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67화 (67/599)

0067 / 0316 ----------------------------------------------

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무슨 싱크홀 현상도 아니고 지진과 함께 땅이 무너지면서 광할한 평야에 갑자기 직경 1km의 구멍이 뚫렸다. 내가 그 기이한 천재지변에 정신이 팔린사이 어느새 성대의 종속마력기관을 회복한 디파일러 비숍이 하울링 코드를 사용했다. 정면에서 예의 괴성을 맞이한 나는 0.1초간 경직될 수 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 디파일러 비숍이 싱크홀을 향해 내달렸다.

그 짧은 찰나를 이용해 저 거리를 도약하다니 하울링 코드라는 능력을 떠나서 단순 신체능력도 보통 이상이다. 시간끌지말고 그냥 끝장을 낼걸 그랬나?

흙더미를 우수수 떨치며 싱크홀에서 올라선것은 못해도 머리가 수십개는 될듯한 개였다. 물론 이미 덩치가 구름을 뚫고 솟아난 산봉우리만한 녀석을 개의 범주에 넣어도 되는가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할 문제겠지만. 수십개의 머리중에서 하나의 머리가 입을 벌렸다. 끝이 보이지 않은 시커먼 입구멍을 보고있자니 곧 군단이 몰려올것이라는 디파일러 비숍의 말에 신빙성이 느껴진다.

만약 저기서 정말로 군단급 병력인 5만의 디파일러가 쏟아져나온다면 나 또한 각오를 해야할것이다. 아이언 메이든은 물론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들까지 소환해 결사항쟁을 펼쳐야겠지. 질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문제는 이기고 난 후다. 과연 소환된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들이 얌전히 돌아갈지가 미지수다. 어쩌면 소환되자 마자 나에게 달려들지도 모르지.

"아주 길고 긴 밤이 되겠구만."

마치 아빠가 양손에 통닭을 들고왔을때 마중을 나가는것처럼 헐레벌떡 싱크홀로 뛰어나갔던 디파일러 비숍이 일순 납작 업드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유일하게 벌려진 시커먼 입구멍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불독의 얼굴을 한 작은체구의 사내가 시가를 꼬나물고 껄렁껄렁한 걸음으로 입구멍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내 엄지손가락 보다 두꺼운 시가가 흰연기를 뿜으며 타오르는것이 달빛 한점없는 새벽밤에 너무나 뚜렷이 보인다.

불독의 얼굴을 한 디파일러가 산봉우리 높이에 있는 입구멍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땅에 착지하자 안그래도 난장판인 평원에 작은 크레이터 하나가 추가됬다.

사령안 제 2형 샤프마인드(Sharpmind)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저 산봉우리만한 백두견의 아가리에는 불독 사내를 제외한 다른 디파일러가 존재하지 않는다. 겨우 한 마리가 증원을 온건가? 군단급 디파일러 병력이 지원오는줄 알았던 내게는 김빠지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상대를 경시할 순 없없다. 샤프마인드로 감지된 불독 사내의 종속마력기관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디파일러 비숍이 불독 사내를 보고 납작 엎드린다는 소리는 분명 비숍보다 상위계급이라는 소린데 그렇다면 설마... 킹? 왕이 직접 전장에 납시었다고? 하지만 디파일러 놈들이 분명 자신들의 수장을 디파일러 퀸 사리카야라고 칭하는걸 두귀로 똑똑히 들은적이 있다. 그렇다면 저녀석은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로열 나이트 쿠자르님을 뵙습니다. 설마하니 쿠자르님께서 직접 지원을 오실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

"어이 하울링 코드 너무 그렇게 지원신호를 남발하지마."

"면목없습니다, 쿠자르님. 사리카야님이 무슨일이 있어도 예의 강령술사를 대려오라고 성화를 부리셔서."

"허어, 보아하니 끌고간 병력은 모조리 날려먹은 모양인데 지금 사리카야님이 다른 디파일러 트라이브랑 힘싸움을 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지. 주군이 원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갖다 바치는것도 좋지만 주군이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헤아리는게 진정한 신하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뭐 일단 그랜드 룩 헥타베로스까지 동원해서 온만큼 예의 강령술사는 사리카야님 앞에 무릎끓게 하겠네만 앞으로는 주의하게."

"며...명심하겠습니다, 쿠자르님."

"저기 딱봐도 약골처럼 생긴 저 녀석인가 보지?"

"예! 그렇습니다. 술사치고는 맷집이 단단해서 예전처럼 톡쳤는데 죽어버리는 일은 없을겁니다."

"인간의 몸은 너무 약해서 아직도 적응이 안된단 말이지. 이번에는 사리카야님에게 꾸중듣는 일이 없도록 정확하게 다리몽둥이만 아작내도록 해볼까?"

디파일러 로열나이트가가 지닌 역량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언데드 사단을 재집결시켜 선제공격을 시도할까 고민하던 와중 쿠자르라는 이름을 지닌 불독 사내의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앗차싶은 마음에 이매망량으로 전신을 감싸고 무영창으로 시전할 수 있는 방어술식을 펼쳤다. 그러나 짧은 다리로 내 다리를 후리려는 쿠자르가 시야에 잡힌순간 이미 내 다리는 폭탄이 터진것마냥 아작나고 있었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아아!

뒤로 나가떨어지는것도 아니고 내가 서있던 그 자리에서 다리가 아작난덕분에 거리를 벌려 몸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후속타에 노출된 상황이였지만 쿠자르는 그저 여유롭게 시가를 한모금 깊게 빨아들일뿐이였다. 그 건방진 꼬라지에 뒷감당은 집어치우고 에보니 메이든의 주민들을 소환해 쿠자르의 짧은 다리를 으깨버리고 싶었지만 심호흡을 하며 참아냈다. 언옥타늄(UnobtaNum)으로 만들어진 뼈대덕분에 다리가 완전히 분리된것도 아니고 어느새 운신이 가능할정도로 재생이 완료된 상태였다.

거기에 푸스카도 미노타우르스 좀비 중대를 이끌고 전황에 참가하려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좌충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단순히 맷집이 좋은게 아니라 재생력이 말도 안되는군. 이 정도면 나랑 비슷한 아니 그 이상인가? 사리카야님이 흥미를 가지실만 하구만. 그래서 더 해볼생각인가? 아니면 얌전히 사리카야님에게 진상되겠는가? 단순히 재생력이 뛰어나기만 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를 이길 수 없다네."

"잠깐 그 사리카야라는 분에게 가기전에 질문이 있다."

"인간놈들이 징징거리는걸 들어주는건 취향에 맞지않지만 오늘은 특별히 어울려주지. 그래서 뭐가 궁금한지 말해봐."

"사리카야라는 분 밑에서 일하면 주 5일 근무는 보장되는건가? 연봉은 얼마나 줄것이며 4대보험이나 초과근무수당은 제대로 쳐주는거겠지?"

"어이 지금 무슨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인간들의 풍습이 디파일러들에게 그대로 적용될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단언컨대 사리카야님은 곧 우주의 지배자가 되실분. 네녀셕이 말썰만 안부리고 사리카야님 앞에서 재롱만 잘 떨면 행성 하나쯤은 네 놈 앞으로 떨어지지 않겠냐?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서로 피곤하게 만들지말고 얌전히 나를 따라와."

"보채지 말고 마지막 질문이다. 그 사리카야라는 분 예뻐?"

"아니 도대체 그게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후우...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들의 미적 기준을 디파일러들에게 적용한다는 사실자체가 우습지만 분명 인간들의 눈에도 지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계신계 다비금강 사리카야님이다. 이제 됬겠지? 한번만 더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한다면 가차없이 힘으로 끌고가... 이 교할한자식이 아군이 올때까지 시간을 끌었구나!"

으하하하하. 그러면 우리 본진이 코앞인데 지원군은 너네만 부를 수 있을줄 알았냐? 내 품안에 있는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을 통해서 사태를 전부 전해듣고 있을 지휘통제실에서 어떤 행동을 취했어도 진작에 취했으리란것은 보지않아도 뻔한 사실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령안 제 2형에는 웅혼한 내력을 지닌 두 무사가 빠르게 접근중인것이 포착되었다. 하나는 용린은리 사저였고 다른 하나는 토너먼트에서 맞붙은적이 있는 천주랑이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대규모 병력보다는 DF 등급의 검사 두 명이 훨씬 든든하다.

나는 언데드 사단과 푸스카에게 지시해 직접적인 교전은 피하고 단순히 그랜드 룩 계급의 디파일러 룩 헥타베로스를 포위하도록 했다. 이제 용린은리 사저와 천주랑이 쿠자르와 싸우는 과정에서 막타를 쳐서 VP만 챙기면 완벽하다. 다른 이는 치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엄연히 쿠자르를 이런 궁지에 내몬것은 내 덕분이 아니겠는가? 나는 비실비실 웃으며 쿠자르를 향해 모욕적인 손짓을 취했다.

역시 상황에 여유가 조금 생기니 상대를 도발해 이득을 취하는 버릇이 또 나온것이다. 그르렁 거리는 쿠자르의 불독 얼굴이 짜리몽땅한 키에 어울리지 않게 살벌하다. 하지만 용린은리 사저가 뒤에 있다는 생각에 나는 아예 겁을 상실해 이번에는 혀를 낼름거린다.

"인간들의 풍습을 디파일러한테 적용하면 안된다며? 왜 그렇게 발끈하는거야.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들 사이에서 상대를 깔보는 제스쳐니까 너무 열내지마라. 안그래도 주름살이 자글자글한데 더 늙어 보이겠다."

"상대를 살살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재법이군. 저 두 검사를 쓰러트리고 나면 다음은 네녀석 차례다. 그러니 그때까지 얌전히 쳐박혀 있어라!"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쿠자르가 다시 한번 폭발적으로 도약해 내 위를 점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쿠자르의 잔상을 잠깐이나마 추적할 수 있었던 나는 정수리에 이매망량을 집중시키고 그 위로 무영창 방어술식을 펼쳤다. 하지만 쿠자르가 두 주먹을 움켜쥐고 내리찍는 공격에 공들인 방어가 무색하게 나는 허리까지 땅에 박히고 말았다. 피격데미지는 크지 않았지만 몸을 운신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이렇게 된 김에 여기서 용린은리 사저가 싸우는걸 구경이나 해볼까?

전장에 도착하자 일언반구도 없이 쿠자르에게 협공을 펼치는 용린은리 사저와 천주랑의 호흡은 매섭기 그지 없었다. 아니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미워했으면서 막상 싸움이 벌어지니까 천생연분이 따로없구만. 도저히 눈으로 쫓을 수 없는 권격과 검격이 계속해서 불꽃을 튀긴다. 뭐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초인들의 전투는 기본이 이정도라는 거겠지. 그때 문득 현상황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는 디파일러 비숍 하울링 코드의 모습이 우연히 내 눈에 잡혔다.

그러고보니 저녀석도 일단 비숍계급이니까 죽이면 꽤 두둑한 VP를 줄것이다. 가만히 놀고만 있을게 아니였군. 내가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혀를 낼름거릴때 초인들간의 싸움은 쿠자르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아득한 경지에 이른 두 검사를 상대로 저만큼 버티는게 대단한 것이다. 두 주먹을 로켓처럼 내질러 용린은리 사저와 천주랑에게 벗어난 쿠자르의 몸은 이미 베였다가 재생된 상처로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옥사건 몸은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과 그 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은리사저의 얼굴이 잘 보이는걸 보니 멀쩡한것 같군요."

"머리가 완전히 맛이 간것 같군. 아니 머리는 처음부터 정상이 아니였던가. 아니 도대체 무슨깡으로 연대급 규모의 디파일러랑 혼자서 싸우려든거야? 내가 전열을 가다듬을 동안 발만 묶어두면 충분하다고 했지. 정말이지... 걱정했단 말이야 이 골치덩이 사제야!"

"사저눈엔 제가 혼자로 보여요? 어두워서 잘 안보인다는건 아는데 여기 사단급 규모의 언데드 부대가 저랑 함께하고 있어요. 원래라면 제 선에서 다 끝나는거였는데 갑자기 땅에서 주먹질좀 하는 불독 아저씨가 솟아나서 일이 번거로워 졌네요."

"저기 사제끼리 아웅다웅하는것도 좋지만 로열 나이트가 아직 전의를 잃지 않은 상황에서 좀더 전투에 집중해주셨으면 좋겠군요. 본래라면 디파일러 퀸 곁을 떠나지않을 거물이 왜 여기까지 행차했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웃으면서 상대할 적은 아닙니다."

"그정돈 나도 알고있어! 야 옥사건 거기 계속 쳐박혀서 구경만 할거야? 빨리 나와서 거들어."

"이게 조금 깊게 박혀서요. 잘 빠지질 않네요. 그리고 제가 거들어도 그닥 도움이 안될거 같은데. 그냥 두분이 로열 나이트와의 싸움에만 집중할 수 있게 언데드들로 바리케이트만 칠게요."

어느새 몸을 말끔하게 재생시킨 쿠자르가 다시 두 검사에게 달려들었다. 용린은리 사저도 내게 뭐라할 새도 없이 다시 검을 고쳐쥐었다. 다시 한번 초인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서로 몸풀기는 끝났는지 권격과 검격이 오가면서 불꽃을 튀기는게 아니라 소형폭탄을 터트린다. 그리고 뇌전의 검기와 무형의 검기가 쿠자르를 뱀처럼 휘감으며 압박해 들어간다. 역시나 쿠자르가 한숨돌리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한들 전력 차이는 여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