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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나는 용린은리 사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약혼자에 대한 질투심이 생긴다기 보다는 경외감이 앞섰다. 다른건 몰라도 용린은리 사저의 포악한 성격을 받아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성품이 휼륭하다는 말은 정말일 것이다.
"그런데 청룡문은 또 어딥니까?"
"지금은 멸망한 검림성에서 사령연합, 사흉신교와 함께 3대 세력에 속했던 사신문에 속한 방파라네. 사실 본 용린검가가 속한 사령연합의 사이가 좋다고 할 수 만은 없는 곳이였네만 사신흉교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 있지. 디파일러들이 검림성에 침공했을때 꽤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
"그런데 소문주 정도 되는 사람이랑 용린은리 사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청룡문이랑 용린검가의 관계가 조금 묘해지지 않나요? 요즘같은 세상에도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통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용린검가에 용린은리 사저정도의 무인이 많지는 않을것 같은데."
"많지 않을 뿐이겠는가 이립의 나이에 그 정도 성취를 이룬 무인은 용린검가 역사상 단 한명 은리 아가씨뿐이라네. 허나 용린검가의 식솔로 살아온지도 어느덧 반백년, 과연 가문을 위해 은리 아가씨 본인의 행복은 도외시해야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수도없이 반복하게 되더군. 은리 아가씨야 말로 차기 용린검가의 가주에 그 누구보다 적합한 분이라고 믿고 있었던적도 있네만...
요즘에는 용린검에 디파일러들의 피가 마를 날이 없는 은리 아가씨가 평범한 가정의 아낙네가 되어 소박한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
내 보통 이런 이야기를 가문 사람들에게는 잘 하지 않는 편이네만, 자네의 경우 용린검가내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중립에 설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했더니 이 늙은이의 넋두리가 너무 길어져버렸군. 마음쓰지말고 흘려 듣게나. 그러고 보니 내가 전수한 용린정권과 용린연환각의 수련은 잘되가는가?"
용린춘 장로가 화제를 바꾸고 싶었던지 뜬금없이 내 무공성취에 관한 질문을 해왔다. 이솔다 공주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떤 단체든간에 우두머리는 확실히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만약 용린은리 사저가 용린검가의 가주가 된다면 자신의 행복보다 가문의 안위를 우선시 해야하는 상황이 분명 오겠지. 용린춘 장로는 그럴바에야 용린은리 사저가 좋은 신랑감을 만나 행복한 신부가 되기를 바라는건가?
"그럭저럭 초식의 형은 잡혔으니 이번 토너먼트에서 선보일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제넘은 참견일 수 도 있겠지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용린은리 사저가 용린검가의 가주가 되는 일이 곧 용린은리 사저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건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청룡문의 소문주인 뇌신검 천주랑이 아무리 좋은 신랑감이라고 해도 용린은리 사저가 행복한 신부가 될거란 보장은 없지요."
"내 수십년동안 은리 아가씨를 보필하면서 보지못한게 있다면 자네가 부디 말해주게. 이 노부가 앞뒤가 꽉막힌 사람도 아니고 은리 아가씨께서 행복해질 수 만 있다면 소동에게도 가르침을 청할 준비가 되있다네."
"아까 용린은리 사저의 용린검에 디파일러들의 피가 마를 날이 없다고 하셨죠? 그 말에 정답이 있습니다. 용린은리 사저의 행복은 디파일러들과의 끊임없는 싸움에 있지요.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용린은리 사저는 투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무인입니다. 제가 이 수왕성으로 오기전에 아직 VOT 시스템이 증강현실게임의 일부라고만 알고 있었을때도 용린은리 사저같은 타입의 투견 한 마리를 본적이 있습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그 당시 녀석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 있어 저도 모르게 한 마리라는 표현을 사용했군요.
아무튼 용린은리 사저가 특이한건 아닙니다. 아까 토너먼트라는 네글자가 흥분된다고 하셨지요? 무인이라면 누구나 싸움에 대한 애착이 있는법이고 용린은리 사저는 그 정도가 남보다 조금 더 심할뿐. 디파일러의 침공으로 용린은리 사저가 검을 빼든것은 분명 당시 주변환경탓일 수 도 있겠지만 그때 빼든 검으로 디파일러들을 베어넘기며 작금에 이르러서는 DF 단계의 검사가 된것은 용린은리 사저의 자유의지가 아닐런지요.
여기까지가 사실상 외부인에 가까운 용린검가의 1대 제자가 한달동안 용린은리 사저를 지켜보고 내린 결론이였습니다만 춘 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용린춘 장로가 공작기계를 내려놓고 감상에 잠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을 플레이하던 당시 천외천의 일원으로서 싸움을 더럽게 좋아하는 투견(鬪犬)이라는 유저가 있었다. 만나는 천외천 유저마다 결투를 신청한 뒤에 이길때까지 들러붙는 악바리같은 년이였는데 매드 알케미스트(Mad Alchemist) 블루아주의 경우 나의 계속된 플레이어 킬링(Player Killing)에 레벨도 아이템도 떨구면서 잠적해버렸지만 투견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앞도적으로 투견을 찍어누를 수 록 더 이를 악물고 내게 달려드는데 매드 알케미스트가 내게 '그만 좀 쫓아와라'라고 말했을때의 심정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때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레벨과 아이템을 떨구면서까지 달려드는건 바보같은 일이다. 하지만 투견과 같은 타입의 인간은 싸우면서 희열을 느낀다. 용린은리 사저는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싸움을 즐기지 못하는 자가 단순히 재능만으로 DF(Defiler Fighter) 등급의 검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용린은리 사저를 지켜본 시간은 용린춘 장로가 용린은리와 함께한 시간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용린은리 사저가 어떤 사람인지 판별할 수 있다.
"자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네. 그 전에 티베타르 원사님이 헛기침으로 자꾸 눈치를 주니 작업은 계속하면서 편한마음으로 듣게. 내가 검림성에서 자네 처럼 1대 제자였던 때의 이야기라네. 마음이 너무 여린 소녀가 한 명 있었지. 흔히들 일컫는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그 소녀였지. 그러던 어느날 그 소녀의 생일을 맞아 닭을 잡게 됬는데 우연히 그 소녀가 그 장면을 목격한거야.
닭피가 주르륵 흐르는 장면을 보고 그 소녀는 기절을 하고 말았지.
아직도 용린혁 가주님이 그 때 노심초사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군. 정신을 차린 그 소녀는 몸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트라우마가 생겨 고기반찬이나 붉은색을 보기만해도 벌벌떨게 되었다네. 지금 이 이야기의 소녀가 누군지 알겠는가?"
"언어영역 3점짜리 추론문제라고 생각하면 정황상 그 소녀는 용린은리 사저겠군요."
"정답이네. 지금의 은리 아가씨를 보면 상상이 안가겠지만 은리 아가씨가 붉은 치마만 봐도 경기를 일으켜 시비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때가 있었다네."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로군요. 제 피는 벌써 두번이나 보셨는데 눈하나 깜짝않하셨는데 말이죠. 내 피는 초록색이라서 그런가?"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은리 아가씨가 직속 사제의 피를 두번이나 보신건가? 은리 아가씨가 확실히 변하긴 변하셨군. 언제까지고 어렸을적 울보 은리 아가씨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서는 안되겠어. 어느새 이 노부보다 강해지셨거늘... 고맙네. 그냥 한번 해본 소리였는데 자네에게 우문현답을 듣게 되어 마음의 짐을 약간이나마 내려 놓을 수 있었네."
그 대화를 끝으로 나와 용린춘 장로는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티베타르 원사가 말하길 어떤 건축물이던 주춧돌과 뼈대는 그 건축물의 내구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주춧돌과 뼈대만 잘 자리잡아도 건설작업의 7할은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단다. 그러한 이유로 제법 이 작업에 익숙해진 내가 싸이클롭스 좀비 두 마리를 더 소환해서 안정적으로 또 하나의 철근을 주춧돌에 고정시키자 티베타르 원사까지 공작기계를 들고 나섰다.
작업방식이 싱글코어에서 듀얼코어로 변환되자 건축물의 뼈대를 세우는 작업은 몰라볼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해가질때까지 계속된 작업으로 마침내 주춧돌 위에 고정시켜야할 철근은 모두 작업이 끝났다. 내일부터는 예의 철근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작업으로 숙소 건물의 뼈대를 더욱 견고히 하는 작업을 진행할거란다. 티베타르 원사는 싸이클롭스 좀비를 이용해 어거지로 철근을 고정시킨 덕분에 작업속도가 곱절로 빨라졌다며 내게 고마워했다.
나는 힘쓰는 일이야 기계로 대신할 수 도 있지만 티베타르 원사의 건축 노하우는 대신할 수 없지 않겠냐고 공짜 립서비스로 화답한 뒤 그 길로 푸스카가 있는곳으로 향했다.
* * * *
푸스카가 미노타우르스 좀비 일개 소대를 이끌고 인어족 자경대원들과 모의전투를 벌이는 장소에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언데드가 고통을 느낄리는 없으니 이 소리는 필시 인어족 자경대원들의 것이리라. 미노타우르스 좀비들 중에도 분명 삼지창에 꿰뚫린 상처가 가득한 녀석들이 있었지만 일렬종대로 정자세를 취한채로 나를 맞이하는 것을 보아하니 행동불능에 이른 좀비는 없는듯 했다.
역시나 인어족 자경대원들이 아무리 어렸을때부터 창을 휘둘러왔다고 해도 내기의 발현이 부재된 일창으로는 약물로 강화된 내 언데드 부대를 쓰러뜨릴 수 가 없다.
"사일런트워커 푸스카가 주인님을 뵙습니다."
"너 정말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싸웠구나?"
"면목없습니다. 오랜만에 바깥세상에 나와 몸을 푼다는게 조금 과했던것 같습니다."
"아니 괜찮아. 이솔다 공주님이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사정없이 인어족 자경대원들을 몰아부치라고 했으니까 오히려 잘한거지 뭐."
그나마 미노타우르스 좀비들은 긁힌 상처라도 있지 푸스카의 경우 흠집하나 없는 말짱한 모습이였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사일런트워커(Silentwalker)라는 이명을 지닌 푸스카는 움직임이 보통 날랜게 아니였다. 설사 외통수에 몰렸다고 해도 내가 이식시켜준 스펙트럴 띵(Spectral Thing) 쉐이드(Shade)를 이용하면 아주 짧은거리의 순간이동도 가능하니 왠만한 상대는 푸스카선에서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옥사건 준위 고생이 많으시군요. 인어족 자경대원들의 실력은 어떻게 진전이 있습니까? 부상자가 많은것을 보아하니 아직 갈길이 멀어보이지만 구체적인 조언을 듣고 싶군요."
"아 이솔다 공주님 오셨습니까?"
푸스카를 제외한 미노타우르스 좀비들을 아이언 메이든에 회수하려고 했던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여신급 미모와 몸매를 뽐내는 이솔다 공주가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실전훈련을 한다는 명목은 좋았지만 날이 갈수록 느는건 인어족 자경대원들의 실력보다는 상처뿐이였으니 이솔다 공주도 자신의 결정에 회의감을 느끼는 것이리라.
"푸스카 너가 일단 이솔다 공주님한테 인어족 자경대원들이랑 모의전투를 벌인 감상을 말해봐. 이번에 직접 싸움을 지휘한건 너니까."
"제가 고귀한 핏줄을 지니신 분에게 감히 직언하자면 인어족 자경대원 분들은 하나같이 창을 수족처럼 다루시는 숙련된 전사들이나 창에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우 본래 동해용궁의 자경대원들은 전쟁이 아닌 사냥을 위해 창술을 배운 자들이니까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닌것 같군요. 옥사건 준위는 따로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언데드에게는 급소나 통각이라는게 없습니다. 아예 박살을 내버리지 않으면 창에 백번을 찔려도 싸우려들겠죠. 하지만 디파일러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입니다. 재생력이 있는 놈들이라 화력을 집중에서 으깨버리지 않으면 다시 재생해서 달려들겠죠. 따라서 지금 인어족 자경대원들에게 필요한건 화력입니다. 무공에서 인어족들의 창술은 외공이라고 해서 내력을 발하는 기반인 육체를 갈고닦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역으로 표현하면 내력이 부재된 창술은 제 위력을 내기 힘들다는 소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