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6 / 0316 ----------------------------------------------
vol.3 Oxogan The Rise Of Venom Dragon
슬슬 여름휴가 시즌이 다가오고 있어서인지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정동진을 찾고 있었다. 새해 일출시즌에 비하면 양반이였지만 그 어떤 외부인도 없는 단절된 공간에서 항아리의 퍼즐을 풀고 싶었던 나는 일출이 보이면서도 사람의 인적이 없는 야산에 기야스를 정박시켰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호두 씨종자를 항아리에 담고 1.5 생수를 5개 정도 부으니 항아리 입구가 찰랑찰랑할정도로 물이 차올랐다. 그 상태로 함장실 구석에 항아리를 방치한 나는 자취방 침대와는 비교도 안되게 인체공학적인 함장석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함정석은 기야스 함선 내부를 레일을 타고 이동할때에도 쓰이지만 여차하면 침대로 변신할 수 도 있었다. 아직 잠을 자기엔 이른 저녁이였지만 여름날에 동이 터오르는것을 보기 위해선 새벽에 일어날 필요성이 있어 애써 잠을 청했다.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다 기야스의 알람을 듣고 깨어났다. 잠을 잤는지 안잤는지 분간이 안갈정도로 찌푸등한 상태였다. 역시 상상을 초월한 오버테크놀로지로 무장한 황금장수풍뎅이 기야스라고 해도 사람이 본래 살던 보금자리의 아늑함을 재현할 수 는 없는 모양이다.
나는 항아리를 안아들고 다시 함장석에 앉았다.
"기야스 밖으로 내보내줘."
-함장령 수리했습니다. 궁금해하셨던 일출시간이 오차범위 1% 이내로 도출되었습니다. 476초 후에 현재 위치에서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관찰하실 수 있습니다.
함장석이 바닥 아래로 가라앉더니 레일을 따라 부단히 움직인다. 이제는 기야스 함선 내부의 레일따라 이동하는것에 제법 익숙해져 놀이기구를 탈때의 짜릿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항아리의 물이 넘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정동진 해수욕장 부근 야산의 차가운 새벽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었다.
'따사로움 경배하라.'라는 문구는 왠지 공손해질 필요가 있을것 같아 나는 항아리를 들고 함장석에서 기립했다. 호두 씨종자는 물론 생수로 가득찬 항아리를 양손에 받치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동작은 그간 LPTM(Liquid Physical Training Machine)을 통해 꾸준히 단련해왔던 내게도 부하가 걸리는 자세였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붉으스름해지는걸 보아하니 일출까지는 정말로 얼마 안남은 모양이다. 나는 아려오는 팔의 고통을 곧 완성될 퍼즐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상쇄하며 잠자코 기다렸다. 3, 2, 1. 태양이 떠오른다. 야산 정상에서 정동진 해수욕장을 내려다보니 일출을 바라보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커플이 몇 보인다.
배알이 뒤틀린다라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항아리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에 커플따위는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런데 항아리 내부에서의 진동이 점점 강해지더니 두 손으로 항아리를 받치고 있는것 조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매망량까지 동원해 항아리를 고정시키려 해봤지만 항아리가 깨져나가면서 거대한 식물줄기가 돋아나 이매망량을 밀어내고 나를 감싸온다. 이게 얼마나 무식한 식물 성장력이란 말인가? WAS(Wearable Archane Shield)까지 발동해 막아보려했지만 잭과 콩나무의 동화에서처럼 자라나는 식물줄기가 끝내 나를 덮어버렸고 내 시야는 암흑으로 물들었다.
* * * *
"으으으... 여긴 어디야?"
"드디어 연자가 찾아왔군."
암흑으로 뒤덮혔던 시야가 다시 회복되자마자 내 눈앞에 들어온건 고층빌딩 마냥 쭉쭉 뻗은 고목들이 가득한 원시림이였다. 무너졌던 신형을 일으켜 새우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봐라보니 일전에 백록담에서 보았던 흑갈색 대리석 조각 몸매를 지닌 여성이 그루터기에 앉아 나를 내려다고 보고 있었다.
백록담에서 보았을때는 분명 나보다 작았었는데 지금 보니 최소 신장이 2m는 되보인다. 물론 키가 커진만큼 바스트나 힙이 몰라보게 풍성해져 얼굴이 아니였다면 못알아볼뻔 했다. 굳이 이런 이공간까지 안배하면서 기연을 계승시키려하다니 항아리 속에서 폭풍성장한 식물때문에 당황스러워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기대감이 차오른다.
"이거 반갑습니다. 백록담에서 보던것보다 훨씬 미인이시네. 저한테 마샬아츠 더 비타라는 체술을 전수해주시려고 나타나신거 맞죠? 우리 복잡한 절차는 생략하고 바로 시작합시다."
"꽤나 성격급한 연자로군. 서두룰 필요는 없다네. 이미 권묘결은 이미 연자의 몸에 전수되고 있는 중이니까. 그러니 내 설명을 잘듣고 권묘결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권묘결이요? 마샬아츠 더 비타라는걸 가르쳐주시는거 아니였습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권묘결은 마샬아츠 더 비타의 한갈래니까. 마샬아츠 더 비타는 비타 즉 생명력 혹은 선천지기라고도 하는 인간 본연의 정기를 활용하는 라 일족 전통체술의 총체를 뜻하는 단어지. 본래는 가장이 장남에게 전수하는것이 원칙이지만 부족의 우두머리였던 내 아버지가 원칙을 깨고 유난히 체술에 독보적인 재능을 보였던 차녀인 나에게 권묘결을 전수하셨지.
마샬아츠 더 비타의 종류는 같은 부족 내에서도 천차만별. 허나 그 중에서도 권묘결은 족장이였던 아버지가 계승하는 것이였던 만큼 독보적인 위력을 자랑하지."
"그것 참 반가운 소리네요. 그런데 말이죠. 그 마샬아츠 더 비타라는 체술이 생명력을 코스트로 사용하는 기술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거슬리는군요. 천하제일인이 된다 한들 수명이 오늘 내일한다면 별 의미없지 않겠습니까?"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해 대제국을 건설했던 징키스칸도 말년에는 수명때문에 의원을 찾았다고 한다. 하여 여색을 멀리하고 소식하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결국 수컷의 본능을 버리지는 못했다고 한다.
결국 정복왕이든, 촌부든 죽음앞에서는 얄짤없는것이다. 아무리 강한 위력을 지닌 기술이라 한들 수명을 대가로 한다면 거들떠 보고 싶지도 않다. 던클레오의 생명석을 흡수한 이후 수명이 1000살 정도로 늘어난 나라지만 단 1년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만큼 수명이 지니는 가치는 등가교환할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이다.
"좋은 지적을 해주었다. 마샬아츠 더 비타가 창시된 초기에는 연자가 지적했던대로 비타 즉 생명력이 지닌 강력한 힘을 남발하여 객사하는 선조분들이 많았다고 하더군. 하지만 마샬아츠 더 비타가 몇 세대를 걸쳐 계승되면서 그러한 문제점은 차차 개선되었다. 종국에 이르러서는 사용자가 수명을 깍아먹는 수준까지 생명력을 끌어내는 일 자체가 원천봉쇄되기에 이르렀지.
강력한 힘의 대가로 수명을 지불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선조분들도 모르지 않았음이지. 현세대의 마샬아츠 더 비타는 타오르는 양초에서 떨어져 내리는 촛농을 재활용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자연스럽게 생명력이라는 양초를 태워 힘을 얻는다. 이 과정은 원치 않아도 계속되는지라 중간에 불을 껏다가 다시 킬 수 는 없는 노릇이지.
이때 이러한 생명력이 연소되어 발산되는 에너지가 항상 사람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곳에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심장박동, 폐의 팽창과 수축과 같은 운동은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하품을 한다거나 등허리를 긁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나는 그러한 불필요한 행위에 이용되는 에너지를 마샬아츠 더 비타를 통해 재활용될 촛농이라고 칭한다.
이 쯤되면 연자도 내가 하고싶은 말을 이해 했겠지?"
"마샬아츠 더 비타를 사용한다고 해서 수명이 깍이는 일은 없다는점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잉여 에너지를 이용해서 강력한 힘을 낸다는게 가능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하품이나 등허리를 긁는데 쓰이는 에너지를 쓴다한들 별볼일 없을것 같은데요."
한국이 세계에서도 유달리 독보적인 폐지재활용률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결국 그 폐지로 만들 수 있는것은 고급 양지가 아니라 두루마리 휴지였다. 물론 두루마리 휴지가 굉장히 회전율이 높은 소모품이기때문에 거시적인 성과를 기록한건 맞지만 마샬아츠 더 비타라는 체술에서 내가 기대한 것은 자잘한 여러방이 아니라 통큰 한방이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부분에 관해서도 대안책이 준비되어 있는지 라 일족의 여 계승자는 자신있게 입을 열었다.
"별것 아닌 힘이라 여길 수 도 있겠지만 그런 비타 에너지를 모아 한껏 팽창된 근육의 타격점에 실으면 예상밖의 위력을 뿜어내지. 하지만 연자는 보기보다 눈이 높아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는 모양이군. 내가 권묘결에 대해서 자랑할 맛이 나겠어. 연자가 말했던대로 촛농에 해당하는 잉여 에너지는 별볼일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이 하루동안 축적되어 일시에 발휘될 수 있다면?
나아가서 일년동안 축적된 촛농이 한순간에 불타오를 수 있다면? 그때도 별볼일 없는 힘이라고 할 수 있을까? 권묘결은 그러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마샬아츠 더 비타. 하루치 비타 에너지를 근육에 실어 몰라볼정도의 완력을 끌어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지. 만약 일년치 비타 에너지를 근육에 실는다면 족히 태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르는 위용을 뽐낼 수 있을거라 자신하네.
물론 이런 강력한 힘에 아무런 대가가 없다면 말이 안되겠지. 하루치 비타 에너지를 근육에 실는것을 일축, 일년치 비타 에너지를 근육에 실는것을 연축이라고 하며 일축을 사용한 근육은 하루동안, 연축을 사용한 근육은 일년동안 용조송이라는 식물에 감싸진채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네. 그동안 손상된 근육과 소실된 생명력을 충원하는 시간을 갖는셈이지.
자네 표정을 보니 무슨 질문을 할지 벌써부터 감이 오는군. 이렇듯 권묘결은 재사용 대기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는것 사실이네. 하지만 그 위력은 분명 경천동지의 수준이며 근육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사용한다면 그 단점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네. 내가 권묘결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쳐야할 부분도 바로 근육의 효율적인 배분이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내가 직접 권묘결의 묘리가 담긴 일권을 보여주도록 하지."
그루터기에 앉아 있던 라 일족 여 계승자가 일어서자 새삼 앉은키로만 어림잡았던 신장이 보통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사실 여성의 키가 2m에 달하면 거부감이 들법도 했지만 놀랍도록 잘 다듬어진 흑갈색 대리석 조각몸매 앞에서는 경탄만 나올뿐이다.
가볍게 심호을을 한 라 일족의 여 계승자는 어깨에 무게를 실은 레프트 훅을 너무나 가볍게 휘둘러 톡하고 나무를 가격했다. 이 원시림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고층빌딩만큼 큰 것은 물론 둘레는 장정 10이 감싸야 간신히 둘러쌀 수 있을 정도라 여 계승자의 일권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 반대였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것이 아니라 바위로 계란을 친듯이 원시림의 나무가 폭삭하고 주저앉는다. 그 상상을 초월한 위력에 나는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나무에 금이 간것도 아니고 가격부분이 가루가 되어 폭삭주저 앉는다고?
허나 그 무시무시한 기술의 대가 또한 무시무시했다. 여 계승자의 왼팔을 정체불명의 식물이 휘감기 시작하더니 아예 잠식해 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위력을 지닌것은 맞지만 단 일권으로 나는 하루동안 왼팔을 쓸 수 없게 되버렸네. 이것이 바로 권묘결의 핵심이지. 만약 상대가 단 한명이였고 방금 일격으로 즉사했다면 나는 제법 괜찮은 장사를 한 셈이야. 하지만 만약 상대가 5명이였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아직 상대해야할 적이 4명이나 남았는데 왼팔을 하루동안 쓸 수 없는 상태다? 상상만해도 정말 최악의 상황이지.
따라서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않았지만 연자가 반드시 기억두어야할 동작이 있다. 그것은 바로 딱밤 때리기다."
"딱밤 때리기요?"
"그렇다. 권묘결을 사용한 근육은 용조송에게 집어삼켜져 회복기간을 거쳐야한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근육사용으로 적에게 유효타격을 입힐 수 있는 동작을 익혀야한다. 오랜기간 수십, 수백가지의 체술동작을 익혀온 나는 딱밤 때리기가 그 무엇보다 그러한 조건에 적합한 동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연자는 이공간의 지속시간이 끝날때까지...
최후의 라 일족인 본녀 륭과 가위바위보 내기를 통해 딱밤맞기 수련을 해야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