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75화 (7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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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이보쇼 옥형, 전에는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냥 넘어갔지만 엄연히 천대주님은 청룡문의 차기 장문인인데 너무 격의없이 구는거 아니요?"

"옥형? 하하하, 그것참 신선한 칭호네. 그쪽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구룡대의 말석을 맡고있는 초패랑이라고 하오. 혈린검 용린은리 소저야 천대주의 약혼녀이시고 어렸을때부터 막역한 사이라고 들었소. 뿐만아니라 용린혁 가주님의 손녀로서 배분 또한 낮지으니 격의없이 말하는게 예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지만 옥형은 엄연히 용린검가의 1대제자가 아니요? 비록 타문파라고 하나 곧 사돈지간이 될지언대 일반제자와 소문주간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오."

구룡포를 착용한 구룡대원들 중 유난히 젊고 날다람쥐처럼 잽싸보이는 사내가 뜬금없이 내게 배분을 논하고있었다. 다른 구룡대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분위기로 보아하건대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동네 아저씨마냥 부르는 나를 곱게 생각하지 않는듯 했다. 뭐 제법 그럴듯한 논리였지만 설검을 들고 나한테 덤비는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초형이 미처 생각못한 부분이 있는 모양인데 그런 논리로 따지면 오히려 존대를 해야하는건 천대주야."

"그게 무슨 소리요? 천대주님이 옥형에게 존대를 해야한다니."

"1대 제자라는 직함은 그저 용린검가를 조력하기 위해 쓴 임시 감투일뿐 내 진짜 정체는 아니요. 내 진짜 정체는 명계의 대사신이지, 언더월드의 아크리퍼라고들 더 자주 부르곤 하지만."

"대사신이라니 그게 무슨 직함이요? 나 초패랑이 비록 사령성의 팔륜학관에서 약관의 나이까지 면학에 힘쓰느라 천체로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으나 명계나 언더월드라는 이름을 지닌 커뮤니티가 있다는 이야기는 풍문으로도 듣지 못했소."

"모든 죽은자들의 주인이자, 왕이자, 어버이가 바로 대사신이지. 초형은 내가 꾸며낸 이야기를 하는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나도 은리 사저를 흉내내서 용린검에 지금까지 내가 한 말에 추호도 거짓이 없음을 맹세하죠. 만약 후일이라도 내가 용린검에 대고 거짓 맹세를 했음을 은리 사저에게 들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천대주가 더 잘알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천대주는 청룡문의 정점이 될 예정이지만 나는 이미 명계의 정점에 섰죠.

굳이 누가 배분상 위일지 헤아릴 필요도 없지 않나요? 그러면 이제 내가 천대주에게 존대를 들을 차례인것 같습니다만 다들 수긍하는 표정이 아니군요."

먼저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찾은 초패랑이 우물쭈물한 표정으로 반박할 말을 찾고 있었다. 그러니까 임마 형한테 엄한 말로 시비를 걸면 그대로 역풍 맞는거야. 오랜만에 잡은 건수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대화의 흐름이 어물쩡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초패랑을 지긋이 노려보며 해답을 촉구했다.

"허나 나는 대사신은 고사하고 언더월드에 관해서조차 들어본적이 없소. 아마 다른 구룡대 선배님들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하오. 반면에 청룡문은 무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법한 명문정파가 아니요? 그 둘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는것은..."

"나도 청룡문에 관해서는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천대주가 은리 사저의 약혼자라고 하니 그냥 은리 사저의 약혼자가 몸담고 있는 문파구나하는 정도로만 알고있을뿐이지. 설마하니 초형은 단체의 장이 단체의 지명도에 따라 달리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입니까? 그렇게 세속적인 분으로는 안봤는데 실망입니다."

"아니 절대 그런것이 아니라..."

"막내야, 네가 천대주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이번에는 조금 경솔했구나. 옥사건 준위님께 정중하게 사과드리거라."

"후우, 옥형에게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소. 염익철 부대주님의 말대로 내가 경솔했던것 같습니다. 그... 존대건에 관해선 일단 용린은리 소저의 지아비 될 사람임을 고려해서 무르는것은 어떻겠소?"

"처음부터 천대주에게 존대를 받을 생각따윈 없었습니다. 어차피 지금 이곳에는 청룡문 본단도 은리 사저도 없습니다. 결국 저희들은 수호령의 잣대에 따라 평가받을 탐사자에 불과하지요. 수호령의 인정을 받는것도 중요하겠지만 예의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미처 마무리 짓지 못했던 결말을 매듭짓는것은 물론 구룡대원분들의 실력을 견식하는 시간이 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의 마침표를 찍자 초패랑이 벙찐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내가 생각해도 흠잡을데 없는 언변이였다. 이로서 말 몇마디 나눴을뿐인데 초패랑은 경솔한 천덕꾸러기의 가면을, 나는 관대한 아량을 지닌 대인배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덕분에 수호령의 테스트를 받기도 전에 기선제압을 할 수 있었다. 설검으로 몇 수 겨뤄보면 딱 견적이 나오는것 아니겠는가? 당분간 구룡대원들은 말로 나를 어찌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할것이다.

"이번 탐사자는 다들 서로 친한가봐? 나는 칼부림이 나도 진즉에 나서 반정도는 걸러질줄 알았는데 귀찮게됬군."

"누구냐!"

"누구냐고? 31층까지 왔으면 내가 누군지 이미 알고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천년만에 만난 탐사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정식으로 소개하지. 물의 권세를 지닌 수호령 오르시나다. 이중에서 단 한명만이 나와 계약을 맺고 나의 권세를 누리며 이 천체에서 디파일러들을 몰아낼 용기병이 될 것이다.라는 뻔하고 뻔한 이야기지. 자 그럼 여기까지 오느라 모두 고생했을터이니 최종 테스트는 조금 단순하게 진행해볼까?"

내가 대인배 행세를 하고난뒤 구룡대 선배들에게까지 눈총을 받으며 좀처럼 설자리를 찾지 못하는 초패랑을 구원하듯 타이밍 좋게 뉴페이스가 등장했다. 또 다른 탐사자는 아니였다. 31층의 신전 중앙에 자리한 메마른 분수에 갑자기 물이 차오르더니 사람의 형상을 그리다 진짜 사람이 된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은 내게는 익숙한 오피스레이디였다.

구룡대가 일사불란하게 분수를 중심으로 검진을 펼쳤다가 오피스레이디의 정체를 듣고나서야 경계를 푼다.

한명한명이 DF 등급의 검사라더니 훈련정도가 보통이 아니군. 구룡포로 깔맞춤을 한 구룡대원들을 훑으며 마지막 테스트를 뭘로 할지 고민하던 오르시나는 은린선의 군복을 입은 나를 일견하고 놀란표정을 짓는다. 내가 정말로 팔구십번대 테스트를 가뿐하게 클리어하고 31층에 도달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겠지. 허나 오르시나는 놀란 표정도 잠시 이내 예의 비릿한 웃음을 짓더니 손뼉을 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올포원으로 하자."

"올포원이라니? 수호령님께 좀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별거아니야. 그냥 무작정 쌈박질을 해서 최후의 일인을 가려내는거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자가 승자라는 느낌이랄까."

"잠시 수호령님께 간언드릴게 있습니다. 저는 청룡문의 소문주 천주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은 같은 청룡문도고 제 측근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올포원은 타 가문 소속인 옥사건 준위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테스트입니다."

"적에게 불리한 조건은 아군에겐 유리한 조건 아닌가? 그쪽이 왜 경쟁자를 두둔하기 위해 공정성을 운운하는지 모르겠는걸. 그러면 같은 소속 사람들끼리 팀을 강제로 결성시킨 다음에 신문지 위에 두발로 올라서기같은 테스트가 하고싶은거야?"

"그건... 아닙니다만, 혹여나 무리를 이끌어 한 사람을 핍박했다는 소리가 나올까 염려됩니다. 하여 수호령님께서 좀더 개인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테스트를 준비해주실순 없을까 싶어서 이야기를 꺼낸겁니다."

사실 31층에 도착해서 천주랑을 위시한 구룡대원들을 목격했을때 이런 상황을 일찌감치 예상했던 나였다. 물론 수호령 오르시나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내게 불리한 테스트를 제안할줄은 몰랐지만 평범한 테스트라고 해도 구룡대원들이 합심해서 천주랑을 적합자로 밀어줄것이 뻔했다. 다만 이외인것은 천주랑 본인이 자신에게 극히 유리한 테스트를 수호령의 심기를 거슬리면서까지 거부했다는 점이다. 과연 본인의 실력에 엄청난 자신감이 있어서인지 본래 성정이 공명정대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봐 인생을 살다보면 순풍이 불때도 있고 역풍이 불때도 있지. 역풍이 불때야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수 밖에 없지만 순풍이 불때는 그 기회를 잡아서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거야. 역풍이 불때 미처 나아가지 못했던 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그러니까 닥치고 내 지시에 따라. 니가 청룡문의 소문주고 나발이고 이 전생유적에서는 내가 법이야. 만약 네가 다른 소속의 경쟁자와 합의하에 작의적으로 1대1로 승부를 보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나는 내가 했던 말을 철회하고 싶은 생각따윈 없어. 그럼 이만 최후의 일인이 가려지면 다시 부르도록해."

오르시나는 자기 할말만 하고 다시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물이 찰랑차랑거렸던 분수도 어느새 다시 메말라버렸고 구룡대와 나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규칙대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구룡대는 나를 상대로 협격을 펼쳐 쓰러트린 뒤, 천주랑을 최후의 일인으로 추대하면 된다. 하지만 천주랑은 그럴 생각이 없는듯 구룡대를 뒤로 물리고 나와 마주섰다.

"수호령님께 말했듯이 저는 옥사건 준위를 상대로 협격을 펼치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일전의 토너먼트에서 가리지 못했던 승부 여기서 결착을 보지 않겠습니까?"

"거절합니다."

"왜 거절하시는겁니까? 옥사건 준위에게 절대 나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대요. 아까 옥사건 준위도 저와 자웅을 가리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보니 천대주도 조금 순진한 구석이 있군요. 좋습니다. 만약 저와 천대주가 일대일을 한다고쳐요. 아직 승부의 향방은 알 수 없지만 제가 이겼다고 칩시다. 제가 천대주에게 최후의 일결을 가할때 다른 구룡대원들이 가만히 있을거라고 보십니까?"

"그 부분은 제가 절대 간섭할 수 없도록 지시를 해두겠습니다. 저는 청룡문의 소문주이기도 하지만 구룡대의 대주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구룡대가 제 명령을 어긴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했다고 앞으로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지요. 뭐 천대주가 그렇게 나온다면 저도 방법이 있지요. 천대주를 제외한 구룡대원들 부터 하나하나 리타이어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조금 어이가 없었던게 왜 제가 혼자라고 생각하시는거죠? 제가 분명 말했을텐데요. 저는 모든 죽은자들의 주인이자, 왕이자, 어버이인 대사신이라고.

초형이 그런 존재는 듣도보도 못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각인시켜주면 되겠군요."

흑단관구(黑檀棺柩)에 잠들었던

사일런트워커(Slientwalker) 푸스카

묘지기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현현(顯現)하라

나는 에보니 메이든을 꺼내들어 푸스카를 소환하는 한편 푸스카의 손발이 되어줄 미노타우루스 좀비 중대를 아이언 메이든에서 소환했다. 일단 독립적으로 영리한 전투를 진행할 수 있는 푸스카를 선두로 내세워 탐색전을 펼친다. 그 후 구룡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되면 거인족, 고르곤, 자이언트 윔, 자이언트 센티피드 좀비를 소환해서 [전진] [공격] 명령어를 내린 뒤 소모전을 펼치면 된다.

31층에서 처음 구룡대를 목격한 시점에서 이미 내 머리속에는 전략전술 계획이 확립되어 있었다.

뭐 이런 싸움은 익숙하니까 불리하다고는 요만큼도 생각한적 없다. 천주랑이 지레 고양이 쥐 생각하듯 나를 배려해주려 했지만 적을 관중석에 두고 싸우는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다. 구룡대는 예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검진을 갖추었다. 반면에 나는 여유롭게 뼈조각 의자를 만들고 다리를 꼬아 앉았다. 상대를 도발하기 위한 제스쳐였지만 내게 경솔한 발언을 한 초패랑조차 꿈적도 않는다.

이번 싸움 꽤 힘들어 질지도 모르겠군. 뭐 언제는 쉬운 싸움이 있었냐마는. 푸스카 또한 미노타우르스 좀비중대로 하여금 약식 대형을 갖추게 하고 돌격했다. 죽음을 불사하는 언데드 군대가 뿔을 치켜세웠고 구룡대원들은 검을 뽑아들었다. 막내인 초패랑의 검에서 조차 넘실거리는 검기가 피어오르니 다른 구룡대원들이 지닌 검객으로서의 역량은 말할것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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