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71화 (7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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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수염이 덮수룩 한 피고인의 형체가 갑자기 흐물흐물한 물로 변하더니 어느새 숏컷을한 오피스레이디로 변모했다.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그 표정에는 비릿한 웃음이 담겨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설사 네가 팔구십번대의 테스트를 통과해서 31층에 도착한다고 해도 나는 특정 탐사자에게 그 어떤 특혜도 줄 수 없어. 다만 혹시나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너를 인정하게 되겠지."

"아니 너한테 인정받으면 도대체 뭐가 좋은건데?"

"글쌔? 진심으로 따르는 주군과 형식적으로 따르는 계약자의 차이 정도일려나."

"혹시 네가 수호령이라는 존... 이게 뭐야? 대기실로 돌아왔잖아?"

발두인 함장으로부터 처음 전생유적에 관한 정보를 들었을때 분명 전생유적의 최하층에는 수호령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했다. 오피스레이디가 대기실의 원목탁자에 음료수와 쿠키를 준비하는 던전의 주인장쯤 되는 사람이라는건 확실하다. 그런데 내가 수호령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걸 보면 오피스레이디는 지덕체를 고루갖춘 계약자를 찾는 수호령이기도 한 모양이다.

차라리 아니라고 잡아땠으면 모를까 그렇게 절묘한 타이밍에 사라지면 노골적으로 예스라고 대답한것이나 다름없다.

-덕(德) 테스트에 실패하셨습니다.

-지(智) 테스트 레벨이 81Lv로 상승하였습니다.

-덕(德) 테스트 레벨이 80Lv로 상승하였습니다.

-체(體) 테스트 레벨이 81Lv로 상승하였습니다.

-3층 대기실로 추방됩니다.

오피스레이디가 약속했던 대로 대기실의 원목탁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초코가 놓여있었다. 나는 쉼없이 덕(德) 테스트에 임하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원목탁자에 앉아  핫초코를 들이켰다. 한모금 한모금 혀를 적실때마다 달달함이 머리꼭대기까지 치고올라가는게 여간 기분좋은게 아니다.

사실 처음 전생유적에 입장할때의 마음가짐은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서 던전에 입장할때의 마음가짐과 같았다.

최강의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최고의 보물을 손에 넣는다. 무척이나 단순한 논리지만 게임 유저들을 흥분케하는 최고의 미끼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 미끼는 다소 무색해진다. 기연을 얻어서 나쁠건 없지만 지금 당장 급한건 내게 비릿한 웃음을 날린 오피스레이디의 궁둥짝을 후려쳐주는것이다. 나는 핫초코옆에 있던 쿠키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체(德)가 새겨진 문으로 달려들어갔다.

"81Lv이고 나발이고 다 박살내주후웁..."

큰소리로 각오를 다지려던 나는 숨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체(德)의 문을 열자마자 시야에 원근법을 왜곡하는듯한 덩치의 악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부터 거인족들을 부리는 강령술사고 디파일러와 싸우면서 터무늬없는 덩치 인플레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전자적으로 가장 완벽한 포식자중에 한명인 악어의 눈동자가 내 몸통만 한것을 보니 얼어붙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고생대로 돌아간 기분이군. 나는 악어가 깨지않게 조용히 아이언 메이든을 꺼내들어 거인족 패밀리를 소환했다.

최근 푸스카와 난투극을 버리면서 쌈박질개론정도는 진도를 뺐다고 자부하지만 온몸을 철갑비늘로 보호하고 있는 거대악어랑 주먹다짐을 할 정도는 아니였다.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것이지만 악어는 구강구조상 무는 힘은 상상을 초월해도 벌리는 힘은 변변치 못하다고 한다. 물론 이 정도 크기의 악어라면 그 변변치 않은 벌리는 힘 자체도 무시할게 못되겠지만 거인족 5명이 달라붙어 마크한다면 거대악어라고 해도 별 수 없을것이다.

괜히 거대악어를 깨우기라도 하면 쉽게 갈 싸움이 난전이 될게 뻔했으므로 나는 5명의 거인족들의 언데드 서킷을 일일히 내 손가락 신경과 동기화 시켜 세밀하게 조종하기 시작했다. 빙린장성의 초석을 쌓던 시절에는 거인족 하나를 조종하는것도 벅찼지만 이제는 제법 요령이 붙어 어렵지 않게 거대악어를 일시에 덮칠 수 있었다. 악어의 눈꺼플이 벌려지며 파충류 특유의 타원형 동공에 내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악어 아저씨 그렇게 아무대서나 잠들면 큰일나요."

뭔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챈 거대악어가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그 우악스러운 힘에 늪지가 요동쳤지만 악어의 입. 다리, 꼬리를 빈틈없이 마크하고 있는 거인족들도 완력이라면 어디가서 밀리는 친구들이 아니였다. 악어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르며 나를 불태워 죽일듯 했다. 포식자 특유의 살기가 피부를 바늘처럼 콕콕 찌르는 것이 여간 불쾌한게 아니다. 나는 오른손의 블랙탈론을 쭈욱 내뽑고 악어의 눈동자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악어 아저씨, 아직도 내가 피식자로 보여요? 덩치가 전부는 아니라는걸 이번 기회에 똑똑히 배우세요. 아 그리고 잠은 집에서만 주무셔야한다는 것도."

촤아아아아아악

변이 에너지로인해 극세사처럼 뽑아져나간 블랙탈론이 거대악어의 눈을 꿰뚫고 이어서 뇌를 헤집어버린다. 아무리 철갑비늘로 뒤덮힌 거대한 신체를 지니고 있는 악어라고 해도 결국은 생명체가 지닌 급소가 노출되자 어이없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나는 블랙탈론을 회수하며 미동도 없는 거대악어를 포박하고 있는 거인족들과의 동기화를 해제했다. 생각보다 손쉽게 81Lv의 체(德) 테스트를 통과했으니 남은 테스트도 문제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기실 입구로 발을 돌리려는데 내 몸을 거대한 그림자가 뒤덮기 시작했다.

이거 누구 그림자야? 거인족들은 내 명령을 받기전엔 절대 움직이지 않을텐데. 나는 별생각 없이 위를 올려다 보았다. 수백개의 톱날같은 이빨이 번쩍이는 아가리가 나를 덮쳐오고 있었다. 설마 두 마리였던거야? 저 거대한 동체를 숨길 수 있다느 보기보다 늪지가 깊은 모양이다. 나는 이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테스트 시스템에 관해 불평할 틈도 없이 거인족 한마리를 동기화시켜 고기방패로 내세울 수 밖에 없었다.

으적으적. 상상을 초월한 치악력이 거인의 팔을 당근 썰듯이 썰어버린다. 별로 맛이 없었던 모양인지 거인의 팔조각을 뱉어낸 또 하나의 거대악어가 나를 보며 눈을 번뜩인다. 파충류 특유의 타원형 동공이 얇아지며 일자로 바뀌는 모습이 이렇게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거인족들을 총 동원하면 잡기야 잡겠지만 다시 수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그냥 몸으로 때우는게 속편하다.

"날 잡아먹고 싶어 안달난 모양이군. 좋아, 어디한번 내안에 있는 가시를 발라낼 자신이 있으면 먹어봐."

나는 내게 짓쳐드는 또 하나의 거대악어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매망량의 반발력을 이용해 거대악어의 아가리속으로 진입했다. 동시에 손톱과 발톱에 자리한 블랙탈론을 변이 에너지로 변형시켜 20개의 가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만세를 펼치자 거대악어 특유의 괴랄한 치악력이 오히려 독이되어 거대악어를 상처입혔다. 예의 거대악어처럼 거인족이 포박하고 있던것도 아닌지라 거대악어가 생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마치 익스트림 놀이기구처럼 흔들리는 거대악어의 아가리 속에서 나는 이매망량과 근력을 총동원해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거대악어가 난동을 부릴수록 블랙탈론이 박힌 입천장과 혀의 상처는 벌어져갔고 선혈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그렇게 나와 거대악어의 기묘한 사투가 1시간 가까이 지속됬다. 아직도 수백개의 톱날같은 이빨이 건재한 상황에서 나도 섣불리 경거망동 할 수 없었던지라 지리한 소모전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거대악어의 힘이 빠지고 더 이상 흘러나올 피도 없는지 출혈도 멈췄다.

나는 아직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바깥에 있는 멀쩡한 거인족 4명의 언데드 서킷과 내 손가락 신경을 동기화해 악어의 입을 벌림과 동시에 생사여부를 확인했다. 정말 100% 거대악어가 죽었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블랙탈론을 회수해 입밖으로 나왔다. 절체절명의 위기까지는 아니였지만 확실히 팔십번대 체 테스트가 만만치 않다는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체(體) 테스트에 성공하셨습니다.

-체(體) 테스트 레벨이 82Lv로 상승하였습니다.

-3층의 체(體) 테스트가 초기화되었습니다.

-4층으로 향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재료에 해당하는 기연인 철갑교룡피를 획득하셨습니다.

계속해서 테스트 실패 메시지만 보다가 오랜만에 테스트 성공 메시지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계속 낙제점수만 받다가 만점을 받은 기분이랄까. 게다가 지금까지 등장할 낌새조차 없었던 기연까지 획득하게 됬으니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나는 흥분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철갑교룡피가 짠하고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속으로 열까지 셋음에도 거대악어 두 마리가 죽음을 맞이한 늪지는 고요하기만 하다.

빵빠레 효과음이라도 터지면서 보물상자가 등장해야하는 타이밍 아닌가?

그러나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존재하는건 거대악어 두마리의 시체뿐이다. 잠깐만! 설마 저 악어가죽이 철갑교롱피는 아니겠지? 아니 DIY(Do It Yourself)도 정도가 있지 던전 보상을 직접 도축해서 가져가라는게 말이 되는 소린가. '던전 주인장 나오라그래! 여기 서비스가 왜 이따구야?'라고 왜쳐봤자 내 성대만 혹사시키는 일임을 알고 있던 나는 일단 철갑교룡 두 마리를 아이언 메이든에 넣어두기로 했다.

괜히 에보니 메이든에 넣어두었다가 그녀석이 가죽채로 쳐먹기라도 한다면 애써얻은 기연이 위액에 녹아버리고 말것이다. 나는 팔이 아작난 거인족까지 포함한 5기의 거인족 좀비를 회수하고 대기실 입구로 향했다. 이 끈적거리는 늪지에서는 그만 벗어나고 싶다. 대기실에는 핫코코와 쿠키가 리필되어 있었다. 이번 체(體) 테스트에서는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대단한 사실은 아니고 그냥...

"기연을 얻는 방식이 완전 무작위라는 거지."

기연을 획득하는 과정에 어떤 특수한 알고리즘이 있는게 아니였다. 내가 체(體) 테스트에서 철갑교룡 두 마리와 조우하는 과정에는 그 어떤 필연성도 없었다. 만약 내가 다른 테스트를 실패하거나 성공해서 체(體) 테스트 레벨이 변했다면 나는 다른 괴물과 싸우게 됬을 것이고 철갑교룡피와는 영영 안녕을 고했을것이다. 실상 기연을 얻는 방식이 완전히 무작위라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최대한 많은 테스트를 받음으로서 기연을 얻을 확률을 높히는것.

복권에 당첨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복권을 많이 사는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전생유적의 시스템이 테스트를 여러번 시도할 수 록 테스트 레벨이 올라가는 구조로 되있다는 것이다. 성공하면 다행이겠지만 실패하면 다른 테스트까지 3Lv이 올라가버린다. 덕(德)에서 수십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그 사실을 충분히 체감한 나는 4층으로 내려갈것인지 아니면 지(智) 테스트를 시험삼아 받아볼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테스트의 난이도가 올라가는것도 올라가는 것이지만 전생유적의 룰인 테스트 레벨은 1Lv보다 낮을 수 없고 99Lv보다 높을 수 없다는 룰도 고려해야만한다. 31층에 도달하기 전에 테스트 레벨이 99Lv을 초과하게 되면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일단 4층으로 내려가서 지(智) 테스트를 받아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국화차인가? 머리쓰기 전에 먹기 좋은 차로군."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향하니 문이 열리자마자 은은한 국화향이 퍼진다. 사나이 김사건 고등학교때 전교 1등을 놓친적이 없고 한국 최고의 대학인 화랑대학교에 재학중이다. 도대체 두려울게 뭐가 있겠냐만은 지식이라는 것이 분야가 워낙 다양하여 자신의 전공이 아니면 까막눈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하여 지(智)가 새겨진 문으로 입성하기전 국화차를 마시며 각오를 다지던 나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로그아웃을 하게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전생유적의 관리자가 전지전능하다고 해도 탐사자가 영혼위상전환기로 수왕성과 몇억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지구를 왔다갔다 할 수 있을거라곤 생각못할 것이다. 게다가 전생유적은 어디까지나 이전세대에서 디파일러에게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니 이번세대에 만들어진 아바타 시스템 자체를 인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VOT 단말기를 조작해 로그아웃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른 기능은 외부와의 단절을 위해서인지 죽어있었지만 역시나 아바타 기능만큼은 살아있다. 역시나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이란건 없는 모양이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구로 돌아간다면 오픈북은 물론이고 오픈넷 시험도 가능하다. 나는 쿠키를 입에 물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智)가 새겨진 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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