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64화 (6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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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저녁 간담회가 있있던 다음날 아침 이솔다 공주와 메키를 포함한 10인의 인어족들이 전생유적을 향해 출발했다. 인어족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잠영의 귀재였으므로 인어의 비늘 아티팩트가 소모되는 일은 없었다. 바닷속으로 사라져간 메키와 이솔다 공주를 배웅하고 나자 나는 오랜만에 한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화랑대학교 중간고사도 끝났고 탐험가용 숙소건설도 내관 인테리어 작업만 남은터라 개인선실에서 백신마켓 서핑이나 할 요량이였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제품은 마력입자 축전기(Spellparticle Capacitor)로 일반 전력을 마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크로스오버 테크놀로지의 결정체였다.

만약 지구에서 마력만 사용할 수 있다면 변이술식을 사용해서 내 본체를 개조할 수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트롤의 골수세포를 50번대 술식인 제네틱 맵핑으로 카피한 후에 내 골수세포와 결합시켜서 재생력을 크게 향상시키는 방법을, 장기적으로는 옥사건 아바타가 지닌 얼티밋 언데드 폼을 본체에 재현하는 방법을 구상중이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말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였으니 여러 설비와 재료가 갖추어진 연구실이 필요했다.

괜히 어설프게 시도했다가 본체가 변이술식의 부작용으로 키메라가 되어버릴 가능성도 다분했다. 사람의 유전자라는게 사실 수학적 도식마냥 정교하게 구성되어있어 약간의 어긋남만으로 대참사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서 내 연구실을 통채로 들고올 수 도 없는 노릇이고 설비와 재료 그리고 장소를 다시 새로 구해야한다는 소린데 그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No.75 마력입자 축전기(Spellparticle Capacitor)]

-전하 에너지를 순수마력으로 환원하는 기계장치

-100000VP

내구도(999999/999999)

당장 마력입자 축전기도 구입할 돈도 없는데 말이다. 토너먼트 우승상금이였던 7000VP를 받은덕분에 내 잔고는 17037VP가 되어 나름 여유가 생겼지만 마력입자 축전기를 사기엔 역부족이였다. 사실 돈이 있다고 쳐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였다. 트롤의 골수세포야 그렇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은 아니겠지만 우버리퍼를 해치우고 손에넣은 사령안, 마룡 쉐도우스틸의 심장 그리고 무간지옥 99층에서 손에넣은 언옥타늄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뭐 사실 얼티밋 언데드 폼이 그렇게 쉽게 재현될만한 육체의 그릇이라면 내가 몇년동안이나 매달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괴물이라는 단어로조차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생명체였던 얼티밋 언데드 폼 프로토타입에서 부터 시작해 수백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의 옥사건 아바타가 탄생했다. 술사들의 고질적인 약점인 신체내구력을 크게 개선하여 오히려 전사들보다 괴물같은 육체를 지니게된 후부터 나는 패배를 모르는 유저가 되었다. 설사 상대를 이기지 못한다해도 초월적인 재생력 덕분에 상대 또한 나를 해치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바로 그점이 문제였다. 최강의 방패가 최강의 창을 막아낼 수 있다한들 결국 방패에 불과하다.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서 최강의 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비루먹은 호미라도 있어야 최강의 방패를 치다 지친 적의 대가리를 쪼개버릴것 아닌가? 백신마켓에는 비루먹은 호미 역할을 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무기들이 있었지만 너무나 선택지가 많기에 오히려 내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그냥 맨주먹으로 계속 밀고갈까?

흑단관구(黑檀棺柩)에 잠들었던

사일런트워커(Slientwalker) 푸스카

묘지기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현현(顯現)하라

나는 토너먼트가 끝나고 다시 에보니 메이든으로 돌려보냈던 푸스카를 다시 불러들였다. 천주랑과의 결승전에서 용린춘 장로로부터 전수받은 용린정권과 용린연환각은 별다른 효용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야사의 크로스데일 한국지점 지하연구실에 있었던 뼈가면 멧돼지들을 상대로는 제법 재미를 봤지만 진짜베기 무인을 상대로는 재롱에 불과했던것이다.

사실 그 점때문에 유난히 마음이 심란했는데 이제와서 검술을 배우던 창술을 배우던 마찬가지일듯 싶다.

내가 오랫동안 강령술식과 변이술식을 연마해온것처럼 뇌신검(雷神劍) 천주랑도 어렸을때부터 무공을 수련해온 사람이다. 게다가 일문의 소문주 즉 일문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할 정도라면 그 재능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겠지. 만약 천주랑이 내게 어떤 술식을 펼친다면 나 또한 그 술식을 재롱쯤으로 여길것이다. 그렇다면 조급하게 생각하지말고 차근차근 쌈박질 경험을 늘려가면 되는것이다.

때가 되면 천주랑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만한 일권과 일각을 내지를 수 있게 되겠지.

"사일런트워커 푸스카가 주인님을 뵙습니다."

"여 푸스카 무릎은 좀 괜찮냐?"

"아직까지 이렇다할 이상은 없는것 같습니다. 언제나 주인님을 위해 날카롭게 다듬어진 비수가 되기 위해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그 즉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너 진짜 오글거리는 아부성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구나. 오늘 부른건 다름이 아니라 전에도 말했듯이 너랑 나랑 쌈박질좀 해야겠다. 너 한번 나 한번 약속한듯이 공수를 교대하는 풋내기 대련이 아니라 진짜 나를 암살 대상으로 생각하고 맨손기술 아무거나 사용해봐. 내가 왠만한 상처에는 끔쩍도 안한다는거 알지? 그리고 푸스카 니가 정말로 나를 호되게 몰아부치는것이 나한테 충성하는 길이가도해.

이번에 결승전때 생각해봐라. 내가 천주랑한테 주먹질이고 발길질이고 다해봤는데 유효타가 하나도 없었어."

"주인님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겠습니다."

처음에 나와 대련을 하자고 말을 꺼냈을때는 송구스러워했던 푸스카가 이번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단호한 표정을 짓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푸스카 특유의 우직스러움은 이럴때 빛을 발한다. 이 녀석 정말로 나를 암살 대상이라 생각하고 노려오겠지. 그리고 싸움실력이라는게 본래 스포츠화된 대련보다는 실전에서 부쩍는다는건 학창시절 책상앞에서 팬대만 굴리던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푸스카가 전투태세를 갖추고 다가오지 않자 내가 선공을 취하기로 했다.

일단 토너먼트에서도 느낀건데 인간형 생명체는 관절부위가 유난히 취약하다. 푸스카도 무릎이 아작나는 바람에 보행능력을 잃고 그것이 전투력 상실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나는 용린연환각 을(乙)초식 내려찍기를 사용해 푸스카의 무릎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러나 살짝 공중에 뜬 자세에서 내 다리는 보기좋게 꺽여버렸다. 과연 내가 요청했던 대로 푸스카가 인정사정없이 관절기로 반격한것이다.

허나 내 뼈에는 언옥타늄(UnobtaNum)으로 이루어진 철심이 박혀있기때문에 푸스카라고 해도 온전하게 원하는바를 이루진 못했다. 본래라면 완전히 다리를 못쓰게 되버렸겠지만 단순 골절상 정도에 그친것이다. 당연히 얼티밋 언데드 폼의 재생력이라면 몇 초 걸리지도 않아 재생할 수 있는 상처다.

용린연환각 을(乙) 내려찍기 연쇄점(連鎖店) 병(丙) 반달차기

천주랑 앞에서 용린연환각을 사용한것이 단순히 재롱잔치에 불과했던것은 아니였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용린춘 장로로부터 용린연환각의 진짜 묘미인 각 초식의 연계에 관해 조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용린춘 장로가 말하길 각 초식에는 다음 초식과 연계할 수 있는 연쇄점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연쇄점을 기점으로 다음 초식을 펼쳤을때 위력이 강해지는것은 물론 끊김없이 부드럽게 연계가 이루어져 그때서야 비로소 용린연환각이 완성된다고 한다.

다시한번 푸스카의 무릎을 내려찍기 위해 내질러진 발이 푸스카의 관절기에 고정된것은 당연한 수순.

하지만 그 고정된 점이 바로 연쇄점이 되어 용린연환각 병(丙)초식 반달차기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다. 물론 아직 숙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푸스카는 재빨리 관절기를 풀고 뒤로 물러서 반달차기를 회피한다. 그저 허공을 가를뿐이였지만 연환점의 묘리를 약간이나마 체감한 나는 짜릿함 쾌감을 느꼈다. 아아! 이 감각은 본 보어 마스크에게 용린정권을 클린 히트 시켰을때의 그 느낌이다.

후우 옥사건아 무력 랭크 A가 아깝지도 않냐? 마음 독하게 먹고 푸스카한테 다시한번 아크리퍼(Arcreaper)의 힘을 각인시켜보자! 나는 두눈을 감고 자기암시를 한뒤 피가날세라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맨손격투로 내가 전투불능이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해가 지기전까지 어디 개싸움 한번 해볼까!

*    *    *    *

온 군복이 초록피에 젖어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해가지기전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으리라 각오는 했지만 지구력이라는 개념자체가 없는 언데드인 푸스카와의 싸움을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연쇄점을 발견하는 노하우가 늘어난 나는 제법 능숙하게 용린연환각의 갑을병 세초식을 연계할 수 있었지만 푸스카는 그때마다 별의별 관절기로 내 공격을 봉쇄해왔다. 특히나 무리하게 안으로 파고들다 목을 제압당했을때는 빠져나오기가 여간 버거운게 아니였다.

사실 얼티밋 언데드 폼의 육체가 무기호흡이 불가능했다면 목을 제압당했을때 내 패배였을것이다.

하지만 목뼈가 으스러지는 상황에서도 푸스카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꺽어가며 깍지낀 두손을 풀어내 결국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처음의 의욕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죽일듯이 달려드는 푸스카를 상대로 기계적인 주먹질과 발길질을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해가졌다. 분명 맨손격투 실력이 늘었다고 할 수 있었지만 자주 할만한 수련은 아니였다. 녹초가된 몸으로 쉬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골절된 푸스카의 신체를 수리하고 나서야 개인선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내일도 이 수련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보니 어느새 두눈이 감겨온다. 또 꿈에서 이솔다 공주님이 나오면 좋겠다. 그러면 용린은리 사저의 방해로 시작조차 못했던 후반전을 열정적으로 달릴 수 있을텐데 말이다.

*    *    *    *

"...사건..."

"...옥사건..."

"...야! 옥사건 일어나!"

누군가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갈기고 있었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솔직히 이솔다 공주의 꿈을 꾸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진짜로 이솔다 공주가 꿈에 나타날지는 몰랐다. 그것도 지난번 꿈의 연장선상에 있는 꿈을 말이다! 지난번과 달리 이솔다 공주님이 전생유적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나는 양심의 가책없이 이솔다 공주와 뜨거운 밤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아기씨앗을 이솔다 공주의 조개속으로 분춘할려는 순간 누군가 내 뒤통수를 두들겼고 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역시나랄까 물거품처럼 사라진 꿈과 함께 나는 용린은리 사저가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보채는 관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좀처럼 용린은리 사저가 저런 표정을 짓는 일은 없는지라 나는 화도 못내고 묵묵히 복장을 추스렸다. 꿈의 여운에서 벗어나니 주변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걸 들을 수 있었다. 잠깐만 이 사이렌 소리는... 설마 전시상황인가?

"아이스바운드 근처를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옵티컬로이드 스텔리온으로 부터 연대급 디파일러 병력의 준동을 확인했어. 지금쯤이면 바로 코앞에 있을거야. 제기랄! 하필이면 이솔다 공주님 부재중인 상황에서 이런일이 터지다니. 너도 빨리 채비해서 빙린장성으로 달려나가. 브리핑 룸에서 상황을 체크할 시간조차 없으니까."

"상황이 급박한것 같은데 빙린장성에서 제가 독립적으로 전투를 벌여도 됩니까?"

"상관없어. 애시당초 명령체계상에서 네 위에 있는건 엄밀히 말해 발두인 함장님뿐이니까. 그리고 긴급상황에서 DF 등급 보유자는 함장의 지휘체계를 건너뛰고 함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재량껏 행동할 수 있다는 규칙도 있지. 만약 네가 디파일러들의 발을 잠깐이라도 묶어둘 수 있다면 네 볼에 뽀뽀라도 해주지."

"이것참 의욕이 불끈불끈 샘솟늘걸요."

"장난할시간 있으면 빨리 튀어나가! 아 그리고 독립적으로 전투를 수행하는것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게 뭔진 알고 있겠지?"

"은린선의 병사들과 아이스바운드에 거주중인 인어족들의 안전이겠죠."

"잘알고있네. 그런데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여차하면 더 우선시 해야할건 인어족 주민들이야. 엄연히 은린선의 병사들은 군인이고 인어족 주민들은 민간인이니까. 물론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내가 이를 악물고 싸울 생각이지만. 너도 이제 어엿한 은린선의 일원이니까 그 정돈 알아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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