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8화 (58/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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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주위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타입의 술식인가?"

만약 푸스카가 언데드가 아니라 생명체였다면 점진적으로 확장해나가는 냉기 구름은 치명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냉기가 혈류의 흐름을 둔화시키고 신진대사를 저하시켜서 결과적으로 운동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키가 아무리 냉기의 마력을 퍼부어도 푸스카는 변함없이 기민한 움직임으로 램프의 정령 원터피스트의 주먹을 피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주위의 냉기 구름이 진해질 수 록 윈터피스트의 기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기세만 강해진거라면 좋겠건만 얼음 주먹의 스피드는 물론 공기를 가로지르는 파공음도 거세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푸스카가 열심히 얼음 주먹을 피하곤 있었지만 언제 육중한 일격을 맞고 나가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암살자의 길을 걸어온 푸스카라고 해도 미노타우르스족으로 태어난 이상 마음먹고 얼음 주먹과 박치기를 한다면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얼음 결정도 박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얼음주먹은 램프의 요정, 윈터피스트의 본체가 아니였다. 메키로 부터 공급받은 냉기 에너지가 윈터피스트이 의지에 의해 실체화된 말그대로 주먹 형태의 얼음 덩어리일 뿐이다.

유효 데미지를 입힐 수 없는 얼음 덩어리랑 부대끼다 푸스카의 육체가 고장나기라도 하면 수리하기가 여간 귀찮은게 아니였으므로 나는 무거운 엉덩이를 뼈조각 의자에서 때고 일어섰다.

"푸스카 몇 초면 되겠어?"

"1초면 충분합니다."

역시 푸스카는 겉으로는 우둔한듯 보이나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센스가 발군이였다. 앞뒤 다 짜르고 꺼낸 내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척하고 알아들은 것이다. 나는 이매망량을 불러들여 윈터피스트의 양 얼음손을 감싸기 시작했다. 영력이 B랭크로 향상되어 부쩍 강해진 이매망량은 각기 고등학생 한 명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 이매망량이 300마리가 얼기설기 엉켜 얼음주먹을 감싸자 윈터피스트는 버퍼링이 걸린것 마냥 팔을 움찔걸일뿐 내지르지 못한다.

남은 경기가 3개나 있는데 굳이 정신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내 이매망량을 거두어 들였다. 푸스카에게 말한대로 단 1초만 윈터피스트를 묶어 둔것이다. 그리고 푸스카는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윈터피스트를 지나쳐 메키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어 경기를 종식시켰다. 메키는 찰나의 순간에 푸스카가 자신을 제압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당황해 했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윈터피스트는 주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굉장히 분해하고 있었다.

-면목없습니다, 주인님. 제 탓에 패배하게 됬군요.

"괜찮아. 여기까지 온것도 윈터피스트 네 덕분이니까. 그리고 말로는 승산이 있을거라고 했지만 내심 옥사건 준위님을 이기긴 어려울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했으니까."

"메키 수고했어.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는 술식이라니 신선하던데?"

"옥사건 준위님도 수고하셨어요. 공격형 빙결술식은 옛날부터 이솔다 공주님의 특기였거든요. 저만의 빙결술식을 찾아 배우지 못하면 이솔다 공주님의 뒤를 쫓는것밖에 안될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제 주력 술식이 된 프로즌 클라우드가 의외로 윈터피스트랑 궁합이 좋아서 16강까지 꽤 수월하게 올라왔는데 역시 옥사건 준위님한테는 안되네요."

"그러면 나는 다음 경기하러 가볼게. 당일치기 토너먼트라 그런지 쉴틈을 안주네."

"저는 그러면 벤치에서 응원할게요. 말안해도 잘하시리라 믿지만 꼭 우승하세요."

메키의 응원을 받고 다음 경기장으로 향한 나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직접 대화를 해본적은 없지만 처음으로 실버 스케일의 점호에 참가했을때 도르칸 대위를 대신하여 공수중대 인원보고를 맡았던 용린환 소위였다. 생각해보면 같은 용린검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교류가 없어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였다. 허나 다행히도 경기가 시작되자 용린환 소위쪽에서 먼저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해온다.

"용린검가 1대제자 용린환이 옥사건 사형을 뵙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기 제가 어떤 연유로 그 쪽의 사형이 되는거죠?"

"말씀을 낮추셔도됩니다. 같은 1대 제자이긴 하나 옥사건 사형의 경우 용린혁 가주님의 직속 제자이시기 때문에 저보다 배분이 높으십니다."

"아 그래요? 저는 배분이라던가 그런건 잘 몰라서요. 지금 바로 말을 놓기는 그렇고 차차 친해지면 말 놓을게요."

"그러면 옥사건 사형께 이 철린검 용린환 한 수 배우겠습니다."

미안한데 네가 한수 배워야될 상대는 내가 아니라 푸스카야. 나는 이제까지 그래왔던것 처럼 아이언 메이든에서 뼈조각을 꺼내 의자를 직접 만들어 앉았다. 변이술식에서도 기초중에 기초인데다 접착제만 있으면 일반인도 만들 수 있는 뼈조각 의자였지만 관전중인 인어족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번 토너먼트에서 내 마스코트가 되어버린 뼈조각 의자가 등장하자 인어족들이 웅성거리는게 느껴졌다.

인어족들에게는 내가 마왕성의 라스트 보스처럼 보이는 걸지도

그리고 그 라스트보스에게 도전하는 용자인 용린환은 얼굴만 놓고 보자면 너무 유약해 보이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 개미 한 마리도 못죽일것 같은 외모였지만 용린은리 사저와 용린춘 장로를 따라 디파일러 출몰 지역인 수왕성까지 온것을 보면 숨겨진 한 수 가 있다고 봐야할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푸스카가 귀신같이 달려들어 찔러넣은 단검을 용린검으로 막아낸다.

이 후 푸스카가 계속해서 맹공을 펼쳤지만 용린환은 방어적인 기수식을 펼치며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푸스카가 계속해서 유효타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린환이 반격을 가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뼈조각 의자에서 한동안 지루한 공방을 지켜보았다.

"푸스카 뭐가 문제야? 관중들이 지루해 하고 있잖아."

"상대가 저를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는지라 뚫기가 여의치 않군요. 송구합니다만 주인님이 거들어주셔야 할것 같습니다."

용린환이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푸스카가 공세를 멈추고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방어적인 기수식을 유지할 뿐이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수작이지.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해서 상대방을 지치게 만드는 전법인가? 하지만 언데드인 푸스카가 지치는 일따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 백년쯤 지나서 언데드 회로망에 음에너지를 공급하는 소울스톤이 고갈되면 모를까 인간을 상대로한 지구력 소모전에선 푸스카가 지고싶어도 질 수 가 없다.

"저기 용린환 소위 공격 안할거야? 방어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아니 그건 둘째치고 8강에 올라오는 과정에서도 지금처럼 방어만 한건 아니겠지?"

"죄송합니다. 저는 누군가를 상처입히는 행위를 할 수 가 없습니다. 8강에 올라오는 과정에서는 검집채로 싸워 승리했지만 옥사건 사형을 상대로는 그게 가능할것 같지 않군요."

"저기 미안한데 그래서 지금 8강 경기에서 이기려는 의사는 있는거야? 싸울 생각이 없다면 그냥 항복하는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용린은리 사저께서 용린검객으로서 항복하는건 수치라고 하셔서... 애시당초 이 토너먼트에 참가한것도 용린은리 사저의 명령이였습니다만 무참히 패배하는 일이 있어도 항복 선언은 힘들것 같습니다."

"하아... 용린은리 사저가 그랬다고 하니 더 이상 캐묻지는 않겠지만 일단 나는 우승을 노리고 있어서 말이지. 지금부터는 조금 거칠게 갈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라구."

푸스카의 공격을 깔끔하게 막아내는걸 보면 분명 실력있는 검사는 맞는건 같은데 타인을 상처입힐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건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한 수비력을 지니고 있다해도 방어일변도의 자세로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용린환에게 달려들자 푸스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나는 본체에서 수련했던 용린정권을 대놓고 용린환의 정면에서 시도했다.

사실 이렇게 동작이큰 초식을 적의 눈앞에서 시도하는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방어일변도의 자세로는 샌드백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묵묵히 방어적인 기수식을 펼친 용린환은 내 용린정권과 푸스카의 단검을 동시에 막아내려하고 있었다. 본체가 아무리 특훈을 하고 귀갑흑석단을 먹었다고 해도 결국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지는 못한다. 즉 무력 랭크가 A에 달하는 얼티밋 언데드 폼에서 펼쳐지는 용린정권은 술사의 주먹이라고 해서 얕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도저히 검과 주먹이 맞붙어서 났다고 생각되지 않는 굉음이 울려펴진다. 분명 용린정권이 깔금하게 들어간것은 물론 푸스카가 그 빈틈을 노려 단검을 찔러넣었지만 용린환은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방어적인 기수식을 펼치며 태세를 정비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용린환이 호신강기의 수법으로 대부분의 데미지를 흘려보냈음을 깨달았다. 푸스카와의 협공은 분명 매서운 일격임에는 분명했지만 정통무공을 기반으로 펼쳐진 호신강기를 뚫기엔 역부족이였던 모양이다.

"후우... 가급적이면 결승에서 쓰고싶은 카드였는데. 푸스카 준비해라 다음 공격으로 끝낸다."

사실 지금까지 뼈조각 의자에 앉아 푸스카에게 모든걸 맞긴대에는 귀찮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전력을 숨긴채로 결승에 가려는 의중도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용린환은 생긴것 만큼이나 마음이 유약하나 지닌 실력만큼은 1대제자 답게 탄탄해 쉬이 쓰러트릴 수 없어보였다. 나는 도데카 코어의 인공마력기관에서 음에너지를 정제해내기 시작했다. 이 음에너지를 재료로 강화술식이라는 조리법을 이용해 무기를 인챈트한다면 호신강기를 뚫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용린연환각 을(乙)초식 내려찍기로 용린환의 정수리를 노린다.

용린환은 용린검을 위로 치켜세우며 어렵지 않게 내려찍기를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 틈을 파고들어오는 푸스카의 단검이 시커멓게 타오르고 있었다. 음에너지를 무기에 덧쒸우는 오십번대 술식 쉐도우 블레이드(Shadow Blade)는 내 신발이 아닌 푸스카의 단검에 행해졌던 것이다. 용린환의 호신강기가 쉐도우 블레이드로 인해 쇠약해지더니 이내 푸스카의 단검이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을 열어주고 말았다.

푸스카의 단검이 1mm만 더 밀고들어가도 정맥을 동갈낼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하자 경기가 종료되었다. 일전에 이솔다 공주에게도 말했듯이 술사는 속성강화술식을 무기에 행하므로서 검기에 준하는 인챈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요 한달새에 내 격투술이 몰라보게 늘었다곤 해도 젓가락마냥 단검을 다뤄온 푸스카에게 비할바는 아닌지라 내가 시선을 끌고 쉐도우 블레이드를 단검에 부여받은 푸사카가 용린환의 급소를 점하기로 했는데 보기좋게 성공한 것이다.

"제 패배로군요.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벤치로 돌아가 옥사건 사형의 승리를 기원하겠습니다. 부디 저를 꺽고 올라가신만큼 목표하신바를 이루시기를..."

"아 용린환 소위도 고생했어. 용린환 소위가 좀더 진지하게 공세를 취했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목검을 들고 대련을 해보는건 어때?"

"저야 환영입니다. 일대일이 아니였기 때문에 제가 패배한것은 아니지만 옥사건 사형과는 언젠가 다시한번 정식으로 붙고싶군요. DF 등급의 술사와의 싸움은 좀처럼 오지않는 귀중한 경험이니까요."

"헤에 타인을 상처입히는건 싫어하지만 대련은 싫어하지 않는 모양이네."

"저 스스로 강해지지 못하면 결국 디파일러와의 싸움에서 누군가를 지키지 못해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상처입히게 되니까요. 남들이 봤을때 이해할 수 없는 철학이지만 저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수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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