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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아무리 내가 길치라 해도 실버 스케일에 온지 두달이 다되가는데 개인 선실에서 격납고로 향하는 길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길안내를 떠나서 전시상황을 브리핑하고 지휘통제실과의 소통을 위해 내 담당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이 방문을 나서자마자 따라붙었다. 격납고에 도착하자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수백의 병사들이 벌써부터 집합하여 전차바퀴가 달린 벙커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아무리 빙린장성이 가까이에 있다고 해도 전차를 얻어타고가기엔 너무 느렸으므로 나는 언데드 전투마 나이트메어를 소환하기로 했다.
흑단관구(黑檀棺柩)에 잠들었던
전투마(Warhorse) 나이트메어
묘지기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현현(顯現)하라
나이트메어는 분명 지능이 있는 언데드 전투마였다. 하지만 본디 언데드가 되기전에 짐승이였기 때문에 영력이 B랭크인 지금도 철저하게 내 지배하에 둘 수 있었다. 암운에 휩싸인채 등장한 나이트메어의 실루엣은 일반적인 전투마와 비교해서도 2배 이상의 덩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워낙 성정이 포악하여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올라타려하면 밟아 죽이려드는 놈인지라 그 동안 사용할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이 녀석을 사용할 적기가 왔다.
안장이 없는지라 이매망량을 밟고 올라 나이트메어에 오른 나는 빙린장성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땅이 패일정도로 발구름질을 하는 녀석이 점차 가속도를 붙히더니 호버크래프트 못지않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로지 달리기 위해서 최적화된 짐승의 신체구조는 동일한 무력 랭크 B를 지닌 유저 백명 아니 천명이 있다한들 그 누구도 엄두조차 못내는 스피드를 낼 수 있었다. 어느새 빙린장성의 코앞에 도착한 나는 계단을 타고올라 빙린장성의 꼭대기에 올라섰다.
바로 곁에서 빙린장성 건설작업을 지켜보고 도왔던 나였지만 새삼 이 빙린장성이 얼마나 견고한 방벽인지를 실감한다. 하지만 이 방벽에 기대어 싸우는 방식은 나와 맞지않았다. 넓은 평원에서 꽝하고 부딪히는 전면전, 이처럼 단순한 전투방식이 내가 가장 잘하고 가장 좋아하는 방식이였던 것이다. 두려움, 지구력 그리고 더 이상 죽을 목숨이 없는 언데드들에겐 가장 어울리는 싸움방식 아니겠는가?
"나이트메어 이 높이에서 저 해자를 뛰어넘을 수 있겠냐?"
푸스카야 내가 말만하면 죽는시늉이 아니라 진짜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녀석이라 명령을 내리는 요령이 따로 필요없다. 하지만 이 나이트메어는 짐승주제에 원체 성정이 지랄맞아서 명령을 내릴때는 이렇게 자존심을 살살 긁어줄 필요가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나이트메어는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콧김으로 암운을 내뿜는다.
그리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아파트 10층 높이의 빙린장성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장정 셋의 키를 합친것보다 폭이 넓은 해자를 가볍게 뛰어넘고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평원으로 뛰쳐나간다. 말은 안했지만 이 정도는 나한테 식은죽먹기라는 자신감이 말등에 앉아있는 내게 전해져온다. 나이트메어의 칠흑같은 동체가 새벽밤과 동화되어 붉은 도깨비불 두개가 평원을 가로지른다. 연대급 디파일러 병력이고 나발이고 내 눈에는 VP 덩어리로 보일뿐이다.
-옥사건 준위님 너무 앞서가셨습니다. 약 1km앞에서 디파일러 선발대와 조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괜히 아이스바운드 근처에서 싸워봤자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만 높아지니까 여기서 섬멸전을 펼친다.
-너무 위험한 발상입니다. 후퇴를 권고합니다. 연대급 규모의 디파일러 병력에는 디파일러 룩과 디파일러 비숍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96.45%입니다. 디파일러 룩은 걸어다니는 공성병기라는 이명에 걸맞게 함선의 전략병기가 아니면 격퇴하기가 어렵고 디파일러 비숍은 인간처럼 고도화된 전략을 구사할줄 아는것은 물론 DF 등급의 술사와 버금가는 이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그 놈들을 쓰러트리면 더 두둑한 VP를 받을 수 있다는 소리지? 요새 사고 싶은 물건도 많았는데 잘됬네. 모조리 남김없이 쓸어주겠어."
-옥사건 준위님이 DF 등급의 술사라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 디파일러 나이트를 위시한 대대급 디파일러 병력에게 유효한...
나는 내 품안에서 종알종알 거리는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을 군복 지퍼를 올려 갈무리했다. 그리고 일전에 사흉신교의 무법자들과 조우했던 무인도에서처럼 고르곤, 자이언트 웜, 자이언트 센티페드, 싸이클롭스를 포함한 거인족 패밀리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무인도는 워낙 협소한 공간이라 제약을 받았지만 이곳은 지평선이 보일정도로 광대한 평원이였다.
그리고 상대가 연대급 병력을 끌고왔다고 해서 나도 연대급 병력규모인 2000명을 맞춰서 구색을 맞추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였다.
상대가 연대급 병력이라면 나는 사단급 병력인 1만기의 언데드 크리쳐를 소환해 상대가 반항할 엄두도 못내게 찍어누르는것 그게 나 아크리퍼(Arcreaper)의 치사함이였다. 아무리 마룡 쉐도우스틸의 심장을 12개로 쪼개서만든 도데카코어의 인공마력기관을 지닌 나지만 1만기의 언데드 크리쳐를 아이언 메이든에서 소환하려니 썰물처럼 마력이 빠져나간다.
[전진] [공격] 두 명령어가 담긴 영력의 파동이 1만기에 달하는 언데드 크리쳐에게 퍼져나갔다. 저 멀리 어슴프레 보이는 디파일러놈들은 아이스바운드측에서 이런식으로 섬멸전을 펼칠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겠지.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나는 푸스카와 미노타우르스 좀비들을 각각 에보니 메이든과 아이언메이든에서 소환했다.
"푸스카 네가 여기 미노타우르스 좀비들 끌고가서 딱보면 쌔보이는 놈들 다조져버려."
"사일런트워커 푸스카 주인님의 명령을 받듭니다."
딱 보면 쌔보이는 놈들 즉 상위계급의 디파일러들을 따로 별동대를 꾸려서 암살하면 피아식별조차 힘들어 마구잡이로 눈앞의 상대를 공격하는 일반 언데드 크리쳐들의 단점을 메꿔줄 수 있다. 사위가 어둑한 가운데 디파일러 놈들도 이제서야 언데드 사단의 존재를 눈치챘다. 뜬금없이 평원 한가운데서 이런 대병력이 뛰쳐나왔으니 놈들 입장에선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러나 당황할 틈도 없이 양측 병력이 맞부딪혔다. 끝도없이 재생을 하는 디파일러와 사지가 절단되도 싸우려드는 언데드들간의 싸움은 인간들간의 싸움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처절하고 끔찍했다.
다만 재미있는점은 그런 지옥도의 주인공들에게 일말의 증오나 두려움도 없다라는 것이다. 그 지옥도에는 쉴새없이 쌓이는 VP에 즐거워하는 아크리퍼(Arcreaper)만이 있을뿐이였다. 일전에 보았던것처럼 근육이 피부밖으로 드러난 도사견의 형상을 하고 있는 디파일러 폰들은 재생할틈도 없이 고르곤에게 치여죽고 자이언트 윔, 센티페드에게 졸려죽고 거인족들의 주먹에 으깨져 죽느라 바빴다.
그나마 개의 머리를 하고 인간의 몸을 지니고 있는 디파일러 나이트들이 어떻게든 저항해 보려고 했지만 터무니없이 압도적인 병력차 속에서 개인기량을 발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면서 뭔가 기술을 쓰는것 같긴한데 워낙 난전이 펼쳐지고 있는지라 티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대대급 규모의 디파일러 선발대는 쪽도한번 못써보고 지도상에서 사라져갔다.
"스텔아 봤냐? 지금 선발대가 완전히 괴멸된거?"
-생명반응을 스캔한 결과 아직 완전히 목숨이 끊기지 않은 디파일러 개체가 확인되었습니다만 뒤를 잡힐만큼 다수는 아닙니다. 허나 빙린장성쪽의 제 1, 2 보병중대가 전열을 갖추는데 성공한만큼 일단 여기서 후퇴하여 합류한뒤에 싸울것을 권장합니다.
"그게 싫다면?"
-만약 옥사건 준위님이 계속해서 독자적으로 전투를 펼치셔도 제게는 옥사건 준위님을 강제할만한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면 일단 지휘통제실에는 옥사건 준위님이 계속해서 교전을 이어가기를 원한다고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나는 이 병력들을 모두 소진해도 상관없어. 지능이 없는 언데드들은 결국 소모품에 불과하니까. 즉 이 녀석들을 적진에 꼴아박아서 디파일러군에게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면 은린선의 보병중대측에선 나쁠거 없는 이야기 아니야?"
물론 병력의 질은 둘째치고 사단급 병력을 꼴아박아 연대급 병력을 괴멸시키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무능한 지휘관이 어디있겠냐만은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이 계속해서 후퇴를 종용하자 나는 내가 최악의 상황까지도 가정하고 있음을 어필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미 명령어가 담긴 영력의 파동을 내뿜은 상태에서 후퇴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질서라는 개념을 알리가 없는 언데드들은 정말 오합지졸 마냥 산개해서 제멋대로 전진하고 있었다.
이미 B 랭크의 영력으로 명령어를 전달할 수 있는 커버리지를 한참 벗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디파일러쪽이 끝장나든 내 언데드 사단이 끝장나든 어떻게든 결말이 나와야 한다. 사실 질거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않고 있지만 디파일러 룩과 디파일러 비숍이라는 새로운 개체가 지니는 변수를 완전히 배제할 수 는 없었다. 내가 막무가내로 싸우는듯 보여도 나이트메어의 말등에서 거대한 전쟁의 흐름을 계속해서 눈여겨 보고 있었다.
선발대가 괴멸당했다는 사실이 디파일러 본대에 전해지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1만기의 언데드 크리쳐가 100헥타르의 평원을 농사짓기 아주적합한 기름진땅으로 개간하면서 진군하고 있는지라 본대가 선발대의 괴멸을 알고 있다고 가정해야할것이다. 역시나 미리 정체불명의 언데드 사단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던 디파일러 본대에서 불이 번쩍이며 새벽밤을 밝힌다.
"저게 뭐야? 디파일러들이 전차를 사용할 수 있었던가?"
나이트메어를 탄채로 언데드 사단과 진군속도를 맞추며 멀찍이서 상황을 관망하던 나는 갑자기 대낮처럼 환해진 평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어둠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사령안으로 어떤 사태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산만한 덩치를 지닌게 아니라 정말로 산만한 삼두견이 입에서 유성우를 뿜어내고 있었다. 정말이지 신화속에나 나올법한 한 장면이였다.
곡사포처럼 내뿜어진 유성우가 하늘을 수놓았다. 잠깐이지만 그 장면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 뺨을 후려치며 정신을 다잡았다.
아니 유성우를 내뿜는 거대 몬스터라니 VOTO(Vaccine Of Things)에서도 본적없는 터무늬없는 괴물이다. 예측컨대 저 녀석이 아마 디파일러 룩일 것이다. 마치 산꼭대기에서 유성우를 곡사포로 쏘아재끼는 격이라 빙린장성도 저 녀셕 앞에선 유명무실해져 버릴것이다. 저런 거대생체병기가 있을거라고는 예상해서가 아니라 압도적인 병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공선전이 아닌 섬멸전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였다.
만약 빙린장성을 믿고 공성전을 펼쳤으면 아이스바운드의 주민들이 위험에 처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은린선의 전력을 쉴드로 돌려서 아이스바운드 마을을 보호하는 수단이 남아있었지만 문제는 저 액면그대로 산만한 덩치의 삼두견이 한두마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푸스카 이번에는 그냥 내곁에서 호위를 맡아. 괜히 불똥튀는거 맞았다가 네가 전투불능이 되버리면 골치 아프니까."
"면목없습니다. 제가 무능한 탓입니다."
"아냐 아냐. 그런 개인기량 문제를 떠나서 이런 난전속에서는 눈먼 칼이 제일 무서운거야. 아무리 뛰어난 전사도 360도 전방위를 철통같이 경계할 수 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네가 직접 인솔하는 미노타우르스 중대랑 다르게 다른 언데드 크리쳐들은 피아식별을 잘 못하니까 같은 아군한테 당하면 그게 얼마나 쪽팔리는 일이냐."
"송구한 말씀입니디만 역시 밴쉬 세이지 누시아님을 소환하면 저 덩치만 큰 개들 정도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게 아닐런지."
"푸스카 내가 왜 에보니 메이든에 살고있는 주민들의 왕이라고 생각하냐?"
"그건 주인님께서 저를 포함한 그들에게 새 삶을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너를 포함한 몇몇 주민들에게는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부여한 언데드로서의 삶을 증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