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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 Oxogan The Dances With Wolves
"오르시나 잠깐만 정령화해서 숨어있어봐."
"갑자기 왜?"
"나쁜 아저씨랑 잠깐 거래 좀 할려고. 어린아이가 보기엔 정서함양에 좋지 않을것 같아서."
"너 내가 몇 살인지 알기나해? 너보다 200배는 오래살았다고. 200살 오래산게 아니라 200배! 에휴 됐다. 너랑 나이가지고 씨름해서 무슨 득이 있다고. 기왕 정령화 하는김에 저 거대한 물고기를 언데드화 시키는 작업이 끝나면 다시 불러."
실체화한 오르시나의 육체가 물의 정령처럼 변이하더니 이내 물거품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르시나를 숨긴건 오르시나가 블랙마켓의 브로커를 못보게 하려는게 아니라 브로커가 물의 수호령 오르시나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블랙A가 말하길 블랙마켓이 돈가지고 장난칠 애들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 뜻은 다른걸로는 장난질을 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나는 VOT 단말기를 통해 블랙A가 알려준 유령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단순 겉보기로는 행성의 식물생태계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는 학술도 아닌 친목수준의 커뮤니티.
그마저도 변변찮은 게시물도 없어서 그냥 길가에 피어있는 잡초를 보고 '예쁘네요.'라는 영혼없는 감상글이 대부분. 블랙마켓의 위장창구라는 것을 몰랐다면 단순히 관리자가 일 안하네라고 생각했겠지만 알고보니 유령커뮤니티라는 티가 팍팍난다.
나는 '구슬팔아요.'라는 제목과 함께 VOT(Vaccine Of Things) 단말기가 찍어주는 천체좌표를 게시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한산해보이는 커뮤니티의 코멘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제가 삼.' '수수료 싸게해드림.' '영약 하나 서비스로 드림.' '아 잠깐 화장실같다온 사이에... 늦게나마 입찰해봅니다.'아니 이게 무슨 터무늬없는 반응속도란 말인가?물론 내가 VOTO를 플레이 할때도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품목의 경우, 소위 한정판이라고 불리우는 아이템들을 판다는 게시글을 올라면 이런 반응이 올라오긴 했지만. 영혼역학 위상전환용 구슬이 이리도 인기있는 품목이였단 말인가? 나는 서비스로 뭔가를 준다는 댓글은 모두 필터링한 후 수수료를 깍아준다는 댓글을 채택했다. 그러자 내가 올렸던 게시물이 관리자에의해 삭제됨과 동시에 눈앞의 공간이 일렁거린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저는 블랙77입니다. 정감있게 칠칠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물건부터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예? 아 그러세요."
"영혼역학 위상전환용 구슬 진품확인되었습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닷!"
"아니 뭐 죄송할거까지야. 물건의 진위여부 확인은 원래 당연한건데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닷! 댓글에서 말씀드렸다싶이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수수료 7700 VP만 제하고 142,300 VP에 모시겠습니다."
뭐랄까 칠칠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찰에서 클럽 웨이터느낌이 물씬 풍기는 남성이 일러이는 공간을 가르고 등장했다. 고위전이술사라고 하길래 도철광과 도올명의 목을 가져간 현상금 커뮤니티의 직원처럼 인텔리한 느낌이 물씬풍기는 로브차림의 남성이 등장할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아니 복장은 둘째치고 고객을 왕처럼 모시지못해 안달난 사람같다.
"저기 혹시 고위전이술사 아니세요?"
"여기 제가 수료한 전이술학원 학위증명서 사본입니다.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아니아니 분명 다른 행성에서 전이술식으로 넘어오셨으니까 실력을 의심하는건 아니고요. 그 고위전이술사면 굉장히 돈도많이 벌거같고 사회적 지위도 높을것 같은데 너무 저자세로 나오는게 이상해 보여서 말이죠."
"고객님이 그렇게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10년동안 우주유통업계의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전이술사들이 먹고살기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전이술사들이 돈을 잘번다는 소문이 커뮤니티에 퍼지자 너도 나도 전이술사가 되겠다며 전이술학원에 등록했고 택배전문화 전이술 커리큘럼을 밟아 반쪽짜리 전이술사들이 양산됐죠.
반족짜리라고는 하나 택배업무에는 이상이 없었던지라 우주유통업계의 전이술사 공급이 과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워프게이트를 통해 각 행성을 오가는 정규배송함선들이 배송가격을 후려치기 시작해서 정말 죽을 맛이였죠. 일반 유통업으로는 도저히 동생 학원비를 댈 수 없어서 블랙마켓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만 여기도 만만치않네요."
"아하 그런 사정이..."
"그럼 이만. 단언컨데 최저가 전이술식 서비스 수수료 7700 VP로 모시는 칠칠이였습니다. 나중에 또 거래할일 있으시면 찾아주십쇼."
[옥사건의 보유자금]
-POS(Point Of Sales) 단말기로부터 1,700 VP가 도착했습니다.
-블랙77님으로부터 142,300 VP가 도착했습니다.
-TOTAL: 144,000 VP
제로였던 잔고가 다시 왠만큼 채워지자 마음까지 풍요로워지는 기분이다. 사실 일전에 전생유적에서 얻은 폰 글라디우스라는 아티팩트를 FAS(Fabric Archane Suit)에 장착할 수 있게 모듈화 시키는 과정에서 주문한 마력회로 스타터 킷에 남은 마력전도성실이 얼마남지 않아 곤란하던 참이였다.
막상 공을 들여 완성한 화이트탈론을 써먹어보지도 못했던것처럼 던클레오의 육중한 몸에 언데드 서킷을 깔아도 계륵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유비무환인법. 미리 준비하는 습관은 강령술사 아니 술사의 기본덕목이였다. 그것은 VOTO의 게임세계를 벗어났다한들 변하지않는 덕목이리라.
일전에 살라만다 커뮤니티에서 주문한 마력회로 스타터 킷이 제법 양품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살라만다 커뮤니티에서 마력전도성실을 주문했다. 무려 4만 VP치 마력전도성 실의 양은 양손으로 들기에 버거울 정도였지만 고래도 잡아먹는 던클레오의 덩치를 생각하면 빠듯하겠지.
나는 이제 방부제를 충분히 머금어 표피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단단해졌을 던클레오를 이매망량 천인대를 총동원해 들어올렸다. 이전까지는 밑그림 작업이였고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마력전도성실에 변이마력을 흘려넣어 흐물흐물한 액체상태로 만든 나는 그것을 던클레오의 아가미로 밀어넣었다.BVE(Blood Vessel Engrave), 생명체의 혈관과 마력회로를 일체화시키는 고수준의 인챈트먼트를 시전할 때가 온것이다.단일작업으로는 날을새도 일을 끝낼 수 없었으므로 나는 싸이킥 능력인 사고분할을 이용해 쿼드코어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손아귀의 마력전도성실 아니 액체가 3갈래로 나뉘어져 추가로 던클레오의 아가미에 입장한다. 이매망량으로 던클레오를 공중에 고정시키고 있었으니 펜타코어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였다. 머리속에 이매지한 언데드 서킷을 BVE 방식으로 깔다보니 거리가 멀어질수록 변이 에너지 소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오랜만에 대형 언데드종을 수술해서 그런가 머리가 띵하네."
그냥 주문시전어 한 마디로 죽은 시체를 일으켜세우는건 다 커스텀 스킬이다. 네임드 스킬로 강령술사의 길을 밟는자들은 다 이렇게 외과수술에 버금가는 섬세하고 고된작업을 완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의사들도 고래보다 큰 물고기를 수술해본적은 없을테니 이쪽이 더 힘들지도.
VOT 단말기를 살펴볼 여력도 없어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는 체크할 수 없었지만 코에서 코피가 줄줄흐르고 머리는 불덩이처럼 뜨거운것을 보아하니 못해도 4시간은 족히 지났으리라. 컨디션이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그나마 작업이 마무리 페이즈에 돌입해 젖먹던 힘까지 뽑아낸다.
물론 우리 엄마는 모유수유가 아니라 분유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아니 이런 딴생각을 하다니 집중력이 흩으러졌다는 신호다. 김사건 집중하자, 집중해! 1시간여쯤 더 흘렀을까? 마침내 식물이 뿌리를 내리듯 던클레오의 혈관을 타고 뿌리를 내린 마력전도용 실이 언데드 서킷을 구현했다.
사령안 제 2형 샤프마인드를 발동한 상태로 던클레오의 내부를 관조하면서 작업을 했기 때문에 신경쓰지않았지만 주위는 이미 깜깜하다 못해 한치앞도 구분할 수 없는 암흑천지였다. 이대로 개인선실로 돌아가 한숨 잤으면 했지만 언데드 서킷이 완성됐다한들 파워 서플라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나는 인벤토리에서 보랏빛 영혼석을 꺼내든 다음 던클레오의 이마에 박아넣었다.변이 에너지를 불어넣어 보랏빛 영혼석의 접합부위에 마감작업을 하면 이제 정말로 끝. 일전에 무인도에서 잡아들였던 사흉신교의 혼돈술사가 담긴 영혼석은 당시에는 몰랐지만 상식을 초월하는 고효율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 던클레오의 커다란 동체를 움직일 정도라면 말다했지. 너무나 지쳐서 던클레오 좀비를 테스트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오르시나를 호출해 아이스바운드가 있는곳까지 수원 포탈로 복귀했다. 정말 수고했다, 내자신! 아우 슈발 힘들어 죽을뻔했네.
* * * *
"그러면 옥사건 준위 잘 다녀오세요. 딱히 구조팀에 선발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떨어지면 맘편히 돌아오세요."
"하지만 뭐가됐던 시험에 떨어진다는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말이죠. 최선을 다해볼랍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옥사건 첫 우주여행이라고 방정떨지말고, 사고치지말고 몸 성히 다녀와라."
"은리사저도 너무 마음속에 화를 품고 사시면 몸에 안좋으니가 명상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려보세요."
"너만 없으면 화낼 일도 없어. 빨리 썩 꺼져버려. 영영 헤어지는것도 아닌데 뭔 배웅이 이렇게 길어."
"저도 모자란 잠을 보충해야될거 같아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발두인 함장 그러면 어머님한테는 안부인사를 전해드리도록 하죠."
나는 은리사저 앞이라 참아왔던 하품을 입이 찢어지라 내뿜으며 실버사이드 구축함에 올랐다. 주변에는 이런저런 짐을 챙기고 있는 공수중대원들과 그것을 지휘하는 공수중대장 도르칸 대위가 말없이 텔레파시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워낙 급하게 결정된 출정이라 아직 준비가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뭐 우주여행이 장난도 아니고 신경써야할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 어떻게 보면 나 하나 데려다주겠답시고 모두를 고생시키는것 같아 마음이 찜짐했지만 매스 텔레포트가 가능한 전이술사를 고용하는것 보단 이게 훨씬 싸게 먹힌단다.
사실 어떻게 보면 택배업무를 수행하는 전이술사들은 고위전이술사라기 보다는 보급형 전이술사고 자신을 포함한 복수의 인원을 워프시킬 수 있는 매스 텔레포트가 가능한 전이술사야 말로 고위라는 칭호를 붙이기에 걸맞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스 텔레포트가 가능한 전이술사는 그 수가 많지않고 몸값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구조팀 확정자도 아닌 선발후보를 모시기 위해 고용할 수 는 없는 노릇이겠지. VOTO에서는 웨이 포인트라는 것이 있어 전이술사들이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현실에서는 그 취급이 남다르다는 느낌.
물론 블랙77이라는 블랙마켓의 브로커는 먹고살기가 쉽지 않다고 했지만 한탕에 7700 VP면 꽤 괜찮은 벌이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실버사이드에 배치된 주인님의 개인선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오오 스텔아 너 나 보고싶어서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은 특정 사용자에게 감정을 표출하지 않습니다. 발두인 함장의 명령으로 주인님을 서포팅하는 주둔지역을 변경했을뿐입니다.
"그... 그래? 그러면 빨리 내 개인선실로 안내해줄래? 어제 너무 피곤해서 빨리 한숨자고싶다."
-제 뒤를 따라와 주십쇼. 실버스케일 함선에 비해 선실크기가 작을 수 있으니 머리가 부딪히지 않게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직 은린선의 함내구조를 잘 몰랐던 시절처럼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을 네비게이션 삼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쯤에는 우주라는 공간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던것 같다. 우주를 배경으로한 만화영화탓이었을까?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상황이 180도 바꼈다. 우주로 나가봤자 화성인도 변신로봇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우주를 그저 텅빈 깡통처럼 여겼다. 그후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군대까지 다녀온 방년 25세 청년 김사건이 다시 우주라는 공간에 대해 꿈을 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