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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 Oxogan The Rise Of Venom Dragon
그 독의 이름이 블랙플라워 바이러스였다는건 이번에 알았지만 그 독때문에 아야사가 고통받는 모습도 델타포스 소대가 전원 병원신세를 지게된것도 목격한 나였다. 설마하니 아무 대비도 없이 블루아주의 연구소를 습격했겠는가?
나는 진즉에 아야사를 치료할때 사용했던 안티도트를 복용한 상태였고 나머지 둘에게는 처음부터 별다른 조치가 필요없었다. 아라크네족은 본래 독거미라 시스트린은 왠만한 독에는 반응도 하지 않고 륭사부는 다름아닌 독배에서 태어난 생령, 밴쉬 그래플러였다.
따라서 실제로 입은 피해는 제로. 하지만 어줍잖은 수작을 부린 블루아주 영감탱이는 당연히 바로 목을 뽑아버리는것이 마땅한 처사일 것이다. 다만 아직 캐물어야할 정보가 많았으므로 그 시기를 잠시 밀어둘 필요가 있었다.
사실상 신체부위가 뜯겨져 나가는 아픔은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고통의 수준이 아니였기 때문에 블루아주는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그런 블루아주를 재촉해 진통제와 조혈제를 찾아낸 다음 대충 팔뚝에 꽂아 주사했다.
"시스트린 너는 이 연구실에서 어디 비밀공간같은거 없나 찾아보고 륭사부는 이 영감탱이 정신좀 차리게 딱밤 한대만 때려줘요."
"주인님의 공방같은 장소인 모양이네요. 제가 흥미있을만한 물건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뭐 그래도 한번 감각을 집중해서 찾아볼게요."
"아직 지구인의 맷집이 어느정도인지 몰라서 딱밤의 세기를 조절하는게 어렵군. 뭐 죽지만 않으면 되는거겠지."
륭사부가 손가락 근육을 팽팽하게 끌어당기며 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더 이상 손가락 균육이 당겨질 수 없을때가지 도달한 극점에서 엄지손가락을 놓아버린다. 따아악!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블루아주가 심장충격기에 직격당한것처럼 의식을 회복했다.
"다시한번 묻는다. 어떻게 VOTO의 존재인 팔타로스를 비록 영혼뿐이라 하지만 지구로 불러낼 수 있었던거지? 참고로 네가 살포한 블랙플라원지 뭐시긴지 하는 바이러스는 우리한테 하등 효과가 없으니까 동귀어진할 생각이라면 꿈깨시고."
"으으으 어째서 내게 이런일이...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팔타로스님과 함께 대업을 이루고 영생을 얻을 수 있었거늘."
"지금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녀석이 영생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러니까 평소에 나쁜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손주손녀한테 독약을 처먹여놓고 왜 일이 잘 안풀리지하고 말하면 퍽도 공감이 가겠다. 당장 묻는말에나 대답해! 영감탱이 푸념따위 들어줄 시간따윈없으니까."
"데모닉 그리모어. 그 마도서에 나와있는 영혼기생이란 팔십번대 술식을 활용해 팔타로스님이 내 영혼에 기생했던것이다. 그 덕분에 VOTO에서 지구밖으로 나오실 수 있었던 것이지. 아직 팔타로스님의 육체가 100% 완성되기 전에 쥐새끼들이 냄새를 맡고 찾아와 느낌이 좋지 않았거늘 결국 이런 참사가 벌어지다니 진즉에 연구원놈들을 토사구팽할걸 그랬군."
"일이 이지경이 됐는데도 아직 나쁜짓을 더 못한게 아쉽냐? 진짜 글러먹은 놈이네."
"주인님 비밀공간 찾았어요. 냉장고 안쪽의 안쪽에 있었네요. 아마 이게 해독제인거 같은데요?"
블루아주를 심문하고 있던 사이 시스트린이 해독제를 찾아낸 모양이다. 냉장고의 벽을 박살내자 또 다른 공간이 있어 거기에 해독제가 이열종대로 세워져 있었다. 일전에 블루아주가 말한대로 해독제 원액과 희석된 해독제가 나눠져 있는듯 했다.
"냉장고 안쪽의 안쪽에 숨기다니 퍽도 기발한 방법으로 숨겼구만. 그래서 어느쪽이 해독제 원액이지?"
"왼쪽이다. 이봐 키메라 워리어 네놈도 천외천 유저렸다?"
"이게 어디서 건방지게 입을 놀려? 자신의 처지를 알고는 있는거냐?"
"곧있으면 네놈의 손에 죽을 운명이라는 것쯤은 알고있지. 마치 심문에 응하면 살려줄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네녀석의 망설임없는 손속을 보고 나는 눈치챌 수 밖에 없었다. 가진것을 다 토해낸다 한들 나는 살아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차라리 할말은 하고 죽어겠다는 것이 내 결정이다. 이봐 키메라 워리어 네놈은 사필귀정이라는 것을 믿느냐?"
"사필귀정? 하하하! 그래 어디 한번 무슨 개소리를 늘어놓는지 들어나볼까. 혹시나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라면 일찌감치 접는게 좋을거야. 누차 말하지만 블랙플라원지 뭔지는 나한테 안통해."
"그래 너같은 괴물에게 블랙플라워가 통할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멍청했던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전에 너는 마치 내가 나쁜짓을 일삼아서 이번 일을 실패한것처럼 이야기하더군. 마땅히 받을 벌을 받았다면서 말이야. 하지만 정말로 세상사는 이치가 다 그러하던가? 칠십년 넘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어본 바로는 나쁜짓을 해서 잘먹고 잘사는 경우가 더 많더군. 그 단적인 예로 VOTO에는 아크리퍼라는 악질중에 악질인 유저가 있다."
나는 순간 움찔해서 블루아주의 멱살을 틀어잡을뻔했다. 블루아주가 내 정체를 간파하고 나를 조롱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하니 그런 뉘앙스는 아니였다. 애시당초 내가 드러낸 힘만으로 아크리퍼라는 것을 유추할 수 없기도 했고.
"아마 네녀석도 한번쯤은 들어보았겠지. 그는 가지고 싶은것이 있으면 무력으로 찬탈했고 이해득실을 위해 대형길드간에 이간질도 서슴치않았다. 마음에 들지않는 길드가 있으면 규모를 막론하고 일인군단을 앞세워 기둥뿌리까지 뽑아버렸다. 그리고 그 길드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길드장으로 있었던 베놈 스토커였다. 만약 그때 아크리퍼가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오늘의 패배자는 내가 아닌 키메라 워리어 네녀석이 됐을 것이다.
월영공 듀리스라는 네임드 몬스터에게는 초월 그림자 도약이라는 혈족능력이 있어 독룡 팔타로스님의 드래곤 하트 조각을 지구로 옮길 수 있다. 팔타로스님으로 부터 그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네크로폴리스라는 사냥터를 점유해 월영공 듀리스를 설득하려 했지. 조각뿐이라 해도 드래곤 하트를 지구로 옮길 수 만 있다면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일이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아크리퍼가 모든것을 망쳤다.
단지 문지기 역할을 하던 내 길드원이 건방지게 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이렇듯 세상일은 착한자가 복을 받고 나쁜자가 벌을 받는 메커니즘으로 구성되있지 않다. 그저 강자의 별거아닌 변덕으로 수만명의 운명이 비틀려 버린다. 그러니 나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아크리퍼처럼 타인의 것을 빼앗아 북두십성의 자리에 올랐어야 했던 것이다. 본디 지구에서 지닌 재산때문에 VOTO에 절실하지 않았던것이 결국 독이된 셈이지.
쿨럭쿨럭.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제 알겠느냐? 내가 키메라 워리어 네놈보다 악바리처럼 굴지 못해 패배했다면 수긍하겠지만 나쁜짓을 일삼았기 때문에 패배한다는 이야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블루아주가 피를 토하며 내게 절규했다. 보통 사람이 늙으면 만사에 느긋해지고 욕심이 없어지는 법인데 이 블루아주 영감탱이는 무슨 한이 그렇게 많은지 곱게 죽기는 틀려보였다. 적의 개똥철학에 어울려주는것은 성미에 맞지않는 일이였지만 이리도 열변을 토해내니 뭐라도 한 마디 해줘야겠군.
"영감탱이가 아주 옳은 말을했어. 강자존약자멸은 사필귀정에 비하면 현실적인 이야기지. 하지만 결국 이야기를 종합해보자면 영감탱이는 돈만 많을뿐 약자에 속했다는거 아닌가? 그러니까 착하게 살았어야지. 슈퍼히어로한테 처발리거면 뭐하러 악당을해? 그냥 소시민 A나 할것이지. 진짜 악당이 되고 싶었으면 슈퍼히어로 따위는 쳐바를 수 있는 슈퍼악당정도는 돼야지. 하지만 영감은 그 정도의 역량이 부족했던거고 단지 그뿐이야.
각설하고 이미 자기 운명을 직감한것 같으니까 마지막 질문을 하겠어. 곱게 가진걸 토해내고 죽던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더러운꼴만 보다가 비병횡사할지는 다 영감한테 달린거야. 어마어마한 화력을 얻어맞고도 멀쩡했던 그 유리시험관의 재질 뭘로 만든거지? 그리고 데모닉 그리모어는 지금 어디있고?"
"스케일 글래스. 팔타로스님의 비늘조직을 분석해서 만든 연금술사 유저로서의 내 역작이다. 미안하지만 이건 넘겨줄 수 없어.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데모닉 그리모어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악인으로 낙인찍힌 몸 남좋은일만 하다 죽는다 한들 누가 알아준단 말이냐?"
"영감탱이가 죽을때가 되니까 간이 배밖으로 나온 모양이네. 뭐 채찍정책은 약발이 다한거 같으니까 이번에는 햇볕정책으로 가볼까? 만약 영감이 스케일 글래스의 제조법이랑 데모닉 그리모어를 넘겨주면 나는 아크리퍼의 신상명세를 넘겨주지."
"뭐... 뭐라고?"
블루아주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리며 당황하고 있었다. 진실여부는 둘째치고 설마하니 내가 그런 조건을 내걸줄은 생각도 못한 모양이다. 사실 아크리퍼는 나 김사건 본인이였으니까 신상명세를 넘겨준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였다.
"영감이 아크리퍼라는 유저한테 원한이 많아보이던데 사실 내가 그 친구에 대해서 아는게 좀 많거든."
"내가 그... 그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냐. 네녀석이 스케일 글래스의 제조법과 데모닉 그리모어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한것이라면? 게다가 죽기직전에 아크리퍼의 신상명세를 알아낸다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말은 그렇게 해도 영감 솔직히 지금 내 제안에 솔깃했잖아. 그리고 칠십년 인생이면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간파할 수 있잖아? 영감은 남좋은일만 하다 죽는다 한들 누가 알아준다고 말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어차피 죽으면 스케일 글래스의 제조법이든 데모닉 그리모어든 다 쓸모없는거 아닌가.
만약 내 말이 거짓말이라 해도 영감은 어차피 본전이야. 하지만 내가 정말로 아크리퍼의 신상명세를 알고 있다면 죽기직전에 영감은 오랜 숙원 하나를 풀고가는 셈이지. 빨리 결정해. 별로 오래 기다려주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블루아주는 두눈을 감고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이내 실험대에서 메스를 꺼내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가르기 시작했다. 그속에서 USB하나를 끄집어 내더니 내게 던져준다. 갈라진 상처를 봉합할 생각도 안하는것을 보아하니 정말로 삶의 의지를 꺽고 마지막 선택을 한 모양이다.
"그안에 스케일 글래스의 제조법은 물론 데모닉 그리모어의 사본이 들어 있다. 물론 데모닉 그리모어의 경우 고위강령술사가 아니라면 첫페이지 조차 넘길 수 없는 난해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팔타로스님 정도 되니까 읽고 해석해서 사용할 수 있었던거지. 이제 내게 말해다오. 아크리퍼가 도대체 누군지. 지금은 뭘하면서 살고 있는지."
"내가 바로 아크리퍼야."
"뭐... 뭐라고?"
"내가 바로 아크리퍼라고. 안들려? 안들려? 안들려? 안들려? 안들려? 안들려?"
"그... 그 말투는 설마! 네놈 얼굴을 벗어보아라!"
"싫은데? 싫은데? 싫은데? 싫은데? 싫은데? 싫은데?"
"으아아아아아아악! 네놈 지옥에 들어가서도 네놈을 저주하고 말겠다! 아ㅋ... 커억!"
"목소리가 너무 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듣는다는데 경거망동하면 안돼지. 아무튼 USB에 담긴 귀중한 정보는 내가 잘 쓰도록할게."
나는 처음 약속했던 대로 블루아주의 목을 뽑아 그를 절명시켰다. 던클레오의 생명석을 흡수한 이후 무섭게 성장한 내 악력은 내가 생각해도 무서울 정도였다. 비록 괴랄한 방식으로 블루아주에게 죽음을 선사했으나 흔적따위를 남기고 싶진 않았으므로 나는 시스트린에게 블루아주의 피를 가득빨아 미라로 만들것을 지시했다.
미라가 된 블루아주를 마늘처럼 빻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 후 이매망량으로 해독제들을 챙겨 연구실을 빠져나온 나는 바로 폐쇄된 지하철 노선쪽으로 나가려다 율리시안의 캡틴 슈트앞에서 멈춰섰다. 그러고보니 생사확인을 한다는것이 팔타로스와 싸우느라 깜빡하고 말았다.
조심스럽게 캡틴슈트 근처로 다가가 살펴보니 팬텀소대가 그를 지키려했지만 결국 율리시안도 죽음의 비앞에서 온전할 수 는 없었던 모양이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모습을 보고 안심한 나는 시스트린과 륭사부에게 흩어져 있는 팬텀소대의 슈트를 전부 박살낼것을 주문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내 철칙이였으니까. 그런데 그때 캡틴 슈트가 거대한 손으로 나를 움켜쥐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깜짝놀란 나는 해독제를 떨어트릴뻔 했다. 다행히 내게 해를 입일 수 있을만큼 기계식 건틀릿장치가 온전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치직! 비비앙... 비비앙은 어디에 있지? 비비앙... 비비앙은 어디에 있지? 비비앙... 비비앙은 어디에 있지? 비비앙... 비비앙은 어디에 있지? 비비앙... 비비앙은 어디에 있지? 비비앙... 비비앙은 어디에 있지? 치직! "
"뭐야 이 자식 상태가 좀 이상한데?"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율리시안. 게다가 어딘가 사람목소리 같지않고 기계음이 섞여 있다. 나는 급히 내 상태를 보러온 시스트린에게 해독제를 맡기고 이매망량으로 캡틴 슈트의 헬멧부분을 벗겨보았다.
결과는 충격적이였다. 캡틴 슈트 내부에 있던것은 율리시안이 아니라 단순히 로봇이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율리시안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로봇으로 원격지휘를 하려고 작정했던 모양이다.
하긴 팬대만 굴리던 공돌이가 전선에 나서서 빗발치는 총알을 앞에두고 침착하게 지휘를 한다는 사실자체가 수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서도. 황산비때문에 여기저기가 부식되서 제기능을 하지는 못하는것 같았지만 비비앙 칼빌레이에 대한 율리시안의 집착만큼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이매망량 천인대를 집결시켜 캡틴 슈트를 찌그러진 깡통처럼 만들어 버렸다. 어딘가에서 원격조종을 하고있을 율리시안에게 내가 흑막이라는것을 들킨 이상 언젠가는 다시 맞붙을 날이 올 것이다.
미안하지만 설사 그런 날이 온다해도 비비앙은 넘겨줄 수 없었다. 비비앙은 명실상부한 전리품이자 기야스의 선원이였고 동시에 내 여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