는 놈인가 본데 이 사상누각에서 모난돌처럼 굴었다간 그대로 썰려나간다는걸 이 몸이 가르켜줘야겠군. 정중히 인사를 하고 성의를 보여도 모자랄판에 어디 뻗뻗이 서서...으어어억!!"
내가 귀룡탕을 주사받고 성욕이 감퇴되면서 성격이 온순해진건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무례하게 구는 놈들을 좌시할정도로 호구가된건 아니였다. 원래라면 히멀건 찐따라는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피를 봤어야햇는데 이정도면 많이 참은거지.
나는 이매망량을 동원해 쿠랄의 사지를 묶은 다음 팔한짝을 걸레처럼 짜버렸다.. 경비대장을 농담따먹기로 딴건 아닌지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에 문신형태의 술식원진이 새겨진 쿠랄이 인챈트된 강화술식의 힘까지 빌려 저항했지만 쪽수에서 상대가 안된다.
보이지는 않지만 수십, 수백마리의 이매망량들이 쿠랄의 몸을 휘감고 있었던 것이다. 삐이이이익- 날카로운 호각소리와 함께 다른 경비병력들이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본성이 어디 안가는구나.'라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고있는 천주랑을 보고있자니 갑자기 이 상황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쿠랄의 무례한 행동은 소위 기싸움이란 것을 위해 의도된 것이리라. 솔직히 의뢰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100VP라도 쥐어주면서 한번 굽히고 갈 수 도 있었지만... 이 세상이 원래 한번 굽히기 시작하면 계속 굽힐일이 생기는 법.
설사 오늘 사상누각 커뮤니티와 전면전을 펼치다 동귀어진을 할지언정 무뢰배가 낫지 소인배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거 놔 이 씹어먹을놈아! 사상누각의 병사를 건드리다니 이 간큰 녀석이... 으어어어어억!"
"엄살떨지말고 무릎꿇고 사과해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 나는 사상누각을 백토성의 땅에서 지워버릴거야. 농담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디 계속해서 씨부리고 싶은데로 씨부려봐.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거니까."
"옥사건 준위 비스트코인 커뮤니티의 의뢰를 생각해서 이쯤에서 넘어가심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죠. 애시당초 바로 의뢰를 수행하러 사막으로 갈 시간에 이딴 작자와 드잡이질이나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사상누각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었던 탓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상누각이라는 커뮤니티 자체를 이 행성 아니 우주에서 지워버리는 수 밖에요."
"옥사건 준위 설마 진심으로 사상누각과 전면전을 펼칠 생각이십니까? 사상누각은 화이트 티타늄 공급건으로 연줄이 닿은 무력 커뮤니티가 많습니다. 청룡문 또한 그 중 하나고 사태가 심화되면 단순히 사상누각 커뮤니티의 흑전갈단과의 마찰로 끝나지 않을겁니다. 최악의 경우 저 또한 옥사건 준위를 막아서는 수 밖에..."
"나 이런 또라이인거 처음알았습니까? 다른 놈들은 몰라도 천대주 당신은 한번 겪어봤잖아. 다른 커뮤니티가 내 앞을 가로막으면 마찬가지로 지워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니까 불똥맞고 싶지 않으면 그냥 물러서시죠."
성문 경비대장 쿠랄이 팔이 다듬이질을 잘못한 빨래감처럼 누더기가 되버리자 결국 고통을 참지못하고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속속들이 흑전갈단의 병력들이 도착하는 가운데 내가 이매망량 악령천인대를 구현하자 성벽의 병사들은 함부로 공격해 들어오지 않았다.
두려워서 그런것보다는 강적을 상대로 섣불리 나서 병력을 소모시키지 않는 훈련을 받은것 같았다. 흑전갈단이 총집결하면 한꺼번에 치겠다는 말인가? 아이쿠 이런 감사할때가! 나도 꽝붙는 전면전이 좋지 지리한 시가전은 질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