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84화 (8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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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 Oxogan The Rise Of Venom Dragon

로그아웃을 하고 익숙한 자취방 천장을 한번 일견한 후에 심호흡을 하고 주위를 살핀다. 난장판이 된 자취방이 안그래도 뜨거운 내 분노를 한층 더 가열시켰다. 나는 청소를 자주하는 타입은 아니였지만 청소거리를 아예 만들지않아 어느정도 남자 자취방 치고는 깔끔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옷은 정장, 여름옷, 겨울옷 이렇게 세벌만 구비해뒀고 식기는 냄비와 급식용 식판 하나씩만 둬서 밥과 반찬을 해먹고 있었다.

뭐 전공도서야 어쩔 수 없이 책장이 터질듯이 가득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아무튼 청소거리를 최소화하면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자취방을 비교적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헌데 이런식으로 내 자취방을 난장판으로 만들다니 특히 억지로 책장에 우겨넣은 전공도서가 뿔뿔이 흩어진 모습은 보자니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이런 만행을 저지른 범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거미줄에 속박되어 있다는 점이랄까? 일일이 쫓아갈 필요없이 바로 심문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라니 역시 시스트린의 일처리 솜씨는 깔끔하다. 자취방이 난장판이 되기전에 제압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보아하니 이종격투기 선수마냥 단련된 몸을 지닌 삼십대 초반의 남성 셋을 아라크네족의 이능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 무력으로 제압한 모양이다. 포박에 사용한 거미줄 또한 일반인이 보면 그저 낚시줄 처럼 보였으리라.

"깨어나셨군요, 사장님. 왠 불한당 들이 자택에 침입해 제압해 두었습니다. 경찰에 넘기기 전에 사장님께서 일단 한번 보셔야할것 같아서. 방이 어지럽혀진 점은 죄송하게 됬습니다. 불한당 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셌던지라. 제가 나름 정리를 해보려고 했으나 학술적 수준이 높아보이는 도서가 다수 발견되어 혹여나 책의 내용을 우연히라도 보게되면 사장님의 심기를 거스를까 염려되어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그래? 수고했어. 그리고 저 책들은 그렇게 귀한게 아니야. 학교 근처 서점에서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전공도서들이니까 그렇게까지 배려해줄 필요는 없어."

"그렇군요. 저는 혹시나 저 불한당들이 이 서적을 노리고 온 좀도둑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군요."

"도대체 네녀석들 정체가 뭐야! 사장님? 이 코딱지만한 방구석에서 대낮에 쳐자빠자는 녀석이 사장님이라고? 그리고 무슨 여자가 힘이 황소만 해가지고 단검을 든 장정 셋을 뚜드려 패냐고! 무슨 외국 특수부대 출신이야?"

"닥치세요! 혀와 입술을 박음질로 꼬매버리기 전에. 사장님이 묻기전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마십쇼."

시스트린이 침입자 주제에 억울한 목소리로 성토를 하는 남성을 표독스럽게 꾸짖었다. 겉으로 보면 레드와인색 스프링 컬 헤어를 한 외국모델처럼 보였지만 시스트린은 엄연히 인간을 별미로 생각했던 아라크네 일족의 일원이였다. 지구에는 인간보다 우위에 있는 포식자가 없어 예의 남성은 자신이 피식자의 공포때문에 떨고 있다는것 조차 모를 것이다.

뭐 나는 그런것보다 열흘 남짓한 시간만에 지구의 문화를 체득한 시스트린의 적응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절대 시스트린에게 다른 지구인들 앞에서 나를 사장님이라고 칭하라고 명령한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스트린은 주인님이라는 호칭이 절대 지구에서 노멀한 호칭이 아니라는걸 알고 임기응변식으로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른것이다. 사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사장님이 된 대학생은 있을법한 이야기였다. 요새 대학생 스타트업을 지원해준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부쩍 많아지기도 했고.

물론 '대학생의 창의성과 열정을 응원합니다.'같은 슬로건은 내 성미에 맞지않았고 당장 헌역 모델로 뛰어도 위화감이 없을것 같은 시스트린을 대학생이 부하직원으로 삼고 있다는 설정도 미묘하긴 했지만 영압족쇄로 묶여진 주종관계입니다라고 떠벌리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지였다. 좋아, 그러면 어떻게 이 녀석들이 정보를 술술 불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 좀 해볼까. 등근육이 완전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살벌한 실전근육인게 쉽게 나불거릴 타입같지는 않지만 남자에게는 근육으로 보호하고 싶어도 보호할 수 없는 부위가 있다.

"어 근데 시스, 이 녀석들 옷은 왜 벗겨놓은거야?"

"처음에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와 저를 발견했을때는 맨손으로 공격해오더군요. 그러다 여의치않자 단검을 꺼내들었습니다. 혹시나 그것말고도 다른 숨겨둔 날붙이로 사장님을 위협하는 일이 혹시나 생길까봐 제압후 몸수색을 했습니다. 일단 스마트폰과 지갑밖에 찾아내지 못했지만 다시 옷을 입히는것도 번거로운 일인지라 그대로 두었습니다.

보기 흉하시다면 겉옷이라도 입혀둘까요?"

"우와 그렇게 새심한 곳까지 살피다니 조금 감동인데. 지금이 심문하기 더 편할거 같으니까 그냥 둬."

"그럼 저는 심문하시는 동안 부탁하신 차파오를 만들고 있겠습니다."

"일단 주둥이를 나불거린 놈부터 시작해볼까? 이봐 형씨 지금부터 내가 같은 남자로서 조금 미안한 짓거리를 할텐데 말이야 너무 원망하진 말아줬으면 좋겠어. 미국같은곳에서 남의 집에 흉기들고 쳐들어가면 총맞아 뒤져도 집주인이 무죄라는거 알고있지?"

"염병떨지마 이 호빗새끼야! 미국이였으면 단검이나 꼬나쥐고 침입했을것 같냐? 당연히 이쪽도 총기로 무장하... 아으억!"

나는 대학교 1학년때 배우는 일반생물학 전공서를 집어들어 기분나쁜 말투로 씨부리는 남자의 고간위로 자유낙하시켰다. 묵여있는 주제에 기세등등하던 남자의 얼굴이 시뻘게지며 어버버 말을 잇지 못한다. 나는 예의 남자가 고통을 추스릴 시간을 주지 않고 다시 일반생물학 전공서를 들어올려 재차 자유낙하시켰다. 남자는 적잖이 고통스러운지 몸을 바르르 떨며 눈을 까뒤집는다.

그리고 조용히 일반생물학 전공서를 또 다시 들어올리자 이제야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됬는지 애절한 눈빛으로 입을 뻐금거렸지만 나는 전공서를 다시 내려놓기 귀찮아 그냥 손에서 놓아버렸다.

"흐어억! 말할게, 말한다고, 뭐든지 말할테니까 이제 제발 그만해."

"허락도없이 찾아온 손님이 집주인한테 말이 좀 짧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일반생물학 전공서를 들어올렸다. 예의 남자가 아연실색하며 존대를 하겠다고 절박하게 소리치자 나는 자비심을 발휘해 일반생물학 전공서를 남자의 발등으로 낙하시켰다. 이와중에 시스트린은 재봉사라는 이명답게 태연한 자태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붉은 비단을 무릎위에 올려둔채로 침대에 앉아 한땀한땀 실을 꿰메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어염집 규수가 자수를 놓는것처럼 우아해 보인다.

여러가지 의미로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일단 육하원칙에 따라서 대낮부터 남의 집에 침입한 정황을 상세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 일단 어디서 왔는지부터 말해보실까?"

"B... B플랫 엔터테이먼트에서 왔습니다."

"뭐하는곳인데 거기가? 완전 이름부터 B급 싸구려 기획사 냄새나네."

"B플랫 엔터테이먼트를 모르십니까? 우리나라 3대 기획사중에 한 곳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레이븐이라는 그룹은 한번쯤 들어보셨을텐데, 최근 미국시장 진출까지 준비하고 있는 실력파 그룹입니다."

"내가 무슨 아이돌 꽁무늬나 쫓아다니는 빠돌이인줄 알아? 그리고 니네 회사 자랑들을려고 소속 물어본거 아니야. 니들 위에 주동자가 누군지 알고싶어서 물어본거지."

"레이븐은 탈 아이돌 락밴드입니디만..."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일반생물학 전공도서를 들어올렸다. 슬슬 기어오르는거 보니까 고간의 통증이 다 가라앉은 모양이다. 깃털을 흘리듯 가볍게 전공도서를 놓아버린 나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뒤로하고 시스트린이 모아둔 이 녀석들의 스마트폰과 지갑을 챙겨왔다. 지갑의 명함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B플랫 엔터테이먼트 경호팀소속이라고 적혀있다. 다음으로 스마트폰을 살펴보니 의외로 비밀번호가 걸려있지 않았다.

문자메시지를 살펴보니 정말로 평범한 경호업무상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일년 전의 메시지 로그까지 저장되어 있는걸 보면 거짓말로 소속을 댄건 아닌 모양이다. 나 하나 속이자고 명함도 새로파고 문자 메시지 로그까지 조작한다?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겠지만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선택지다. 그러면 일단 저 놈들이 B플랫 엔터테이먼트 소속이라고 가정하면 주동자는 기획사 사장인가?

이번에는 통화기록을 면밀히 살펴보니 김춘복 실장, 이준교 매니저로 찍힌 통화기록은 많았지만 사장님이라는 칭호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주소록을 살펴봤지만 역시나 기획사 사장으로 추측되는 연락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갑속의 현금은 챙기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집어던진 뒤 스마트폰은 주소록 백업 앱을 이용해 내 포털 사이트 그린 계정에 저장했다. 스마트폰은 유심칩 빼버리고 공기계로 엿이나 바꿔먹어야지.

"꼴에 기획사 사장이라고 신분을 꼭꼭 숨겨놨구만."

"포털 사이트 그린에 B플랫 엔터테이먼트라고 치시면 바로 연관검색어에 뜨지말입니다."

"너 지금 너네 사장님 팔아먹은거냐?"

"워낙 유명하신분이라 숨겨도 의미가 없습니다. 가끔 예능에도 종종 출연하시는 분이라. 연락처야 저같은 일개사원이 가지고 있는게 더 이상한 일이지 말입니다."

"......"

나는 약간 뻘쭘해져 아무말 없이 내 스마트폰으로 B플랫 엔터테이먼트를 검색했다. 확실히 연관검색어에 이강건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떠있었다. 프로필사진을 확인해보니 이름 그대로 강건해보이는 사십대 후반의 남자가 선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관련기사도 몇개 살펴보니 사장실 의자에 앉아 있는 타입이 아니라 일선에 나서 모든걸 진두지휘하는 행동파였다.

이렇게되면 이 인간의 지시없이 누군가 독단적으로 경호팀을 움직였을 가능성은 낮아지는군.

"연예기획사중에 조직폭력배랑 연계된 곳이 있다고 풍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이런 유명 기획사가 그럴줄은 몰랐군."

"옛날에 이강건 사장님 잠시 그 쪽에 몸을 담근적이 있긴하지만 지금은 손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기부도 많이 하시고 연습생들의 꿈과 열정을 지원하시는..."

"쉿! 개잡소리를 듣고있다보니 토가 나오려고해. 그러니까 그냥 쉿! 다음 질문이야. 왜 백주대낮에 내 집에 침입했는지 이유를 소상히 말해봐."

"김사건이라는 학생을 납치해달라는 김춘복 실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헤치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잠시 인질로 잡아두고 있다가 무사히 풀어줄 계획이였습니다."

"그런놈들이 이렇게 날이 잘든 단검을 들고와?"

나는 시스트린이 한켠에 모아둔 단검을 치켜들어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늘어놓는 남자의 지저분한 수염을 건식으로 밀기 시작했다. 예리한 검날이 턱선을 따라 이동할때마다 예의 남자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건 어...어디까지나 납치과정을 잡음없이 매끄럽게 하기위한 위협용으로 그걸 진짜로 살기위해 휘두르게 될줄 저는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뭐 그렇다치고 무슨 목적을 위한 인질이였지?"

"외국 대기업회장의 손녀딸과의 거래를 위한 용도였습니다. 이름이 뭐였더라 야아사인지 아야사인지 아무튼 화랑대학가를 수소문하다 보니까 그 손녀가 한 남학생하고 조금 친하다는 제보를 받아서. 원체 인관관계 자체를 사무적으로 하는 타입인데, 유달리 격의없이 구는 친구가 있다는겁니다.

그게 김사건이라는 학생이였습니다. 아마 제 앞에 계신분이 그 김사건님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만... 맞나요?"

"그건 알필요없고 주소는 어떻게 알아낸거야?"

"택배기사로 위장해서 학과행정실에 김사건 학생앞으로 택배가 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부피가 제법 큰 미니냉장고를 행정실에 두려고하니 생각보다 쉽게 성적표 배송지 주소를 알려주더군요."

"헤에, 제법 머리를 썼잖아. 그래서 인원은 너희 세명이 다야? 그리고 납치 후에는 어디로 갈 예정이였지?"

전공도서로 고간을 가격한 통증이 살벌했는지 지금까지는 순순히 묻지도 않았던 질문도 해주던 남자가 갑자기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살살 눈알을 돌리는게 뭔가 캥기는게 있는 모양이다. 나는 제법 가죽손잡이 문양이 그럴듯한 남자의 단검을 집어들고 고간위에 자리잡게 했다. 워낙 단검이 잘 버려진지라 여차하면 메추리알을 뚫고 들어갈지도 모른다.

이 단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는 사실 남자가 더 잘고 있는지라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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