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옥사건 더 디파일러-53화 (53/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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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Oxogan The Ruins Of Guardian Spirit

이솔다 공주는 그 갸냘픈 두 어깨에 아이스 바운드에 거주중인 인어족들을 짊어지고 있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다. 솔직히 알트렙 납치사건때 무인도에서 선보인 이솔다 공주의 빙결술식 솜씨라면 리더라는 직책을 떠나서 전생유적(前生遺跡) 입장권 한 장 정도는 취해도 될텐데 말이다.

"한정된 공간안에서의 싸움은 영창시간이 필요한 술사에게 확실히 불리하지. 그러면 백신 마켓에서 아이스 골렘이나 빙결속성의 정령같은걸 구입해보는건 어떄? 물론 가격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소환 크리쳐가 영창시간을 벌어준다면 술사도 전사를 상대로 할만하지 않겠어?"

"일단 저도 이솔다 공주님처럼 빙결술사인건 맞지만 소환 크리쳐도 빙결계열로 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건 마력을 정제하는 정신망 다발의 색때문이야. 빙결술사의 경우 빙경술식을 사용하면 사용할 수 록 정신망 다발이 파랑색으로 물들지. 그 파랑색으로 물든 정신망 다발을 이용하면 냉기 에너지를 정제하는 것이 쉬워지는 것은 물론 그 냉기 에너지를 기반으로 더 파괴력이 높은 빙결술식을 완성시킬 수 도 있지."

"정신망 다발이요? 그런게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러면 제가 어렸을때 화염술식을 연습했다면 저는 화염술사가 될 수 도 있었다는 소린가요?"

메키가 자신이 화염술사가 되지 못한것이 아쉽다는 뉘앙스로 내게 물어왔다. 만약 선천적으로 아무 재능도 없는 무색의 정신망 다발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렸을때 어떤 술식을 익혔느냐에 따라 장래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VOTO(Vaccine Of Things Online)에서도 저레벨때 어떤 술식을 익혔느냐가 1000레벨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많은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린적이 있었다.

정신망 다발이 무슨 색으로 물들었는가를 정보창에서 보여주는 것도 아니니 이런 저런 술식을 잡다하게 익히다가 아바타를 삭제하고 다시 만드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인어족은 VOTO의 아바타처럼 무색의 정신망 다발을 지닌 종족이 아니였다.

"그건 아닐거야. 왜냐면 내가 봤을때 인어족의 경우 태어났을때 부터 정신망 다발이 아주 연한 파랑색이였을 테니까. 소위 말하는 선천적 재능의 차이라는거지. 물론 그 때문에 화염술식을 펼치기 위한 열에너지를 정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지만 마력 정제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면 10년에 걸쳐 도달할 경지를 태어나자마자 도달한 셈이니 나쁜일만은 아니야.

그리고 그 파랑색으로 물든 정신망 다발은 비단 공격술식뿐만 아니라 소환 크리쳐를 부리는데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 소환 크리쳐도 빙결계열로 하는거지. 말나온김에 메키의 정신망 다발이 얼마나 짙은 파랑색으로 물들었는지 확인해줄까?"

"헤엑? 그런것도 가능한건가요? 조금 궁금하긴 하네요."

나는 사령안을 기본형인 트루스피커(Truespeaker)에서 제 2형인 샤프마인드(Sharpmind)로 변경했다. 내가 정보창에서도 나오지 않는 정신망 다발의 색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다른 VOTO 유저들의 공략을 탐독한 영향도 적진 않았지만 사령안이 지닌 또다른 힘, 샤프마인드(Sharpmind)를 통해 직접 색을 관찰하고 실험할 수 있었던 부분이 컸다.

새삼 언더월드의 네임드 보스 몬스터인 우버 리퍼(Uber Reaper)가 죽으면서 내게 많은것을 남기고 갔다는 생각이든다. 내 신체일부로 취급되어 넘버링만 받지 못했을뿐 사령안은 신기중의 신기였다. 뿐만 아니라 아크 리퍼(Arc Reaper)라는 칭호도 내가 언더월드에 진입한 이후로 극악의 네임드 보스몬스터인 우버 리퍼가 다시 리젠되지 않아 생겼으니 나는 에보니 메이든에다 대고 절이라도 해야할 판이였다.

눈도 없는데 이 낫쟁이는 에보니 메이든에서 잘 살고 있을런지 모르겠네. 어디가서 맞고다니는건 아닐런지 몰라.

도데카 코어(Dodeka Core)의 마력기관에서 사령안으로 쉴새 없이 마력을 공급한 덕분에 나는 마침내 메키의 정신망 다발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처럼 인공마력기관을 설계한게 아니라면 보통 원천마력기관으로 삼는 심장과 뇌 사이에 꽤 짙은 파랑색 실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척추와 하반신 사이에는 무지개색 실들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아마 인어족들이 물에 들어갔을때 하반신이 물고리로 변하는건 저 실 덕분일 것이다.

물론 무지개색 실들은 불수의적 정신망이기 때문에 인어족들이 하반신을 의도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맹점이 있긴 했지만 태생적으로 냉기 에너지뿐만 아니라 변이 에너지도 다룰 수 있다니 인어족은 생각 이상으로 우월한 종족이였다.

"메키 내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수련을 많이 쌓았네? 이 정도면 토너먼트에서 전생유적 입장권을 노려봐도 될 것 같은데?"

"고위 강령술사이신 옥사건 준위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힘이 나네요. 그럼 어떤 소환 크리쳐를 구입하는게 좋을까요?"

"가급적이면 지능이 있는 녀석으로 하는게 좋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아직 백신 마켓 쇼핑 경험이 많은건 아니라서 확답을 줄순 없지만 빙결 속성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아티팩트같은걸 사는게 좋지 않을까? 아이스 골렘의 경우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는 있지만 손이 많이 갈 수 도 있거든."

"그렇군요. 전생유적을 발견한 특전으로 VOT 시스템으로 부터 10만 VP를 받고 이솔다 공주님으로 부터 1만 VP를 포상금으로 받아서 11만 VP가 있는데 이걸로 빙결 속성의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살 수 있을까요?"

"어어...? 11만 VP라고? 그 정도면 엄청나게 큰 금액이 잖아. 혹시 아직 VP라는 화폐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감을 못잡고 있는거 아니야? 디파일러 폰을 11만 마리를 잡아야 벌 수 있는 VP라고. 정말 어마어마 하네. 첫 발견자한테 VOT 시스템이 상여금을 준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정도일줄은..."

"그럼 꽤 쓸만한 정령 소환 아티팩트로 살 수 있는건가요?"

"물론이지. 그런데 정령 소환 아티팩트 자체가 희귀한 물건이라 수량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도 귀갑흑석단이라는 영약을 산적이 있는데 수량이 한정되어 있더라고."

내 말에 화들짝 놀란 메키는 팔목을 매만지더니 줌 인(Zoom In)에 해당하는 손놀림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만 지금 심해 한복판에서 쇼핑을 하겠다고? 아니 인어족은 상관없다고 쳐도 나는 인어의 비늘이 효력이 다하면 해수가 폐를 가득채울텐데? 뭐 호흡좀 안한다고 내가 죽는것도 아니고 신진대사가 약간 줄어들뿐이지만 해수가 몸안을 채우는 기분은 솔직히 거북하다. 물론 이솔다 공주님의 인공호흡이 곁들어진다면 오히려 환영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심해의 한복판 전생유적을 앞에 두고 메키는 쇼핑 삼매경에 빠지고 말았다. 나 또한 가만히 있기는 뭐해서 백신 마켓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인어족 자경대원들과 언데드 모의전투를 펼치는 대금 열흘치가 미리 입금되어 나 또한 메키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나름 총알이 충전된 상태였다. 최근에 웨어러블 아케인 쉴드와 귀갑흑선단을 구입하면서 잔고가 바닥을 친 뒤로 나는 VP(Vaccine Point) 귀한줄을 알게되었다. 물론 본 마스크 보어(Bone Mask Boar)와의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각각의 효능에 무척이나 만족했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법.

지구에 있는 내 본체 김사건을 더욱 초인으로 만들어줄 물건을 찾아 쉴새없이 조건 검색을 연발했다.

"구입해버렸어요..."

"아 그래? 배송은 역시 전이술 서비스 말고는 다른 수 가 없지?"

"경매중에 있는 물건을 즉시구매가인 9만 9천 5백 VP에 구입해버렸어요. 전이술 서비스 비용까지 치루고 나니까 완전히 빈털털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허무하죠?"

"일단 정령을 소환해 보는게 어때? 그만큼의 VP를 지불했으니 분명 허무함 따위는 날려버릴 정도로 굉장한 정령이 나올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그럴까요?"

열심히 백신 마켓을 둘러보았지만 1만 VP로 전이술 서비스 비용을 치루는것까지 생각하니 만족할만한 물건을 사는게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메키는 전 재산을 쏟아부어 정령 소환 아티팩트을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메키의 손에 못보던 귀걸이가 안착해 있었고 보석으로 세공된 미니 램프가 달려있어서 딱봐도 나 귀한 물건이야라고 말하는듯 했다. 메키가 예의 귀걸이를 귀에 걸고 미니 램프를 살살 문지르자 냉기 에너지의 파동이 메키의 심장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것이 느껴진다.

안그래도 빛한점 닿지 않는 심해라 으슬으슬하다고 생각했던 주위 온도가 살을 에일정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인어의 비늘이 형성하고 있는 얇은 공기층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거지 만약에 그냥 맨몸이였다면 동상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동상따위에 꿈적할 얼티밋 언데드 폼이 아니지만 동상의 고통마저 상쇄시킬 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안도했다. 매서운 추위와 함께 귀걸이에 달린 미니 램프에서 튀어나온건 거인의 형상을 한 정령이였다.

다만 하반신이 솜사탕처럼 흐물흐물 한것이 내 거인족 언데드와는 구별되는 점이였지만 건물 기둥만한 팔뚝만큼은 내 거인족 언데드에게 밀리지 않아보였다. 거기에 얼음 결정으로 이루어진 두 눈동자가 나를 차갑게 노려보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였다. 백신 마켓은 지구에 있는 중고거래 까페처럼 사기를 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닌만큼 메키는 자신이 지불한 VP에 걸맞는 정령을 손에 넣은 것이다.

"램프의 정령 윈터 피스트가 주인님을 뵙습니다. 이렇게까지 순도 높은 냉기 에너지는 오랜만이군요. 앞으로 이 빙결 마력의 파동을 기억해 그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주인님을 위해 봉사할 것을 맹세합니다. 혹시 눈앞의 삿된 기운을 지닌 남자가 주인님을 해하려하는 적입니까?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그 영혼까지 얼려보이겠습니다."

"아니 잠깐만 저 분은 나쁜분이 아니야. 오히려 인어족을 디파일러나 무법자들로부터 지켜준 경력이 있는 히어로신걸. 내 이름 메키야. 원터 피스트라고 했지? 좀 있으면 중요한 물건이 걸린 대회가 열리거든. 네 첫 임무는 그 대회를 대비해서 내 빙결술식과 호흡을 맞춰보는거야. 물론 지금 여기서 할건 아니고 뭍으로 올라간 다음에 할 예정이지만."

"제게는 이 장소가 편안하게 느껴집니다만 주인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흐음 그런데 저 쪽에 있는 신전에서 묘한 느낌이 전해지는군요. 제가 감히 주인님께 조언하건데 저 신전을 탐사하면 소기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안그래도 내가 말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저 신전을 탐색하게 될거야. 하지만 지금은 안돼. 입장권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거든."

"다시 살펴보니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견고한 결계가 펼쳐져 있군요. 소인이 무력하여 그 결계를 파쇄할 수 없음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은 하지마. 나는 지금 네가 있어서 너무나 든든한걸."

메키의 말대로 이런 정령을 귀걸이 처럼 휴대가 간편한 아티팩트에서 소환할 수 있다면 그만큼 든든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윈터 피스트라는 정령은 냉기 에너지를 기반으로 자신을 실체화하기 때문에 나는 줘도 못쓰는 아티팩트지만 메키에게는 잘 어울리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 있는 내 본체 김사건도 이와 유사한 크리쳐 소환계열 아티팩트를 지닐 수 있다면 정말 든든할 것이다.

나는 윈터 피스트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며 다시한번 VP를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동기를 고취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버 스케일 간부로서의 의무를 소흘히 해서는 안될것이다. 엄연히 월급을 받고 일이하는 것이니 말이다. 윈터 피스트와 충분히 첫인사를 나눈 메키가 원터 피스트를 되돌려보내고 내 손을 잡아왔다. 슬슬 이 바닷속이라는 장소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던 나는 반갑게 그 손을 마주잡고 뭍으로 향했다.

윈터 피스트라는 든든한 정령을 손에 넣은 메키의 헤엄이 한결 경쾌해져 나는 전생유적으로 올때보다 단축된 시간안에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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