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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 Oxogan The Rise Of Venom Dragon
"레이디 노아... 맞나?"
"그래 나 화장빨 심해서 화장안하면 팬들이 못알아보는 가수야. 번거롭게 선글라스로 가리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나쁜것만은 아니지."
"아니아니 못생겨졌다는게 아니라 그야말로 터프한 여자 락커에서 갑자기 고등학생 합창단 소녀가 되서 나타나니까 당황스러워서 그러지."
"나 고등학생 맞는데? 합창단은 아니지만서도."
"뭐? 진짜로? 그 강루킨지 뭔지 하는 녀석이 너보고 누나라고 하지 않았냐? 그녀석은 아무리 낮게 봐줘도 대학생쯤으로 보였는데."
"대학생 맞아. 누나라고 부르는건 국민 연하남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한 일종의 컨셉이지. 요새는 밖에서도 자꾸 누나라고 불러서 나도 가끔 강루키 나이가 헷갈려. 뭐 시시콜콜한 이야가는 집어치우고 왜 나를 따로 보자고 한건지 용건부터 말해? 알고보니 내 열혈팬이였다는 설정같지는 않다만."
"여기 고대유물 항아리에 새겨진 문자좀 해석해줘. 그냥 단순한 무늬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분명 어떤 의미를 지닌 문자야. 아마 지구에서 이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고고학자는 없을거야. 즉 이걸 해석할 수 있는 실마리를 지닌건 언어교감의 싸이킥 능력을 지닌 노아 너 하나뿐이라는거지. 내가 중간에 마음을 바꿔서 터무늬없이 좋은 조건을 내건것도 다 이것때문이야."
"후우 역시 그런거였나."
중화코스요리전문점을 전세내고 코스요리는 입도 못대고 난투극만 벌였던 그 날 이후 바로 다음날 레이디 노아가 이준교 매니저를 통해 약속을 잡아왔다. 정말로 우연히 오늘 스케쥴이 비었던건지 아니면 너무 좋은 조건을 제시한 이쪽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짬을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흔쾌히 응했다.
사람이 붐비는 까페의 한가운데, 여고생을 앞에두고 낡은 항아리를 들이미는 나는 과연 어떤 이미지로 비쳐질까? 골동품 항아리를 김장김치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마법의 항아리로 속여파는 사기꾼으로 보일지도 모르지.
어찌됐든 구십번대 아이템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온 마당에 주위시선따위가 무승 상관이랴. 나는 레이디 노아가 두눈을 감고 항아리에 두손을 댄채로 명상에 잠긴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사실 내 돈도 아니고 아야사의 돈이였지만 어림잡아 원화로 수십억씩이나 하는 돈을 아이템 감정에 사용한다는건 수왕성으로 넘어가기전의 나였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구의 화폐는 내게 편리한 도구정도의 의미밖에 지니지 못했다. 진짜로 중요한건 VP(Vaccine Point)였고 나아가서는 일신의 전투력을 지구로 따지면 기갑중대와 버금가거나 혹은 더 뛰어넘을 수 있도록 강화하는 것이였다.
그때가 되서야 나는 진정한 천하무적 무뢰배 아크리퍼(Arcreaper)가 되어 사회적 규범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리라.
"질좋은 종자를 항아리에 담은 후 한가득 물을 담고 떠오르는 태양앞에서 항아리를 들어올려 그 따사로움을 경배하라."
"그게 끝?"
"어. 이게 끝이야."
"정말로?"
"어. 정말로 이게 다야. 항아리 내부에 문자가 있는것도 아니잖아."
"오케이. 알았어. 좋아 그러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들어. 너는 이 까페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 항아리와 예의 해석된 글귀를 완벽하게 잊는거야. 당연히 그 어느 누구에게도 오늘 일에 대해서 말하면 안돼. 만약 이를 어길시 종이계약서에 적혀있는 내용은 모두 무효가 되는것은 물론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B플랫 엔터테이먼트를 파멸시키겠어."
"거참 되게 겁주네. 말안해도 오늘 일은 무덤까지 들고갈테니까 괜히 요란 떨지마."
"그러면 먼저 일어나지."
"잠깐만 어제도 그렇고 왜 그렇게 엉덩이가 가벼워. 기왕 만난김에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추기위해 레이디 노아가 언어교감(言語校監)으로 해석해낸 글귀를 지금 당장 실행에 옮겨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왕 B플랫 엔터테이먼트에 한해서는 강경정책이 아닌 햇볕정책으로 노선을 정한바 잠깐 어울려주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나라고 세상만사에 가시를 새우며 살고싶은게 아니였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잡아보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인관관계에서 첫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양보를 하지않다가 옷을 찢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을 뿐이였다. 첫단추가 잘 끼워졌다면 두번째 단추에서는 얼마든지 내가 양보를 할 수 있었다.
"보디가드 양반 곧 VOTO 때문에 세상이 바뀔거라고 했었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1초만에 SNS에 올라오는 세상이야. 당연한거 아닌가? 아무리 정부에서 통제한다고해도 VOTO의 이능을 숨길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년 남짓일까. 나는 당장 내일 아침에 VOTO의 숨겨진 비밀이라는 제목이 대서특필된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다고 보는데. 물론 그걸 사람들이 수긍할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되?"
"이게 오냐오냐하니까 내가 무슨 니 삼촌이라도 되는줄 알아? 경험많은 니네 소속사 사장한테나 가서 물어봐."
"이강인 사장님이 정말 산전수전 다 겪고 착하신분인건 맞지만 사람이 너무 무르단 말이야. 내가 언교교감이라는 싸이킥능력에대해서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때 하는 말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늘에서 내려주신 능력이니 나쁜일에 쓰지만 말라는거야. 아니 나도 그렇게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놔두겠냐고?
애시당초 사장님은 VOTO라는 게임자체에 대해서 아는게 없으시니까 나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너한테 물어보는거야. 나라고 어제 처음만난 사람한테 이런 깊은 속사정을 꺼내놓고 싶어서 꺼내는게 아니라고."
"그래서 요점이 뭐야?"
"사실은... 백월교라는 단체에서 스카웃제의가 왔었어."
나는 그저 우연찮게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의 이능을 손에넣은 고등학생의 투정이라고 생각해 귀를 닫고 적당히 응수해주다가 귀를 쫑끗할 수 밖에 없었다. 백월교라는 단체에 대해서 처음 들은것은 아야사가 있던 호텔 반대편 건물의 옥상에서 저격총을 겨누고 있던 엔지 민슨으로 부터였다.
그 이후 백월교라는 한 글자는 내 머리한켠에 가시처럼 남아있었다. 내 앞으로의 행보에 방해가 되니 견제해야될 단체로 기억해둔게 아니라 과연 다른 천외천들은 어떤 방식으로 VOTO의 이능을 현실로 이끌어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에 쉬이 잊어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경우 용린혁 가주가 VOT 단말기를 선물해주는것은 물론 VOT 제어망을 끊어 나를 수왕성으로 워프시켜 주었다. 이것은 절대 VOTO의 이능을 얻는 일반적인 케이스라고 볼 수 없다. 왜냐? 용린혁 가주가 말하길 모든 유저의 아바타에는 VOT 시스템이 심은 폭탄이 있기 때문이였다.
유저가 아바타에 로그인한채로 규격외의 행동을 할경우, 예를 들자면 VOT 제어망을 강제로 끊으려고 한다면 이 폭탄이 터진다고 한다. 이 폭탄은 단순히 캐릭터의 체력을 0에 이르게 해 부활대기상태로 만드는게 아니라 아예 캐릭터를 영구삭제 시켜버린다. 당연히 나처럼 얼티밋 언데드 폼이라는 새로운 아바타를 만들어낸 경우가 아니라면 용린혁 가주가 직접 나서도 VOTO의 차원은 벗어날 수 없다.
뭐 그걸 떠나서 명색이 한국출신 천외천들의 사령탑을 자처할 정도라면 백월교에는 숨겨진 한 수 가 있을것이고 나는 오직 그것이 궁금할뿐이였다.
"계속 이야기해봐."
"한달전쯤인가? 한 여자가 내 숙소에 귀신처럼 나타나서 정중하게 백월교라는 단체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어. 너무 어려운 말이라 나는 이해를 못했지만 백월교의 모토는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 세상을 만드는 거라더군. 그리고 그런 세상으로로 한 발 내딛기 위해 동참해줄 수 있냐고 물어왔지만 솔직히 너무 아는게 없어서 대답을 할 수 가 없었어.
그러자 그 여자가 여자도 반할것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중에 천천히 대답해도 상관없다는 거야. 백월교에 가입한 이후에도 가수 생황을 계속 겸업해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그 여자가 떠나고 나서야 뒤늦게 얼굴이 낯이 익다는걸 깨달은 나는 그녀가 3연속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하희빈이라는걸 검색을 통해서 알아냈지.
그녀가 나 이상으로 유명인이였다는 사실보다 더 놀란건 그녀가 백월교라는 단체의 우두머리였다는 사실이야. 천외천 유저도 아닌 나를 왜 우두머리가 직접 찾아왔냐고 물으니까 자기는 원래 한명 한명 직접 얼굴을 맞대고 사람을 쓴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보디가드 양반이라면 하희빈에 대해서 잘 알것 같아서 과연 백월교라는 단체에 들어가도 괜찮을지 조언을 얻고 싶었던거야."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내가 하희빈에 대해서 잘알거라고 생각한거지? 미안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든."
"하지만 화랑대학교 메인페이지에 서로 어깨동무하는 사진이 걸려있던걸."
"뭐? 아아~ 그거?"
나는 오래된 엘범에서 추억의 사진을 꺼내보듯 내가 한참 생명공학분야의 최고봉 저널인 케루빔에 졸업논문을 실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 화랑대학교에서는 학술적 분야말고도 스포츠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룬 체육특기생이 한명 있었다.
그게 바로 하희빈이였다. 올릭픽 양궁 여자, 개인, 단체 모든 종목에서 독보적인 기록으로 금메달을 3개나 획득한 것이다. 물론 한국이 양궁 종목에서 금메달을 쓸어담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였으나 본교의 체육특기생이 그런 위업을 달성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화랑대학교 총장님은 문무 양면에서 학사생들이 거둔 가시적인 성과를 대대적으로 공표해 이미지 마케팅을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여 나는 반강제적으로 하희빈과 같은 교양과목의 같은 조에 소속되어 학기프로젝트를 진행하는것은 물론 그 진행과정의 일거수일투족이 화보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야만 했다.
화랑대학교 총장님은 무슨 문무를 겸비한 학생들간의 시너지같은걸 기대한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엔 아주 전형적인 전시행정으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개수작이였다. 당시 VOTO에 미쳐살고 있던 내게 조별모임때문에 일주일에 세시간 이상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사치도 그런 사치가 없었다. 결국 레이디 노아가 보았다는 어깨동무 사진 한장정도가 내가 시간을 투자한 전부였다.
조별모임에는 계속해서 불참했고 동료평가에서 0점을 받아 그 교양과목은 7개의 F과목중 하나가 되었지.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로 하희빈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잘 몰라."
"같은 학교였으니까 소문정도는 들었을거 아니야."
"그런것도 몰라."
"아니 학교를 제대로 다니긴 한거야? 무슨 외국 학술지에 글을 쓸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고 사진 밑에 써있던데. 보디가드 양반 본명 김사건 맞지? 쌍둥이 동생 있는거 아니지?"
"내 본명 김사건 맞아. 외국 학술지에 글을 쓸정도로 똑똑한 사람도 맞고. 그런 내가 조언 하나 하지.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것도 좋지만 결국 최종의사결정은 네가 하는거야. 의사결정에 따른 이득도 책임도 네가 지는거고. 그러니까 짧은시간이였다 한들 네 두눈으로 본 하희빈이란 인물에 대해서만 생각해. 금메달리스트니 화랑대생이니 하는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그러면 이번에는 정말로 먼저 일어난다. 잡을 생각하지마. 더 이상 해줄말도 없으니까."
"그래 바쁜 시간 내줘서 멋진 조언해줘서 퍽도 고맙다."
나는 항아리를 품속에 소중히 안고 까페를 재빨리 벗어남과 동시에 계획을 새우기 시작했다. 일단 농협에서 씨 종자를 종류별로 다 산다음에 1.5L 생수까지 챙긴다. 그 다음 모든 짐을 기야스로 옮긴 다음 정동진에서 하룻밤을 지세우는 것이다. 굳이 정동진일 필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기야스에 탑승하면 지구의 그 어느장소던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동진에서 해가 떠오를때 레이디 노아가 해석해낸 글귀가 말하는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 씨 종자를 바꾸던 생수를 샘물로 바꾸던 뭔 일일이 일어날때까지 조건을 바꿔볼 생각이였다. 진짜 별의별 고생을 하며 실마리를 쫓아왔으니 완성된 퍼즐이 무엇을 가리킬지 이 두 눈으로 확인해 봐야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