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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건 더 디파일러-59화 (59/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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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용린환 본인이 말했듯이 나도 타인을 상처입힐 수 없다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자기 인생철학이야 타인이 왈가왈부할 부분은 아니다. 심지어 내 인생철학도 타인의 눈으로 봤을때는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 있다. 중요한건 서로의 다른 인생철학이 충돌을 일으킬때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눌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느냐다. 나는 푸스카와 함께 다음 경기장으로 향했다. 토너먼트가 4강까지 이르자 분필로 그어 만들어진 64개의 경기장도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중석에 있는 인어족들의 열기는 더 뜨거워지다 못해 폭발할듯 했다. 다음 경기 상대를 확인한 나는 그 이유를 깨닫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름 아닌 동해용궁의 지도자인 이솔다 공주 본인이 4강까지 자력으로 올라와 나와 맞붙게 된것이다. 최근 열흘동안 너무 바빠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이솔다 공주를 이렇게나마 보게되어 기쁘긴 했지만 차림새가 아쉬웠다. 이솔다 공주의 밝은 은발에 어울렸던 흰색 비키니와 랩 스터크는 어디가고 칙칙한 놀갈색의 군복에 탄창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이솔다 공주는 여전히 여신급 얼굴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투박한 군복라인이 이솔다 공주의 여신급 몸매를 꼭꼭 숨기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키니 차림이 아닌게 너무 아쉽다고 속마음을 드러낼 수 는 없는 노릇이였으므로 나는 반가움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이솔다 공주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네요, 이솔다 공주님. 군복을 입으신 모습도 너무 아름다우세요."

"그 말은 제가 쿼짓 서틴처럼 고성능 총화기를 들고 있어도 위협적이지 않다는 뜻인가요?"

"아니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군복처럼 태가 안나는 옷을 입어도 여전히 여신처럼 아름다우시다는 소리였습니다. 그건 그렇고 잠깐 사이에 총화기를 능숙하게 사용하시는걸 보니 손재주가 좋으시군요. 저번에는 호버 크래프트도 10분만에 조작방법을 익히시더니 의외로 기계랑 궁합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쿼짓 서틴은 썩 괜찮은 무기입니다. 유효 사거리, 연사속도 그리고 반동처리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지요. 그런 무기를 한 시간 정도의 교육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것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일이구요. 옥사건 준위가 강하다는건 알고 있지만 조심하는게 좋을 겁니다. 제 총알에는 눈이 없으니까요."

"자...잠깐 사이에 밀리터리 매니아가 되셨군요. 그러면 좋은 승부 부탁드립니다."

뭔가에 홀린듯 쿼짓 서틴(Quasit XIII)을 매만지는 이솔다 공주가 제법 그럴듯한 자세로 견착자세를 갖춘다. 과연 총화기와 빙결술식의 조합은 어떨지 궁금해진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것 처럼 뼈조각 의자에 앉아 푸스카가 이솔다 공주와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기로 했다. 경기 개시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이솔다 공주가 무영창으로 푸스카의 발을 얼리고 옆으로 굴러 뼈조각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한 조준각을 확보했다.

타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락

이솔다 공주가 한쪽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제법 안정적인 조준사격을 가해온다. 강건너 불구경하듯 뼈조각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깜짝놀라 의자뒤로 넘어갔다. 의자에 등을 바짝 붙이고 바리케이트 삼아 상황을 살피려는데 옆구리가 시큰한게 한 발 얻어맞은듯 했다. 사실 얼티밋 언데드 폼을 지니고 있는 수왕성의 아바타는 총알 몇 발 맞는다고 탈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결승전을 대비해 내가 지닌 우월한 재생력을 숨기고 싶었던 나는 옆구리가 재생되면서 자연스럽게 밀려져 나온 총알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무영창 빙결술식에 발이 묶였던 푸스카가 완력으로 얼음 덩어리를 깨부시고 이솔다 공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솔다 공주가 뒤로 물러나면서 푸스카의 머리를 향해 조준사격을 해보지만 속절없이 팅겨나가고 만다.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는 태생이 바위처럼 단단한데 거기에 약물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바위보다 더 단단해진 덕분이다.

"DF 등급의 술사는 당연히 디파일러보다 더 괴물같은 힘을 지녀야 하는게 당연한거지만 철판도 뚫어버리는 대 디파일러 총알을 막아내다니 정말 반칙같네요. 어디한번 이것도 막아보시죠."

속사포처럼 푸스카의 머리 굳기에 관해서 불평을 토해낸 이솔다 공주가 기존의 방아쇠가 아닌 다른 걸쇠를 잡아당겼다. 쿼짓 서틴(Quasit XIII)에 장착된 유탄이 단검을 치켜들고 이솔다 공주의 코앞에 도달한 푸스카의 무릎관절에 쏘아졌다. 푸스카의 신형이 속절없이 무너진다. 코를 찌르는 시체 타는 냄새가 쿼짓 서틴(Quasit XIII) 장착된 유탄이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일종의 강산성 물질이 유탄안에 캡슐처럼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푸스카의 무릎이 완전히 녹아내려 못쓰게 되었다.

나는 이애망량을 불려들여 보행불능 상태가된 푸스카를 끌어당겨 뼈조각 의자에 앉혔다. 토너먼트 4강에 도달할때까지 푸스카가 많은 역할을 해주었다. 내 진신능력을 숨긴채로 여기까지 온덕분에 다른 참가자들은 푸스카라는 소환 크리쳐에 내 역량이 집약되어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겠지. 그 방증으로 이솔다 공주를 응원하고 있던 인어족들이 이솔다 공주가 승리를 거머쥔것 마냥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내 진신능력의 일부를 목격한 적이 있는 이솔다 공주만이 푸스카의 단검이 바로 코앞에서 번쩍였음에도 아랑곳 않고 묵묵히 탄창을 교체하고 있었다.

"푸스카 고생했다. 다리는 경기가 끝나면 말끔하게 고쳐주마."

"제가 이형의 무기가 지닌 위력을 너무 경시한것 같습니다. 그림자 도약을 사용해 상대의 뒤를 점했다면 주인님을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죄송합니다."

"아니 오히려 잘됬어. 그림자 도약은 최후의 한수로 숨겨둬. 결승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이솔다 공주가 탄창 교체를 마치고 나를 겨누기 시작했다. 그냥 난사할법도 한데 역시 신중한 이솔다 공주는 더 확실한 기회를 엿보고 있는 모양이다. 푸스카가 저 모영이니 계속해서 내가 지닌 힘을 숨길 수 도 없는 노릇이였으므로 나는 이솔다 공주에게 질주했다. 일단 나도 이솔다 공주와같은 술사였지만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을 플레이하면서 내가 심혈을 기울여 익혔던 네임드 스킬은 모조리 언데드계열 이였다.

즉 파괴술식은 커스텀 스킬로 익혔던 까닭에 VOTO에서 수왕성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모조리 증발하고 말았다.

얼티밋 언데드 폼을 완성한 이후로는 여차하면 근접격투도 마다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파괴술식을 포함한 커스텀 스킬이 모조리 날라간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근접격투를 펼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블랙탈론이나 이매망량을 공격수단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블랙탈론으로 이솔다 공주의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고 이매망량은 보이지 않는 검으로서 남겨두고 싶었다.

내가 근접격투를 노리고 달려들자 그제서야 이솔다 공주가 움직였다. 쿼짓 서틴(Quasit XIII)의 견착을 풀고 합장을 한채로 영창을 읊조린다.

북풍(北風)에 아로새기는 혹한의 맹세(猛勢)

맹세(盟誓)를 침범하는 위선자들을 단죄하는 창(槍)

창(槍) 끝에 위태롭게 걸린 물거품의 운명(運命)

동해용궁 비전술식 3형 프로즌 바인드(Frozen Bind)

이솔다 공주를 중심으로 발산된 마력의 파장이 내 발밑으로 짓쳐든다. 푸스카의 발을 묶었던 얼음 덩어리와는 비교도 안되게 억센 얼음 뿌리가 내 몸을 휘감았다. 그 위로 이솔다 공주가 쿼짓 서틴(Quasit XIII)을 자동모드로 쏘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총알이 무섭다기 보다는 내 월등한 재생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꺼려져 이매망량을 겹겹이 세워 간이 방탄벽을 만들었다.

하나하나는 고등학생의 물리력에 불과하지만 겹겹이 쌓아올리자 금방이라도 나를 꿰뚫을듯 했던 총알세례가 서서히 회전속도가 줄어들더니 이내 공중에서 멈춰버렸다.

나는 내 몸을 묶고 있던 얼음 뿌리들을 완력으로 산산조각낸뒤 이솔다 공주에게 다시 재돌진했다. 일반탄환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에도 아랑곳않고 유탄을 재장전 하는 이솔다 공주의 코앞에 도달한 나는 이솔다 공주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렸다. 이제 막 유탄을 재장전했지만 총구마저도 내 손에 제압되자 이솔다 공주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이 너무나 애처로우면서도 아름다워 나는 한동안 공주님 안기를 풀지 않았다. 일단 대회 규정상 내가 이솔다 공주의 급소를 점하거나 이솔다 공주의 우아한 입술에서 항복선언이 떨어지지 않으면 이대로 있어도 무방했다.

"항복입니다. 내려주시죠, 옥사건 준위."

"고생하셨습니다, 이솔다 공주님. 쿼짓 서틴의 유탄으로 푸스카의 무릎을 아작냈을때는 저도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짧은 기간내에 영창 시간을 벌 유효수단을 찾으셨군요.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다시 사흉신교 일행을 만난다면 도철광 정도는 이솔다 공주님에게 맡겨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빈말이라도 고맙군요. 하지만 아직 제가 부족하다는건 스스로가 더 잘아요. 아이스바운드의 주민들에게 인어족도 DF 등급의 술사를 상대로 선전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 정도 격차면 아쉽지도 않군요. 소환 크리쳐를 한기밖에 부릴 수 없다는 경기규칙, 옥사건 준위를 겨냥해서 만들었다는건 알고 있죠?"

"뭐 애시당초 소환 크리쳐 다수를 부릴 수 있는건 저밖에 없으니까요."

"결승에서 그 규칙때문에 지게되면 절 원망할건가요?"

"이솔다 공주님은 제가 누군가에게 질것 같나요?"

"옥사건 준위가 상상이상으로 강하다는건 무인도 사건을 통해서 충분히 체감했어요. 하지만 우연히 다음 경기까지 짬이 생겨서 청룡문의 소문주인 천주랑씨의 경기를 보게됬는데 은린선의 병사가 쿼짓 서틴으로 쏘아낸 총알을 검으로 베어버리더군요. 경기장 바닥에 정확히 반으로 쪼개져 단면을 드러낸 총알을 본 순간...

제 욕심으로 만든 경기규칙때문에 양 날개가 꺽인 옥사건 준위가 천주랑씨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호신강기로 총알을 막아내는 수준을 넘어서 검으로 베어낸다라, 뇌신검(雷神劍) 천주랑이 규격외의 초일류검사임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일반 사람이 1초에 80장의 프레임이 바뀌는걸 인식할 수 있다면 천주랑은 못해도 1초에 160장의 프레임이 바뀌는걸 인식할 수 있다는 소리다. 일문의 소문주쯤 되는 검사가 그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그저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VOTO을 플레이하던 시절에도 초일류검사는 강령술사인 나와 상성이 좋은 상대는 아니였다는 것일뿐.

하지만 뇌신검(雷神劍) 천주랑이 토너먼트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브리핑 룸에서 들었던 순간 결승경기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나였다. 그때문에 푸스카를 앞세워 내가 지닌 카드를 상당부분 숨긴채 경기를 진행해왔고 그 결실을 맺을 차례가 왔을뿐이다. 그 무엇보다 이솔다 공주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나는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이솔다 공주를 안심시키기로 했다.

"그러면 이솔다 공주님 저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만약 제가 청룡문의 소문주를 상대로 진다면 이번 토너먼트의 총 상금인 1만 VP를 제가 대납하겠어요. 반대로 제가 이기면 이솔다 공주님이 제 볼에 입맞춤을 해주는거에요."

"옥사건 준위는 제 입맞춤 한번에 1만 VP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그 이상입니다. 이솔다 공주님의 입맞춤은 절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천문한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죠. 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VP가 10037 VP 뿐이니까요. 내기에 질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백지수표를 남발하는 남자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옥사건 준위는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군요. 좋아요, 내기를 수락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동해용궁의 자금을 아낄 수 있다면 불길에도 뛰어들 자신이 있는데 입맞춤정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러고보니 이렇게되면 본의 아니게 천주랑씨를 응원하게 되겠군요."

"하아 이솔다 공주의 응원을 뺐기다니 그건 좀 샘이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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