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7화 (57/599)

0057 / 0316 ----------------------------------------------

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아이스바운드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그 누구보다 인어족 자경대원들에게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오전에는 청룡문의 소문주인 천주랑을 위시한 구룡대원들과 내력을 발현하기 위한 수련을 위해 난생처음 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몇시간동안 명상에 빠져야 했고 오후에는 푸스카가 지휘하는 미노타우르스 좀비 소대와 차륜전을 펼쳐야만 했다.

그야말로 심신을 쥐어짜는 강행군을 견뎌내고 있는 인어족 자경대원에 비하면 형편이 나았지만 숙소건설작업에 동원된 나와 오전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구룡대원들도 역풍을 맞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청룡문의 소문주인 천주랑과 처음 조우했던 저녁점호 이후 본체로 복귀한 나는 피곤함에 찌들어 아야사가 룸서비스로 주문한 와인을 겻들인 스테이크마저 거절하고 내 자취방으로 귀환했다. 호텔 펜트하우스건 나발이건 내 집이 제일 편하다는 생활속 격언을 실감하며 잠에 빠져든 나는 나답지않게 아침 정각 8시에 기상했다. 우레로 부터 '선배 중간고사 준비하고 계시죠?'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면 상쾌한 아침을 맞아 여유롭게 인스턴트 커피라도 한잔 했을지 모른다.

개강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눈앞에 다가온 중간고사가 나를 힘들게 하는 주범이였고 구룡대를 힘들게 만드는건 다름 아닌 용린은리 사저였다. 처음부터 청룡문의 소문주인 천주랑을 약혼자가 아니라 불구지대천의 원수처럼 생각하던 용린은리 사저가 인어족 자경대원들을 상대로 내공심법을 지도하는 구룡대를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구룡대 수난시대 그 첫 걸음은 다름 아닌 소환단의 품질증명이였다.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와.'

'하지만 용린은리 소저 그것은 본문의 연단원에서 만든 것인지라 정확한 재료는 저희들에게도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약의 제조법이 무공비급만큼이나 극비에 속한다는 사실을 용린은리 소저도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혹여 정말로 소환단에 이상이 있을까 염려스러우시다면 10개 정도의 표본을 임의로 추출해 동물에게 먹여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너 무슨 손잡이냐?'

'에? 오른손잡이입니다만 그걸 물으시는 이유가?'

'이 소환단을 섭취한 인어족들한테 티끝만한 부작용이 없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어?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우주 끝까지 쫓아가서 네놈의 오른손목을 잘라버릴줄 알아!'

'며...명심하겠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터이니 안심하십쇼.'

소환단의 품짐증명이야 어찌어찌 넘어갔다고 쳐도 구룡대원들을 더욱 곤욕스럽게 만들었던건 따로 있었다. 천주랑을 위시한 구룡대원들이 인어족 자경대원들의 몸안으로 내력을 직접 밀어넣어 네비게이션처럼 내력이 통하는 길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오전훈련을 용린은리 사저가 직접 감독하며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온 것이다.

'진기의 흐름이 1mm 어긋낫잖아! 너 청룡문 제자가 아니라고 해서 막하는거 아니야?'

'죄...죄송합니다. 헌데 어떻게 보는것만으로 진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어긋난것을 눈치 채신건지요?'

'당연히 내가 너보다 무공 경지가 까마득하게 위니까 그렇지. 왜 의심스러우면 검들고 한판 뜰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의심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하여 여쭤본것이니 용린은리 소저는 노여움을 푸십쇼.'

'한번만 더 진기의 흐름이 어긋나면 내가중수의 기법으로 니 몸둥어리 내부를 진탕으로 만들어버릴 줄알아! 처음으로 내공심법을 배우는 사람에게 내력이 통하는 길의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1mm 어긋난게 10년이면 1cm고 그게 주화입마의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사문의 제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소흘히 했던 모양입니다. 집중해서 다시 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무례한 행동이라고 볼 수 도 있었지만 구룡대의 단주이자 청룡문의 소문주인 천주랑이 묵묵히 용린은리 사저의 지시에 따랐기때문에 구룡대원들이 항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뭐 굳이 그런 상황을 떠나서 9명의 구룡대원들은 용린은리 사저를 두려워 했다. 혈린검이라는 칭호가 말해주듯이 한번 용린검을 꺼내들면 피를 보고야마는 용린은리 사저의 성정과 실력은 청룡문에서도 엘리트에 속하는 구룡대원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인어족 자경대원 입장에서도 내공심법을 지도하는 구룡대 입장에서도 고행의 시간이였던 9일이 지나고 마침내 전생유적 입장권을 내건 토너먼트가 열리게 되었다.

모든 건설인력이 탐험가용 숙박소에 집중된 상태였기 때문에 너른 평원에 분필가루로 줄을 그은 정도의 조촐한 경기장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아이스바운드 마을에서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피튀기는 이벤트에 많은 인어족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사실 인어족 자경대원들이 디파일러의 출몰로 인해 군인이 되었다지만 아이스바운드 마을에서는 누군가의 오빠 혹은 아빠인지라 여기저기서 응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우승을 장담했던 사람치고는 기운이 없어보이는군. 역시 소환 크리쳐를 단 한기밖에 부릴 수 없다는 제약조건이 옥사건 자네에게 영향이 컸던 모양이지?"

"아 춘장로님이시군요. 아니 제약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요새 너무 피곤해서 말이죠. 물론 그 동안 가장 고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인어족 자경대원들이겠지만 저같은 경우 본체가 있는 모행성에서 시험을 치고 있거든요. 오늘 마지막 과목시험까지 끝내긴 했는데 아무래도 에너지 드링크 음료를 마시면서 억지로 각성상태를 유지한 역효과가 무시무시 하네요."

"그런 상태로 탐험가용 숙박소 외벽작업을 모두 마무리하다니 자네도 징하구만. 매번 잔업이 발생해서 본체로 돌아가면 좀 쉬는줄 알았는데 어쨌든 정말 고생했네. 내부 인테리어 작업은 정비중대에서 알아서 할테니 자네는 이제 좀 편히 쉬게나. 헌데 그런 상태로 토너먼트에는 참가할 수 있겠나?

인어족 자경대원들의 상태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던데 여차하면 이솔다 공주님께 말해서 토너먼트를 하루정도 미루면 어떻겠나?"

"저 하나때문에 이런 큰 이벤트를 미룰수야 없죠. 거기에 정신이 조금 멍한거지 육체 자체는 아주 팔팔합니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서 밤을 샌건 아바타가 아니라 본체니까요."

"그러면 건투를 비네. 은리 아가씨가 출전한게 아니다 보니 내 응원할 사람이 자네밖에 없더군. 모름지기 토너먼트라는건 응원하는 사람이 이겨야 재미있다는걸 자네도 알고 있을거라 믿네."

그렇게 말하며 멀어져가는 용린춘 장로를 배웅하고 나는 푸스카와 함께 토너먼트 선수 대기열로 향했다. 공교롭게도 청룡문의 소문주 천주랑의 참가로 총 참가인원 128명을 달성한 토너먼트는 128강, 64강, 32강, 16강, 8강, 4강 그리고 결승으로 진행되었다. 이 토너먼트의 본 목적은 은린선과 동해용궁에서 각각 10강안에 든 참가자에게 전생유적 입장권을 주기위함이지만 참가자들이 상위 라운드에 입성하는 동기부여를 위해 1등, 2등, 3등에게는 각각 7천 VP, 2천 VP, 1천 VP가 주어진다고 한다.

청룡문으로 부터 일시불로 전생유적 입장권값 20만 VP를 받은 덕분에 자금사정에 숨통이 트인 이솔다 공주가 나름 통을 크게 쓴 모양이다.

별생각 없이 용린춘 장로에게 우승을 장담했던 나도 7천 VP라는 상금앞에서 더 진지하게 토너먼트 우승을 노려보게 되었다. 토너먼트 룰에 따르면 허용가능한 소환 크리쳐는 단 한기였으므로 나는 푸스카를 앞세워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에보니 메이든에서 꺼내든 뼈조각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쉬려고 엉덩이를 붙힌 순간 푸스카가 상대 인어족 자경대원의 목에 단검을 들이밀어 128강 경기가 어이없게 끝나고 말았다.

이후로 64강, 32강도 마찬가지였다. 구룡대와 함께한 내력 발현 수련의 성과로 모의전투에서 내 미노타우르스 좀비들에게 제법 매서운 상처를 입히기 시작한 인어족 자경대원들이였지만 푸스카에게 만큼은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있었다. 난전에서도 그러할진데 1:1에서는 말할것도 없었다. 검기를 창에 쒸우는게 가능해졌다해도 닿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아니겠는가?

"허 의자에 앉아서 좀 쉬려고 하니까 끝나버리네. 푸스카야 좀 살살하자."

"죄송합니다, 주인님. 쓸데없이 허초를 써서 손속을 겨루는건 할 줄 모르는지라."

"그래도 아이스바운드의 인어족 주민들이 다 보고 있는데 그렇게 어이없이 지면 인어족 자경대원들도 서글프지 않겠냐? 최소한 9일동안 몸이 부서져라 특훈한 결과를 보여줄 짬을 줘야지. 뭐 16강 부터는 녹록치 않은 상대만 나올테니까 굳이 봐줄 필요는 없겠다만."

며칠동안 기간을 잡고 진행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당일치기 토너먼트인지라 나는 32강을 치룬지 얼마안되서 바로 16강전을 진행하게 되었다. 익숙한 얼굴이 분필로 그어진 선을 건너 넘어 오는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대는 다름아닌 나를 전생유적이 있는 해저까지 안내해준 메키였다. 원래라면 술사인 그녀 또한 경기가 시작하자 마자 푸스카의 단검에 목아래를 내줬어야 했겠지만 윈터 피스트라는 램프의 정령이 떡하고 버티고 있는지라 쉽지 않아 보였다.

"여 메키 오랜만이네."

"옥사건 준위님이랑 여기서 만나다니 뭐랄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하아 메키랑 싸우기는 좀 거북한데. 그냥 메키가 항복해주면 안되?"

"흐으 사실 16강 안에만 들어도 전생유적 입장권을 받는을 수 있는 안정권이지만요. 뭐랄까 VP만 있으면 백신마켓에서 뭐든지 살 수 있다는걸 체감하고 나니까 욕심이 나는거 있죠. 1위는 꿈도 못꾸지만 운좋게 3위를 해서 1000 VP를 받게 되면 이곳 아이스바운드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물건들을 백신마켓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포기가 안되요.

그리고 원터 피스트의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뭐랄까 다른 소환 크리쳐를 꺼낼 수 없는 옥사건 준위님한테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엄한 생각이 살짝 들어서..."

-주인님 감히 항복을 권고하는 저 무지몽매한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시죠.

"아 정말 내가 나서지좀 말라고 했잖아. 옥사건 준위님은 앞으로 안볼 사이도 아닌데 너 정말 자꾸 왜 그래."

"윈터 피스트는 그렇다 치고 메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줄은 몰랐네. 좋아. 그러면 서로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고 최선을 다해서 겨뤄보자고."

메키야 미안하구나 VP가 간절한건 이쪽도 마찬가지라서 말이야. 나는 경기가 시작되자 다시금 아이언 메이든에서 뼈조각을 꺼내들어 의자를 만들었다. 분명 윈터 피스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푸스카가 어느정도의 힘을 지녔는지 재평가할 필요성을 느꼈다.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서야 워낙 괴물같은 언데드가 많아서 푸스카가 빛을 못봤다. 하지만 16강까지 올라오면서 느낀건데 푸스카는 대인전투에 한해서는 쓸만한 언데드 암살자였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푸스카가 은밀하지만 날카롭게 메키를 향해 접근했다. 하지만 마치 철옹성처럼 메키의 곁을 지키고 있는 램프의 정령 윈터 피스트가 얼음결정으로 실체화된 팔로 푸스카를 쳐낸다.

단순히 덩치만 큰게 아니라 반응속도도 매서운 녀석이다. 푸스카는 힘없이 나가떨어지는듯 했으나 유연하게 낙법을 펼하며 지상에 착지했다. 언뜻 봐서도 푸스카가 입은 피격 데미지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토너먼트 양상과는 달리 푸스카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상대를 어떻게 공략할것인가 였다. 게다가 메키라고 해서 나처럼 놀고 있는게 아니였다. 어느새 영창준비를 마친 메키가 푸스카를 향해 냉기의 마력을 퍼붓는다.

만약 이전에 이솔다 공주가 사용했던 빙결술식인 얼음 송곳이 내려 꽂혔다면 푸스카는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메키가 사용할 술식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라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냉기 구름이였다. 피격당했을때의 데미지가 커보이는 술식은 아니였지만 피할 수 가 없다. 수중기처럼 퍼져나가는 술식을 무슨 수로 피한다는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