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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언데드로서의 삶은 과연 행복한것인가? 무한한 수명, 지치지도 않고 고통도 느끼지않는 육체는 분명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로인해 잃어버려야 하는것들, 갓 지은 햇쌀밥의 고소한 향기와 맛 그리고 사람의 따듯한 온기는 무한한 수명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소중한것들이다. 물론 개중에는 월영공(月影公) 듀리스처럼 약간의 패널티를 감수하고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도 있긴 하지만 이것은 특수한 경우다.
"내가 에보니 메이든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건 어디까지나 내가 그들의 영령을 영력으로 옭아메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 모두가 푸스카 너처럼 충성스러울거라 생각하지마. 목줄이 풀리는 순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목을 물어뜯을 녀석들이야. 누시아도 예외는 없어."
"주제넘게 나서서 주인님의 심기를 건드린점 송구스럽습니다. 다시는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습니다."
"좋아, 일단 이번 전투에 집중하자고."
1만에 달하는 언데드 사단에 유성우가 퍼부어 내린다. 거인족 패밀리들이야 원체 피부가 단단한데다 내가 약물처리를 한 덕분에 그저 그슬리는데 그쳤지만 표피가 약한 자이언트 윔이나 센티페드는 유성우를 맞고 터져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땅밑으로 이동하라구 이 자식들아!라고 백날 소리쳐봐야 저 녀석들이 알아들을리가 없다. 고르곤들이 유성우를 맞고 등골이 패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랑곳않고 돌진을 계속한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부상은 둘째치고 고통때문에 전투에서 이탈할 수 있는 상처였지만 언데드에게는 유효타가 아니였다.
그렇게 지상으로 이동하는 자이언트 윔과 센티페드만 죽어나는 가운데 어찌어찌 언데드 병력들이 디파일러 본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것만큼 큰 손실은 아니였던게 아직 땅속으로 이동하고 있는 자이언트 윔과 센티페드들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원래 본능적으로 땅을 파고 이동하는 녀석들이 무슨 변덕으로 땅위로 기어갔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어찌됬든 압도적인 병력차이가 있었으므로 지금 당장은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어보였다. 사실 그냥 유성우를 맞고 터져버린 자이언트 윔과 센티페드들은 상관없는데 애매하게 부상을 입은 고르곤들이 더 문제였다. 저걸 모두 수리할라치면 며칠 밤낮을 새야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버리기엔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서 처럼 유저들에게서 몬스터 시체를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질 못한다.
"이야 거인족이랑 저 삼두견이랑 싸우니까 옛날에 괴수영화 보던게 생각나네."
산만한 덩치의 삼두견과 아파트만한 거인족의 싸움은 꽤나 볼만했다. 만약 여기에 팝콘이 있었다면 꽤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텐데. 내가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었던것은 전황이 언데드 사단쪽에 꽤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일단 한번 양측 병력이 충돌하자 디파일러 룩은 더이상 유성우를 내뿜지 못했다. 저녀석들에게 과연 동료애라는게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적과 아군이 뒤섞인 상황에서 유성우를 내뿜으면 디파일러놈들이 더 손해였다.
유성우를 내뿜지 못하고 단순 물어뜯기로 응대하는 디파일러 룩의 치악력도 무시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였다.
고르곤 한마리가 겁도없이 디파일러 룩에게 달려들다 단숨에 반토막이 났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반토막난 고르곤이 아랑곳않고 다시 디파일러 룩에게 달려드는 모습에는 나도 질릴정도였다. 하지만 거인족들을 상대로는 디파일러 룩도 복날의 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다른건 다 둘째치고 쪽수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디파일러 폰과 나이트가 디파일러 룩을 보호하기 위해 분전했지만 거인족들은 개구리를 밟듯이 그들을 즈려밟고 지나갈뿐이다.
디파일러 룩의 머리가 세개라고 해서 거인족 세마리를 상대할 수 있는게 아니였다. 거인족들은 이빨이 아니라 두 주먹으로 싸우는 엄연한 직럽보행체였으니까. 그리고 거인족들중에서 싸이클롭스들은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산만한 디파일러 룩을 합심하여 들어올려 디파일러 폰과 나이트가 뭉쳐있는곳에 투척해버렸다. 디파일러 룩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내동댕이 쳐지는 과정에서 척추가 부러졌음에도 금방 재생해버리고 말았다.
"상위계급일 수 록 재생력도 더 높아지는건가? 더 덩치의 괴물이 저 정도의 재생력을 지니는게 쉬운일은 아닐텐데 흥미롭군."
비단 디파일러 룩뿐만 아니라 디파일러 나이트들중에서도 손쓸 수 없는 상처를 입고도 얼마안가 말짱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원래라면 저 재생력을 기반으로 차륜전을 펼쳐 상대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어야 했겠지만 워낙 언데드 사단쪽이 압도적인 병력을 지니고 있다보니 재생을 해도 얼마안가 두드려 맞고 만신창이가 되버린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자 디파일러들의 재생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것이 내눈에는 보였다.
그렇게 연대급 병력이 지니는 무게감이 무색하게 디파일러놈들은 너무나 순조롭게 척살되고 있었다.
아 이렇게까지 쉽게 이길줄은 몰랐는데 역시 병력규모를 같은 연대급으로 맞출걸 그랬나? 그런 생각을 하려던 찰나 나는 일단의 무리가 내게 접근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밤눈이 어두운것도 아닌데 사령안 제 2형인 샤프마인드(Sharpmind)까지 발동중인 상태라 제법 고강한 마력기관을 지닌 상대가 접근중인걸 모를 수 가 없었다. 역시 승산이 없다고 보고 수뇌부인 나를 기습하려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다가오는 발걸음이 너무나 여유롭다.
저런식으로 기습을 하는 놈들이 세상천지에 어디있겠냐만은 나는 푸스카에게 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100% 확실할 수 없지만 저런 고강한 마력기관을 지닌 디파일러를 본 기억이 없으니 아마 저 놈이 디파일러 비숍일 것이다. 뭐 굳이 마력기관을 떠나서 2m에 달하는 키에 어울리지 않게 치렁치렁 장신구를 달고있는 모습이 '나 보통 디파일러 아니요'라고 광고를 하는듯 했다. 개머리를 하고 있다는게 조금 옥의 티였지만.
"혹시 네녀석이 다비금강 사리카야님으로부터 트리플 크라운의 은총을 받은 나이트를 제거한 그 녀석이냐?"
"아니 이게 초면에 어따대고 반말질이야! 푸스카 저 자식 내 앞에 무릎꿀려!"
"정말이지 난폭한 녀석이로군. 사리카야님도 저런 망난이를 조금 특이한 술식을 사용한다고 해서 꼭 대려오라고 하시니. 얌전히 따라올테냐 아니면 피를 봐야겠느냐?"
"아니 이 개자식이 니가 데려온 선발대랑 본대 전부 다 전멸한거 안보이냐?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너야말로 오늘 먼지나게 얻어터질 준비해라. 쉽게 안죽인다."
"본대? 선발대? 으하하하하하하! 웃기지도 않는군. 너는 저 조무래기들을 그렇게 칭해서 자신의 공로를 부풀리고 싶었던 모양인데. 내가 이 조무래기들을 칭할 적절할 단어를 말해주지. 이 녀석들은 정찰대야. 이곳 아이스바운드 지역을 탐사하기 위한 정찰대라고. 본대니 선발대니같은 칭호를 붙이기에는 너무나 조악한 구성이라고.
다시한번 경고하는데 얌전히 따라오지 않으면 무슨꼴을 당할지 모... 어딜!"
쿠와아아아아아앙!
디파일러 비숍이 나와 대화를 나누는 틈을 타 푸스카가 움직였다. 은밀한 움직임으로 우각전(牛角箭)을 날림과 동시에 단검을 들고 디파일러 비숍의 목젖으로 짓쳐들어간다. 허나 자신만만해 했던 태도에 걸맞게 디파일러 비숍은 손쉽게 푸스카의 움직임을 꿰뚫고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사령안 제 2형 샤프마인드로 확인한 결과 특이하게도 디파일러 비숍의 성대에 있는 종속마력기관에서 마력파동이 느껴졌다.
즉 저 괴성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마력이 깃들어진 마력음파란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디파일러 비숍의 목젖을 꿰뚫기 직전이였던 우각전이 공중에서 그대로 멈추는것은 물론 푸스카마저 옴짝딸쌀 못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내 몸도 0.1초 정도 마비증세를 보이는게 여간 성가신 능력이 아니였다. 어떡색의 정신망 다발을 지니고 있는지 보이지않는것을 보아하니 정제되지 않은 순수마력을 연료로 발동되는 능력인 모양인데 마땅히 카운터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떠냐! 이것이 내가 사리카야님으로 부터 받은 은총인 하울링 코드의 능력이다. 고작 디파일러 룩과 나이트를 쓰려트렸다고 해서 기고만장해진 네놈을 아주 곤... 으아아악! 이게 뭐야?"
앞서 말했지만 디파일러 비숍이 끌고온 본대 아니 저 개자식이 주장한 대로라면 정찰대는 거의 전멸 직전인 상황이였다. 당연히 언데드 사단은 부여받은 명령어대로 다음 상대를 쫓아 나섰다. 나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랬던것은 아니지만 우연히도 땅밑을 지나가던 자이언트 웜과 센티페드가 디파일러 비숍의 양 발을 휘감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고르곤때가 디파일러 비숍 하나를 들이박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거인족의 주먹이 내려꽂히기 직전이였다.
어디한번 무슨수로 저 상황을 벗어나나 보자. 지 입으로 연대급 디파일러 병력을 조무래기라고 칭했으니 뭔가 한수가 더 남아 있겠지. 만약 이걸로 끝이라면 저 디파일러 비숍은 그저 허파에 허세가 가득찬 얼간이로 내게 기억될것이다. 나름 최후의 발악을 하려는지 디파일러 비숍의 성대에 있던 종속마력기관이 달아오르는게 내 사령안에 포착됬다. 그리고 디파일러 비숍이 곤죽이 될려는 찰나 고막을 뒤흔드는 괴성이 터져나온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마비증상은 둘째치고 더럽게 시끄럽네. 좀 닥쳐! 이 개자식아. 입을 확 꼬매불라."
하울링 코드라는 능력의 원리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소리에 실린 마력이 상대의 근육에 침투해 간섭을 가하는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 몸안의 있는 열두개로 쪼개져있는 마룡 쉐도우스틸의 심장은 특유의 항마력으로 일체의 내가중수기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0.1초 정도 멈칫하긴 했지만 움직이는데 지장이 있을정도는 아니였다.
간신히 언데드 사단의 포위를 풀어낸 디파일러 비숍이 한숨을 돌리고 있었지만 내 사령안은 디파일러 비숍의 성대에 있는 마력기관이 과열되어 사용불능 상태라는걸 놓치지 않았다.
안그래도 저 디파일러 비숍의 말본새에 화가 나있었던 나는 주저없이 디파일러 비숍의 멱살을 잡아끌고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그 후 있는 힘을 다해서 파운딩을 내려찍는데 이 개자식이 실실 웃고 있는게 아닌가? 아니 이 개자식이 어디한번 불랙탈론을 꺼내들어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보자. 이미 피투성이였던 디파일러 비숍이였지만 블랙탈론으로 내려찍으면 아예 피가 홍수를 이루겠지. 물론 계급이 계급인지라 금새 재생하는듯 했지만 그거야 말로 바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내가 쉽게 안죽인다고 했지? 아주 그냥 동이틀때까지 내가 네놈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마! 별것도 아닌게 허세만 심해가지고 나도 모르게 잠깐 쫄았잖아, 이 개자식아!"
"크흐흐흐흐흐, 멍청한 녀석. 내가 방금 사용한 하울링 코드가 단순히 네놈의 부하들을 마비시키기 위해서 사용한것 같더냐? 내 하울링 코드에는 특수한 능력이 하나 더 있지. 바로 소리가 에너지를 잃지않고 천리밖까지 전해진다는 것이다. 곧 내 하울링 코드를 전해들은 윗선에서 군단을 파견할것이다. 빨리 바지나 새로 하나 준비하는것이 좋을것이다. 네놈은 분명 오금을 지릴테니까.
지린내가 풀풀나는 상태로 네놈을 사리카야님께 대령할 수 야 없지 않겠느냐?"
"아주 그냥 허세가 골수끝까지 스며들었구만. 군단급 병력이 어떻게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하냐? 그리고 설사 진짜 군단급 병력이 나타나도 나는 조금도 안무섭거든? 오히려 환영이라구. 내 눈에는 니들이 VP 덩어리로 보인다는거 알기는 하냐?"
"으흐흐흐흐흐, 왔군."
얼굴이 아예 못알아볼정도로 박살난 디파일러 비숍이 꺼림찍한 미소를 짓는다. 두번이나 이 녀석의 허세에 속고싶지 않았던 나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 블랙탈론을 한치더 길게 내뽑았다. 빨리 해치우고 돌아가서 발씻고 잠이나 자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주위 평원이 지진이 난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절대 자이언트 웜이나 센티페드가 일제히 땅을 헤집는다고 해서 생길 수 있는 진동이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